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
은유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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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작가가 되고 책도 나오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다행하게도 지금은 인터넷이 있고 글을 쓸 곳이 있잖아요. 제가 쓴 글을 책으로 내 봤자 잘 안 팔리고 나무만 버릴 겁니다. 혼자 써도 괜찮지만, 그런 건 아무렇게나 쓰고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혼자 보려고 글을 써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도 보는 데 써야 글이 나아지기도 하겠지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게 좋아요. 이렇게 말해도 혼자 보는 데 아무렇게나 쓰기도 합니다. 그건 글이라기보다 거의 낙서예요. 그런 것도 잘 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네요.


 은유 작가 책 다는 아니지만 여러 권 봤군요. 지금도 글쓰기 수업을 하는가 봅니다. 이 책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2020년 12월에서 2021년 12월까지 네이버에 연재된 오디오 클립을 고쳐쓴 거예요. 마흔여덟가지 물음에 답합니다. 저는 늘 글을 쓰기는 하지만 잘 쓰지 못하네요. 잘 쓰려면 책을 잘 봐야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글을 잘 쓰려면 애써야 합니다. 뭐든 저절로 되지는 않지요. 뭐든 잘 외우고 머릿속에 빨리 집어넣고 자신이 보고 들은 걸 바로 아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고 게으르기도 합니다. 이런 부끄러운 말을. 꼭 부지런해야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보고 이 생각 저 생각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을러도 글을 쓸 때는 게으름 피우면 안 되겠습니다.


 앞에서 제가 늘 글을 쓴다고 했군요. 그런 말을 하다니. 제가 쓰는 건 거의 책 읽은 감상입니다. 책을 읽고 거기에서 뭔가 글감을 찾고 쓴다면 훨씬 좋겠지만 그러지는 못합니다. 책을 보고 아무것도 안 쓰면 안 된다고 여기고 쓰는군요. 글쓰기는 중독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다 마음먹고 잘 쓰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저는 안 쓰면 아예 안 쓸 것 같아서 책을 보면 책 내용 정리든 감상이든 쓰는 겁니다. 이것도 책을 읽을 때부터 하지는 않았어요. 써야겠다 하고 쓰려고 했을 때는 쓸 게 떠오르지 않아서 별로 못 썼습니다. 책 읽고 쓰는 것도 자꾸 써야 조금이라도 늡니다. 저는 조금씩 늘기를 바라고 쓰는가 봅니다. 책을 여러 가지 봐야 할 텐데.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어떤 책이든 잘 보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잘 보려고 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로 보려고 해야겠네요. 그런 거 저도 잘 못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잘 들어라 하더군요. 여기에도 그 말 있습니다. 저는 듣는 거 좋아합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책을 봅니다. 책을 보는 것도 듣는 것과 다르지 않지요. 이런저런 사람 말을 잘 들어야겠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맞기도 하지만 그게 아닐 때가 있기도 하지요.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거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힘이 드는 거죠. 그걸 쓰는 건 더 힘듭니다. 생각한 걸 그대로 글로 나타내기 어렵잖아요. 글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알게 써야 합니다. 저도 그걸 자꾸 잊어버리고 저만 알게 쓸 때 많아요.


 글을 쓰고 싶어도 쓸 게 없을 때가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한해 동안 걸은 다음에 글을 써 보라고 했어요. 걸은 다음 글쓰기. 그 말 보고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같은 시간은 아니어도 저는 날마다 하는 게 있어요. 걷기 안 해도 그냥 써요. 예전에 걷고 글을 써 볼까 하고 해 봤는데 잘 안 됐습니다. 걷다 보면 아주 가끔 쓸 게 떠오르기는 해요. 그냥 걷는 게 아니고 다른 일로 나가면서 걸어서 안 좋은 걸지도. 날마다는 어렵겠지만 걸으려고 해야겠습니다. 밖으로 나가 이것저것 보다보면 늘 보던 것도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죠. 자연은 늘 달라지기는 합니다. 조금씩 바뀌어서 그때는 잘 모르고 많이 바뀌면 보이지요. 그럴 때 신기합니다.


