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 효과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한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식료품을 살 때 20분을 더 걷더라도 1만 원을 절약할 수 이쓴 상점을 선택하지만, 145만 원짜리 양복을 144만 원에 살 수 있다고 해서 20분을 더 걸어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20분은 어디까지나 같은 20분이고, 1만 원은 어디까지나 같은 1만 원이지만, 대비 효과로 인해 그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 P137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화창한 날이 계속되는 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다"고 한 괴테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오직 대조에서만 강렬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어찌 즐거움 뿐이겠는가.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대비 효과‘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는 ‘이웃 효과‘를 통해 부자 친구를 두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음미해보기로 하자. - P140

‘문전 걸치기 전략‘의 원조는 이른바 ‘벤 프랭클린 효과‘라는 말까지 낳게 만들 정도로 탁월한 묘기를 선보인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의회의 한 의원이 프랭클린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면서 원수처럼 굴자, 프랭클린은 한 가지 꾀를 냈다. 그의 자서전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의 호의를 얻으려고 나는 굴욕적인 존경을 표하지는 않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그 주의원이 매우 희귀하고 진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 책을 숙독하고 싶다며 며칠간만 빌려줄 수 없겠는냐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그 책을 즉시 빌려주었고, 나는 일주일 안에 매우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그 책을 반환했다. 그다음 우리가 주 의사당에서 만났을 때(그는 결코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으나) 나에게 말을 걸고, 매우 친절했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이든지 나를 도와주려 했고,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우리의 우정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내가 옛날에 배웠던 교훈의 또 하나의 예가 된다. 즉, 그 속담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너를 한 번 도와준 일이 있는 사람은, 네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보다 더욱더 너를 다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 P149

큰 부탁을 위해 작은 부탁을 먼저 하든 작은 부탁을 위해 큰 부탁을 먼저 하든, 우리 인간은 부탁을 주고받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상호성의 동물‘인 셈이다. 문전 걸치기 전략은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말하는 ‘상호성의 법칙‘과도 통하는데, 치알디니가 문전 걸치기 전략의 함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 게 흥미롭다.
"아무리 사소한 요청도 함부로 승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승낙이 우리의 자아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두려워, 다음부터는 아무리 내가 지지하는 대의와 관련 있는 청원서라도 서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치알디니가 매우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게 흥미롭다. 아니 어쩌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의 연구 방법도 그런 식이었다. - P151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상호성의 법칙law of reciprocality‘이다. 쉽게 말해,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는 것이다. 1985년 멕시코 지진 때 극빈국인 이디오피아가 5,000달러 상당의 구호금을 보내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 때 멕시코가 이디오피아 편을 들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즉, 사람들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군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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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를 통해 우리는 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생각하려고 하고, 그럴 때마다 희미한 미소와 함께 행복에 젖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슬픔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생각하기보다, 그 사람을 자신의 곁에서 없애줄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기쁨의 만남이 아니라 슬픔의 만남을 영위하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공적 생활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우울하고 슬픈 감정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들은 그런 우울한 상태를 불가피하게 감내하고 있다. - P161

다행스럽게도 가족이나 연애와 같은 사적인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면 과연 기쁨과 행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더 큰 완전성, 기쁨, 그리고 쾌활함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가 끝난 뒤 오락거리를 찾아서 밤거리를 헤매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에게 오락 산업은 슬픔과 불행에 붙이는 일회용 반창고인 셈이다. 호프집에서, 카페에서, 영화관에서, 음악회에서 슬픔과 우울함으로 만들어진 종기를 핥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것은 제대로 된 처방전일까? 인스턴트로 제공된 기쁨, 값싸게 구입한 쾌활함이 삶에 진정한 행복을 부여할 리 만무하다. - P162

삶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현장에서 기쁨과 유쾌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역설했던 ‘기쁨의 윤리학‘이다. 분명 잃어버린 행복과 기쁨을 되찾는 일은 손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초인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 P162

"만일 행복이 눈앞에 있다면 그리고 큰 노력 없이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등한시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에티카』 - P162

