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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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목소리가 가장 나중에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성우가 하는 나이 든 사람 목소리는 맞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로 나이 든 사람을 나타내야 할 때도 있으니 성우가 내는 목소리가 실제와 달라도 어쩔 수 없겠다(라디오에서 들은 것을 생각해서, 성우는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목소리 연기를 하는데). 목소리만 나이를 늦게 먹는 것은 아니다. 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글로는 그 사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지금 몇 살인지 말하지 않는 한. 갑자기 우타노 쇼고 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생각났다. 이 책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은 애거서 크치스티가 1950년 예순 살 때 쓰기 시작해서 열다섯 해 뒤 1965년 일흔다섯에 끝냈다. 읽을 때는 그냥 읽었는데 열다섯 해 걸려서 썼다 하니 엄청나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한두쪽씩 썼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생각한 것은 ‘나이를 잘 모르겠다’다. 지금에 맞는 우리말로 옮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보고 그 사람 나이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글을 많이 본 사람은 그것도 꿰뚫어볼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을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 진짜 이름은 아주 길다. 애거서 마리 클라리사 밀러 크리스티 맬로원(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이다. 이 이름 다 외우는 사람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사람이 부모의 성을 다 써서 자기 이름을 썼을 때 그 사람 아이 이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 있다. 그렇게 쓰면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에는 어머니, 아버지, 첫번째 남편, 두번째 남편이 들어가 있다. 지금 영국사람 이름은 어떨까. 여전히 본래 이름은 길까. 미국과 일본은 결혼하면 성이 아예 바뀌니, 본래 성도 그대로 놔두는 게 좀더 나을지도(얼마전에 본 영국 소설에서는 이름 다음에 남편 성을 따랐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 소설 여왕’으로 온 세계에 이름이 잘 알려졌다. 언젠가도 이 말과 비슷한 말을 했는데(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이름은 알지만 책은 거의 못 봤다. 지금까지 한권인가 두권인가 본 것 같다. 거의 잊어버려서 그것을 봤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애거서 크리스티는 차 사고가 나고는 어딘가에 다니지 않고 글만 썼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지. 그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누굴까).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딘가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세계 곳곳을 다녔다.

 

사람은 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어린시절을 잘 보내야 평생 잘 살 수 있다가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그래도 어린시절을 즐겁게 보낸 사람이 모든 일을 긍정의 마음으로 볼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린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언니와 오빠가 있고 아버지는 유쾌하고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해주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릴 때 상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사는 친구와 놀았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력이 뛰어났다. 글도 일찍 깨쳐서 책도 빨리 보았다. 성탄과 생일에는 책을 달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 보면서 또 부러워했다. 책을 어릴 때부터 본 게.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본 게 아니니까. 그 탓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못 보는 책도 있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도 없다. 그냥 좋아하는 작가일 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좋아하는 책을 여러번 보고 다른 책을 보았다. 나는 이런 경험도 없다. 같은 것을 여러번 본 것은 만화영화뿐이다. 아주 없지는 않구나.

 

옛날 영국은 집을 세 주고 다른 나라 호텔에서 사는 게 돈이 덜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유쾌했지만 돈 버는 일은 잘 못했다. 어머니가 영국에서 살 집 애슈필드를 세 주고 애거서 크리스티 식구들은 프랑스 남부 호텔에서 살았다. 프랑스에서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프랑스말을 가르쳐줄 사람을 어머니가 찾았다. 애슈필드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는데 프랑스에서는 또래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애슈필드는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초록지붕 집 같은 곳이다. 애슈필드가 훨씬 크지만. 아버지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열한 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애거서 크리스티 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있을 때는 집에서 모임을 자주 가졌다. 그때 여러 사람이 집에 찾아왔다. 거기에는 작가도 있었다. 애슈필드를 팔아야 하나 했는데 팔지 않았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학교를 다니고 피아노와 성악을 배웠다. 성악가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했는데 그쪽은 취미로만 남았다. 책은 늘 많이 읽었지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는 잘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애거서 크리스티는 열일곱 살에 사교계에 나갔다. 영국은 이런 게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과는 약혼도 했는데 결혼은 아치 크리스티와 했다. 제1차 세계전쟁이 일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전쟁 때문에 결혼해야겠다고 한 건 아닌지. 언제인지 몰라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매지 언니한테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말했다.

 

전쟁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간호사 일을 했다. 그러다 약을 조제하는 곳으로 옮겼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조제실에서 일하다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 처음 책을 내기로 한 곳에서는 돈을 아주 조금 주고 앞으로 다섯권을 더 쓰기로 계약했다. 이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쓰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딸 로잘린드를 낳는다. 어머니가 집(애슈필드)을 지키기 힘들어하자 남편 아치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소설을 써서 어머니를 도와주면 어떠냐고 했다. 그런 말 때문이었는지 에르퀼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대위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부모가 아이한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빅토리아 후기 영국은 이런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 아이는 거의 유모가 키웠다.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기는 하다. 딸은 유모와 언니, 어머니한테 맡겨두고 애거서 크리스티는 남편 일로 세계를 돌았다. 세계를 돌고 와서 자신이 전문작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아치는 골프에 빠졌다. 집을 샀는데 그 집은 액운이 끼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그 집 탓이었을까. 애거서 크리스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러고서 하는 말, “오래전에 말했잖아. 나는 아프거나 불행한 사람은 질색이라고. 나까지 아주 엉망이 돼.” (520쪽) 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남편과 헤어진다. 그리고 혼자 바그다드로 떠난다.