 책 읽는 사람은 적은데 글을 쓰려는 사람은 많다고 합니다. 저도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글쓰기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잘 읽은 사람은 잘 쓰기는 합니다. 자신이 쓰는 것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글도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보는 것도 있군요. 저도 여러 가지 잘 보려고 해야겠습니다.




희선





☆―


 글쓰기 수업 차시가 더해지면서 학인들이 자연스럽게 깨달아요. 잘 쓰면 잘 쓰는 대로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나눌 게 있고 배울 게 있다는 걸요. 그리고 글쓰기 능력을 한번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 누구나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요. 같은 사람이 한번은 잘 썼지만 다음번엔 조금 부족한 글을 써 낼 수도 있고요. 가장 큰 배움은 이거죠. 사는 일을 남과 경쟁할 수 없듯이 쓰는 일에도 경쟁이 크게 소용없다는 깨달음입니다.  (60쪽)



 자기 호흡과 리듬으로 쓰면 그 장단에 흥이 난 독자가 모일 테니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 보면 어떨까요?  (98쪽)



 쓸수록 옹졸해지고 피폐해지기보다 품이 넓어지고 진실해진다면 우리 글쓰기는 삶의 선물이 되겠죠. 칠레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도 말했습니다. “제가 악마를 쫓아내고 천사를 맞이하고 저 자신을 탐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글쓰기입니다.”  (288쪽~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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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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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릅니다. 거의 책에서 보고 그런가 보다 합니다. 아이한테 잘해주지 않는 부모를 보면 어떻게 엄마가 아빠가 그럴까 하는군요. 이건 부모는 다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거겠습니다.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세상 모든 부모가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은 아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부모가 된다고 어른이 되지도 않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었지만, 아이보다 아이 같은 면도 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기도 하네요. 그건 부모는 아닌 듯해요. 제가 어릴 때 부모 사랑을 듬뿍 받았다면 달랐을지. 그랬다면 그저 저 자신만으로 괜찮았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책 미나토 가나에 소설 《모성》을 보니 꼭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책 제목이 ‘모성’이지만, 저는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생각했어요. 식구도. 여기 나온 ‘나(어머니)’는 부모한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인데도, 언제나 어머니 사랑을 바라더군요. ‘나’는 뭐든 자기 엄마 마음에 들려고 했어요. 그건 어릴 때 하는 걸지도 모를 텐데. ‘나’는 나이는 들었지만, 정신은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니었을지. ‘나’는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하는 것도 엄마가 좋아해서 했어요. 아이를 낳는 것도. 그렇게 엄마만을 기쁘게 해주려고 하다니. ‘나’의 엄마는 왜 그런 ‘나’를 그대로 두었을지. ‘나’의 엄마는 ‘나’가 어떤지 알았을 것 같은데. 잘 몰랐을까요. 엄마가 딸을 잘 몰라서 태풍이 오고 산사태가 나고 집에 불이 났을 때 그런 결정을 한 거겠지요. 자기 딸도 어머니일 거다 믿었던 걸지도.


 소설이니 여기에서 일어난 일을 바꾸지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했다면 더 나았을 텐데 싶기도 해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여기에서 일어난 것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은 죽더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기도 하니. 미나토 가나에 다른 소설에 그런 거 있었군요. 선생님이었는지 누군가 아이를 살리고 죽었어요. ‘나’의 남편 타도코로 사토시는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고는 아버지가 때리지 않았지만, 왜 아버지는 아들을 그렇게 때린 건지. 자신은 사랑받고 자란 것 같은데. 사랑받고 자라면 다른 사람 때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맞지는 않았다 해도 아버지는 어릴 때 어떤 상처를 받았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타도로코 사토시는 폭력은 쓰지 않았어요.