선물을 받고 나면 항상 그 선물의 액면가와 유사한 대응 선물을 고르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관례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고받는 대부분의 선물이 명목상으로만 선물일 뿐, 그 이면에는 뇌물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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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예측하고 검토하는 습관은 매우 유용한 능력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위험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당신의 문제점은 만성적인 걱정과 불안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런 능력의 스위치를 아예 꺼버리는 방법을 배우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이완 기법이나 명상 같은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다. - P49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이 가지는 모든 측면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사물을 철저히 파악하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성향의 긍정적인 측면은 남들보다 사려 깊고 독창적이라는 점이다. 작가, 예술가, 자유사상가 가운데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짧은 시간에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요. 내게는 직장에서 회의할 때 내 생각과 느낌을 파악하고 좋은 행동 방향을 선택하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룻밤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결정을 빨리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차츰 저의 행동 방식에 익숙해지더군요. 나중에는 동료들이 내 관점과 아이디어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철저한 논리적 사고에서 나온 결과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 P50

극도의 민감성은 충동성과 정반대 성향이다. 그러나 민감한 사람들 중에는 과도한 자극을 받거나 자극을 피할 수 없을 때 좌절하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거나, 친구와 절연하거나, 진탕 마시며 놀거나, 폭음이나 폭식을 하거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마구 감정을 쏟아낸다.
이런 성향은 경계선 성격장애(BPD,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민감한 성격은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고통을 주었을 때, 금방 자기가 한 행동을 후회한다는 점에서 경계선 성격장애와 다르다. 경계선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더 쉽게 화를 내고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데 반해, 민감한 사람들은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
민감한 당신은 잘못된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쳤을 때 당신은 오랫동안 자책하고 슬픔에 빠질 것이다. - P51

감각적인 것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민감한 사람들은 신중한 전략을 선택한다. 그들은 흥분보다 안전을 중요시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부는 모험과 새로운 탐험을 즐기기도 한다. 쉽게 싫증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극에 민감하다면, 당신은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민감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주어진 과제는 두 성향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민감한 당신은 반복적인 일에 쉽게 싫증을 내고, 틀에 박힌 일상을 따분하게 여긴다. 당신은 흥미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장소에 가고 싶을 것이다.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들은 쉽게 자극을 받고 압도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기진맥진하고,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고 자책한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는 성향은 잘못된 게 아니다. 단지 두 가지 성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것은 마치 한쪽 발은 액셀러레이터에 올려놓고 다른 발은 브레이크에 올려놓은 채 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 P52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거나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 중 70퍼센트 정도는 내향적이지만, 나머지 30퍼센트는 외향적이다. 내담자들에게 그들이 내향적이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혼자 있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요"라고 하면서 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은 내향적이라는 말이 모욕적인 단어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인 것 같다. 내향적이라는 표현은 말을 걸기 어렵고, 남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기 망상에 사로잡히거나, 사이버 공간에 빠져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융(Carl Gustav Jung)은 내향적인 사람들이 물질적인 세계보다 내면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내면세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내면세계에도 관심이 있음을 의미한다.
당신이 내향적이면서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피상적이고 물질적인 주제의 대화를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잡담은 피곤해하지만, 깊은 차원의 대화, 특히 공통의 관심사를 주제로 한 일대일이나 소그룹의 대화는 즐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모임보다는 부담이 적은 소모임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로 외향적이면서 민감한 성격이라면, 당신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모든 시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내향적이면서 민감한 사람들처럼 혼자 조용히 인풋을 처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감한 성격은 내향적인 성격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다. 풍부한 내면세게와 깊이 사고하는 성향은 융이 묘사한 내향적인 성격의 특징에 속한다. 내향적인 사람과 민감한 사람에게는 많은 외적인 자극이 필요하지 않다. 풍부한 내면의 삶이 있고, 자신의 사고와 상상에 의해 자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인풋과 경험을 깊이 숙고하고 소화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 외향적이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내향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대가족 안에서 자랐거나, 학교나 다른 공동체적인 삶의 양식에 익숙하다. 또 자기 주변에 사람이 많을 때 안전하고 익숙하게 느낀다. 그들 중에는 환경적인 압박감으로 인해 외향적인 성향을 갖게 된 사람들도 있다. 활기가 넘치고 외향적인 행동만 수용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그런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 중에 70퍼센트가 내향적인 성향의 소유자라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소그룹 안에서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고, 사람이 적을 때는 쉽게 압도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감하면서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신경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사교적인 분위기에서 좌절하고 압도당하기 쉽다. 민감하면서 내향적인 사람들 역시 정도가 덜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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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주기 아깝다는 심리는 남녀 관계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애정이 식었는데도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현상을 유지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게 바로 ‘현상 유지 편향‘이다. 물론 전형적인 예는 아니기에, 이제 현상 유지 편향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 P88

