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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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 30분
지금 저 위에 보이는 한 줄의 문장, 그 정적인 모양 안에는 순간 갈라지고 치솟고 무너지는 끔찍한 대재앙의 사건이 갈무리되어 있다. 리스본 대지진! 그런데, 나는 여태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가상역사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일찍이 큰 화산이 폼페이를 뒤덮은 건 정도는 알았지만, 먼 과거가 아닌, 18세기 유럽의 중심으로 불릴만한 리스본에 그런 커다란 일이 있었다니...
새로운 역사 사실을 하나 접하면서, 그 충격의 여진이 곧 내 두뇌를 훑더니, 최근에 본 영화 하나를 찾아냈다. <천사와 악마(Angels & Demons)>라는 제목을 가진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다. 우리가 잘 아는 톰 행크스와 이완 맥그리거가 나오는데, 현재의 바티칸을 무대로 앞으로 일어날 대재앙을 피하려는 주인공(학자)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의 대재앙은 어쩔 수 없이 닥치는 자연의 무서움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위해 벌이는 어떤 집단의 (다소 중층적인) 음모에 있다. 즉 첨단 과학에서 얻을 수 있는 반물질을 가지고 로마 바티칸을 송두리째 날리려는 것인데, 과학의 가장 상위의 힘으로 지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종교의 뿌리를 처단하려는 상징적인 제스처라 할 수 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가 그렇다는 것이고, 더 들어가면 반전은 있기 마련이고, 그걸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여튼 새로운 교황을 뽑는 날, 바티칸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바싹 다가오는 대폭발의 위험! 이러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리스본 대지진 직전과 동질의 고밀도 기운을 선사한다. 그 종교적인 엄숙함마저도 같이..
다시 이 책 <운명의 날>로 돌아오자. 이 책이 그 시기 가장 왕성한 도시 중 하나였던 리스본을 휩쓴 그 끔찍한 사태를 다큐식으로 상세히 보고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게 아닐 것이다. 이 우연히 다가온 자연의 힘이 그 후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사건 후 수습의 관점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분기점을 찾아내고 있다. 그건 그 당시는 물론, 약간의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서 보이는, 그래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데, 대지진 이후에 카르발류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가 어떻게 이 어려운 사태를 해결해 나가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큰 줄기를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보다는 지식인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는지 그것에 더욱 관심이 갔다.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희망의 시선들은 갈라지는 땅으로 금새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설마 인간을 바라보는, 지켜주는 신이 있다면, 과연 이런 비극이 많은 사람들을 앗아가는 걸 방관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지우기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니 신의 조화에 놀아나는 인간과 만물의 움직임이란 것도, 비극의 힘 앞에선 잠시 주춤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갈라진 땅과 무너진 건물은 어떤 기적으로도 일어서질 않았다. 결국 사람들의 힘으로 재건이 되고, 처리가 된다. 인간의 힘! 결국 이것이 이유 없이 덤비는 자연에 대처하는 유일한 힘이 아닌가?
비록, 비극에서 자라난 것이지만, 이러한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가 신과 종교와 다른 길에서, 그리고 더욱 탄탄해질 수 있었던 전환의 시기도 이 리스본의 과거 그 시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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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는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법이다. 이해할 수 업는 재난을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한 사회가 재앙을 해석하고 혼란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회가 지닌 통념과 편견, 희망, 공포를 읽을 수 있다. 리스본 지진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자연에 대한 구태의연하고 절대적인 신념에 발이 묶여 시대에 뒤떨어진 포르투갈 사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 깊은 종교적 통념의 권위를 뒤흔든 것은 리스본 지진의 긍정적인 면이었다.(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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