 ‘나’의 엄마가 죽고 ‘나’와 타도코로와 딸은 시집에 들어가 살아요. 남편은 ‘나’가 시어머니한테 혼나고 힘든 일을 해도 별 말 안 해요. 딸은 엄마인 ‘나’한테 사랑받으려고 합니다. 외할머니가 죽고 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어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언덕 위 집에서 네식구는 즐겁게 살았을지도 모를 텐데. 그건 받아들여야겠지요. ‘나’와 딸은 마음이 엇갈린 것 같기도 해요. ‘나’가 엄마이기보다 딸이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딸을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나름대로 딸을 생각했는데, 딸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편이고 아빠인 타도코로 사토시가 두 사람을 이어주려 했다면 좋았을 텐데, 타도코로는 자기 상처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안 봤습니다. ‘나’가 제대로 말을 안 하면 딸이라도 말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군요. 말하기 쉬운 건 아니네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나’가 엄마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딸은 예전에 외할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어요. ‘나’는 딸을 꽉 안은 거였는데, 딸은 ‘나’가 자기 목을 졸랐다고 여겼더군요. 그렇게 다르게 여기다니. 딸이 죽으려는 걸 친할머니가 막았어요. ‘나’는 그제서야 딸 이름을 부릅니다. ‘나’도 그렇고 딸 이름도 앞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나’가 딸 이름을 부른 건 ‘나’가 자신을 한 아이 엄마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어요. ‘나’가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딸은 조금 쓸쓸했을지도. ‘나’와 딸은 자기들은 조건없이 사랑해준 사람을 잃었는데 그건 별로 말하지 않았어요. 그 슬픔을 함께 나눴다면 좋았을걸. ‘나’는 아픈 시어머니를 돌봤어요. 치매로 ‘나’를 며느리가 아닌 딸로 여겼어요. 딸이 목숨을 끊으려고 한 날 사라졌던, ‘나’의 남편은 열다섯해가 지나고 돌아왔습니다.


 어떤 사람도 아이를 낳는다고 저절로 부모가 되지는 않겠네요. 부모가 되려고 하고 아이와 함께 자라야겠습니다. 그거 쉽지 않겠군요. 부모여도 마음속엔 어린이가 있기도 하겠습니다. 그 아이는 부모 자신이 달래줘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희선





☆―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모두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예요. 모성이란 게 모든 여자한테 있는 건 아니고, 그것 없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죠.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 모성이 생겨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반대로 모성을 갖고 있었는데도 누군가의 딸로 남고 싶다, 보호받는 처지로 남고 싶다고 크게 바라고 무의식으로 내면의 모성을 없애는 여자도 있는 거죠.”  (247쪽)



 시간은 흘러간다. 흘러가서 엄마한테 가진 마음도 바뀌어 간다. 그래도 사랑을 바라는 게 딸이고, 자신이 바라던 것을 자식한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모성 아닐까.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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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5-14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나토 가나에 신작이군요. 저는 이 분 작품 진짜 뭐랄까? 깊은 곳에서 배어나오는 섬뜻함. 그런게 좀 있더라구요. 훌륭한 작가라는거겠죠 희선님 리뷰 읽으니 이번 책도 좀 그런 느낌일 것 같네요. 쟁여놨다 읽어야겠어요.

희선 2024-05-17 23:2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예전에 한번 나오고 이건 개정판이에요 예전에 못 봐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만났습니다 개정판은 거의 열해쯤 뒤에 나온다고 하던데, 이게 그러네요 어떤 건 개정판 열해 전에 나오기도 해요 제목 바꿔서,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그러는 거 봤군요 처음 보는 사람은 새로운 이야기겠지요 미나토 가나에 소설은 처음에 나온 게 아주 놀라워서 그런지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는 이런 소설 별로 안 만난 때여서 우연히 봤군요 《고백》... 저는 그 책 나오고 한해 지나서 봤군요 미나토 가나에 소설 따듯한 이야기도 조금 있어요 다 본 건 아니지만...


희선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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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엔 코로나19로 세계가 멈추었지. 그렇게 멈추었을 때 괜찮았던 것도 있었지만, 문제도 많이 있었어. 어떻게 하면 나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공장이 멈추고 하늘 길이 막혔을 때 자연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몇해 지나고는 기후변화를 더 많이 느끼게 됐어. 한해 한해 다르군. 인류는 망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인류가 망해가는 가운데 살아 남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사람이 살아 남을지. 어린이가 살아 남길. 그나마 세상 때가 덜 묻었잖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세상 때가 덜 묻은 아이가 더 일찍 죽기도 하는군. 어쩐지 슬픈 일이야. 코로나19 때도 아이들이 더 힘들었겠어.