미국 심리학자 해들리 아크스는 1985년 심리 테스트를 통해 개인적인 결정에서 매몰 비용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50퍼센트나 된다고 지적했다. 그 후 심리학계의 연구에선 개인보다는 집단이 매몰 비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녀 관계도 그렇지만, 정치적 지지도 감정이 투자되는 일이기 때문에 열성 지지자들은 지지를 철회해야 마땅한 사태가 전개된다고 해도 지지를 철회하기는커녕 더욱 광신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다. 그간 쏟은 노력과 정열이 아깝고 억울해서다.
그간 투자된 감정은 ‘권력 감정‘일 수 있다.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권력 감정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식,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신경의 줄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는 감정" 이라고 한다. 특정 정치인의 팬클럽 회원들은 자신이 아무런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고 순수하게 이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지지 대상과의 동일시 효과를 통해 자신도 권력 감정을 대리경험하면서 권력 중독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자신의 고귀한 감정을 투자한 이성과 결별할 때, 그 감정 투자에 대한 보상 욕구로 화병을 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격분한 나머지 보복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수가 매년 약 1만 명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그 오랜 세월 자신의 감정을 한껏 고양시켜준 것에 대해 배신을 저지르고 떠나는 연인에게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감사까지 할 일이야 아니지만, 화병을 앓거나 보복을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감정에 매달리는 것도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떠나보낼 땐 보내주어야 한다. "안녕, 내 사랑!" 하면서 말이다. - P99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문제에 대한 당신 기분은 어떤가?"라고 묻는다면, 훨씬 쉽다고 생각하고 답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후자의 문답이 감정 휴리스틱이다. 박재성은 "경제 이슈를 둘러싼 논의는 이제 대중의 이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감정 휴리스틱을 환기하고 이로써 대중의 판단과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논의에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그런 노력이다. 기존 경제 논의는 자꾸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중을 경제적 논의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소비자를 바랄 기업은 없을 것이기에, 광고엔 감정 휴리스틱이 철철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새로움을 강조하는 ‘뉴‘,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내추럴‘, 남다른 가치를 지녔다는 느낌을 주는 ‘프리미엄‘이나 ‘골드‘, 의미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느낌을 주는 ‘웰빙‘ 등이 그렇다. 미국의 한 은행은 다른 은행보다 한 시간 빠르게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당신은 좀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홍보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이 또한 전형적인 감정 휴리스틱으로 볼 수 있다.
감정 휴리스틱은 한국 특유의 정 문화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상진은 정은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관여된 사람들 사이에 애착과 친밀감을 만들어주는 사회관계적 원자재라고 정의한다. 서양의 사회관계를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때 한국의 그것은 관계주의적이며, 한국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정치적 판단이 감정 휴리스틱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나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답을 하려고 애는 쓰겠지만, 핵심은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감정 휴리스틱이다. 강양구가 잘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때 ‘좋고‘ ‘싫고‘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그러고 나서 좋은 이유, 싫은 이유를 덧붙이지요. 이게 진실 아닐까요?"
어떤 이슈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여부도 다를 바 없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당파성은 관계 중심주의이기 때문에 자신과 별 관계가 없는 공적 이슈에 대해선 자기 생각을 갖기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의 노선과 방침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농후하게 나타난다. 즉, 정치적 지지의 성격이 연예인 팬클럽의 연예인 지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정치는 쇼 비즈니스와 같다Politics is just like show business"라고 말한 건 탁견이다. - P109

