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양장) 까칠한 재석이
고정욱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고정욱)




키 180센티에 날렵한 몸매. 여드름이 많아 두리안 같지만 의리파. 주먹도 쎄고 기사도도 있는 황재석.




어느 날 친구 민성이가 중학생 들에게 맞고 찾아왔다. 머리수에 밀려 당한 거라면서 도와 달란다. 그냥 중학생들 도망 못가게 길목만 지켜 달라면서. 그렇게 해서 사고를 치고 경찰서로 끌려간 재석이와 민성이. 이들에게 2주간의 봉사활동이 떨어졌다.




과연 반항심 가득한 불량배 기질의 두 고등학생이 노인복지시설에서의 2주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저자는 청소년의 성장기 소설을 주로 쓰는 고정욱 작가님이다. 중학생 시절까지 몸이 불편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의사가 되어 봉사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1급 장애인은 의대와 공대에 진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알게 되어 이후 문과로 전향하여 현재의 작가가 되었다고 서문에 이야기한다. 그때 의대에 진학했던 친구들이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작가를 되레 부러워한다며 자화자찬이다. 몸은 불편하지만 영혼은 매우 자유로운 분인 것 같다.




재석이는 봉사활동 첫날 도망칠 생각도 해보았고 대충대충 시간만 떼워볼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복지시설 노인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한 노인의 등장으로 그런 나태한 생각은 잊어버리게 된다. 보통 노인들이 했던 말 또하고 또하는 것에 비해 이 노인은 말이 짧고 명쾌했다. 잔소리인 것은 마찬가지 이지만 왠지 들을 만했고 점점 그 잔소리에 따르게 되었다. 첫날부터 벼루에 먹을 갈게 되었고 대충하려던 마음과 달리 먹의 향에 취해 몇 시간을 집중해서 갈았다. 서예실의 먹물 자국들과 검은 페인트 자국들을 걸레와 칼로 깨끗이 청소했다. 커텐도 때어내 욕조에 넣고 열심히 밟아서 빨았다. 땀을 푹 흘리고는 노동의 기쁨도 느꼈다. 그때 보담이라는 이웃 여학교 얼짱이 등장한다. 잔소리를 하던 그 노인의 손녀이었다. 그 후로 드라마처럼 까칠한 재석이는 더욱 성실하게 봉사활동을 한다. 노인은 그런 재석이의 마음을 아는지 자신의 손녀와 재석이가 친구가 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기도 한다.




이 정도만 들어보아도 점점 재석이의 개도는 작가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 저렇게 잘 된다는 식의 글은 아니다. 고등학생 들만의 고민과 폭력 서클 활동을 탈퇴하는 과정들이 매우 사실적이다. 대화의 문체 또한 요즘 고등학생들 표현 그대로이다.




괜히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났다. 늘 무난하게 자라온 나지만 주인공 재석이 처럼 적극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어 보았다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 좀더 방황하고 좀더 고민하고 좀더 극복했더라면 하고 말이다. 보담이는 착하고 성실한 여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단순히 온달이를 이끄는 평강공주의 모습은 아니다. 삶을 치열하고 성실히 사는 선배같은 친구로 등장한다. 작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작가는 잔소리하는 노인의 모습과 보담이의 모습, 친구 민성이의 모습과 엄마의 모습으로 늘 재석이 주위에서 도와준다.

책 속에는 3권의 고전 소설이 등장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끝으로 「빠삐용」. 주인공 재석이는 빠삐용을 영화로 보았다고 한다. 나또한 똑같은 수준이다. 모두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끝가지 제대로 읽어본 책은 없다. 이 책들은 재석이가 현재의 방황하는 십대라는 알껍질을 벗을 수 있도록 사고의 전향을 도와준다. 단순히 작가의 생각만 주욱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을 읽고 어느새 앞의 3권의 책들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버렸다. 읽다가 말아버린 데미안과 제목만 알고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 영화만 3번 본 빠삐용을 제대로 읽어 보려한다. 지금 현재 재석이가 부럽다. 20대 이전에 이런 좋은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20년 전에 내게도 잔소리해주는 노인과 어여쁜 선배같은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하는 공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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