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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 한국사 -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9가지 한국사 쟁점 ㅣ 꿈결 토론 시리즈 5
김태훈 지음, 이창우 그림 / 꿈결 / 2016년 3월
평점 :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한국사
토론 콘서트.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
현재는 이런 행사가 있지만, 시간을 내서 참석하려는 생각은 없다.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투브를 통해서 찾아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서 보는 많은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책은 한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가 책을 읽고 보니 십대들이 보기에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다.
십대도 특히 중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고등학생이라면 바쁜데 이런 책을 볼까 궁금하다.
책의 난이도를 생각해보면 한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적 탐구심이 높은 학생이 대상이 된다.
전체적으로 3부이고, 각각이 다시 3개의 쟁점을 논한다.
1부 고대사, 2부 중세, 3분 근현대가 되는데, 9가지를 다음과 같이 일단 나열해 보겠다.
1. 임나일본부설과 임나의 실존 여부
2. 삼국통일의 역사 의미
3. 발해는 우리나라 역사인가?
4. 고려 원간섭기는 식민 지배시기인가?
5. 임진왜란은 승전인가, 패전인가?
6. 정조는 독살되었나?
7. 조선말 애국계몽운동은 국권 회복에 효과적이었나?
8. 일제 공업화 정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도왔나?
9. 1948년은 대한민국 건국해인가 정부수립해인가?
중년 이상의 어른들도 이러한 쟁점들을 놓고 바른 해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 대부분이 당황하여 제대로 답하기도 어려울 문제들이다.
현재 60대 이상의 분들은 일제 치하 식민사관에 길들어진 부모님들과 선생님들로 인해
더욱 답하기가 어렵다. 역사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오른쪽, 왼쪽으로 시각이 편향되기도 한다.
이 책의 논조는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이라 판단은 독자에게 떠 넘긴다. 십대들에게 매우 난처할 수 있다.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을 주장하는 시점에 다양성을 주장하는 논조와 유사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이들과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후쇼사 역사 교과서의 왜곡을 거부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한다면,
한국도 역사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강요해서는 결코 아니될 것이다.
하지만, 강대국이 그런 식으로 후손들에게 역사관을 심어준다면,
우리나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단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기는 하다.
다만, 다른 나라는 극우화 되어 똘똘 뭉치는데, 우리는 서로 나뉘어 다투는 것이 매우 염려된다.
이런 식으로 수년이 지나면, 분명 우리는 강대국의 역사관에 휘둘리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 또한 편향된 역사관을 심어주어 주변국과 무력 대결을 유발해서도 안되겠다.
임나는 일본식 무덤이 섬진강 주변에 확인되어 그 존재는 인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일본 본토와의 연관성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즉, 일본에서 일부가 한반도로 옮겨와 세력을 키웠고,
그 호전성이 극심해 고구려가 응징했다는 것이 적합한 설명이 되겠다.
3세기 신라와 가야는 임나를 감당하기에는 군사력이 약했다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의식하고 결론을 유도한 것이 아니란 추측이 가능하다.
가야의 사로국이란 소국에서 시작한 신라가 운이 좋아 백제를 복속하고,
명망한 고구려를 일부 흡수하였지만, 한반도 남부에 편중되어 만주로의 확장은 생각도 없었다
생각된다. 하지만, 신라의 통일은 현실이었고, 다만 통일 후의 진취성이 약한 것이 흠이라 싶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한반도의 삼국이 하나가 되었고, 한민족이란 공통성을 갖게 되었다.
발해의 대조영은 국적이 불분명하다. 피지배층이 말갈족이라 발해가 우리 역사가 아니란 주장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기에 대조영의 국적을 그렇게 중요하게 거론하는 것이다.
너무도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였고, 고구려를 승계했다는 발해의 주장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된다.
현재 중국도 러시아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말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고려의 김부식도 신라의 후손이라 삼국사기에 발해를 의도적으로 빼 놓았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는 거론은 하지만, 이후 우리민족의 역사서에 언급되거나 깊이 있게
논의되질 못하였다. 국난시기 우리의 자부심 제고에 활용되기만 하여 올바른 연구가 필요하다.
징키즈칸의 몽고(원)는 실로 대단한 나라였다. 유목민들의 후손이라 호전성은 대단하였다.
그리하여 몽고와 대적한 나라는 모두 멸망하였다. 몽고는 정복한 나라들의 문화를 흡수하였다.
고려는 그런 와중에서 국호와 국토를 유지하여 완전한 식민지배로 보기에 어려웠다.
국경지역은 일부 고려 군인들이 영토를 몽고에 상납하고 권력을 탐하였고, 일제시대 친일파처럼
부원세력들이 극심하였던 것이 흠 중에 흠이었다.
임진왜란은 선조란 왕이 제일 큰 문제였다. 조선 왕실은 선조를 칭찬할만큼 조선을 유지한 왕이
되겠지만, 신하들과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죽어 주었으면 좋았을 그런 왕이었다.
붕당정치도 이때부터 변모하여 당파싸움이 본격화 되었고, 임란을 극복한 주체였던 의병들을
모두 처참하게 제거하여 여진족의 후예 청의 침입시 의병 봉기가 없었던 것도 그런 결과이다.
이순신 장군 또한 백의종군하여 전장에서 전사하였지만, 야사에는 자결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자신의 목숨 유지에 집중한 왕을 두고 승전이니 패전이니 전쟁 종결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정조는 영조의 즉위부터 사도세자의 죽음을 거쳐 이미 목숨이 위태로웠다. 당파싸움이 극치였던
그 시절 영조의 노련함은 정조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일찍부터
정치판에서 눈치가 빨랐던 정조에게 스트레스는 항상 있었다. 또한 담배가 문제가 되었다.
골초였던 정조는 독살이 아니라도 폐암으로 죽었을 것이란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개인기가 뛰어난 정조는 결과적으로 세도정치의 문을 열어주고 단명한 것이다. 매우 아쉽다.
애국계몽운동은 참으로 필요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이 새로운 개항과 개화를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 붙들려 있었다. 그러니 계몽은 필요했다. 그들 입장에는 국수주의적이고
여전히 구시대적인 의병운동 세력들이 싫었을 것이다. 언제나 파벌은 있었고, 내부 갈등이
외세침략기에도 있었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3.1운동이 지나 이후 만주에서 무력투쟁을 함께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입신양명에 대한 개인적 야망이 이런 분열을 낳았다 생각한다.
일제의 공업화 정책은 북한에는 상당 부분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한은 대부분
경공업이었고, 농업 위주였으며 규모 또한 작았다. 이 또한 6.25 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일제는 제국주의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위했지 식민지를 위했던 적은 없다.
역사 속에서 부끄러웠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이 이런 주장을 반복한다.
1948년. 무엇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뉴라이트는 어떤 의도로 이런 것을 주장하여
분열을 조장하는지 궁금하다. 자신들의 뿌리로 삼는 이승만도 동감하지 않는 것이 의문점이다.
이승만은 분명 건국의 주체였고, 독립운동의 노력도 하였다. 또한 권력에 대한 야망도 있어
어느 때고 분란을 유발하였다. 그러나 반공포로 석방만큼은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위험했던
도박이었다 생각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위인이 참 많이 있었다. 우리 모두 기억하여야 한다. 하지만, 그 개인은 결코
순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오늘날의 우리들을 그들이 본다면, 과연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의아스럽지 않을까 염려된다. 내부결집은 역사에서 항상 필요한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