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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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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Cormac McCarthy, The Road)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저자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 내게 매우 고무적이었다. 즉,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책을 펴서 반쯤 넘긴 후에 내용을 읽었을 때, 아빠와 아들이 함께 매우 위험한 곳에서 피난하는 내용인가 생각했다. 제목의 로드에서 미루어 짐작하니 ‘아 피난길을 뜻하는 것이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드디어 320여 페이지의 역작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저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영화 속 모습처럼 승자도 패자도 없는 뭔가 허탈하고 ‘모든 인생사 뭐 다 그런 것이지’ 식이 되려나 하면서 한 장 두 장 금세 읽게 되었다. 다른 여느 작가와 달리 장막 구분이 없고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여백도 없다. 꽤나 특이하다. 그런데도 읽기는 참 수월했다. 문장이 짧았고, 긴박감과 궁금함에 연신 집중하게 만들었다.




글에는 시간적 순서가 없다. 시점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다. 대화인지 독백인지 속마음인지도 구분이 없다. 주인공 남자가 한 말인지 남자의 아들인 소년이 한 말인지 구분도 없다. 그저 악몽 속에서 허우적대는 주인공의 의식 흐름에 맡겨진 것 같다. 소설은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영화로 만들자면 너무 참혹하다. 집중이 잘되는 글이지만 아침부터 읽기에는 너무 슬프다. 감정 이입도 잘된다. 꼭 내 아내와 아이와 나 셋이서 3차 대전인지 대지진인지 이후에 살아남아 막연한 희망의 장소 해안으로 향하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 계속 그려진다. 하늘의 해는 뭔가에 덮여 항상 우중충하고 땅은 모두 재로 덮여있다. 길에는 온통 문제의 그 사고에 직격탄을 맞고 죽어있는 시체들과 녹아내린 모든 것들. 물도 재로 더럽혀져 있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가장 큰 공포이다. 빈 총이라도 쏘는 시늉을 해야 지나칠 수 있다. 먹을 것이라고는 빈 집을 털어 겨우 찾아낸 곡식의 낫알 몇 개와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녹쓴 캔. 날씨는 춥고 연료는 없다. 설상 있더라도 불을 여유있게 피울 수 없다. 알 수 없는 적들이 노릴지도, 내일 닥칠 비와 바람을 생각하면 아껴야 돼서... 정말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어 이런 상황이 왔는지. 하지만, 저자는 거기에 대해 전혀 이야기가 없다. 오히려 이런 끔직한 상황에서 시간이 어떻게 가고, 뭣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 나아간다. 아내는 얼마전 자살했다. 총알 3개중 한 개를 쓰고 죽었다. 어차피 좋아지지 않을 상황에 음식도 물도 곧 사라지고 살아남아 남의 밥밖에 못 될 상황에서 그녀는 그렇게 선택했다. 남은 총알 2개. 너무도 의미심장하다. 남자와 소년. 남자는 늘 소년에게 이런다. ‘우리는 지금 불을 옮기는 중이야’ ‘불이 어딨어요’ ‘네 안에 있잖니’ 눈과 비를 해치고 그들이 가는 길에는 3군데 정도의 피난처가 있었다. 안전을 약속할 수 없지만 깨끗한 물과 깨끗한 옷, 음식이 있는 그런 공간이 이동 중 세번 만난다. 나라면?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다가 약해진 의지력에 차츰 다가오는 끝을 생각하면 나도 그곳에 오래 있진 못할 것이다. 남자는 한동안 체력이 떨어지더니 피를 토하는 일이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길을 가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로 인해 다리에 10cm 정도의 상처가 났다. 파상풍이 걸린 건 아닐까? 피를 토하니 폐결핵이나 심한 폐렴인가? 죽어가는 남자는 소년에게 ‘불을 옮겨’라고 말한다. 소년은 한참을 울다가 행운과 마주쳤다.




책을 읽는 중에 짤막한 정리를 해보았다.



길은 있는 걸까?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길을 만들어야 하나?

과연 그 길의 끝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즉, 목적지는?






책의 끝에 《옮긴이의 말》이 나온다. 저자의 연대를 잠시 이야기 하면서 이 소설과 저자의 인생을 비교한다. 한 가지만 잠시 소개해 본다. 저자의 나이 70세에 늦게 가지 그의 아들은 현재 10살 정도. 소설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소년의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소설 속에 『콜라캔』을 처음 본 소년의 모습이 나온다. 이 또한 저자의 인생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아, 첫 페이지에서 의식 없이 지나친 사실이 있다. 외국 작가들이 보통 작품의 서두에 친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죽은 친지에 대한 그림움을 표현하는데, 저자도 그랬다.




이 책을 존 프랜시스 매카시에게 바친다.




