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고헤이지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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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얇아서 희미해진 고헤이지 씨, 지금도 여전히 헛방에서 바깥 세상을 엿보고 있나요. 고헤이지 씨가 봤던 것은 세상이 아니고 아내인 오쓰카였던가요. 오쓰카는 고헤이지 씨가 자신을 그렇게 보는 것을 싫어했지만 정말 싫어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즐겼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말하니 오쓰카가 이상한 사람 같군요. 오쓰카는 고헤이지 씨가 자신을 몰래 엿보기보다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곳에 있는데도 없는 사람 같은 고헤이지 씨한테 화가 났던 거죠. 하지만 오쓰카는 나중에 다친 고헤이지 씨가 집에 돌아와서 자신한테 말을 했을 때도 싫어했군요. 오쓰카 마음을 잘 모르겠군요. 고헤이지 씨를 아주 싫어하는데 오쓰카는 왜 고헤이지 씨와 살았을까요. 그냥 같이 살고 있을 뿐이다, 니. 고헤이지 씨가 싫어하기를 바라면서 오쓰카는 다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는데, 고헤이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때도 엿보기만 했죠. 어쩌면 오쓰카는 자신을 싫어해주기를 바란 것인지도. 그것보다는 고헤이지 씨가 싫다 좋다 무슨 말이든 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고헤이지 씨는 오쓰카를 좋아한다고 했죠. 그저 엿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나요. 이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그 마음 알 것도 같아요. 저한테도 고헤이지 씨와 닮은 면이 있는가봐요. 아주 조금.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면 아주 슬플 것 같아요. 그런데 고헤이지 씨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군요. 가장 가까이에 사는 아내부터 고헤이지 씨를 싫어했는데. 그래도 고헤이지 씨는 극단을 따라 떠났을 때는 오쓰카한테 편지를 썼다면서요. 집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바깥에 나가서는 그렇게 편지를 쓰다니. 오쓰카는 그 편지도 싫어했군요. 고헤이지 씨가 오쓰카한테 편지를 쓴 까닭은 오쓰카가 고헤이지 씨를 내쫓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닌가요. 어쩌면 고헤이지 씨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서도 있는 듯한 고헤이지 씨지만 자신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아니 이것은 아닌가. 자기 스스로 두께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지도. 저는 고헤이지 씨를 싫어하지 않아요. 왜일까요. 아마 멀리에서 지켜봐서인지도 모르죠. 가까이에 있었다면 저도 싫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까닭은, 그냥일 수도 있고 부러운 점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과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고헤이지 씨가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까닭으로 고헤이지 씨를 싫어한 것 같군요.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고헤이지 씨를 보고 자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인가 했는데. 그것도 있고 부러운 것도 있었을 거예요. 얼뜨기라는 말을 듣는 고헤이지 씨를 부러워하기도 해서 놀랐나요.

 

사람은 자신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이 자신보다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질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헤이지 씨가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고헤이지 씨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누구보다 귀신 역을 잘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귀신 같지만. 고헤이지 씨는 오쓰카와 살기도 했죠. 어떤 사람이 그것을 부러워했잖아요. 이 세상에 바라는 게 없는 것 같은 눈빛도 누군가는 갖고 싶어하기도 했죠. 이렇게 말하고 나니 거의 부러워하는 것이군요. 부러움과 질투는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조금 다르지만). 저도 고헤이지 씨가 조금 부럽습니다. 물론 고헤이지 씨는 두께도 없고 살아가는 게 서툴렀을 뿐이지만. 어쩐지 그런 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사람은 욕심을 갖고 사는 것도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제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모두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헤이지 씨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한테도 두께가 없기를 바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잊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해요. 고헤이지 씨가 지난날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고헤이지 씨도 단 한번 자신의 이야기를 해서 두께를 갖기도 했군요. 슬플 때는 슬프다, 기쁠 때는 기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있는 것이다고.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군요. 저도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써서. 어쩐지 다들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고 싶어하기도. 고헤이지 씨한테는 오쓰카가 있잖아요. 비록 아주 싫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연히 이상한 인연이 됐죠. 그렇게 얽히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도 모두 고헤이지 씨와 관계가 있었군요. 재미있는 것은 아닌가요. 고헤이지 씨는 그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군요. 본래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없죠. 이렇게 말하니까 고헤이지 씨가 나쁜 것 같기도 하군요. 그래도 한치 반의 문틈으로 엿보는 오쓰카만은 좋아하죠. 하나라도 좋아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희선

 

 

 

 

☆―

 

“무엇이든 이야기해야만 비로소 있게 되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이든 허풍이든 입 밖에 내면 낸 만큼 있게 되는 거야.”  (233쪽)

 

 

“자네는 슬퍼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야.”

