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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ㅣ 민음사 사서四書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 민음사 / 2016년 8월
평점 :
『논어』는 무려 2,500여 년 전에 쓰였다. 그럼에도 많이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올 여름 논어를 읽으며 어렵지 않게 보석 같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심리학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성장형 마인드셋(Growth Mindset)’과 통하는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본 글에서는 『논어』의 정신과 성장형 마인드셋을 비교하여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논어』를 평가해보고자 한다.
지난 학기, 한 전공 과목의 마지막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영상이 있다며, 강의실 앞 슬라이드에 5분 남짓한 TED 강연 한 편을 보여주셨다. 성장형 마인드셋을 가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높았다는 게 강연의 요지였다. 강연자인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앤젤라 리 덕워스(Angela Lee Duckworth)교수의 말을 빌리면, 성장형 마인드셋이란 ‘학습 능력은 타고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학습 능력이 타고나거나 고정되어 있다’는 ‘고정형 마인드셋(Fixed Mindset)’에 대비되는 태도다. 이는 비단 학습 능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어떤 상태나 상황에 있건간에 사람은 항상 현재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까지도 내포한다.
『논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성장형 마인드셋이 계속 맴돌았다. 그 까닭을 소개하기에 앞서, 다음의 『논어』 첫 장을 보자.
1-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에 맞게 익혀 나가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_「학이(學而)」
『논어』의 첫 편인 「학이(學而)」 소개글에 따르면, ‘선진(先秦) 시대 일반적인 저작 관례에 의하면 그 책에서 제일 중요한 내용이 첫 편에 배열되었다.’(p21) 즉 첫 편의 주제인 ‘배움[學]’이 『논어』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공자는 호학지사(好學之士)로 알려져 왔으며(p21), 그가 묻고 배우는 것을 통한 자기 발전을 중시하였음은 『논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7-2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묵묵히 기억하며, 배우되 싫증 내지 않고, 남을 가르침에 지치지 않는 일들이라면 내게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_「술이(述而)」
7-2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걸을때는 반드시 여기 내 스승이 있으니, 그 가운데 좋은 점은 골라서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은 가려내어 내 잘못을 고친다.”
_「술이(述而)」
15-30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잘못이다.”
_「위령공(衛靈公)」
이처럼 공자는 스스로 항시 배우고 익혀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제자들에게도 이같이 가르쳤다. 이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인간의 품성이 태어날 때부터 전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상이 기본적으로 성장형 마인드셋과 통한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누구나 학습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이어받아, 후에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하는 성선설을 기초로 한 유학의 기본 이론을 확립하게 된다. 이는 곧 주어진 선한 바탕을 힘써 기르면 누구나 선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가능성이 느껴진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무척 낙관적이기에, 제법 근사하다.
다만, 한 가지 불명확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논어』에서는 군자를 소인과 구별하여 이야기하는데, 과연 이 군자다움과 소인다움은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소인도 부단한 배움을 통하여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가? 학습을 강조하는 장도 있는 한편, 타고난 성품의 차이를 인정하는 듯한 장들도 일부 찾을 수 있다.
17-3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상지(上知)와 하우(下愚)만이 바뀌지 않는다.”
_「양화(陽貨)」
9-21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싹이 돋았으나 이삭이 패지 못하는 것이 있고, 이삭은 팼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있도다.”
_「자한(子罕)」
17-3장에서 공자는 가장 뛰어난 이[上知]와 가장 어리석은 이[下愚]는 바뀌지 않음을 말한다. 가장 어리석은 자에게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9-21장은 특정 단계에서 더 이상 인격적 발전이 없는 사람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자에게 있어 인격적으로 최고로 치는 사람은 군자 또는 성인이라 불리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존재다. 만약 군자와 소인의 성품이 저마다 타고나는 것이라면, 학습의 의미는 다소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타고난 성품 차이를 강조하는 데 공자의 본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능성은 우리가 쉽게 그 한계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옹야(雍也)」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선생님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유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유자는 되지 마라.”(6-12)’ 여기서 유자는 오늘날의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군자다운 지식인이 될 수도, 소인 같은 지식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설령 타고난 성품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스스로를 포기하면 밑도 끝도 없이 타락할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주어진 조건하에서 노력하는 것 또한 충분한 의의가 있다.
이상, 성장형 마인드셋과 연관지어 ‘배움’이라는 『논어』의 핵심 가치를 평가해 보았다. 앞서 『논어』의 여러 장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성장형 마인드셋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친숙한 믿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수양과 도덕 실천을 통해 인간의 이상적 경지인 천인합일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유학의 기본 정신이다. 완전한 인간을 상정해두고 애써 그에 다다르고자 하니, 성장형 마인드셋이 자연스레 탑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높은 교육열 역시, 이러한 유학의 기본 사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꿈꿀수 있도록 하는, 배움을 통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긍정하는 공자의 사상은 현대에도 무척 희망적이고 낙관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논어』의 지혜를 받아들여 타인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나은 나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더 평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서평이 쌓여갈수록 나의 필력 또한 점차 향상될 것임을 믿는다.)
(2019년 8월 2일 오전 07:59 최종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