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비의 자에 들어 있는 덕(德)이라는 개념이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개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한비자』라는 책을 넘길 필요가 있다. 한비자는 "덕은 득(得)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덕은 단순히 도덕적인 품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얻는 대상은 사람이다. 통치자의 덕이라면 그것은 탁월한 신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스승의 덕이라면 그것은 탁월한 제자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 P268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微明]‘이라고 말한다. 유연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도덕경』36장 노자의 통치술이 압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하나 있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는 구절이다. 이제 명확해진다. 아두를 땅바닥에 던질 때, 유비는 바로 이 교훈을 실천한 것이다. 자신의 아들보다 더 총애한다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 아들을 던졌다는 것을 조자룡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조자룡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으로 여겨져야 한다. 만약 이것을 눈치 챘다면, 조자룡은 자신을 얻기 위한 유비의 속내를 혐오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얻기 위해 아들까지 던지다니 무서운 군주로군!" 그래서 노자는 "국가의 이로운 도구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 P269
유비는 노자의 가르침, 즉 덕은 ‘은미한 밝음‘이어야 하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았던 군주였다. 여기서 은미함[微]이란 자신의 속내를 조자룡에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노자의 경고였다면, 밝음[明]은 아두를 던진 이유가 조자룡이란 장수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노자의 경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야 분명해지지 않는가? 유비의 자가 왜 현덕이었는지 말이다. 현(玄)은 어둠을 상징한다. 물론 이것은 덕으로 얻으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결국 현덕이란 자는 유비가 얼마나 노자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군주였는지를 보여준다. 상대방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주는 자신의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 유비는 이것을 한시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 P270
동양의 통치술은 노자의 ‘은미하지만 밝은‘ 덕의 논리로 요약된다. 집현전에서 숙직을 서다가 졸고 있던 성삼문에게 야단은커녕 곤룡포를 벗어주었던 세종대왕이 기억나는가? 결국 이런 세종의 덕은 나중에 성삼문으로 하여금 세종의 손자 단종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도록 만드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탁월한 제왕들은 자신의 후예들에게 유비나 세종대왕이 실천했던 덕의 논리를 전했다. 그렇지만 모든 군주들이 유비나 세종대왕처럼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을 간파하지 못한 안목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유비처럼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을 얻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심지어 군주들은 구변이 좋은 사람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결국 인간을 통찰할 수 없는 눈을 가진 군주에게 덕의 논리는 자멸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었던 셈이다. 국운을 쇠망하게 했던 군주들 옆에는 항상 능력이 없거나 구변이 좋은 신하들이 가득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 P270
슈미트의 정치철학적 냉소주의는 그가 인간은 결코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데 있다. 만약 그의 냉소주의가 옳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무서운 일 아닌가? 세계 평화와 인류애의 꿈은 단지 꿈으로만 남을 뿐인가? 그러나 슈미트는 역설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애로 향하는 길을 가르쳐준다. ‘적과 동지‘가 갈등과 대립의 근원이라면,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제거하면 평화와 공존은 가능한 것 아닌가? 이미 이 사실을 2,000여 년 전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예수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의 가르침은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무력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는 순간, 우리에게 모든 타인은 동지, 즉 친구로 변하기 때문이다. 예수보다 먼저 동양에서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폐기하는 인류애의 길을 제시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묵자다. 춘추전국 시대는 전쟁으로 얼룩진 혼란과 살육의 시대였다. 이때 묵자는 핏빛 세계를 구제하는 원칙으로 사랑의 길을 역설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핍박할 것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신분이 높은 자는 비천한 자를 경시할 것이고, 약삭빠른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기만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반대하면 무엇으로 그것을 바꾸겠는가? 묵자가 말했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하는 원칙으로 그것을 바꾼다." -『묵자』「겸애·중」 갈등과 대립에 대한 묵자의 진단은 단호하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당연히 그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롭게"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안한다. 묵자는 인류애를 외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와 그의 학파는 몸소 인류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겸애의 길을 실천했다. 강자와 약자가 전쟁을 치를 때, 묵가는 약자를 도와주었다. 묵가는 약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도와주는 약자가 겸애 정신을 수용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묵가가 약자의 편을 든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강자는 약자뿐만 아니라 묵가마저도 전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가는 죽음의 공포마저도 인류애의 제단에 바쳐버렸다. 헌신적이고 초인적인 묵가의 인류애는 『장자』의 제일 마지막 「천하」편에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묵자는 만인의 사랑과 이익을 말하고 투쟁에 반대했으니 그는 서로 분노하지 않을 것을 설파한 것이다. (......) 묵자는 자신의 도를 설명한다.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막고자 양자강과 황하의 물줄기를 터놓아서 사방의 야만족과 구주를 소통시켰다. 그때 큰 강이300이요, 지류는 3000이나 되었고, 작은 물 흐름은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우임금 스스로 삼태기와 보습을 가지고 천하의 물줄기를 서로 이어놓고 갈라놓았다. 장딴지는 마르고 정강이에는 터럭이 없었다. 폭우에 목욕하고, 강풍에 머리 빗으며, 모든 거주 지역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우임금은 큰 성인이면서도, 천하를 위해 몸을 수고롭게 하기를 이와 같이 했도다!" 후세의 묵자들은 대부분 천한 짐승 가죽과 베옷을 입고, 나막신과 짚신을 신고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스스로의 고생을 철칙으로 삼고서 말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임금의 도를 실현할 수 없으며 묵자라 할 수 없다." -『장자』「천하」 우임금은 치수 사업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군주였다. 군주였음에도 그는 궁정 생활의 매혹적인 쾌락에 빠지기를 거부하고, 몸소 치수 사업에 헌신한다. 반복되는 홍수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만큼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임금의 장딴지는 마르고 정강이에는 터럭이 자랄 틈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비바람이 불어도 치수 사업 현장을 떠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자신의 삶을 돌보는 만큼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묵자는 우임금의 실천을 자신의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천한 옷과 가장 거친 음식을 먹으며 휴식마저 거부했던 것이다. 자신이 고생스러울수록 그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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