 

“슬퍼하는 방법.”

 

말이 난 김에 가르쳐 주지, 하고 지헤이는 큰소리를 쳤다.

 

“슬플 때는 슬프다, 슬프다, 하고 바보처럼 말하게. 기쁠 때는 기쁘다, 기쁘다, 하고 말하게.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돼. 스스로 자신을 속이게. 그것밖에 없어.”

 

“속인다.”

 

이야기하는 거야, 하고 지헤이는 말했다.

.

.

.

 

“믿는다는 것은 속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세. 서로 믿는다는 것은 서로 속인다. 서로 속는다는 뜻이야. 이 세상은 모두 거짓일세. 거짓에서 진실이 나오지는 않지. 진실이란 모두 속은 놈이 보는 환상일세. 그러니──.”  (247쪽)

 

 

“진정한 자신이니 진실한 나니, 그런 것에 집착하는 놈은 무엇보다 바보일세. 그런 것은 없어. 자신을 바란다면 자기가 자기를 속여야 해. 속이는 게 서툴다면 서툰 대로──.”

 

그거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지헤이는 다시 한번 말했다.

 

“자네는 흐릿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거기에 있네. 나도 여기에 있고. 서로 그 사실이 싫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지.”

 

지헤이는 자기 자신한테 말하고 있다.  (248쪽)

 

 

“잘 만들어진 우연에 나중에 해석을 갖다붙여서 인연이라고 하는 거지. 시시하잖아. 나와 고헤이지는 덧없는 관계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저 같이 살고 있을 뿐이야. 그뿐. 나는 녀석을 싫어하고, 그러니까 그 녀석 마음 따윈 헤아릴 수 없어. 그래도 같이 살고 있지.”  (419~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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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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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언제부터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2008년인지 2009년인지. 내가 많이 본 일본추리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것이다.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처음에는 더 모르고 봤다. 그래서 예전에 본 것은 거의 잊어버렸다. 그때 《모방범》이나 《낙원》을 읽었는데, 좀 더 나중에 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이야기는 2010년부터 봤다. 올해 나온 거 빼고는 다 봤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2010년부터는 책을 보고 늘 쓰려고 해서 조금 더 오래 기억하기는 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잊어가고 있다. 잊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잊을 때쯤 다시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은 자꾸 나오기에 그럴 수가 없구나. 아니 아주 좋아한다면 몇번이고 볼 수 있을지도.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지. 《외딴집》이나 《모방범》은 한번 더 보고 싶기도 하다. 《외딴집》은 재미있기도 슬프기도 하다. 《모방범》은 무섭다. 《낙원》도 그랬던 듯. 그것을 읽으며 ‘세상이 무서워’ 하기도. 나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소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기는 하다. 바로 뉴스다. 뉴스에서는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니까. 지금은 거의 안 보기는 하지만. 뉴스는 어떤 일이 있었다고만 하지만(자세히 말해주는 곳이나 방송도 있으려나), 소설은 더 자세히 들려준다. 그래서 책을 보는 거겠지. 마음을 알기 위해서.

