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방정식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6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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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고 바닷가에 가 본 적은 없다. 아니 내가 기억 못할 뿐 아주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바다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더 어렸을 때도 바다가 가까운 곳(남쪽)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 바다에 간 일은 사진으로만 남았다.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 비가 멀리에서 내리기 시작해서 내가 있는 곳까지 내리게 된 일이다. 얼마전에 횡단보도에서 하늘을 보니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다. 내가 서울 고모 집에 갔던 때다. 그때 여름이었다. 여기에 나온 초등학교 5학년인 에사키 교헤이도 부모님이 일 때문에 다른 지방에 가게 되어 바닷가에서 여관을 하는 고모 집에 가게 되는데, 서울 고모 집에 갔을 때 혼자 다녔다. 길을 알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랬다. 혼자 갔던 곳은 여의도다. 길을 몰라서 오래 걸었다. 다리도 건넜다(버스를 내린 곳이 다리 건너편이었다). 그렇게 간 곳은 MBC 방송국과 가까운 곳(사실 바로 앞)이다. 멀지 않은 곳에는 KBS 방송국도 있었고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언제 적 이야기). 지금 생각하니 그때 겁이 없었구나 싶다. 길도 모르는 곳을 혼자 다니다니. 차를 탄 것보다 오래 걸은 게 더 생각난다. 혼자 다니다 고모 집에 잘 돌아갔다. 다른 많은 일은 잊어버렸는데 그것은 잊어버리지 않다니 신기하다. 나중에 남산에 간 것도 생각났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들어낸 사람 가운데는 경찰 가가 교이치로와 데이토 대학 물리학과 부교수 유가와 마나부가 있다. 가가 교이치로는 형사로 사건을 해결한다. 가가는 사람을 생각한다. 유가와는 물리학자인데, 경시청 수사 1과에 대학 때 친구 구사나기가 있다. 구사나기가 유가와한테 풀기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고 해결해서 갈릴레오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책 《한여름의 방정식》은 갈릴레오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유가와가 나온 책을 본 지 좀 돼서 유가와가 예전에는 어땠는지 거의 잊어버렸다. 아니 그때는 제대로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 책보다 드라마로 조금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도 유가와가 나올 때는 유가와 역을 한 후쿠야먀 마사하루가 떠오르기도 했다(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료마도 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내가 이름을 외우는 얼마 안 되는 일본 연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가가 교이치로는 아베 히로시). 이 사람 이름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편지》에 나온다. 왜 나왔는지 잊어버렸지만, 소설에 텔레비전 보는 게 나왔을지도. 드라마에서 본 유가와는 사람이 죽은 일과는 상관없이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실험하는 데 마음을 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 사람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소설을 보아도 알 수 있을지 모를 텐데.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성녀의 구제》다. 여기에 나오는 유가와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가와가 어디에서 달라졌느냐 하면 《갈릴레오의 고뇌》에서다(이게 이 책 앞인 듯하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더 나왔다). 두 권 다 읽어보고 시간이 흘러서 다 생각나지 않지만. ‘갈릴레오의 고뇌’에서 유가와는 사람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했던 것 같다. 소설 한권에서 사람이 달라져가기도 하는데 유가와는 여러 권이 나오면서 달라졌다. 유가와가 본래 아는 것은 많았지만 사람 마음은 거의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유가와가 구사나기와 연이 닿아 이런저런 사람을 보다가 조금씩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과학자여서 그런지 본래 사람이 그런지 유가와는 보통사람이 갖는 욕심은 없다. 유가와는 세상에 넘쳐나는 수수께끼를 푸는 일을 즐길 뿐이다. 어쩌면 세상을 안 좋게 만드는 것은 과학자가 아니고 그 둘레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자는 그저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저것 연구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돈으로 바꿀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과학자는 돈벌이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아. 과학자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어느 쪽이 인류한테 더 유익하냐는 거야. 유익하다고 판단되면 설사 자신한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해. 물론 유익하면서 이득도 되면 완벽하겠지.”  (84쪽)

 

 

