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량스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부터 이런 말하면 제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 제목에 나오는 계량스푼을 저는 자꾸 달걀스푼이라고 생각합니다(저도 모르게 그러는 거예요). 계량을 계란으로, 좀 우습죠(달걀은 닭알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과자, 케이크를 즐겨 만드는 사람은 저와 같은 생각은 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있는 말이라 해도 자기가 자주 쓰지 않으면 익숙하지 않죠. 계량스푼이 저한테 익숙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려구요. 책을 다 보고 잠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나’는 일본말로 어떻게 썼을까 하는. 일본말에서 ‘나’로 많이 쓰는 것은 와타시私예요. 이 말은 여자 남자 구별 없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나’를 오레奄, 보쿠僕(ぼく)라고도 합니다. 한가지 더 생각났는데 그것은 그냥 두기로 하겠습니다. 뒤에 말한 두 가지에서 보쿠僕가 자신을 더 낮추는 말입니다. 이건가봐요. 본래 제목을 보니 그렇네요. 그냥 생각나서 말했습니다.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아는 척했습니다. 책 읽기 전에 앞부분을 잘 봤다면 이 말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자신한테 남들한테는 없는 힘이 있다면 어떨까요.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초능력 같은 게 있는 사람은 안 좋아하더군요. 왜 나는 남하고 다를까,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러죠. 처음에는 그랬다가 나중에 자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반가울 테죠. 게다가 그 사람은 자기 힘을 받아들이고 그 힘을 잘 쓴다면 자신도 그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지금 하나 떠올랐습니다. 《일곱 번 죽은 남자》(니시자와 야스히코)에 남하고 다른 힘(체질이라고 했던 듯)을 가진 남자아이가 나왔던 게. 안타깝게도 그 힘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군요. 같은 날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사는 거예요. 어떤 힘이 있다 해도 세상이나 많은 사람을 위해서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을 위해서 그 힘을 쓸 수 있겠지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모아서 세상을 위해 힘을 쓰자고도 하지만.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느냐구요. 여기 나오는 ‘나’한테는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힘을 ‘나’의 친척 아키야마(교수)는 ‘조건게임제시능력’이라고 하더군요. 이 말 어쩐지 어렵군요. 쉽게 말하면, ‘나’가 누구한테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어떤 일을 해냅니다. 이 힘은 상대 행동을 말로 묶는 겁니다. 다행하게도 이 힘은 한 사람한테 한번밖에 쓸 수 없습니다. 여러 번이나 남을 조종하면 안 되겠죠. 예전에 본 《츠나구》에도 이것과 비슷한 말이 있었습니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한번밖에 만날 수 없고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을 한번밖에 만날 수 없다는 규칙입니다.

 

‘나’는 친구 후미가 겪은 일 때문에 힘을 쓰려고 합니다. 후미는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남다른 아이예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군요. ‘나’가 후미가 어떻게 하면 선생님한테 칭찬받는지 안다고 했을 때는 어린데 벌써 그렇다니 했습니다. 그렇다고 잘난체하는 아이는 아니고 성품이 곧아요. 그래서 후미의 그런 면을 안 좋게 생각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친구가 후미한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지만 숙제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아이가 아닌가 싶었어요. 단짝 친구가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고 다른 아이가 자신을 이용하려고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후미가 책만큼 좋아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토끼 돌보기예요. 이 학교는 4학년이 되면 토끼를 돌보아야 하는데 후미는 그 일을 아주 좋아했어요. 다른 아이가 토끼한테 먹이 주는 걸 잊으면 자신이 대신 하기도 했어요. ‘나’는 그런 후미를 존경하기도 했습니다. ‘나’가 토끼 먹이를 주어야 하는 날 ‘나’가 감기로 학교를 쉬어서 ‘나’는 후미한테 대신 토끼 먹이를 주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날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쿄 큰 종합병원 원장 외아들이 ‘나’와 후미 학교에서 기르는 토끼를 토막 냈어요. 토막 난 토끼를 후미가 가장 먼저 봤습니다. 그 일을 한 대학생은 그저 기물손괴죄를 지은 게 됐습니다. 《제3인류》 3권에도 이것과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후미는 그 일 때문에 충격을 받고 오랫동안 학교를 쉽니다. ‘나’는 후미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닫게 한 대학생한테 벌을 주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나’는 자신과 같은 힘을 가진 친척 어른을 만납니다.

 

제목에 계량스푼이 있어서 힘 조절법을 배우는 건가 했습니다. 아니면 아키야마 선생님(‘나’가 선생님이라 해서 선생님이라 해야 할 듯)이 ‘나’가 힘을 쓰지 않도록 이끌려는 건가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보다보니 아키야마 선생님이 더 무섭더군요. 웃는 얼굴로 무서운 말을 했습니다. 무엇인가 경험이 많았나 봅니다. 아키야마 선생님은 그 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거의 혼자 알아낸 것 같았습니다. ‘나’는 아키야마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죠. 그래도 ‘나’가 솔직하게 다 말하지 않았지만. 토막 난 토끼 때문에 후미가 충격을 받았지만 ‘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후미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후미를 위해서라기보다 죄책감 때문에 토끼를 토막 낸 사람한테 벌주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울고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아키야마 선생님은 ‘나’가 죄책감 때문에 힘을 쓰려고 한 게 뭐가 나쁘냐고 했습니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 듯해요.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무서워하기도 했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일을 뉘우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잘못을 하고도 뉘우치지 않기도 합니다. 그 대학생은 뉘우치지 않는 쪽입니다. 아키야마 선생님은 그런 사람한테 벌을 주어도 소용없다고 했죠.