 

이번에 읽은 《눈의 아이》는 내가 본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서 몇번째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쉽게도 몇번째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본 책을 써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이 책을 안 것은 지난해다(더 전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눈의 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지요코(チヨコ 치요코)》로 나왔다.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초코’라고 읽었다. 책 앞에 있는 토끼인형 이름을 초코라고 지은 건가 했다(일본에서 나온 책 앞에는 토끼인형이 있다). 몇 달 전에 우리말로 나왔을 때 지요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글자를 잘 보니 ‘초코 チョコ’가 아닌 ‘지요코 チヨコ’였다. 이 책이 안 나왔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초코’라고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읽은 게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일본 사람은 지요코(치요코)를 초코라고도 했다. 별명 같은 거다. 이것을 몰랐다면 이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우연히 알게 되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지요코>는 인형탈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이 자신이 어릴 때 좋아했던 인형을 떠올리는 이야기이다. 소중하게 여긴 게 없는 사람은 다른 나쁜 것에 씌이는 것이 아닌가 했다. 마음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여기에서는 어린이라고 할지라도 나쁜 마음을 먹고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책 제목과 같은 <눈의 아이>가 그렇다. 하지만 그 일은 그 사람의 삶을 바꾸어버렸다(이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자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행복해지기 위해 한 일이지만,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 질투는 어린이만 하는 게 아니다. 어른은 더하지 않나 싶다. 지금 생각하니 질투가 바로 마귀(요물) 같은 거구나. 거기에 먹히면 안 된다. 자신이 한 일에 대가는 치러야 하니까. 이것은 꼭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죄를 묻는 것은 아니다. <돌베개>에도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자신이 한 일의 무게에 짓눌린 것인지도. 사회에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우연이라도 일어나서 잘못을 한 사람한테 벌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성흔>에서는 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고도 한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뉘우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사람이 쉽게 뉘우치지 않아서 말이지.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는 사람이 가진 착한 마음을 믿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그러고 싶다.

 

앞에서 다른 말이 잠깐 생각났는데 그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지. 이야기에서는 하나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질투를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신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질투 때문에 하는 행동이 그렇겠다. 자신만 보고 남을 보지 않기 때문에 나쁜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말이 있던가. 이런 마음은 아주 착하거나 깨달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보통 사람도 남을 생각할 수 있다. 자기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 나쁜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어쩐지 어설픈 말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미야베 미유키가 쓰는 단편은 거의 도시전설 같다. 생각나는 것은 《지하도의 비》와 《홀로 남겨져》뿐이지만. 이것은 에도시대 이야기와도 닿아 있다. 여러권 봤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구나. 마지막 말도 멋지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구나. 언젠가는 잘 말할 수 있을까.

 

 

 

희선

 

 

 

 

☆―

 

나는 생각해 보았다. 엄마와 아들 등에 달라붙어 있던 기분 나쁜 검은 손, 세상에 떠돌고 있는 나쁜 손에 대해서. 누구든 그 손에 붙잡힐 위험이 있다. 그 손에 붙잡히면 나쁜 짓을 하게 된다. 물건을 훔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의 모두 그렇게 되지 않는 건, 몸에 두르고 있는 인형과 장난감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를 소중히 여겼던 추억.

 

무언가를 좋아했던 추억.

 

사람은 그런 기억들한테 보호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기억이 없는 사람은 서글프리만큼 쉽게 검은 손을 등에 짊어지게 된다.  (74쪽)

 

 

사람은 달라진다. 달라지지 않으려고 결심해도 달라진다. 그래서 삶은 우스꽝스럽고, 슬프고, 이상한 재미가 있다. (……) 나는 가만히 있는데 자꾸만 세상이 바뀌어간다고 생각한다. 그건 착각이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다.  (101쪽)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보는 것은 자기 마음속뿐이다.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못난 것도.  (123쪽)

 

 

―아버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어요. 내가 한 짓은 잘못된 거예요.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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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8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8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9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08-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안주를 봤는데,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많은지 알 것 같았답니다. 단편이 거의 도시전설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 비유가 장편에서도 적합할 것 같아요. 다만 괴담이라거나 흉흉한 그런 도시전설이라기보다는 좀 따뜻한 그런 도시전설이랄까

희선 2013-08-28 02:47   좋아요 0 | URL
안 좋은 일어나도 그 안에서 따듯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지 않나 싶습니다 에도 시대 소설이 그런 면이 많은데, 지금 시대 소설 장편도 그런 게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죠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것은 예전에 읽어서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희선
 

 

 

 