드라마에서 본 유가와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소설에서도 그런 말을 한 적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 에사키 교헤이와 잘 지냈다. 드라마가 원작과 아주 똑같지 않기는 하다. 교헤이는 바닷가 마을(하리가우라)에서 여관을 하는 고모 집에 가는 기차 안에서 해저 금속 광물 자원 개발 설명회 자리에 참여하러가는 유가와와 만난다. 유가와는 교헤이 고모네가 하는 여관 로쿠간소에 머물기로 한다. 그날 그 여관에는 쓰카하라 마사쓰구라는 사람도 머물렀다. 그런데 다음날 쓰카하라는 제방에서 떨어져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쓰카하라는 도쿄 경시청 수사1과 형사였던 사람이다. 현경에서는 사고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도쿄에서 쓰카하라 후배가 와서 시체를 보고 사고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쿄에서 조사하는 사람은 유가와 친구 구사나기와 우쓰미 가오루다. 지금 일과 열여섯 해 전에 일어난 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드러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일을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몇 사람만이 알고 묻힌다. 그게 좋은 걸까. 어떤 일은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잡아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흘러버리면 어렵다. 다른 사람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는 건 좋은 걸까. 죄를 지은 사람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어떤 소설에서는 당신이 진짜 아버지라면 자식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죄를 뒤집어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 일은 형사한테 큰 죄책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짓고 죗값을 치르면(감옥에 갔다 오는) 그걸로 끝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무엇보다 무거운 죄는 사람을 죽인 일이다.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여기에도 있다. 바다를 지키고 살아가는 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모든 게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게 옳을까 그를까, 잘 모르겠다. 하나를 덮으면 자꾸 덮어야 하는 게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여기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멋대로 생각한 거구나.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한테 자기도 모르게 큰일을 저지르게 만들다니(이 말은 안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오래전에 일어난 일은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 일이 지금 자기 자리를 흔들 수도 있다고(미야베 미유키 소설 《진상》에도 그런 말이 나왔다). 사람 일이 언제나 문제없이 잘 흘러가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될 때도 있다. 살면서 엄청난 일은 저지르지 않는 게 좋겠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게 보이는 것은 유가와와 교헤이가 실험하는 거다. 교헤이는 유가와한테 왜 이 지역이 하리가우라인지 설명해준다. ‘하리’는 수정이라는 뜻으로, 해가 머리 위에 올라오면 바다 밑까지 비쳐서 바다에 색깔 있는 수정이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것을 보려면 배를 타고 바다 멀리까지 나가야 하는데 교헤이는 뱃멀미를 해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유가와는 교헤이한테 바닷속 수정을 보여주려고 한다(페트병 로켓으로). 유가와는 교헤이와 불꽃놀이를 하면서도 불꽃반응을 가르쳐준다. 마치 과학은 재미있는 거야, 하는 것 같았다. 교헤이는 이제 과학을 좋아할까.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할 것 같다. 여름에 있었던 일도. 교헤이한테 유가와를 만난 일은 도움이 됐을 거다. 앞으로도 답을 찾아가겠지.

 

 

 

희선

 

 

 

 

☆―

 

“이과를 싫어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지.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언젠가 큰 잘못을 저지르게 돼.”  (89쪽)

 

 

“현대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많아. 하지만 과학 발전과 함께 언젠가는 그런 수수께끼도 풀리겠지. 그렇다면 과학에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이 한계를 만들어 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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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사람 자신이야.”  (547쪽)

 

 

“어떤 문제라도 반드시 답은 있어.”

 

유가와는 교헤이를 똑바로 봤다.

 

“하지만 답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삶도 그래. 금세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거야. 그때마다 고민하는 건 뜻있고 가치 있는 일이지. 하지만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답을 찾아내려면 너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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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번 일에 답을 찾아낼 때까지 나는 너와 함께 같은 문제를 껴안고 앞으로도 고민할 거야. 잊지마,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야.”  (548~549쪽)

 

 

 

 

 

                   

 

                   

 

페트병 로켓, 영화에 나온 것은 멋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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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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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목소리가 가장 나중에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성우가 하는 나이 든 사람 목소리는 맞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로 나이 든 사람을 나타내야 할 때도 있으니 성우가 내는 목소리가 실제와 달라도 어쩔 수 없겠다(라디오에서 들은 것을 생각해서, 성우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하는데). 목소리만 나이를 늦게 먹는 것은 아니다. 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글로는 그 사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 말하지 않는 한. 갑자기 우타노 쇼고 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생각났다.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은 애거서 크치스티가 1950년 예순 살 때 쓰기 시작해서 열다섯 해 뒤 1965년 일흔다섯에 끝냈다. 읽을 때는 그냥 읽었는데 열다섯 해 걸려서 썼다 하니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한두쪽씩 썼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생각한 것은 ‘나이를 잘 모르겠다’다. 지금에 맞는 우리말로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보고 그 사람 나이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글을 많이 본 사람은 그것도 꿰뚫어볼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을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 진짜 이름은 아주 길다. 애거서 마리 클라리사 밀러 크리스티 맬로원(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이다. 이 이름 다 외우는 사람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사람이 부모의 성을 다 써서 자기 이름을 썼을 때 그 사람 아이 이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 있다. 그렇게 쓰면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에는 어머니, 아버지, 첫번째 남편, 두번째 남편이 들어가 있다. 지금 영국사람 이름은 어떨까. 여전히 본래 이름은 길까. 미국과 일본은 결혼하면 성이 아예 바뀌니, 본래 성도 그대로 놔두는 게 좀더 나을지도(얼마전에 본 영국 소설에서는 이름 다음에 남편 성을 따랐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 여왕’으로 온 세계에 이름이 잘 알려졌다. 언젠가도 이 말과 비슷한 말을 했는데(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은 알지만 책은 거의 못 봤다. 지금까지 한권인가 두권인가 본 것 같다. 거의 잊어버려서 그것을 봤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차 사고가 나고는 어딘가에 다니지 않고 글만 썼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지. 그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누굴까).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딘가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세계 곳곳을 다녔다.

