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고헤이지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얇아서 희미해진 고헤이지 씨, 지금도 여전히 헛방에서 바깥 세상을 엿보고 있나요. 고헤이지 씨가 봤던 것은 세상이 아니고 아내인 오쓰카였던가요. 오쓰카는 고헤이지 씨가 자신을 그렇게 보는 것을 싫어했지만 정말 싫어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즐겼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말하니 오쓰카가 이상한 사람 같군요. 오쓰카는 고헤이지 씨가 자신을 몰래 엿보기보다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곳에 있는데도 없는 사람 같은 고헤이지 씨한테 화가 났던 거죠. 하지만 오쓰카는 나중에 다친 고헤이지 씨가 집에 돌아와서 자신한테 말을 했을 때도 싫어했군요. 오쓰카 마음을 잘 모르겠군요. 고헤이지 씨를 아주 싫어하는데 오쓰카는 왜 고헤이지 씨와 살았을까요. 그냥 같이 살고 있을 뿐이다, 니. 고헤이지 씨가 싫어하기를 바라면서 오쓰카는 다른 남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는데, 고헤이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때도 엿보기만 했죠. 어쩌면 오쓰카는 자신을 싫어해주기를 바란 것인지도. 그것보다는 고헤이지 씨가 싫다 좋다 무슨 말이든 해주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고헤이지 씨는 오쓰카를 좋아한다고 했죠. 그저 엿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나요. 이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그 마음 알 것도 같아요. 저한테도 고헤이지 씨와 닮은 면이 있는가봐요. 아주 조금.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면 아주 슬플 것 같아요. 그런데 고헤이지 씨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더군요. 가장 가까이에 사는 아내부터 고헤이지 씨를 싫어했는데. 그래도 고헤이지 씨는 극단을 따라 떠났을 때는 오쓰카한테 편지를 썼다면서요. 집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바깥에 나가서는 그렇게 편지를 쓰다니. 오쓰카는 그 편지도 싫어했군요. 고헤이지 씨가 오쓰카한테 편지를 쓴 까닭은 오쓰카가 고헤이지 씨를 내쫓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닌가요. 어쩌면 고헤이지 씨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서도 있는 듯한 고헤이지 씨지만 자신이 제대로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아니 이것은 아닌가. 자기 스스로 두께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지도. 저는 고헤이지 씨를 싫어하지 않아요. 왜일까요. 아마 멀리에서 지켜봐서인지도 모르죠. 가까이에 있었다면 저도 싫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까닭은, 그냥일 수도 있고 부러운 점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과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고헤이지 씨가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까닭으로 고헤이지 씨를 싫어한 것 같군요.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고헤이지 씨를 보고 자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인가 했는데. 그것도 있고 부러운 것도 있었을 거예요. 얼뜨기라는 말을 듣는 고헤이지 씨를 부러워하기도 해서 놀랐나요.

 

사람은 자신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이 자신보다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질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헤이지 씨가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고헤이지 씨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누구보다 귀신 역을 잘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귀신 같지만. 고헤이지 씨는 오쓰카와 살기도 했죠. 어떤 사람이 그것을 부러워했잖아요. 이 세상에 바라는 게 없는 것 같은 눈빛도 누군가는 갖고 싶어하기도 했죠. 이렇게 말하고 나니 거의 부러워하는 것이군요. 부러움과 질투는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조금 다르지만). 저도 고헤이지 씨가 조금 부럽습니다. 물론 고헤이지 씨는 두께도 없고 살아가는 게 서툴렀을 뿐이지만. 어쩐지 그런 모습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사람은 욕심을 갖고 사는 것도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제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모두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헤이지 씨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한테도 두께가 없기를 바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잊고 싶어한 것 같기도 해요. 고헤이지 씨가 지난날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고헤이지 씨도 단 한번 자신의 이야기를 해서 두께를 갖기도 했군요. 슬플 때는 슬프다, 기쁠 때는 기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있는 것이다고.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군요. 저도 무슨 말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써서. 어쩐지 다들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고 싶어하기도. 고헤이지 씨한테는 오쓰카가 있잖아요. 비록 아주 싫다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연히 이상한 인연이 됐죠. 그렇게 얽히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도 모두 고헤이지 씨와 관계가 있었군요. 재미있는 것은 아닌가요. 고헤이지 씨는 그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군요. 본래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없죠. 이렇게 말하니까 고헤이지 씨가 나쁜 것 같기도 하군요. 그래도 한치 반의 문틈으로 엿보는 오쓰카만은 좋아하죠. 하나라도 좋아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희선

 

 

 

 

☆―

 

“무엇이든 이야기해야만 비로소 있게 되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이든 허풍이든 입 밖에 내면 낸 만큼 있게 되는 거야.”  (233쪽)

 

 

“자네는 슬퍼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야.”

 

“슬퍼하는 방법.”

 

말이 난 김에 가르쳐 주지, 하고 지헤이는 큰소리를 쳤다.

 

“슬플 때는 슬프다, 슬프다, 하고 바보처럼 말하게. 기쁠 때는 기쁘다, 기쁘다, 하고 말하게.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돼. 스스로 자신을 속이게. 그것밖에 없어.”

 

“속인다.”

 

이야기하는 거야, 하고 지헤이는 말했다.

.

.

.

 

“믿는다는 것은 속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세. 서로 믿는다는 것은 서로 속인다. 서로 속는다는 뜻이야. 이 세상은 모두 거짓일세. 거짓에서 진실이 나오지는 않지. 진실이란 모두 속은 놈이 보는 환상일세. 그러니──.”  (247쪽)

 

 

“진정한 자신이니 진실한 나니, 그런 것에 집착하는 놈은 무엇보다 바보일세. 그런 것은 없어. 자신을 바란다면 자기가 자기를 속여야 해. 속이는 게 서툴다면 서툰 대로──.”

 

그거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지헤이는 다시 한번 말했다.

 

“자네는 흐릿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거기에 있네. 나도 여기에 있고. 서로 그 사실이 싫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지.”

 

지헤이는 자기 자신한테 말하고 있다.  (248쪽)

 

 

“잘 만들어진 우연에 나중에 해석을 갖다붙여서 인연이라고 하는 거지. 시시하잖아. 나와 고헤이지는 덧없는 관계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저 같이 살고 있을 뿐이야. 그뿐. 나는 녀석을 싫어하고, 그러니까 그 녀석 마음 따윈 헤아릴 수 없어. 그래도 같이 살고 있지.”  (419~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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