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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무비 - 조승희 프로파일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송병선 옮김 / 꾸리에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매드무비, 조승희 프로파일
원제 : La Masacre de Virginia Tech (버지니아 공대 살인 사건)
2007.4.16 미국 버지니아 공대 07:06.
벌써 2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나마 버지니아 공대란 단어로 인해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곧바로 연상이 된다. 한국계 이민자 1.5세대가 저지른 바로 그 살인사건 말이다.
당시 오전 7시 6분 경에 최초 살인이 있었다. 버지니아 공대 기숙사 중 하나인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홀에서 1명의 여학생과 1명의 사감생이 사망했다. 그 후 9시 39분 경 조승희는 공학부 건물인 노리스 홀 내에서 30 여명의 교수와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정확히 10분후인 9시 49분경 자살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실 난 그런 속담을 전혀 믿지 않는다. (다만 말조심하자란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기는 한다.) 그리고, 내가 원치 않으면 나 자신이 묻지마 살해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전혀 개연성 없는 한 인물이 32명의 사람들에게 170여발의 총알을 쏘아댄 상황 설명이 어려운 사건이다. 언론은 난사라고 표현하였지만, 이 책을 집필한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정확히 한발한발 쏘아진 것으로 확인하였다. 피해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비디오 게임내 괴물 대접을 받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왜 조승희는 이런 일을 서슴없이 벌인 것일까?
나도 당시에 이 사건을 접하면서 이민 1.5세대의 사회적 괴리로 인한 정신병적 사고라고 간단히 자평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정말 어렵게 살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나은 인생을 살겠다던 그들의 계획이 허구였고 그 속은 완전히 곪아서 결국 터져버린 것이라 판단해 버렸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해서 되는 것일까? 이런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저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현재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기자출신의 추리소설 작가이다. 기자와 추리소설 작가란 직업 모두 공통점이 있다. 호기심에 대해서 만족할 때까지 파헤친다는 점이 그러하겠다. 그런 작가가 이 작품에서는 소설가 보다는 철저하게 기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건이 나던 그날. 처음 뉴스를 접하고 곧바로 버지니아 공대로 이동한 모습이나 책의 내용이 시간순서로 표현한 점, 사건 현장을 상세히 묘사한 것 등등 객관적인 해설자의 태도를 취한다.
작가의 노력으로 한명의 인간 조승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32명의 희생자들은 그리워하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불쌍한 영혼, 조승희는 그냥 희대의 살인범으로 남았다. 내가 TV와 인터넷으로 마주한 조승희는 왜소하고 자신감이 결여된 왕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밝혀준 조승희는 키 189cm에 적어도 죽기전에는 나름 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허한 눈빛의 왕. 무슨 사명을 수행하는 그런 모습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조승희가 정말 가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저자가 조승희를 이해하는 식으로 글을 쓰진 않았다. 조승희는 성장기의 중요한 과정들을 건너 뛰어버린 모습을 보인다. 마치 중학생의 사고 수준으로 대학을 진학한 것 같다. 십대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생존에 대한 공포감을 많이 느낀다. 누군가에게 맞지 않을까? 누가 날 죽이진 않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잠을 자기 전에 방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때로는 친구와 가벼운 주먹다짐에도 정신에 이상이 오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과대망상이나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조승희는 그런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것 같다.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점이 계속해서 지적되었지만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버지니아 주는 그렇게 그를 방치해 두었다. 정신이 병든 친구에게 총을 구매할 수 있게 하였고 사격장에서 버젓이 연습 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책 속에서 조승희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아버지로 나타난다. 내가 판단하건데 조승희의 아버지는 여느 한국인 가정의 아버지들과 다름이 없었을 것 같다. 그저 가족을 위해 일하고 늦게 들어와서 밥만 먹고 잠을 자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성장에만 치우쳐 젊은 날 일만하고 지금은 사회속에서 소외된 아버지들과 그런 아버지와 소통이 단절된 자녀들에게 이 사건은 큰 시사점을 준다. 왜 우리가 사는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성경에 나온다. 이와 같이 사람이 사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사랑을 키우며 사는 것이다. 지금 당장 가족들과 이야기 하자. 즉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