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다닐 때부터 손으로 아이 머리를 눌러 고개 숙여 절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아장 아장 걷게 되면, 처음으로 아버지나 형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식은 아버지에게, 동생은 형에게, 여자아이는 나이 차에 관계없이 남자 형제 모두에게 머리를 숙인다. 그것은 결코 의미 없는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저희가 머리를 숙여 절하는 사람이 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일에 대해 상대방 마음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한다는 뜻의 몸짓이다. 한편 절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지위에 대해 당연히 주어지는 어떤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성별이나 세대 차 혹은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적 위계질서가 가정생활의 근간을 이룬다. 집단 내부에 있어 ‘알맞은 자리’를 취하도록 매우 엄밀한 규칙에 의해 규정된다.
예컨대 연장자가 공식적인 은퇴, 즉 은거하기 전까지는 그 연장자의 명령이 엄중히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미 성장한 아들이 몇 명 있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그의 부친인 할아버지가 아직 은퇴하기 전이라면, 모든 일을 결정할 때 일일이 할아버지의 승인을 얻어야만 한다. 또한 아들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어도 부모가 아들의 결혼 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식사 때는 일가의 가장인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밥상을 가져다주며, 목욕할 때도 아버지가 제일 먼저 들어간다. 가족들은 가장에게 큰절을 해야 하고 가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인사를 받는다. 일본에 널리 알려진 수수께끼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부모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하는 자식은 머리를 기르고 싶어 하는 승려와 같다. 왜 그럴까?"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다.
가정 내에서의 ‘알맞은 자리’는 세대 차뿐만 아니라 나이 차에도 적용된다. 일본인은 극심한 혼란 상태를 표현할 때 ‘난형난제‘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 미국인들이 말하는 "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neither fish nor fowl"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일본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물고기가 물 속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장남에겐 언제나 장남으로서의 자리가 지켜져야 한다. 장남은 상속자인데, 일본을 방문한 여행자들은 종종 ‘일본의 장남들이 매우 일찍부터 몸에 익히는 책임감 있는 언행‘을 언급한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장남은 아버지가 누리는 특권을 상당 부분 일본의 봉건 사회는 복잡한 계층으로 분화되어 있었으며, 각자의 신분은 세습에 의해 정해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런 세습체계를 정착해 나가면서 각 카스트의 일상 행동을 세밀히 규제했다. 예컨대 각 가정의 가장은 문 앞에 그의 계급적 지위와 세습적 신분에 관한 소정의 사실을 게시해야만 했다. 입을 수 있는 의복, 사 먹을 수 있는 음식, 거주할 수 있는 집의 종류 따위도 그 사람의 세습적 신분에 따라 규정되었다. 당시 일본에는 황실과 조정의 귀족 아래 신분 순으로 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네 가지 카스트가 있었다.
이 사농공상 계층에 끼지 못한 채 사회 바깥으로 추방당한 천민 계급도 있었다. 그런 천민 계급 가운데 가장 수가 많고 널리 알려진 것은 ‘에타穢多’, 즉 터부시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청소부, 사형수를 매장하는 인부, 죽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도살업자, 가죽을 다루는 가파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일본의 불가촉천민untouchables,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축에도 못 끼는 자uncountables‘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부락을 지나가는 큰길 이정표에는 해당 지역의 토지나 주민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아무런 정보도 표시되지 않았다. 그들은 비참할 만큼 가난했다.터부시된 직업을 가지도록 허용되기는 했지만, 정식 사회 조직의 바깥에 방치되었다.
이와 같은 천민 계급 위에 상인계급이 있었다. 이 점은 미국인들에게 일견 의외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봉건 사회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실이었다. 상인 계급이란 언제 어디서나 봉건제도의 파괴자이기 때문이다. 장사꾼들이 존경받고 번영하게 되면 봉건제도가 쇠퇴하기 마련이다. 17세기에 도쿠가와 막부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유례없는 가혹한 법률로 일본의 쇄국을 선포한 것은 바로 상인들로 하여금 설 자리가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무렵 일본은 중국 및 조선의 연안 일대에 걸쳐서 왕성하게 해외무역을 펼쳤고, 따라서 상인 계급이 발전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에 대해 도쿠가와 막부는 일정 한도 이상의 배를 만들어 운항하는 자에게 사형이나 극형에 상당하는 엄벌을 내림으로써 그런 추세를 막고자 했다. 당시에 허가된 작은 배로는 대양을 항해하거나 상품을 싣고 다닐 수 없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국내 무역 역시 각 번의 접경에 관문을 설치해 상품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또한 상인 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려는 목적으로 여러 가지 법률을 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