롤프 도벨리가 "가용성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했듯이, 가용성 편향은 공적 영역에서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현상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 유용하다.
미국의 노동운동 지도자 앤디 스턴은 민주당 정치인들의 전형적 이미지를 "볼보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비싼 커피를 홀짝이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고, 동북부에 살고,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학을 나온 리버럴"로 규정한다. 이들이 입으로는 보통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주변 환경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 즉 가용성 편향이 문제라는 뜻이다.
사실 민주당은 정치 참여에서부터 정치자금에 이르기까지 부자 유권자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어서 사실상 그들에게 발목이 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상 좌클릭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마저 공화당에 표를 던진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2004년 ‘민주당의 여피화‘를 지적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정치인들은 수사적 진보성을 전투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실천으로 연결되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정치적 불신과 혐오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가용성 편향은 우리말로 "노는 물이 어떻다"는 식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물 편향‘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물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 수준에 따른 거주지의 분리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 사는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사회적 소통 · 통합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 P116

정박 효과는 법정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정은주는 「판사를 좌지우지하는 검사: 초깃값에 의존하는 ‘정박 효과‘」라는 글에서 "판사에게 나타나는 휴리스틱으로는 ‘정박 효과‘가 대표적이다. 정박 효과란 사람들이 수치화된 값을 추정할 때 초깃값에 의존하는 현상이다. 집값을 추정할 때 공시지가를 고려하는 식이다. 문제는 얼토당토않은 초깃값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라며 박광배 충남대학교 교수(심리학)가 2004년 2월 형사재판을 맡은 판사 15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런 내용이다.
우선 판사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법정형이 5년 이상인 형법상 강간치상 사건을 동일하게 제시했다. 첫째 그룹에는 검사 구형을 2년으로, 두 번째 그룹에는 검사 구형을 10년으로 하고 세 번째 그룹에는 검사 구형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 검사가 10년을 구형하거나 구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양형 평균이 57.2개월과 57.5개월로 비슷했다. 하지만 검사 구형 2년 그룹의 평균은 42.5개월로 큰 차이를 보였다. 검사의 2년 구형은 법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낮은데도 판사의 양형 판단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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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8-02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롤프 도벨리가 말한 가용성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라는 말이 와닿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심리학자 매슈 리버먼은 페스팅거의 실험을 동아시아인들에게 했을 때 아시아인이 미국인보다 합리화를 훨씬 적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시아인들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환경 속에서 컸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흡연을 정당화하려는 흡연자는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4가지 자기암시 수법을 쓴다. 첫째, 매우 즐기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 둘째, 유전자가 좋아 나는 괜찮을 것이다. 셋째, 인생을 살면서 모든 위험을 다 피해가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넷째, 금연하면 체중이 늘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져 건강에 오히려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사람마다 인지 부조화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가? 왜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성적으로 발을 빼는데, 어떤 사람은 계속 매달리는가? 페스팅거의 제자인 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는 정직한 성찰을 통해 부조화 문제에 대응하는 사람은 성격이 원만하고 높은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주 낮은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투자한 것이 별것 아니라 여기고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 설명에 따른다면, 광신도들은 아주 높은 자기 존중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투자한 것이 별것 아니라 여기고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욕이 된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사회에는 심리적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누구든 자신은 예외일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예외는 없다. 단지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줄이려는 분야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P65

69, 71 해병대 출신의 엄청난 자부심도 그들이 받은 혹독한 훈련에서 비롯된다. 해병은 전원이 지원병인데, 3.5~5 대 1의 지원율은 보통이고 학기 말, 학기 초엔 10 대 1까지 치솟는다. 합격자의 47퍼센트가 두 번 이상 지원자다. 게다가 아무나 해병대 훈련을 통과할 수 없다는 믿음은 "우리는 다르다"는 엘리트 의식을 낳고, 이게 기반이 되어 전역 후에도 끈끈한 전우애를 유지한다. 해병대 출신들의 유난스러운 단결력에 대해 한양대학교 교수 정기인은 "엄청난 기합과 지옥 훈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가지며,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타 집단이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자신이 큰 고생을 했거나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은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심리적 현상을 ‘노력 정당화 효과‘라고 한다. 그 심리적 메커니즘은 앞에서 살펴본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게 어떻게 해서 얻은 자격인데……" 하는 생각이 자신의 소속 집단에 대한 과대평가는 물론 집착에 가까운 애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중략)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간혹 과도한 탐욕과 오만의 포로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서비스를 하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하는 스캔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P69

