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들이 가장 행복하고 복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그들의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이를테면 정의로운 행동? [......] 아니면 용기있는 행동? 마치 신들도 무시무시한 대상이나 위험 앞에서 꿋꿋이 버티는 것이 윤리적으로 아름다운 행위라서 그렇게 해야 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 살아 있는 자(이 문맥에서는 신을 가리킴ㅡ역자)에게서 미덕과 영리함에 따른 행동의 가능성을 빼고 나면 [......] 사유밖에는 남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복된 활동으로서 다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신의 활동은 사유하는 활동일 수밖에 없다." - P170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떄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 P170

"모든 인간사를 경멸하고 지혜의 한참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본다면, 그리고 언제나 사유 속에서 오직 영원한 것과 신적인 것에만 몰두한다면, 대체 어떤 장군의 자리가, 어떤 공직이, 어떤 왕좌가 이보다 더 높이 보일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사람이라도 불리기는 하지만, 진정한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서 고유하게 지닌 능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더 뛰어난 형태로 발전시키는 자뿐이라는 것을." - P171

거친 일을 기꺼워하는 너희, 빠른 것,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좋아하는 모든 자들아,ㅡ너희는 잘 참지 못한다, 너희의 부지런함은 도피이며 자기 자신을 잊으려는 의지이다. 너희가 삶을 더 믿는다면 순간을 위해 스스로를 던져버리는 일도 적어지리라. 하지만 너희에게는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내용이 속에 담겨 있지 않구나ㅡ게으를 수 있을 만한 내용조차 없구나!
ㅡ프리드리히 니체 - P172

아렌트가 『활동적 삶』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사유는 소수의 특권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수는 오늘날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사상가들이 그나마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마도 오늘날의 특징적인 징후일 것이다. 어쩌면 사유는 사색적 삶이 활동적 삶에 자리를 내주고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는 바람에 큰 손상을 입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유는 활동 과잉의 초조, 부산함, 불안함을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 사유는 점점 커져가는 시간 압박 때문에 그저 동일한 것만 재생산한다. 니체도 이미 자기 시대에 위대한 사상가가 거의 없음을 한탄한다. 그는 이러한 결핍에 대한 원인을 "사색적 삶이 퇴조하고, 그러한 삶이 곧잘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데서 찾는다. "노동과 부지런함이ㅡ보통은 위대한 건강의 여신을 추종하지만ㅡ때로 질병처럼 날뛴다." 사유를 위한 시간, 사유 속에서 평정을 찾을 시간이 없는 까닭에, 어긋나는 견해들은 기피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전반적인 초조와 불안 때문에 사유는 깊어지고 과감하게 멀리 밖으로 나아가며 진정으로 다른 무언가를 향해 뛰어오를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한다. 사유가 시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유를 좌우한다. 이로써 사유는 잠정적이고 무상한 것이 된다. 사유는 더 이상 지속적인 것과 의사소통하지 못한다. 그러나 니체는 "명상의 신령이 막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이런 한탄도 잠재울 것이라고 믿는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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