 

사람은 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어린시절을 잘 보내야 평생 잘 살 수 있다가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그래도 어린시절을 즐겁게 보낸 사람이 모든 일을 긍정의 마음으로 볼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린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언니와 오빠가 있고 아버지는 유쾌하고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해주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릴 때 상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사는 친구와 놀았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력이 뛰어났다. 글도 일찍 깨쳐서 책도 빨리 보았다. 성탄과 생일에는 책을 달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 보면서 또 부러워했다. 책을 어릴 때부터 본 게.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본 게 아니니까. 그 탓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못 보는 책도 있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도 없다. 그냥 좋아하는 작가일 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보고 다른 책을 보았다. 나는 이런 경험도 없다. 같은 것을 여러번 본 것은 만화영화뿐이다. 아주 없지는 않구나.

 

옛날 영국은 집을 세 주고 다른 나라 호텔에서 사는 게 돈이 덜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유쾌했지만 돈 버는 일은 잘 못했다. 어머니가 영국에서 살 집 애슈필드를 세 주고 애거서 크리스티 식구들은 프랑스 남부 호텔에서 살았다. 프랑스에서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프랑스말을 가르쳐줄 사람을 어머니가 찾았다. 애슈필드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는데 프랑스에서는 또래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애슈필드는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초록지붕 집 같은 곳이다. 애슈필드가 훨씬 크지만. 아버지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열한 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애거서 크리스티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집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다. 그때 여러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거기에는 작가도 있었다. 애슈필드를 팔아야 하나 했는데 팔지 않았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학교를 다니고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다. 성악가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했는데 그쪽은 취미로만 남았다. 책은 늘 많이 읽었지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는 잘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애거서 크리스티는 열일곱 살에 사교계에 나갔다. 영국은 이런 게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과는 약혼도 했는데 결혼은 아치 크리스티와 했다. 제1차 세계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전쟁 때문에 결혼해야겠다고 한 건 아닌지. 언제인지 몰라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매지 언니한테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전쟁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간호사 일을 했다. 그러다 약을 조제하는 곳으로 옮겼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조제실에서 일하다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 처음 책을 내기로 한 곳에서는 돈을 아주 조금 주고 앞으로 다섯권을 더 쓰기로 계약했다. 이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쓰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딸 로잘린드를 낳는다. 어머니가 집(애슈필드)을 지키기 힘들어하자 남편 아치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소설을 써서 어머니를 도와주면 어떠냐고 했다. 그런 말 때문이었는지 에르퀼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대위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부모가 아이한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빅토리아 후기 영국은 이런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아이는 거의 유모가 키웠다.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기는 하다. 딸은 유모와 언니, 어머니한테 맡겨두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남편 일로 세계를 돌았다. 세계를 돌고 와서 자신이 전문작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아치는 골프에 빠졌다. 집을 샀는데 그 집은 액운이 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그 집 탓이었을까. 애거서 크리스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러고서 하는 말, “오래전에 말했잖아. 나는 아프거나 불행한 사람은 질색이라고. 나까지 아주 엉망이 돼.” (520쪽) 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남편과 헤어진다. 그리고 혼자 바그다드로 떠난다.

 

남편과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남편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조금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결정을 내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바그다드에 갔을 때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생각은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해서 편하게 대했다. 맥스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결혼하자도 했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이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결국 결혼했다. 로잘린드도 엄마(애거서 크리스티)가 맥스와 결혼하면 괜찮겠다고 했다. 전쟁이 또 일어났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때 글을 많이 썼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무척 무섭지 않았을까. 그런 일을 담담하게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다르게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형편에서든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전쟁도 잘 이겨낸 것은 아닌지.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 사는 게 즐겁다고도 했다. 배우고 싶은 점이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먼저 걱정할 때가 더 많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끝없이 꿈꾸기를 즐긴다는 말도 좋다.

 

살면서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오래전 기억을 불러내는 일은 조금 힘들었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시간 즐거웠을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좋았던 일을 더 잘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좋은 때도 안 좋은 때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할 만한 일이 거의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좀 쓸쓸하다. 이 책을 보다보니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거나 소설로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추리소설과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이름으로 쓴 소설 언젠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도 시간이 가면 다른 책을 먼저 볼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 보기는 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왜 못 봤을까. 워낙 많아서 무엇을 먼저 보면 좋을지 몰라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희곡도 썼다. 다른 사람이 각색해서 한 연극이 잘 안 되어서 자신이 각색했다. 이 자서전을 다 쓴 뒤에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쥐덫》은 오랫동안 공연했고, 1971년에는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976년 1월 12일 여든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자서전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죽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이 책을 본 마지막 날에는 기분이 안 좋았다. 책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쓰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지켜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슬프게 살지 않았다 해도 나도 모르게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보면서 나한테 올 앞날을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고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겠다.

 

 

 

*더하는 말

 

애거서 크리스티 언니 매지는 이야기를 아주 잘했다. 별일 아닌 것도 매지가 말하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 지어냈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는 말을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글 쓰는 게 더 나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학교를 옮기라고 해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런 일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를 옮기면 싫을 것 같은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무슨 일이든 아주 놀라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머니를 잘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첫번째 남편하고는 헤어졌지만 두번째 남편하고는 오래 잘 산 것 같다. 두번째 남편 때문에 고고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지금까지 실제 살았던 사람 이야기(자서전, 전기, 평전)를 자주 만나보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 읽을 때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끝에 가서는 우울해진다. 그 사람의 죽음이 가까워져서일까. 책 한권을 보는 것은 늘 죽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는데 다른 책을 볼 때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다. 내용 때문에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책으로 만나서 기쁘지만 마지막에는 헤어져야 해서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이런 마음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또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긴 사람이나 작가가 이 세상을 살다간 이야기 보고 싶다. 다음에는 누구를 만날까.