여러 연구 결과, 소비자는 조립 등과 같은 참여를 통해 자기 취향과 의지를 많이 반영해 만든 제품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가리켜 ‘이케아 효과‘라고 한다. 앞에서 살펴 본 ‘노력 정당화 효과‘의 일종이다.
이와 관련, ‘이케아 효과‘라는 말을 만든 듀크대학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미국 주부들이 가사에 투입하는 노동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50년대에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가 출시되자, 처음에는 주부들이 썩 내켜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왜 그랬을까?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의 도입으로 손쉽게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주부들의 노동력과 요리 기술이 평가절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제조 업체들은 주부가 계란을 집어넣어야 케이크가 완성되도록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의 조리법을 바꾸었으며, 그 결과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가 더 널리 보급되었다. - P75

그러나 이케아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기업도 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애플이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통제욕과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콘텐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모든 측면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된 엔드투엔드end-to-end 방식을 선호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애플의 엔드투엔드 방식은 ‘애플 생태계‘라는 말까지 낳게 했다. 아이폰 · 아이패드 같은 하드웨어와 이를 작동시키는 운영체제iOS, 보고 즐기는 콘텐츠, 기기를 사고파는 오프라인 매장(애플 스토어)과 애플리케이션(앱)을 거래하는 앱스토어를 통틀어 생태계로 칭한 것이다. 세계에서 애플만 유일하게 이런 생태계 전체를 갖고 있다. 기기를 만들어 애플 스토어에서 팔고, 아이튠즈에서는 음악을, 앱스토어에서는 앱을 판매한다. 이렇게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전 과정을 틀어쥐고 있는 데서 애플의 시장 장악력이 나온다는 게 경영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엔드투엔드 방식이 가진 문제점은 사용자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용자들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이크 데이지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애플 제품의 사용자들은 자기 뜻대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없고, 애플이 통제하는 애플의 서버로부터 다운로드를 받아야 한다"며 모든 프로그램은 "애플의 통제와 검열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또 하버드대학 법대 교수 조너선 지트레인은 「왜 나는 아이패드를 사지 않으려고 하는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우 사려 깊고 멋진 디자인이다. 하지만 또한 사용자에 대한 명백한 멸시가 포함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사주는 것은, 이 세상이 자신의 것이며 스스로가 분해해 재조립해야 할 대상임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배터리를 바꿔 끼우는 단순한 일조차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수단이 된다."
반면 잡스는 통합적인 접근법을 정의正義의 문제로 간주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통제광이라서가 아닙니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사용자들을 배려해서, 남들처럼 쓰레기 같은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엔드투엔드 방식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인 반면, 잡스의 반론은 종교적이다. 과연 소비자들은 어떤 걸 더 원할까. 이케아 효과에 빗대 말하자면, 사용자 경험 전반을 통제해 책임을 지고 싶다는 잡스의 생각은 ‘애플 효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소비자의 기질과 취향에 따라 이케아 효과를 원하기도 하고 애플 효과를 원하기도 한다고 보는 게 옳겠다. - P76

손실 회피 편향은 조직 관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에 대해 너무도 쉽게 ‘복지부동‘이라거나 ‘무사안일‘이라는 비판을 하지만, 역지사지를 해볼 필요가 있다. 혼자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가진 조직에선 직원들이 위험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 잘해내면 보너스를 조금 더 받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일자리를 빼앗길 정도라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려고 들겠는가? 이와 관련, 롤프 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회사에서든 거의 모든 경우에 출세를 위협하는 요소가 성공 가능성을 능가한다. 그러므로 이제 회사의 상관으로서 직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해온 사람이 있다면,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바로 손실 회피 편향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더 강하다. 우리는 긍정적인 일보다 부정적인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거리를 가다 보면 친절한 얼굴들보다 불친절한 얼굴들이 눈에 더 빨리 띈다. 나쁜 태도는 좋은 태도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물론 예외는 있는데, 우리 자신에 관한 일일 때가 그렇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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