   신호를 기다리다 우연히 보았어

   빗방울이, 고인 빗물에 떨어져 퍼져가는 모습

   이렇게 말로 하니 잘 모를 것 같아

 

   보여주고 싶지만,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어

 

   빗방울이 그린 예쁜 동그라미

 

   바로 쉽게 사라져버리지만

   내 마음속에는 남아있어

 

   네 마음속에도 새겨지길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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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의 수수께끼 - 제3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기획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9
안소정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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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에는 먼저 우정이 담겨있습니다. 솔직히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주도에 유배 가 있던 김정희가 누군가한테 그려준 그림이라는 것밖에는요. 그림을 그린 배경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언젠가 다른 책에서 읽어본 적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는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김정희는 올곧은 성격 탓에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아홉해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그때 추사체를 완성했다고도 하죠. 섬이고 집 바깥에 나갈 수 없었던 김정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없었겠군요.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는 것밖에는. 하지만 그곳에 책이 많지는 않았겠죠. 김정희 제자 이상적은 중국에서 어렵게 구한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백이십 권이었다는군요. 김정희는 그런 이상적한테 감격하여, 이상적의 마음을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군요. 추운 한겨울을 그렸지만 그림은 따듯하게 보인다고 하는군요. 그저 제자한테 그려준 그림인데 지금은 이게 우리나라 보물이군요. 김정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한사람한테 그려준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군요. 일본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 책 《세한도의 수수께끼》는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 은진주와 수학 선생 나윤기가 <세한도>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아니 조선시대에 썼던 도량형을 비롯해 동양 수학에 대해 말합니다. 제가 수학을 잘 모르는데 수학이라니……. 세종대왕은 과학뿐 아니라 수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과학과 수학은 뗄 수 없는 것이군요. 그러면 수학과 미술은 어떨까요. 서양에는 황금비가 있다고. 이게 여기저기에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책도 황금비라고. 우리나라는 금강비를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금강비라는 이름은 다이아몬드를 말하는 금강석에서 따왔는데, 황금비에 견주어 최고라는 뜻으로 붙였을 거다고 합니다. A4 종이가 금강비를 쓰고 있다는군요. <세한도>에는 수학이 들어있고, 금강비도 있다고 합니다. 그림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유산에도 금강비가 많이 쓰였답니다. 하긴 건축에도 수학이 쓰이죠. 수학 하면 저는 여전히 숫자만 생각하는데, 수학을 잘 아는 사람은 건물이나 물건을 보면 무엇이 쓰였는지 알 것 같기도 하군요.

 

피타고라스의 정리보다 먼저 쓰인 구가현의 정리도 있더군요. 동양에서 먼저 쓰인 게 있지만, 지금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쓰이고 있죠. 수학을 이용한 암호도 나옵니다. 이것은 수학을 알아야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사람이 수학 선생이군요. 진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 그리기도 합니다. 나윤기와 진주가 <세한도>를 그려서 주고받은 김정희와 이상적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나윤기와 진주가 아주 친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같으니까요. <세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우리나라 유물(진짜 <세한도>도)을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것이 나옵니다. <세한도>에는 보물의 비밀이 있다는 말 때문에. 한사람이 죽기는 했는데 뜻밖에 일은 쉽게 빨리 해결됩니다. 그 부분은 빨리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죠.

 

수학을 공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동양 수학을 조금 아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양 것이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죠.

 

 

 

희선

 

 

 

 

☆―

 

“자는 도량형의 가장 기본이야. 그리고 도량형이 올발라야 나라가 바로 서고 사회가 안정되었거든. 자를 내렸던 데는 올바른 도량형으로 사회를 안정되게 하려는 뜻이 숨어 있는 셈이야.”  (45쪽)

 

 

“피리는 미세한 길이 차이에도 소리가 달라지는 아주 예민한 악기거든. 정밀하게 만든 피리를 이용하면 그만큼 자도 정밀해지는 거야. 이렇게 세종 때 만들어진 도량형은 1900년대에 새로운 도량형이 나올 때까지 거의 오백 년 동안이나 쓰이게 됐어.”

 

“정밀하게 만든 자를 온 나라에서 똑같이 써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거죠. 그래서 지방 관료들이 부임할 때 자를 내린 거고요.”

