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붕괴할 시기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여성 학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나중에 신플라톤학파의 비조로 불리는 철학자 히파티아였다. 그녀는 철학자인 동시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였다. 어느 시대에서든 평생에 걸쳐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낼 수 있는 학자라면 그는 보통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히파티아야말로 이러한 범주에 드는 인물로서 370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여자가 하나의 소유물로 간주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파티아는 달랐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그녀는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활동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뭇 남성의 구혼을 모두 거절했다. 히파티아가 살던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는 이미 오랫동안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미 멸망의 그림자가 알렉산드리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노예 제도가 고대 문명의 생기를 완전히 죽여 놓은 상태였으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기독교가 이교도들의 영향과 문화를 뿌리째 뽑아내려고 하던 중이었다. 히파티아는 막강한 이 세력들의 진앙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당연히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인 키릴루스가 그녀를 혐오할 만했다. 그녀가 로마 총독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혐오의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쨰 이유는 히파티아가 바로 이교도 과학과 학문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과학과 학문을 이교도의 사상이라고 폄훼했으니 키릴루스의 혐오감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히파티아는 자신에게 밀어닥치는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자기의 주장을 가르치고 글로 발표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터로 가다가 키릴루스 교구 소속의 광신 폭도들이 놓은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이때가 415년이었다. 폭도들은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옷을 벗기고 전복 껍데기로 만든 무기로 그녀의 살을 뼈에서 발라낸 다음, 남은 시신과 그녀의 저술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이름은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키릴루스는 나중에 성인의 반열에 올려졌다. - P666

667-8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한때 영화도 이제는 하나의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히파티아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서 도서관에 남아 있던 마지막 책들마저 모두 파괴됐다. 인류 문명은 잘못된 뇌수술 때문에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총체적인 망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과 사상 그리고 지식 추구의 열정이 모두 어디론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손실을 어떻게 숫자로 계량할 수 있겠는가? 파괴된 작품 중에는 작품의 제목만이라도 감질나게 알려진 운 좋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제목도 저자도 알려지지 않은 채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소포클레스가 썼다는 희곡 작품이 이 도서관에 123점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단지 일곱 편만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일곱 편 중 하나가 「오이디푸스 왕」이다. 이 도서관에는 아이스킬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도 소포클레스의 경우와 비슷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비유를 하나 들어 보자.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햄릿」, 「맥베스」, 「줄리우스 카이사르」, 「리어 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썼고 이 작품들이 당대에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현존 작품은 「코리올라노스」와 「겨울 이야기」 단 두 편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고 애석한 일이겠는가? - P667

674-5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금이라도 다른 성격의 사회를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 간주하며 심히 혐오하고는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방outlandish‘이나 ‘외계alien‘라는 표현의 부정적 뉘앙스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잘 드러내 준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문명들이 보여 주는 문화와 유적의 다양성은 ‘인간으로 되어 감‘의 다른 방식들을 우리에게 시사할 뿐이다. 외계 문명인에게는 인류 사회의 차이가 유사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어쩌면 코스모스에는 지능을 갖춘 존재의 밀도가 예상외로 매우 높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윈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인간은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지구에만 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P674

675-6 오늘날 우리는 인류도 더 큰 집단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가까운 가족에게, 다음에는 사냥과 채집 활동을 자기와 같이 하는 이들에게만 충성을 바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충성의 대상을 자기가 속한 마을에서, 부족으로, 그리고 도시 국가에서, 국가의 순으로 점차 넓혀 갔다. 사랑할 대상의 범주를 계속해서 넓혀 왔다는 이야기이다. 충성의 대상은 오늘날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조직으로까지 확대됐다. 초강대국은 문화와 인종적 배경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 함꼐 노력할 수 있는 사회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간화의 과정과 인격 함양을 경험하게 된다. 현대는 충성의 대상을 인류 전체와 지구 전체로 확대해야 할 시대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의 생물 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설명한 우리 생각을 싫어하는 자들이 통치하는 나라도 지구상에는 많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배반자, 충성심이 없는 비애국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부유한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신들의 부를 나눠 줘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나와 좀 다른 맥락에서 한 이야기지만 H. G. 웰스의 주장대로, 인류가 우주를 얻느냐 아니면 공멸의 나락으로 빠지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 P675

676-7 돌이켜 생각하면 철저하게 모순되는 선택이 이루어진 셈이다. 행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데 쓰이는 로켓과 똑같은 로켓 추진체가 핵탄두를 적국으로 날려 보내는 데에도 쓰인다. 로켓 추진뿐 아니다. 바이킹과 보이저 탐사선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사능 에너지도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알아낸 바로 그 기술에 힘입어 마련된 것이다. 모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유도하고 추적하거나 또는 적의 미사일 공격에서 자국을 보호하는 데 쓰이는 전파 기술과 레이더 기술이 행성 탐사용 인공 위성을 유도하고 제어하는 데 그대로 쓰일 뿐 아니라, 외계 문명으로부터의 신호를 검출하는 데에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파괴한다면 별과 행성의 탐사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 반대의 상황도 물론 가능하다. 행성과 항성의 탐사가 계속될수록 인류 우월주의는 뿌리째 흔들리고 말 것이다. 그 대가로서 우리는 우주적 시야를 갖게 될 것이다. 우주 탐사는 지구에 사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를 죽음과 파괴가 아니라 삶을 위해서 이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구와 지구인을 이해하는 동시에 외계 생명을 찾는 데 써야 한다. 그것이 유인 탐사이든 무인 탐사이든 간에 우리의 우주 탐험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바로 그 기술과 바로 그 조직력 덕분에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우주 탐험도 전쟁에서 요구되는 바와 똑같은 수준의 전 국민적 각오와 용기를 각자에게 요구한다. 전 지구 규모의 핵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진정한 의미의 군축 시대가 온다면, 그때 비로소 인류의 우주 탐험 노력이 강대국들의 방대한 군수 산업을 흠결 없는 평화의 산업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준비 과정에서 얻는 것들을 코스모스의 탐사 준비에서도 비교적 수월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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