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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다독 그리고 속독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막상 내 마음에 남는 책이 많은 편은 아니다. 누군가 내게 감명깊게 읽은 책을 물어보면, 최근 한달간 읽은 책이름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멍하니 있기도 한다. 기를 쓰고 서평을 남겨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건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을 애써 기억하려는,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독서 습관은 1달에 20권에 육박하는 독서량에 묻혀 그리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방법'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코웃음을 치며 이야기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 하는 '숫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얄팍한 자랑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저자는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넘쳐 나는 정보 속에서 읽어야 할 것도, 읽고 싶은 것도 늘어만 간다. 그런 상황에서 속독과 다독은 결국 우리에게 남은 '어쩔 수없는 선택'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읽는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되게 만들고, 최고로 즐기기 위해서는 정독이 필수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다독과 속독에 매진하고 있는 나에게는 꽤나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만 끊임없이 하였으니... 책을 정독하면 지금 당장이 아니라 5년 뒤, 10년 뒤의 변화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내가 요즘 많이 읽고 있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정말 줄거리만 따라가면 몰입해서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소설은 수없이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오해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깨닫게 되는 것, 그래서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책은 '왜'라는 의문을 갖자, 앞 페이지로 돌아가서 확인하자와 같은 비교적 익숙한 지침부터, 조사, 조동사에 주의하라, 소리내어 읽지 않는다, 남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읽는다 등의 새로운 지침도 제시한다. 사실 말처럼 쉬운 지침들은 아니다.
나는 책을 그저 즐기면서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회사에 오면서 독서는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 되다시피 했고, 그러한 취미생활이 딱딱하고 머리 아파지는 게 싫어,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호했다. 하지만, 너무 나의 독서 성향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에서 무언가 신호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던 책 읽는 방법에 대한 책을 손에 들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사실, 지금도 나는 책 읽는 방법에 어떠한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나, 뒷부분의 소설을 예시로 제시한 부분에서는 으앗! 이렇게 읽으면 소설에 몰입이 잘 되지 않는걸- 이라고 생각해버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독서 역시 넓고 깊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책을 읽고 나의 독서 습관이 180도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독서 습관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느껴질 때, 새롭게 시작할 독서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었다.
이 책은 분명 이 세상 가장 최고의 독서 방법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독서습관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하지만, 무척 훌륭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 읽게 될 다음 소설은 분명 좀 더 즐거우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