 

“그렇지. 암행어사한테 자를 준 것도 마찬가지야. 백성들이 소작료나 세금을 낼 때 또는 장사를 할 때 억울한 일이 없게끔 올바른 잣대로 잘 살피라는 뜻이지.”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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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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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하룻날이었구나. 머리 위에서 별이 몇 개쯤 반짝일 뿐 밤하늘을 비추는 달은 그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분명 제자리에 있을 텐데도 보이지 않는 달.

 

달은 바로 나였다. 사쿠라 레이카는 큰 상 후보에 올라 쏟아지는 주목을 받지만 그 실체인 고토 가즈코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녀 작가라는 가짜 옷을 뒤집어쓴 나. 기노우치와도 남몰래 만나야 하는 나. 고토 가즈코를 똑바로 봐주는 이는 이 세상에 기노우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악착같이 기노우치한테 매달렸다. 결코 놓지 않고.

 

달이 없는 새로운 달, 신월(新月)밤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았다. 이 길은 내가 정한 길이니까.  (597쪽)

 

 

당신 마음을 조금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안타깝군요. 어쩌면 조금 부러운지도. 저한테는 이런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누구나 자신이 가진 못난 점은 아주 크게 보입니다. 그것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모두 그대로 살아갑니다. 바꾸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아니, 본래 자기 모습에 익숙하고 바꾼다고 달라질까 싶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래도 아주 조금 용기를 내는 사람도 있죠. 그 안에 사쿠라 레이카 씨도 들어가는군요. 그런데 처음에만 좋았던 것 같고 다시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바뀌어서 자신을 가지면 좋겠지만, 레이카 씨는 바뀐 자기 모습을 어색해하기도 했죠. 스스로 ‘나는 가면을 쓰고 있구나’ 했잖아요. 본래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레이카 씨는 인공 가면을 쓰게 되었군요. 그래서 하게 된 것이 소설쓰기였는데. 아주 예쁜 얼굴 때문에 안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군요. 왜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일에 맞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할까요. 눈에 띄지 않는 사람만이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도 별로 눈에 띄지는 않는군요. 못생겼다기보다 그냥 보통이라서. 그리고 그것은 제가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기.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저를 봐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이것은 저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인 것 같군요. 레이카 씨도 그랬겠죠. 한사람이 자신을 봐준다면. 레이카 씨는 많은 사람보다 단 한사람이 자신을 봐주기를 바란 거죠. 가장 처음 자신을 인정해준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또 안타깝군요.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다시 생각하니, 레이카 씨는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도 얼굴이 예쁜 사람을 좋아할거다 생각하기도 했잖아요. 아니 많은 사람이 그럴거다 여겼죠. 그런 사람이 많기는 해도 모두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리고 기노우치가 결혼한 사람도 얼굴이 아주 예쁘지는 않았죠. 기노우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레이카 씨를 인정해줬다면 좋았을 텐데요. 기노우치가 사람을 한쪽으로 치우쳐서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을 잘 찾아내기는 합니다. 그런 사람이 기노우치만은 아닐 텐데. 소설가가 되고 레이카 씨는 같은 소설가인 고토이케 료를 만났습니다. 잠시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소설쓰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거워했죠. 고토이케는 소설을 자신이 쓰기보다 소설신이 내려주는 것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그 이야기를 내 보내는 수도꼭지고. 저도 이런 말 들은 적 있습니다. 소설가 자신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누군가 불러줘서 받아적는다고. 그런 거 정말 부럽습니다. 레이카 씨도 그랬죠. 자신이 가진 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잖아요. 그래도 레이카 씨는 그 틀을 깼죠. 비록 자신은 정념(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을 쏟아내는 수도꼭지라고 했지만. 어쩐지 저는 그것도 부럽군요. 사람은 쉽게 바뀌기 어려운데. 아니, 그때 레이카 씨한테는 레이카 씨를 바뀌게 하는 일이 일어났군요. 기노우치의 결혼. 그런데도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한테 버림받지 않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했죠. 이런 말 부끄럽지만 저도 비슷한 생각한 적 있어요. 제가 한 생각은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해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입니다. 이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겠죠. 그래도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잘 못해서 그런 것 같네요. 저만 생각했던 것인지도. 그런데 지금도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나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과 멀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결국 자기 마음에 달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어떤 사람이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군요. 기노우치는 레이카 씨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보다 자신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레이카 씨를 놔주지 않았죠. 그것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레이카 씨 자신이 기노우치 같은 사람을 왜 좋아할까 했죠. 레이카 씨는 고토 가즈코일 때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노우치는 레이카 씨가 가즈코일 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레이카 씨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레이카 씨 자신이 자신(가즈코)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군요. 그렇다 해도 레이카 씨 마음속에는 가즈코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던 거죠. 부모님하고는 다른 남이. 그래서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를 모두 이해한다고 자신을 속였습니다. 기노우치 아내도 모르고 있으면 그 사람도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레이카 씨는 기노우치 아내가 레이카 씨를 모를 거다 생각했는데, 저는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알고 있었죠. 기노우치 아내는 자기 남편이 돌아올 곳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의 가즈코였던 레이카 씨처럼. 아이가 생기고는 기노우치는 아이를 첫번째로 생각했죠.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레이카 씨가 기노우치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글을 쓴 게 아니고 자신을 찾기 위해서 쓴 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사람은 거의 처음에는 누군가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시작해도 시간이 갈수록 바뀌기도 하는데 레이카 씨는 그러지 않았군요. 그래서 붓을 꺾었죠.