 오랜만에 시집을 만났어.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이야. 김선우 시인은 2020년 봄에 몸이 아팠던가 봐. 몸이 나아지기까지 한해나 걸리다니. 나아진 게 다행이군. 2020년은 코로나19로 세상이 어두웠던 때군. 어두웠다고 하다니. 그때 처음엔 마스크가 답답했지만, 끼다보니 익숙해졌지. 마스크는 자신뿐 아니라 남을 위한 거기도 했군. 이 시집 3부엔 <마스크에 쓴 시 1>에서 <마스크에 쓴 시 14>까지 담겨있어. 이 시 앞에도 지구를 망친 인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군. 인류가 망하지 않으려면 겨울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겨울의 시간은 추운 것만 말하는 게 아니겠지. 덜 움직이는 거 아닐지.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목숨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의 강인함을


내가 원하나이다


-<무신론의 기도>, (34쪽)




구름 많은 날 당신의 울음이 가깝다


울다 깬 눈으로 구름을 만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구 어디선가

죄 없이 아이들이 죽고

죄 없이 동물들이 사라지고

죄 없이 숲이 벌목되고

죄 없이 작은 것들의 노래가 짓이겨져 파묻힌다


착취한 것들은 만들어진 자본의 폭식성─

멈출 줄 모른다 착취가 동력이므로


한때 아름다웠던 별

어디에 무릎을 꿇어야 죄를 덜 수 있나?

불과 이백년 만에 이토록 뜨거워진

인간이 만든 쓰레기고 가득해져버린 여기 어디에


지구라는 크라잉 룸

당신 안에서 우느라 당신의 울음을 미처 듣지 못했다


-<지구라는 크라잉 룸>, (37쪽)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하지. 난 쓸모없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나도 쓸모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김선우 시인이 쓴 것처럼 목숨을 다해 쓸모없는 걸 좋아하지는 못할 것 같아. 세상에 쓸모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 ‘자본교’ 라는 말도 봤어. 이 말 어쩐지 웃기면서도 슬프네. 그것 때문에 지구는 더 안 좋아졌잖아. 지구가 울어도 그걸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아. 이젠 좀 귀 기울여 들었으면 해. 지구가 우는 소리.




 도끼도 톱도 필요 없다. 나무를 살해하는 간단한 방법은 봄여름에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는 것. 나뭇잎들의 노동이 멈추면 나무는 죽는다. 대대손손 뿌리만 파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뿌리 숭배자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한 계절만 겪어보면 알게 된다. 햇빛과 바람 속에 온몸으로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역동, 한잎 한잎 저마다 분투해 만들어낸 양분을 기꺼이 모아준 나뭇잎들이 나무를 살린다는 것. 나뭇잎들의 코뮌이 즐거운 노동으로 생기 넘칠 때 나무가 건강해진다는 것. 안녕, 안녕, 인사하는 나뭇잎들의 독자적인 팔랑거림, 한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할 때조차 저마다 다른 자세와 기술, 햇빛과 물만으로 양분을 만들어내는 천지창조의 노동자들,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이 만든 것을 아낌 없이 나누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여유와 자유. 뿌리 깊은 나무의 뿌리를 지키려고 태어나는 나뭇잎은 없다. 가계(家系)의 문장(紋章)에 집착 없는 나뭇잎들이야말로 한그루의 세계를 유지하는 진짜 힘이라는 것.


-<이제 나뭇잎 숭배자가 되어볼까?>, (57쪽)




 앞에 옮긴 시를 보니 나무에 나뭇잎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가 뿌리를 잘 내려야 줄기도 뻗고 나뭇잎을 틔우기는 하겠지만. 나무를 죽이는 쉬운 방법 생각하니 잔인하네. 봄여름에 그 많은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면 나무는 얼마나 아플까. 아프기만 하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 말라버리겠지. 이 나뭇잎이 세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 같은 느낌도 들었어. 시인은 그런 거 생각했을지. 그저 나무만 생각해도 괜찮기는 할 거야.