 

‘나’가 후미를 위해 하려고 한 일은 엄청났지만, ‘나’의 마음이 닫힌 후미 마음에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쁘잖아요. 답답할지라도 때로는 말없이 기다려주기도 해야 합니다. 괴로운 마음에 빠진 사람이 둘레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잖아요.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무엇인가 하려고 한 거겠지요. 그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너무 큰일이 아니라면.

 

 

 

 

*그냥

 

며칠전에 이 작가 책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세권으로 나왔는데 올해 다시 두권으로 나왔더군요. 책 보고 쓰기도 했지만 다 쓰고 보니 ‘왜 이렇게 쓴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기는 하군요. 그래도 잠시 말하고 싶어서요. 여기에 중심으로 나오는 사람은 여덟입니다. 그 안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 이름과 같은 츠지무라 미즈키예요. 자기 이름을 소설에 쓰면 기분 이상할 것 같은데, 츠지무라 미즈키는 이 이름 본래 이름이 아니군요. 츠지무라 미즈키는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을 즐겨보아서 이름을 츠지무라(아야츠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 그렇게 많이 못 읽어봤습니다. 그래도 이 책 보다보니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가 생각나더군요.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나와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날 사립 세이난 고등학교 3학년 2반 아이들 여덟은 학교에 갇힙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마음속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정말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속에 가둘 수 있을까요. 그런 일 몇 가지 말해주었거든요. 아이들은 자기들을 가둔 것은 두달 전 축제 마지막 날 학교 옥상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3학년 2반에서 한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알지만 그게 누구인지 얼굴도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어나더’에도 기억을 바꾸는 게 나오는데(‘어나더’에서는 훨씬 많은 사람 기억이 바뀌지만) 여기에도 그게 나왔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는 게 아니고 여덟 사람 가운데서 죽은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니 시계는 죽은 아이가 옥상에서 몸을 던진 시간 5시 53분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아이가 사라지고 나서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라지는 것은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니 괜찮은 거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아이들은 모르니 무서워합니다. 다음 5시 53분에 누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차례는 따로 없고 누구든 혼자일 때 5시 53분을 맞으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 아이가 있는 곳은 축제 마지막 날로 돌아갑니다. 거기에 옥상에서 떨어지는 아이가 나타나서(때로는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하는 거예요. 볼 때는 무섭다는 생각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무섭군요. 죽은 사람이, 그것도 피를 흘리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렇게 말을 하면. 이런 것을 그렇게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그전에 그 일을 맞는 아이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의 모두 죽은 아이를 떠올리기 전에 자기 자신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짊어진 것이 있더군요. 죽은 아이는 그것을 몰랐겠지만. 아마 그래서 자기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기 목숨을 버린 건지도 모르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도 생각해냅니다. 저는 앞에서 어떤 말 때문에 그 아이가 아닐까 했다가, 두번째 책에서 다른 아이를 말해서 그 아이인가 했습니다. 처음 생각이 맞았습니다. 여전히 그런 것도 맞히고 싶기도 합니다.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 ‘어나더’에도 죽었는데 돌아온 사람은 누군가 하는 게 나오는군요.

 

저는 아이들 저마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람은 한사람 한사람 다르고 모두 소중하다고 말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다른 것보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결혼도 잘한다고 하겠지요. 모든 학교가 다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학교가 훨씬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우울해하고 그러다 목숨까지 끊는 아이도 있습니다. 수험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로 풀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도 그랬습니다. 수험 노이로제였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 텐데, 그 아이는 그것을 몰랐고 마음이 비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건 그 아이 탓만은 아니군요. 학교에 갇힌 아이들도 조금 책임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주는 일까지 마음 쓰려면 힘들기는 하겠지요. 그래도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를. 아이들은 그 아이를 잊어가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할 일은 남과 경쟁하기가 아니고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좋아하기예요. 자신을 좋아하면 쉽게 목숨을 버리지 않겠죠. 자신이 싫어서 죽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자신일 때도 있겠지요. 자신의 모자란 점보다 좋은 점을 찾아내고 더 나아지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잘 못하는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친구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전에는 생각 안 했다는 것 같군요. 전보다 좀더 가깝게 생각하게 됐다는 거예요.

 

 

 

희선

 

 

 

 

☆―

 

“계량은 중요해요. 세심하게 마음 쓰지 않으면 준비한 재료나 들인 수고가 모두 무용지물이 돼요.”       (259쪽)

 

 

“대가를 치른다는 것은 말하자면 인과응보예요. 남을 해코지한 자, 업신여기고 비웃은 자, 상처준 자. 그런 사람한테는 언젠가 반드시 자신이 한 짓이 그대로 되돌아와요.”  (308쪽)

 

 

“선생님, 정말로 사람은 이기적인가요? 절대로 남을 위해 울 수 없는 건가요?”

.

.

.

 

“누가 죽어서 슬프게 울어도 그건 결국 그 사람을 잃은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 우는 거라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만 눈물을 흘린다고, 그렇게 들었어요.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들이쉬는 숨이 약해서 말하는 것이 힘겨웠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채로 얼굴을 감싸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제가 그랬던 거예요. 누가 저 때문에 잘못돼서, 그 책임을 견딜 수 없어서 그랬던 거예요. 후미를 좋아해서가 아니예요.”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지요?”

 

그때까지 말없이 있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괴로움을 억누르는 듯한 울림이었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끌어다 팔로 감싸 안았다. 눈물범벅이 된 눈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선생님은 눈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목소리에서 조용한 격렬함이 느껴졌다.

 

“바보군요. 책임을 느끼니까, 자신한테 그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 사람이 슬픈 것이 싫으니까, 그런 까닭들로 상대한테 집착하는 것. 자신을 위한 그런 마음을 사람들은 그래도 사랑이라 해요.”  (378~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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