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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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권진.이화정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책에도 첫인상이란게 있다. 책이니까 아무래도 겉표지가 우선 눈에 띈다. 제목은 물론이고 그림이나 색깔이 어떻게 책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는지가 중요하다. 물론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출 순 없지만, 그래도 적정 수준이란게 있을 게다.
이 책,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은 부제를 참고하지 않는다면, 자칫 남녀간의 문제를 다룬 책으로 살짝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겉표지의 그림과 색깔은 본문의 세련된 편집과는 엇박자를 낸다. 그냥 이 표지에는 '여름에 떠나는 시골길'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어울릴 것만 같다.
괜히 내용도 아니고 책의 겉표지를 가지고 시비를 건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한 부분은 물론이고 책 내용에서도 조금만 더 세심한 신경을 썼다면, 더 좋은 결과를 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게 한다.
맨 처음 나오는 파란눈의 영어 선생님인, 이 남자는 아마 서울에 사는 가장 전형적인 외국인이 아닐까? 외국인이 우리나라, 서울에 살면서 느끼는 가장 평균치에 가까운 시선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책의 전체적인 순서로 볼 때도, 이 사람을 처음에 등장시킨 것은 잘한 것 같다. 두 번째로 나오는 중국인?은 신세대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데, 싸이월드 가상 공간을 실제 자신의 방에 그대로 재현한 사진(p.40)은 재치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여기서 이 책은 슬슬 읽는 사람의 눈을 달구기 시작한다.
막 피기 시작한 열기를 이어받아 약간 괴짜의 이미지까지 얹어주는 이가 있었으니,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는 <서프라이즈>의 재연 배우이기도 한 젠 아이비라는 남자다. 일본에서 일본문학을 공부하고, 한때는 락밴드에서 음악을 했으며, 귀신에서 유에프오까지 특이한 목격 경험까지 있는 이 남자의 관심은 결국 우주학이란다.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의 차원을 품고 멀쩡하게 서울을 거니는 그의 모습은 꽤 독특하다. 이 장에 속한 소제목에 '외계인과 이방인'이 있는데, 이 남자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제목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이 남자가 다른 도시와 달리 한국, 서울에서 느낀 인상적인 기운이 있단다. 그것은 바로 과거 전통 무늬에도 깃든 '영매'의 에너지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것들이 증발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외계인을 찾기도 하는) 이방인의 눈에는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았나보다.
이어서 이 책에 나오는 유일한 외국인 여자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지나친 음주문화에 대한 꼬집기에 같은 한국 남자로서 살짝 찔리기까지 한다. 후반부에는 영화와 관련된 두 명의 백인 남자가 나온다. 미국인이면서도 미국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줄곧 견지하는 그(얼 잭슨 주니어)의 시선에서 생각 있는 지식인의 풍취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남자의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우리를 조금 부끄럽게 만든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인연으로 여러 빛깔의 눈을 가진 외국인들을 만나 보았다. 대개 이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알게 되는 과정은 직접적이지 않고, 일본(학)을 거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세계화가 단지 정치-경제적인 면이 아니라 문화와 인문학이라는 넓은 바탕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그리고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이 외국인들은 서울에서 높고 세련된 빌딩에 둘러쌓인 공간보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촌스러운? 장소를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의 현대화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너무 일방적으로 거기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젠 조금 여유를 가지고, 우리의 옛것이 도시화에 소실되지 않고, 영매의 기운이든, 우리만의 고전미, 정취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자리잡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화에 대한 의식도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