 멈춤, 지금 멈춤, 더 오래 멈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전염병의 시대가 온다, 곧 다시 온다고 했다.  (<마스크에 쓴 시 7, 거울이 말하기를>에서, 69쪽)




 세상이 잠시 멈췄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 달려가려는 것 같아. 코로나19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남극 북극 빙하나 얼음이 녹고 오래전 바이러스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런 거 생각하면 걱정스러워. 인류는 전쟁 아니면 바이러스로 사라질지도 몰라. 이런 생각해도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는군. 많이 만들고 많이 쓰던 것에서 덜 만들고 덜 쓰는 걸로 바꿔가면 나을지. 사람이 사는 데 있어야 할 건 그리 많지 않은데. 지구를 생각하고 뭘 해야 할지보다 뭘 안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난 이번에 김선우 시인 시집 처음 봤어. 이름은 알았는데 시집은 못 봤어. 소설 봤지만, 그거 읽고 잘 못 썼던 것 같아. 여긴 담긴 시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따듯한 마음이 느껴져. 제목이 ‘내 따스한 유령들’이어선가. 이건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르겠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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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 가장 최근에 중고로 구입한 책이 이 시집인데 반갑네요!!!! ㅋㅋㅋㅋ이거랑 오세영 시선집이랑 이거저거요거저거(적고 보니 많아서 하나 겹칠 확률이 높아졌겠네요 ㅋㅋㅋ)

희선 2024-05-14 00:52   좋아요 1 | URL
이 시집을 사셨군요 김선우 책은 예전에 소설 하나만 봤군요 시집은 이게 처음이고... 시와 소설 다 쓰다니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는 하네요 어쩐지 그런 사람 부럽네요


희선

서니데이 2024-05-1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아침부터 날씨가 많이 흐리더니 비가 꽤 많이 올 것 같아요.
바람도 불고요.
계속 따뜻한 날만 계속 되어서인지, 오늘은 조금 더 서늘한 느낌이 듭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4-05-14 00:55   좋아요 1 | URL
토요일 저녁에 비 오고 조금 시원해졌군요 그저께보다 어제 좀 더 더웠어요 오늘도 그럴 것 같네요 비가 온다고 하는데, 또 비라니... 이번엔 그렇게 많이 오지 않고 위쪽에 올 듯합니다

이번주는 또 쉬는 날이 있네요 스승의 날이면서 부처님오신날이네요 오늘만 지나면... 서니데이 님 오늘 즐겁게 지내세요


희선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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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상이 조금 멈췄지만, 이제는 다시 움직인다. 지구를 더 나빠지게 하면 안 될 텐데,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세상은 망해가는데 그게 빨리 오지 않게 하려고 해야지. 지구가 괜찮아야 사람도 살 텐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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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5-12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시국때는 그 시기가 언제 끝날지 암담했었는데 이제는 또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네요.
어쨌든 모두가 다 잘 견뎌 다행이었어요^^

희선 2024-05-14 00:42   좋아요 1 | URL
그때는 정말 그 시간이 지나가기는 할까 했는데, 이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군요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니...


희선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 텔레포터
정해연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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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 맞는 말이야. 사람한테는 여러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알아주는 사람. 그건 남이어야 할지 자기 자신이어야 할지. 단 한 사람이 자신이기만 해도 괜찮겠지만, 난 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건 욕심 많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단 한 사람 얻기는 쉽지 않아. 살았을 때 만날지 못 만날지. 많은 사람이 만나지 못하고 살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나만 없는. 없으면 어떤가 하면서도 여전히 바라는군. 이러면 나도 나를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여기 나오는 은아를 보니 내가 생각나기도 했어. 나도 어릴 때 친구 잘 사귀지 못했어. 다행이라면 은아처럼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지는 않았어. 내가 다닌 학교 아이들은 남을 괴롭히고 즐거워하지 않았던가 봐. 정말 다행이지. 은아한테는 언니 은진이 있었어. 은진이 유튜버로 돈을 벌자 엄마 아빠가 은진이한테 더 잘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건 은아가 바라본 거였군. 은아 친구는 은진이기도 했어. 어릴 때는 함께 해도 학교에 다니게 되면 다르게 살겠지. 자기 생활을 해야 하니. 식구도 그런데 친구라고 다르지 않겠어. 친구여도 뭐든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지.