 

 

 

희선

 

 

 

 

☆―

 

나는 삶을 사랑한다.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질 듯 절망하고, 날카로운 비참함에 온몸이 꿰이고, 슬픔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임을 확신한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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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6-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스티 책을 어릴 때 많이 읽었습니다. 아직도 몇 권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빨간색으로 나온 작은 문고판 소설들..그런데 꽤 읽기는 했는데,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희선님 덕분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나 복잡한 삶을 살았군요. 저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거의 집에서 글만 쓰는 타입인 줄 알았습니다(아마도 '미스 마플'을 연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서전이나 평전이 끝에 가서 우울해진다고 하셨는데, 그런 것을 생각해보니 포와로를 죽였던 '커튼'같은 작품이 생각나는군요. 어렸을 때는 왜 죽이지 하고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와서 보니 그만큼 애거서 크리스티가 포와로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갈 일이 있는 토요일인데,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니 별로 나가고 싶지가 않군요. 즐거운 주말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14-06-29 02:44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애거서 크리스티나 다른 추리소설 읽었다고 하면, 나는 어릴 때 뭐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곳에 책이 거의 없어서 그랬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했잖아요 혼자 상상의 세계를 만든 것도 재미있죠 어쩌면 어릴 때는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른이 그러면 안 돼 할지도... 애거서 크리스티도 다른 사람은 별말 안 했는데 유모가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하는 걸 듣고 유모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서전, 평전 별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렇더군요 두꺼운 책을 다 봐가는 아쉬움인지, 긴 삶을 겨우 책 한권으로 보는 것 때문인지... 어쩌면 '이 사람은 이렇게 살다 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죠 사는 것 자체에 슬픔을 느끼는 것인지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포와로가 죽는군요 그 사람을 좋아한 사람은 죽어서 참 아쉽겠습니다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애거서 크리스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주가 빨리 갑니다 유월도 다 가고 있습니다 비가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갑자기 많이 오면 안 좋으니까요 남은 주말, 남은 유월 잘 보내세요


희선
 
나의 계량스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부터 이런 말하면 제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 제목에 나오는 계량스푼을 저는 자꾸 달걀스푼이라고 생각합니다(저도 모르게 그러는 거예요). 계량을 계란으로, 좀 우습죠(달걀은 닭알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과자, 케이크를 즐겨 만드는 사람은 저와 같은 생각은 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있는 말이라 해도 자기가 자주 쓰지 않으면 익숙하지 않죠. 계량스푼이 저한테 익숙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려구요. 책을 다 보고 잠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나’는 일본말로 어떻게 썼을까 하는. 일본말에서 ‘나’로 많이 쓰는 것은 와타시私예요. 이 말은 여자 남자 구별 없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나’를 오레奄, 보쿠僕(ぼく)라고도 합니다. 한가지 더 생각났는데 그것은 그냥 두기로 하겠습니다. 뒤에 말한 두 가지에서 보쿠僕가 자신을 더 낮추는 말입니다. 이건가봐요. 본래 제목을 보니 그렇네요. 그냥 생각나서 말했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아는 척했습니다. 책 읽기 전에 앞부분을 잘 봤다면 이 말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자신한테 남들한테는 없는 힘이 있다면 어떨까요.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초능력 같은 게 있는 사람은 안 좋아하더군요. 왜 나는 남하고 다를까,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러죠. 처음에는 그랬다가 나중에 자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반가울 테죠. 게다가 그 사람은 자기 힘을 받아들이고 그 힘을 잘 쓴다면 자신도 그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지금 하나 떠올랐습니다. 《일곱 번 죽은 남자》(니시자와 야스히코)에 남하고 다른 힘(체질이라고 했던 듯)을 가진 남자아이가 나왔던 게. 안타깝게도 그 힘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군요. 같은 날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사는 거예요. 어떤 힘이 있다 해도 세상이나 많은 사람을 위해서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을 위해서 그 힘을 쓸 수 있겠지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모아서 세상을 위해 힘을 쓰자고도 하지만.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여기 나오는 ‘나’한테는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힘을 ‘나’의 친척 아키야마(교수)는 ‘조건게임제시능력’이라고 하더군요. 이 말 어쩐지 어렵군요. 쉽게 말하면, ‘나’가 누구한테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어떤 일을 해냅니다. 이 힘은 상대 행동을 말로 묶는 겁니다. 다행하게도 이 힘은 한 사람한테 한번밖에 쓸 수 없습니다. 여러 번이나 남을 조종하면 안 되겠죠. 예전에 본 《츠나구》에도 이것과 비슷한 말이 있었습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한번밖에 만날 수 없고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을 한번밖에 만날 수 없다는 규칙입니다.

