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교회로 돌아가자 - 세속주의에 물든 우리 시대 교회를 향한 도전
마이클 스펜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순전한 교회로 돌아가자

 

나는 크리스찬이다. 나의 사명중에 전도(복음전파, 예수=천국)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대학시절 잠시 뜨겁게 기도를 하고,
다니던 직장이 문이 닫을 때 또 다시 깊은 성경 묵상을 했었다.
나의 어머니가 아프셔서 구하는 기도가 필요할 때 다시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해
노력하던 기쁨을 경험해 보았다. 이런 오랜 기간동안 전도를 했던 적이 별로
많지 않다.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적은 전도에서 매번 "교회 다니세요?"
"교회 다녀보세요"가 내가 했던 말들이다.

 

그만큼 내게도 기독교는 바로 교회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교회 다니세요?"라거나
"교회 다녀보세요"라고 하면 일단 피하고 싶다. 단호하게 "저 교회 다녀요"란 말로
경고를 보낸다. 저에게 오지 마세요란 뜻을 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를
버린 적은 없다. 나는 어릴 때도 어머니에 이끌리어 교회를 갔고 지금도 주님에
이끌리어 교회를 다닌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 혼자서는 자꾸 넘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내가 다니는 교회조차 익명성이 보장되는
설교방청장이 되었다. 그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성가대의 감동적인 퍼포먼스를
감상한다. 늘상 마음에 품은 소망들을 하나님께 구한다. 교제를 하지만 내 사생활
까지는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교회를 다니고 기독교를 믿지만, 나만의 종교를 갖게 되었다.
내 식의 기독교를 믿고 있다. 이런 다소 위험한 상황을 때때로 경고 받았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한 적도 많고 그냥 지금처럼 믿는 게 솔직히 편했다.
그래서 전도를 잘못했던 것 같다. 마치 복음을 전하거나 하나님 뜻을 전하기 보다
나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자신없이 이야기해보는 그런 경험들이었다.

 

어릴 때 장로교 교회를 다녔고 대학시절 잠시 침례교 교회를 다녔다.
지금은 감리교 교회를 다닌다. 어머니가 아프실 때는 마음으로는 오순절 교회를 추종했다.
교파에 대해서 큰 의식을 한 적은 없지만 그때그때 차이점들이 나를 만족케 했다.
그래서 신앙서적을 볼 때도 관점의 차이가 있는 진정한 하나님 말씀보다 교파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전도할 때 "우리 교회 좋아요. 우리 교회로 오세요"라는 말을 쉽게
하게 된다. 사이비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다소 유사성이 있다.

 

어떻게 믿는 것이 옳은 것일까? 전도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순전한 믿음과 순전한 교회는
어떤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목사님이다.
그 아내가 몇 년전 천주교를 개종을 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버리고 마리아에게 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로 목사님께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가 했던 과거의 설교들이 거짓처럼 되어 버렸다. 교회는 어느덧 예수님이 빠진 시장터가
되어 버렸다. 단순히 한가지의 예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교회 현실에 공감할 것이다.

 

나 또한 천주교로 개종한 선배가 있다. 그에게 배신자의 이름을 부여했다.
인간은 같은 인간을 정죄하기 좋아한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1박2일 멘트처럼 우리는
매번 남과 다르고 남보다 우월하기를 원한다. 또한 편을 가르기 좋아한다. 작은 모임에서
조차 니편 내편을 가르려 하고 거기서 왕노릇하고 싶어한다. 교회도 어느덧 그런 인간미가
넘쳐 나게 되었다. 특히나 한국 교회는 더욱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형 교회를 보자. 엄청난 헌금으로 자신들의 교회를 랜드마크로 변모시킨다. 또한
교회란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며 조직을 만든다. 무슨 무슨 연합이니 협회를 만든다.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이 세상으로 끌어오려 한다. 이런 교인들에게 천국은 수십층의
주상복합 건물로 다시 태어난다. 아랫층은 생계를 위해 장사를 벌이는 하층 교인들이
중층은 일도 하고 주거도 하는 오피스텔식 중층 교인들, 끝으로 상층에는 펜트하우스에
어울리는 교주같은 교인들이 자리를 잡는다.

 

우리가 진정 순전한 교회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것들에 차별없이 예수님의 시선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 되겠다. 거지와 창녀, 병든 자를 사랑하시던 예수님처럼 말이다.
내 믿음이 당신보다 좋다는 위선이나 먼저 믿었으니 좀더 많은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포도원 품꾼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불의의 사고와 예기치 않은 일로 죽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또 다시 우리만의 심판을 시도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서 내가 이런 심판을 받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다시금
예수님처럼 살고자 다짐해 본다. 쉽진 않겠지만 수시로 나를 점검하고 바로잡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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