"그런 게 아니구. 내가 먹는 걸 그 언니가 보는 게 싫었어요. 아저씨만큼 친한 것두 아니구." 그녀가 뜻 없이 뱉은 ‘친하다’는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그토록 순수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나는 오랜만에 들었다. - P110
L의 마음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마음의 변화란 누구에게나, 언제건 일어나게 마련이다. 오히려 영원히 나에게 집착하는 편이 더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아직 그녀와의 관계를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변화는 나를 쓸쓸하게 했다. - P120
만일, 닷새 전 내가 인사동에 들르기 전에 우연히 종로통을 걷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L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어젯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녀의 자췻집 앞을 배회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L과 엇갈리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어제가 L이 그 집에 들어간 마지막 날이 되었으므로. - P137
담담하게 나는 말했다. "괜찮을 거야." 내 건조한 기질이 도움이 되는 때도 있는 것이다. 담요의 온기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그녀의 경련이 차츰 수그러들었다. 그녀의 눈물이 그치고, 금이 간 눈이 감기고, 입술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나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말없이 쥐고 있었다." - P150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구 있었어요. 거짓말쟁이거나 위선자거나, 타고나길 신부나 스님이 됐으면 좋았을 사람이겠지. 평범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란 가끔가다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대체 얜 이런 얘길 나한테 왜 하는 거야?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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