 

‘나’는 친구 후미가 겪은 일 때문에 힘을 쓰려고 합니다. 후미는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남다른 아이예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나’가 후미가 어떻게 하면 선생님한테 칭찬받는지 안다고 했을 때는 어린데 벌써 그렇다니 했습니다. 그렇다고 잘난체하는 아이는 아니고 성품이 곧아요. 그래서 후미의 그런 면을 안 좋게 생각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친구가 후미한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지만 숙제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아이가 아닌가 싶었어요. 단짝 친구가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고 다른 아이가 자신을 이용하려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후미가 책만큼 좋아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토끼 돌보기예요. 이 학교는 4학년이 되면 토끼를 돌보아야 하는데 후미는 그 일을 아주 좋아했어요. 다른 아이가 토끼한테 먹이 주는 걸 잊으면 자신이 대신 하기도 했어요. ‘나’는 그런 후미를 존경하기도 했습니다. ‘나’가 토끼 먹이를 주어야 하는 날 ‘나’가 감기로 학교를 쉬어서 ‘나’는 후미한테 대신 토끼 먹이를 주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날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쿄 큰 종합병원 원장 외아들이 ‘나’와 후미 학교에서 기르는 토끼를 토막 냈어요. 토막 난 토끼를 후미가 가장 먼저 봤습니다. 그 일을 한 대학생은 그저 기물손괴죄를 지은 게 됐습니다. 《제3인류》 3권에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후미는 그 일 때문에 충격을 받고 오랫동안 학교를 쉽니다. ‘나’는 후미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닫게 한 대학생한테 벌을 주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나’는 자신과 같은 힘을 가진 친척 어른을 만납니다.

 

제목에 계량스푼이 있어서 힘 조절법을 배우는 건가 했습니다. 아니면 아키야마 선생님(‘나’가 선생님이라 해서 선생님이라 해야 할 듯)이 ‘나’가 힘을 쓰지 않도록 이끌려는 건가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보다보니 아키야마 선생님이 더 무섭더군요. 웃는 얼굴로 무서운 말을 했습니다. 무엇인가 경험이 많았나 봅니다. 아키야마 선생님은 그 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거의 혼자 알아낸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키야마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죠. 그래도 ‘나’가 솔직하게 다 말하지 않았지만. 토막 난 토끼 때문에 후미가 충격을 받았지만 ‘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후미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후미를 위해서라기보다 죄책감 때문에 토끼를 토막 낸 사람한테 벌주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울고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아키야마 선생님은 ‘나’가 죄책감 때문에 힘을 쓰려고 한 게 뭐가 나쁘냐고 했습니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 듯해요.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무서워하기도 했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일을 뉘우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잘못을 하고도 뉘우치지 않기도 합니다. 그 대학생은 뉘우치지 않는 쪽입니다. 아키야마 선생님은 그런 사람한테 벌을 주어도 소용없다고 했죠.

 

‘나’가 후미를 위해 하려고 한 일은 엄청났지만, ‘나’의 마음이 닫힌 후미 마음에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쁘잖아요. 답답할지라도 때로는 말없이 기다려주기도 해야 합니다. 괴로운 마음에 빠진 사람이 둘레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잖아요.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무엇인가 하려고 한 거겠지요. 그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너무 큰일이 아니라면.

 

 

 

 

*그냥

 

며칠전에 이 작가 책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세권으로 나왔는데 올해 다시 두권으로 나왔더군요. 책 보고 쓰기도 했지만 다 쓰고 보니 ‘왜 이렇게 쓴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기는 하군요. 그래도 잠시 말하고 싶어서요. 여기에 중심으로 나오는 사람은 여덟입니다. 그 안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 이름과 같은 츠지무라 미즈키예요. 자기 이름을 소설에 쓰면 기분 이상할 것 같은데, 츠지무라 미즈키는 이 이름 본래 이름이 아니군요. 츠지무라 미즈키는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을 즐겨보아서 이름을 츠지무라(아야츠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 그렇게 많이 못 읽어봤습니다. 그래도 이 책 보다보니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가 생각나더군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나와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날 사립 세이난 고등학교 3학년 2반 아이들 여덟은 학교에 갇힙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마음속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정말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속에 가둘 수 있을까요. 그런 일 몇 가지 말해주었거든요. 아이들은 자기들을 가둔 것은 두달 전 축제 마지막 날 학교 옥상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3학년 2반에서 한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알지만 그게 누구인지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어나더’에도 기억을 바꾸는 게 나오는데(‘어나더’에서는 훨씬 많은 사람 기억이 바뀌지만) 여기에도 그게 나왔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는 게 아니고 여덟 사람 가운데서 죽은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니 시계는 죽은 아이가 옥상에서 몸을 던진 시간 5시 53분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아이가 사라지고 나서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라지는 것은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니 괜찮은 거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아이들은 모르니 무서워합니다. 다음 5시 53분에 누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차례는 따로 없고 누구든 혼자일 때 5시 53분을 맞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아이가 있는 곳은 축제 마지막 날로 돌아갑니다. 거기에 옥상에서 떨어지는 아이가 나타나서(때로는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하는 거예요. 볼 때는 무섭다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무섭군요. 죽은 사람이, 그것도 피를 흘리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렇게 말을 하면. 이런 것을 그렇게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그전에 그 일을 맞는 아이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의 모두 죽은 아이를 떠올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짊어진 것이 있더군요. 죽은 아이는 그것을 몰랐겠지만. 아마 그래서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기 목숨을 버린 건지도 모르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도 생각해냅니다. 저는 앞에서 어떤 말 때문에 그 아이가 아닐까 했다가, 두번째 책에서 다른 아이를 말해서 그 아이인가 했습니다. 처음 생각이 맞았습니다. 여전히 그런 것도 맞히고 싶기도 합니다.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 ‘어나더’에도 죽었는데 돌아온 사람은 누군가 하는 게 나오는군요.