 

저는 레이카 씨 이야기를 보기 전부터, ‘나는 왜 글을 잘 쓰고 싶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저를 잘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죠. 이런 마음도 있겠지만 그저 제가 만족하고 싶기도 합니다. 레이카 씨도 이런 말을 했군요. 갑자기 떠오른 게 있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많은 사람보다 한사람이라도 마음에 들어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자꾸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실 저도 아직 답을 모르겠습니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무엇인가 쓰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게 잘 떠오르지 않지만. 레이카 씨도 꼭 기노우치 때문에 소설을 쓴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죠. 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저도 저를 좀 더 좋아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면 좋은 일이 많다고도 하더군요.

 

레이카 씨, 아니 가즈코 씨가 다른 세상에서라도 자신을 위한 글을 쓴다면 좋겠습니다.

 

 

(쓸 때는 괜찮았는데, 다시 보니 부끄럽다)

 

 

 

희선

 

 

 

 

☆―

 

“좋은 소설은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물론 작가가 아는 세계가 좁으면 그만큼 좋은 소설이 나오기 힘들지. 그렇다고 견문을 넓힌다고 반드시 좋은 소설이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야. 그런 논리대로라면 살아가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노인들만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소리잖아. 뭐야, 그럼 우리처럼 젊은 소설가는 필요도 없게? 그러니까 그건 틀린 얘기야. 소설의 정수에 다가가려면 경험만이 아닌 다른 뭔가가 필요한 것 같아. 그 ‘뭔가’의 정체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쩌면 그걸 찾아가는 시간속에서 좋은 소설이 태어나는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470쪽)

 

 

“응. 나는 내가 소설을 써 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소설이란, 본래 사람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는 영역에 있으니까. 그냥 이야기가 잠시 소설가한테 내려올 뿐이지. 소설신이 소설가한테 이야기를 내려준다고 말하면 좀 알기 쉬울까? 나는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주무르지 않아. 그저 신이 주신 이야기를 착실히 문자로 나타내고자 애쓸 뿐이지. 한마디로 말하면 수도꼭지 같다고나 할까?”  (486쪽)

 

 

역시 내게는 기노우치밖에 없다. 현실을 깨닫자마자 가슴 깊은 곳을 도려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들이닥쳤다. 내 모든 것을 아는 사람. 못생겼던 옛날 얼굴도,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꾸며 낸 거짓투성이 모습도 모두 받아준 남자. 심지어는 나조차 확신이 없는 내 재능을 덮어놓고 믿어주는 기노우치는 평생에 단 하나뿐인 남자였다. 나는 앞으로 만날 남자들한테 내 모든 것을 내보일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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