아들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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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 상
A.J.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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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읽은 책중에서 가장 독특한 책]




서점에서 처음 이책을 만났을 때, 제목과 표지의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스타벅스 톨사이즈를 들고 고대 히브리인의 복장을 하고 신발은 분명 히브리인의 분위기지만 어딜 보나 현대식 샌들인데, 옆에는 어린양까지 한 마리 데리고 있는 모습이 코믹물은 아닐까 했다. 적어도 코믹물이 아니라면 꽤나 기이한 성격의 작가를 만날 기회라고 생각했다. 표지 뒷면의 저자 소개부에 「에스콰이어」지의 편집자라는 말에서 꽤 잘나가는 패션 아티스트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여하튼 이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즐거운 시간의 시작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저자가 꽤나 독특하고 재기 발랄하긴 했지만, 신앙과 글을 쓰는 의도⋅목적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단 생각이 든다.




앞으로 저자의 아들 재스퍼처럼 저자를 AJ라고 불러본다.




AJ는 다음과 같이 3가지 목적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종교에 대한 나의 무지'가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것이 싫었다.

2.『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를 이을 새로운 지적 탐험서를 만들고 싶었다.

3.자기 내부에 혹시라도 있을 지도 모를 신비로운 면을 발견하고 싶었다.




여기서 프로젝트란 책의 제목과 같이 1년간(실제 381일) 비교적 객관성을 갖고 성경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그런 동안 AJ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즉, 1년치 일기를 2권의 책으로 공개한 것이다.




상(上)권에서는 프로젝트 기간에 사용할 성경책을 선별하는 준비단계부터 154일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끝에 AJ와 이책을 번역한 이수정 님의 인터뷰 내용이 부록으로 나온다. 하(下)권에서는 155일부터 387일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 책의 끝에는 전체 상하권을 요약정리하는 부분이 나온다.




책 중간중간 AJ의 전작인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가 자주 언급된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오프라인 매체인 책의 가치가 다소 경시되어 브리태니커보다 위키페디아나 네이버 지식인이 통하는 시대에 AJ는 그 두꺼운 브리태니커를 독파하고 평전을 썼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고 기이해 보였다. 그런데 이책을 번역한 이수정 님의 인터뷰 내용에도 나오듯이 전혀 ‘미친듯’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진지해 보인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사실 AJ의 근성이 마구마구 느껴진다.




이 책은 700페이지 분량을 떠나서 내용의 진지함 때문에 읽는 내내 속독에 제동이 걸렸다. 700페이지 분량의 남의 일기를 보다고 가정하면 빠르게 읽히는게 정상일텐데 도통 빨리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이 요소요소에 나오고 그 내용에 의문이나 반대의견이 생기면 이내 다양한 참조 문헌과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로 고증을 더하니 마치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꼭 레포트 쓰는데 이책저책 참조하는 기분이 들었다. 딱 하루 회사 휴가내고 느긋하게 이책만 봤으면 싶었다. 내 인생에서 성경책 빼고 1시간에 겨우 50페이지밖에 못 읽은 책은 이책 뿐이지 싶다.




AJ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하루 5시간 4주면 성경을 한번 보겠다고 계산하여 실행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나도 그런 식으로 계산해 보았다. 즉 100~120시간 동안 시간당 10 페이지씩 본다면 1000~1200 페이지를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J는 결코 4주만에 성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AJ는 성경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면 내용과 관련하여 다른 주해서와 성경등을 참조하기 때문에 의외로 그의 목표 완수는 매우 더디었을 것 같다. 책에는 이와 관련해서는 자세히 언급되진 않는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도전도 못할 브리태니커 사전을 읽고 요약본을 만든 사람이니 그 끈기와 탐구열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했을 것 같다.




이책을 읽는 동안 나의 나이롱 기독교인 모습을 많이 반성 하게 되었다. 항상 자기합리화로 신앙과는 상관없이 살고, 일요일에 겨우 먼지낀 성경책을 펴보는 나로서는 감히 시도도 못할 일을 AJ는 했기 때문이다. AJ도 밝히듯이 그또한 무신론자에 가까웠고 유태인이라고 하지만 유대교에 관심이 없던 그가 한아이의 아버지로서 한사람의 남편으로서 좀더 진지하게 영적인 것에 집중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성경에 ‘죄지은 자에게 돌을 던지라’란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조그마한 조약돌을 모아 주머니에 넣고는 대상 인물의 몸에 살짝대는 식의 행동이 웃음을 주었다. 또한 무선랜 신호를 잡기위해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이내 ‘도적질 하지마라’란 계명이 생각나 돌아서려다 계단을 구르는 모습도 내게 웃음을 주었다.




이런 AJ가 이 작품 이후에 어떤 작품을 쓸지 매우 궁금해지려던 찰나에 옮긴이인 이수정 님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주었다. ‘건강 다지기’란 과제를 통해 진정한 건강이 어떤 것인지 파헤쳐 보려한다고 말이다.




이책을 통해서 AJ란 열정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무엇보다 즐거웠다. 나도 AJ처럼 항상 호기심을 갖고 매사 열정적으로 살아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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