 

저는 아이들 저마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람은 한사람 한사람 다르고 모두 소중하다고 말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다른 것보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결혼도 잘한다고 하겠지요. 모든 학교가 다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학교가 훨씬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우울해하고 그러다 목숨까지 끊는 아이도 있습니다. 수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로 풀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도 그랬습니다. 수험 노이로제였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 텐데, 그 아이는 그것을 몰랐고 마음이 비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건 그 아이 탓만은 아니군요. 학교에 갇힌 아이들도 조금 책임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주는 일까지 마음 쓰려면 힘들기는 하겠지요. 그래도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를. 아이들은 그 아이를 잊어가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할 일은 남과 경쟁하기가 아니고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좋아하기예요. 자신을 좋아하면 쉽게 목숨을 버리지 않겠죠. 자신이 싫어서 죽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자신일 때도 있겠지요. 자신의 모자란 점보다 좋은 점을 찾아내고 더 나아지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잘 못하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친구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전에는 생각 안 했다는 것 같군요. 전보다 좀더 가깝게 생각하게 됐다는 거예요.

 

 

 

희선

 

 

 

 

☆―

 

“계량은 중요해요. 세심하게 마음 쓰지 않으면 준비한 재료나 들인 수고가 모두 무용지물이 돼요.”       (259쪽)

 

 

“대가를 치른다는 것은 말하자면 인과응보예요. 남을 해코지한 자, 업신여기고 비웃은 자, 상처준 자. 그런 사람한테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이 한 짓이 그대로 되돌아와요.”  (308쪽)

 

 

“선생님, 정말로 사람은 이기적인가요? 절대로 남을 위해 울 수 없는 건가요?”

.

.

.

 

“누가 죽어서 슬프게 울어도 그건 결국 그 사람을 잃은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 우는 거라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만 눈물을 흘린다고, 그렇게 들었어요.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들이쉬는 숨이 약해서 말하는 것이 힘겨웠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얼굴을 감싸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제가 그랬던 거예요. 누가 저 때문에 잘못돼서, 그 책임을 견딜 수 없어서 그랬던 거예요. 후미를 좋아해서가 아니예요.”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지요?”

 

그때까지 말없이 있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괴로움을 억누르는 듯한 울림이었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끌어다 팔로 감싸 안았다.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은 눈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목소리에서 조용한 격렬함이 느껴졌다.

 

“바보군요. 책임을 느끼니까, 자신한테 그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 사람이 슬픈 것이 싫으니까, 그런 까닭들로 상대한테 집착하는 것. 자신을 위한 그런 마음을 사람들은 그래도 사랑이라 해요.”  (378~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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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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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아무리 지난날 잘못을 뉘우치고 아쉬워해도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로잡고 올바른 쪽으로 가게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을 소설에서는 조금 쉽게 해준다. 아니 그렇게 쉬운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 흐르는 것은 슬픔이다. 내 기분이 안 좋아서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슬픔을 느꼈다. 사람은 슬픈 짐승이라는 말도 있던가. 오랫동안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홀로 지내다보면 사람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이라고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이 생각 그리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볼 때, 글로 나타나는 그 사람은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 단지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걸로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것을 이용했다. 처음부터 친구가 되려는 마음 따위 없었다. 그저 ‘괴물 래리’가 어떤지 보러온 것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 마음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렇게 보였다. 내가 알고 싶어하는 사람 마음은 책속에 나오는 사람 마음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책에 나온 말을 보고도 잘 모를 때 있다. 그럴 때는 ‘나는 왜 이렇게 모르지’ 하기도 한다.

 

지금이 몇 년인지 나오지 않고, 지난날은 1979년과 1982년으로 나온다. 이것은 왜 그럴까. 1979년은 래리와 사일러스가 만난 해고, 1982년은 래리 이웃에 살던 신디 워커가 래리와 영화를 보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사라져버린 때다. 먼저 래리는 친구가 없고 어릴 때는 말더듬이에 천식을 앓았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사일러스는 흑인으로 엄마와 북부에서 살았는데 남부에 오게 되었다. 미시시피 주 샤봇에. 래리와 사일러스는 숲에서만 친하게 지냈다. 학교에서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백인과 흑인이어서. 래리는 아버지 때문에 사일러스와 싸우게 되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서 사일러스와 사이가 멀어진다. 신디는 래리가 혼자 좋아하던 여자아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디가 래리한테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신디는 래리와 영화를 보러 가지 않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래리가 솔직하게 말해도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다. 래리가 신디를 죽이고 시체를 어딘가에 묻었다고 의심했다. 작은 마을이어서 이런 소문은 금세 퍼졌다. 래리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정비소를 하던 아버지는 거의 날마다 술을 마셨다. 한해 뒤 래리는 군에 들어갔다. 얼마 뒤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래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래리는 군에서 정비사 자격증을 따서 아버지 정비소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곳에 손님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래리는 날마다 정비소 문을 열었다.