 

남편과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남편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조금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결정을 내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바그다드에 갔을 때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생각은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해서 편하게 대했다. 맥스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결혼하자도 했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이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결국 결혼했다. 로잘린드도 엄마(애거서 크리스티)가 맥스와 결혼하면 괜찮겠다고 했다. 전쟁이 또 일어났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때 글을 많이 썼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무척 무섭지 않았을까. 그런 일을 담담하게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다르게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형편에서든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전쟁도 잘 이겨낸 것은 아닌지. 애거서 크리스티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 사는 게 즐겁다고도 했다. 배우고 싶은 점이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먼저 걱정할 때가 더 많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끝없이 꿈꾸기를 즐긴다는 말도 좋다.

 

살면서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가 오래전 기억을 불러내는 일은 조금 힘들었겠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시간 즐거웠을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좋았던 일을 더 잘 기억한다고 했다. 나는 좋은 때도 안 좋은 때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할 만한 일이 거의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좀 쓸쓸하다. 이 책을 보다보니 이것을 영화로 만든다거나 소설로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추리소설과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이름으로 쓴 소설 언젠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도 시간이 가면 다른 책을 먼저 볼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 보기는 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왜 못 봤을까. 워낙 많아서 무엇을 먼저 보면 좋을지 몰라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희곡도 썼다. 다른 사람이 각색해서 한 연극이 잘 안 되어서 자신이 각색했다. 이 자서전을 다 쓴 뒤에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쥐덫》은 오랫동안 공연했고, 1971년에는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976년 1월 12일 여든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자서전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죽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괜찮았는데, 이 책을 본 마지막 날에는 기분이 안 좋았다. 책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쓰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지켜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슬프게 살지 않았다 해도 나도 모르게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보면서 나한테 올 앞날을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고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겠다.

 

 

 

*더하는 말

 

애거서 크리스티 언니 매지는 이야기를 아주 잘했다. 별일 아닌 것도 매지가 말하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 지어냈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는 말을 그렇게 잘하지 못했다. 글 쓰는 게 더 나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학교를 옮기라고 해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그런 일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를 옮기면 싫을 것 같은데 애거서 크리스티는 무슨 일이든 아주 놀라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머니를 잘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 첫번째 남편하고는 헤어졌지만 두번째 남편하고는 오래 잘 산 것 같다. 두번째 남편 때문에 고고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지금까지 실제 살았던 사람 이야기(자서전, 전기, 평전)를 자주 만나보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 읽을 때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끝에 가서는 우울해진다. 그 사람의 죽음이 가까워져서일까. 책 한권을 보는 것은 늘 죽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는데 다른 책을 볼 때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다. 내용 때문에 우울할 때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책으로 만나서 기쁘지만 마지막에는 헤어져야 해서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이런 마음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또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긴 사람이나 작가가 이 세상을 살다간 이야기 보고 싶다. 다음에는 누구를 만날까.

 

 

 

희선

 

 

 

 

☆―

 

나는 삶을 사랑한다.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질 듯 절망하고, 날카로운 비참함에 온몸이 꿰이고, 슬픔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임을 확신한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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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6-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스티 책을 어릴 때 많이 읽었습니다. 아직도 몇 권 가지고 있기도 하구요. 빨간색으로 나온 작은 문고판 소설들..그런데 꽤 읽기는 했는데,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희선님 덕분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나 복잡한 삶을 살았군요. 저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거의 집에서 글만 쓰는 타입인 줄 알았습니다(아마도 '미스 마플'을 연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서전이나 평전이 끝에 가서 우울해진다고 하셨는데, 그런 것을 생각해보니 포와로를 죽였던 '커튼'같은 작품이 생각나는군요. 어렸을 때는 왜 죽이지 하고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와서 보니 그만큼 애거서 크리스티가 포와로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갈 일이 있는 토요일인데,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니 별로 나가고 싶지가 않군요. 즐거운 주말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희선 2014-06-29 02:44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애거서 크리스티나 다른 추리소설 읽었다고 하면, 나는 어릴 때 뭐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곳에 책이 거의 없어서 그랬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했잖아요 혼자 상상의 세계를 만든 것도 재미있죠 어쩌면 어릴 때는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른이 그러면 안 돼 할지도... 애거서 크리스티도 다른 사람은 별말 안 했는데 유모가 다른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하는 걸 듣고 유모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서전, 평전 별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렇더군요 두꺼운 책을 다 봐가는 아쉬움인지, 긴 삶을 겨우 책 한권으로 보는 것 때문인지... 어쩌면 '이 사람은 이렇게 살다 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일지도 모르죠 사는 것 자체에 슬픔을 느끼는 것인지도...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든 포와로가 죽는군요 그 사람을 좋아한 사람은 죽어서 참 아쉽겠습니다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애거서 크리스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주가 빨리 갑니다 유월도 다 가고 있습니다 비가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갑자기 많이 오면 안 좋으니까요 남은 주말, 남은 유월 잘 보내세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