 학교에 교생 선생님이 오고 이름이 은아와 같은 이은아였어. 은아는 교생 선생님이 멋지게 보이기는 해도 그뿐이었는데, 교생 선생님은 은아한테 잘해주는 거야. 그런 거 아이들이 보면 안 좋아할 텐데. 실제 교생 선생님 때문에 은아는 다른 아이들한테 맞기도 했어. 교생 선생님은 은아한테 자신은 앞날에서 온 은아다 말해. 시간여행 같은 데서는 자신이 자신을 만나면 안 된다고도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하면서 봤어. 교생 선생님은 은아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을 생각하기를 바랐어.


 앞날에서 온 자신이 지금보다 멋지면 기분 좋겠어. 은아는 자신을 바꾸려 해. 은아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나타난 일도 한 몫했어. 그 친구를 만나고 은아는 다른 아이하고도 자연스럽게 말해. 그렇게 좋은 일만 이어지면 좋을 텐데 삶은 그러지 않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건 교생 선생님이 슬픈 얼굴일 때 알기는 했어. 은아가 슬픈 일을 겪지만 그때를 잘 견뎌. 시간이 흐르고 아주 중요한 순간에 은아는 자신을 구하고 언니 은진도 구해. 이런 이야기 진짜 일어나기도 하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내가 앞에서 나도 어릴 때 친구 잘 사귀지 못했다고 했지. 그건 늘 그랬어. 아는 사람도 처음엔 모르는 사람이지만, 난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먼저 말하지 못했어.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아. 누군가 나한테 길을 물어보면 알려주기는 하지만, 내가 길을 모를 땐 남한테 물어보지 못해. 물어보지 못하고 헤매다 시간이 걸려서 찾아내기도 하는군. 나라고 말 잘 못하는 내가 답답하지 않았겠어. 잠깐 바뀌려 한 적도 있어. 그건 잠시였고 그렇게 좋지도 않았어. 난 그냥 이대로 살래가 됐어. 사람은 꼭 바뀌어야 할까.


 자신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바꾸고 그대로 살고 싶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겠지. 마음은 바꾸는 게 좋겠지. 자신을 조금 좋아하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받아들이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는 것도 중요해. 난 여전히 눈치 보는 것 같기도 해. 다른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거든. 내가 바로 바뀌지 않겠지만, 나도 나를 좋아하려고 해. 좀 어렵지만.




희선





☆―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겠다고 너를 힘들게 하지 마. 너를 지켜줄 가장 첫번째 사람은 너야. 네가 힘든 건 힘들다고 하고 화가 나는 건 화가 난다고 말해. 그래도 돼. 모든 걸 널 위주로 생각해. 너만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야.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넌 뭘 하고 싶은지 늘 너한테 묻고 널 위주로 행동해. 넌 당당한 한 사람이야. 한 존재야.”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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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06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네이버 블로그 소개 문구가 구원은 셀프. 였는데요. 어느덧 내가 나를 구하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정말 누가 내 대신 나좀 구해줬으면…저도 그런 날이 오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책 못 읽고 공부하다 미쳐가는 반놈 올림.

희선 2024-05-11 03:47   좋아요 1 | URL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생각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사람도 조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자신이 자신을 먼저 좋아해야 할 텐데, 이것도 어려운 일이고...


희선

반유행열반인 2024-05-11 08:09   좋아요 1 | URL
제가 생각하기에도 제게는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남들은 잘 좋아하던데 왜 ㅋㅋㅋ

희선 2024-05-14 00:40   좋아요 1 | URL
저도 다르지 않아요 다른 사람은 잘 하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닐지도 모르죠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할 것 같아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