 

래리 아버지가 죽었을 때 래리가 집에 돌아온 것은 엄마한테 치매가 나타나서다. 지금 엄마는 요양원에 있다. 그리고 얼마전에 대학생 티나 러더포드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또 래리를 의심했다. 신디 워커 때문에. 예전에 래리가 의심을 받았을 때 다른 곳으로 떠났다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일러스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경찰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게 반가웠던 래리는 사일러스한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사일러스는 반가워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잘못하면 반대로 화를 내기도 한다. 사일러스가 래리를 차갑게 대한 것은 자신한테 잘못이 있어서였다. 래리가 어렸을 때 사일러스한테 바로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사일러스는 그것을 받아들였을까. 둘이 다시 친구로 지냈다면 신디가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래리는 학교에서 따돌림 당했다. 신디 일이 있고는 마을에서 따돌림 당했다. 그런 일이 있는데도 그곳에서 그냥 살다니. 나라면 괴로워서 못 살거다. 그곳을 떠나든지, 나는 범인이 아니다고 밝히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래리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이것은 정말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 래리는 티나 러더포드를 강간하고 죽인 의심을 받았다. 왜 소설을 보는 사람은 그 일을 한 게 래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하고 소설속 사람은 모르게 할까. 답답하게 말이다. 사일러스는 용기를 내서 1982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한테 말한다. 그 말을 이제야 하다니, 아니 이제라도 해서 다행이다. 래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괴물이라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자기가 하지 않은 일도 다른 사람이 자꾸 했다고 하면 그것을 믿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말해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는 말하지 않은 걸지도. 그래도 래리는 누군가와 친하게 되기를 바랐다. 자기를 이용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한 것을 자신 때문이 아닐까 했다. 래리가 그런 책임을 느껴야 하는 걸까. 사일러스가 좀더 빨리 래리와 말을 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해도 벌써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구나. 앞으로를 생각하는 게 낫겠다.

 

어떤 책(래리는 스티븐 킹 소설을 즐겨읽었다)을 많이 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책속에 나온 일을 한다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래리는 책 때문에 의심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마지막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냥. 다행하게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래리한테는 이제야 친구가 생겼다. 친구, 오래전부터 래리는 자기한테 친구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앞으로는 래리가 덜 쓸쓸하겠다. 정비소에는 손님이 찾아올까. 이야기가 조금 슬프기도 했지만 마지막은 슬프지 않았다.

 

 

 

희선

 

 

 

 

☆―

 

“넌 나한테 친구였어, 래리.” 사일러스가 말했다. “내가 너한테 친구였는지는 모르겠어.”  (390쪽)

 

 

“내가 조언은 잘 못하지만, 그래도 한마디하자면, 둘이 진작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싶군.” 프렌치가 말했다. 그가 손목 벨트를 집어 들었다. “오늘 밤엔 다시 매고 있어야겠어. 내일은 풀 수 있으면 좋겠군. 다시 차는 일 없이 영원히.”  (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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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0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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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0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즈 스위트 홈 7

  코나미 카나타

  講談社  2010년 04월 23일

 

 

 

 

 

 

 

 

 

 

 

 

지난번(6권)에 치를 만나고 어느새 한해가 훌쩍 지나갔다. 그때는 바로 7권에서 10권까지 보려고 했는데, 지난해에는 치뿐 아니라 다른 만화도 거의 못 보았다. 그래도 나츠메 우인장은 보았구나(올해 나온 것은 아직이지만). 밀려있는 만화 언제 다 볼 수 있을지(원피스가 가장 많이 밀렸다). 이렇게 말하니까 만화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앞으로 천천히 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밀린 거 다 볼 수 있을 테지. 한해가 지나서 지난번에 어떤 이야기를 보았는지 다 생각나지 않는다. 겨우 하나, 치가 새 친구 얼룩고양이 코치를 만난 거다. 치하고 크기는 비슷하다. 그런데 치가 코치한테 꼬마라고 했다. 지난번이 아니고 이번에. 지난번에도 그런 말했을까. 밤에 치는 코치를 따라서 집을 나왔다. 치가 집을 나온 다음에 코치를 만났던가. 아빠는 치가 밖에 나간 것도 모르고 문을 닫았다. 뜰로 이어진 큰 창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치가 따라간 것은 코치가 아닌 검정고양이였다. 검정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와 만나고 있을 때 치가 공원에 있는 코치를 보고 따라갔다. 그러다 나뭇가지에 목걸이가 걸려서 그게 빠졌다. 고양이 목걸이는 잘 빠지게 되어있다고 한다. 잘못해서 목이 졸리지 않도록.

 

코치가 치한테 좋은 데 데리고 간다고 했던가보다. 거기는 길고양이한테 먹이를 주는 음식점 옆인 듯했다. 하지만 먹이는 없었다. 그곳이 쉬는 날이었다. 코치는 그만 헤어지자고 했는데 치는 코치를 따라갔다. 공원 안 수풀 속에 상자가 있었다. 거기는 코치가 자는 곳이었다. 코치는 길고양이다. 코치가 상자 안에 들어가니 치도 따라서 들어갔다. 그러고서 하는 말, ‘여기가 좋은 곳이야’였다. 코치는 치한테 좁으니까 나가라고 했다. 조금 끼이기는 했지만 둘이 붙어있어서 곧 따스함을 느꼈다. 치와 코치는 잠이 들었다. 거기에 검정고양이가 나타나서 치한테 ‘집에 가야지’하고 치를 물어서 상자에서 꺼냈다. 얼마 뒤 치가 깨어서 걸어가겠다고 했다. 치는 검정고양이와 헤어져 집에 갔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밖에서 잤다. 아침에 치는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엄마 아빠 요헤이가 치를 바로 못 보아서. 아침을 먹으려고 다 차린 다음에야 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다행히 요헤이가 밖에 있는 치를 보고 집에 들어오게 해주었다. 창이 커서 밖에 있는 치가 잘 보일지 알았는데 치가 작아서 못 보았나보다.

 

밖에 나갔다 온 치 몸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서 엄마 아빠가 치를 씻겼다. 하지만 치는 씻는 것을 싫어한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니까. 씻기고 털을 말려주었지만 치 기분은 나빠 보였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 고양이 빗으로 털을 빗겨주었다. 그랬더니 치가 기분 좋아했다. 요헤이네 집 텔레비전을 커다란 디지털 텔레비전으로 바꾸었다. 엄마 아빠 요헤이가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니까 치도 보았다. 그때 비둘기가 나와서 치가 ‘사냥감이다’ 하고 잡으러 텔레비전이 놓인 곳에 올라갔다. 그런데 비둘기가 치보다 더 커 보였다. 치는 깜짝 놀라서 거기에서 내려왔다. 나중에 아빠는 물고기가 나오는 곳을 틀고는 치한테 그것을 보라고 했다. 꼭 아이한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는 어릴 때 금붕어를 키우고 싶어했는데 못 키웠던가보다. 치 먹이를 사고 오던 길에 금붕어를 보았다. 집에 치가 있어서 안 된다고 생각했다가 사 버렸다. 치도 금붕어 보기를 좋아하겠지 하면서. 하지만 치는 아빠 생각과는 달리 금붕어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잡으려고 했다. 치와 아빠 서로 다른 말을 할 때 웃겼다. ‘아빠, 치 사냥감 갖고 싶어. 나 줄거야?’ ‘치도 금붕어 보는 거 재미있지, 많이 봐.’ 말이 통하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말이 통해도 다른 사람 마음을 모르기도 하는구나.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 치는 집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무슨 냄새가 난다고 했다. 요헤이와 엄마를 따라가려고 한 듯한데 놓쳤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치는 걷다가 코치를 보았다. 밤에 왔던 음식점 옆이었다. 거기에는 코치뿐 아니라 다른 길고양이도 있었다. 먹이를 먹으러 온 거였다. 치는 코치한테 우리집 어디야 했다. 먹이를 다 먹은 코치는 곧 비가 내릴 것을 알고 비를 피하러 갔다. 치도 코치를 따라가서 비를 피했다. 같이 비 피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치가 자꾸 우리집이라고 하니, 코치는 오래전(아주 오래전은 아니겠지만)에 상자에 함께 있던 형제를 아이가 우리집에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를 떠올렸다. 코치는 치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집으로 가다가 둘은 길에 떨어진 닭튀김을 보았다. 치가 반씩 먹자고 하고는 더 많이 떼어갔다. 코치는 냄새를 맡고는 치한테 그것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치는 먹어버렸다. 거기에 검정고양이가 나타나서 코치는 치가 이상한 것을 먹었다고 말했다. 검정고양이가 치한테 먹기 전에 냄새 맡아보지 않았느냐고 하니, 치는 냄새는 안 맡아 보았는데 맛은 별로였다고 했다. 검정고양이가 치가 먹지 않은 것을 냄새 맡아보고는 상했다고 했다. 치는 상한 닭튀김을 먹은 거다.

 

검정고양이와 코치는 같이 치가 집에 돌아가게 해주었다. 치가 집에 가는 것을 보고 둘은 괜찮을까 했다. 닭튀김을 먹었을 때는 괜찮았던 치가 집에 갔을 때는 이상해졌다. 얼마 뒤 치가 먹은 것을 토했다. 엄마 아빠는 그런 치를 보고 놀랐다. 책을 보고는 치가 토한 게 털뭉치인가 했다. 하지만 털뭉치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꾸 토하는 치를 보고 다시 책을 찾아보았다. 곧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치는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이 빠진 치는 잠을 잤다. 엄마 아빠 요헤이가 그 모습을 보았다. 거실 창 밖에서 검정고양이와 코치가 안을 보고 있었다. 둘을 엄마 아빠 요헤이도 보았다. 치가 걱정돼서 보러 왔나보다 했다. 사람으로 치면 치는 식중독에 걸린 건가. 바로 토해서 낫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앞에서 코치가 치한테 뱉으라고 했구나. 코치는 길고양이여서 먹이를 바로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검정고양이도 길고양이였던 적이 있었을까. 코치가 사람과 살게 되는 날도 올까. 그런 이야기가 나올지 안 나올지. 고양이가 사람과 사는 게 아주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코치가 조금 쓸쓸하게 보였다. 치가 ‘우리집’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오랜만에 귀여운 치를 만나서 즐거웠다. 그리고 요헤이네 식구들과 검정고양이와 코치를 만난 것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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