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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프랑스 보르도에서 자란 포도가 즙이 되고, 발효가 되어서 병에 담긴다. 그리고 맛의 기호인 레벨이 붙어 우리 손에 도달한다. 코르크 마개가 푱하는 소리를 내고 떨어지면, 오랜 시간 갇혀 있던 향은 방 안을 색다른 분위기로 만든다. 자, 그럼 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잔을 가지고 와서 조심스럽게 따르자. 마지막에 병을 살짝 비틀어주면 방울이 교양 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
좀더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고르기 위해서 만화부터 기행문 형식에 이르는 다양한 책들을 골라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누구는 와인 보관만을 위한 아지트(아파트)가 따로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온갖 귀한 와인들을 구한 무용담을 부러워하며 듣는다. 그러나 곧 우리 중 누군가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형마트에 갔다가 싼 맛에 가져 온 남미산 와인의 텁텁한 맛이 골때리는 밤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붉은 빛 와인은 우리 문화의 한 구석에 스며들어 번지르한 고급스러움으로, 혀는 물론 우리의 새로운 계급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다. 미묘하게 갈라지는 맛의 질을 (더듬거리면서) 찾아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테고, 다른 술이 주지 못하는 분위기와 낭만을 불러들이는 개인적인 의식(儀式)으로 반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 여기다 또 하나를 첨가할 일만 남았다. 그러나 위와는 달리, 와인의 맛을 시커먼 병맛으로 확 바껴줄지도 모를 이야기다. 와인을 증류해서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데, 갑자기 기름맛까지 느껴진다.
박사 논문이 이 책의 출생배경이다. 그러니 주제도 그렇지만, 논문의 성격상 어떤 유머스러움과 생동감 있는 글쓰기의 모습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참 지루하게도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정치'라는 것은 무슨 대단한 권력의 힘겨루기나, 음모론 같은 거창한 차원이 아니다. 이 정치라는 온도마저도 미지근한 편이라, 독서 중에 와인 효과를 경험할 수도 있다(슬슬 졸린다).
그래도 이 부분은 흥미롭게 봤다. 포도나무뿌리진디의 확산으로 유럽의 포도재배는 큰 위기에 처햇는데, 미국의 포도나무를 들여 와, 뿌리를 교접하는 방식으로 내성을 키워 이겨냈다는 것이다. 유럽의 영향으로 뒤늦게 포도나무를 길러 와인을 빚던 미국이, 이번에는 유럽 와인의 구세주가 되는 순간이다.
어떻게 본다면, 꼭 와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되는 대개의 것들은 정치 경제학적인 복잡한 루트 안에서 제 갈 길로 간다. 담배도 그렇고 그 화려하게 이쁜 튜울립도 그렇다. 이제 우리의 결정적인 에너지원이 된 콩만 해도 그렇다. 그 대량생산과 유전자 변형 문제로 말이 많지 않던가?(와인도 유전자 변형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책에서도 효모와 발효, 그리고 유전자 변형에 관한 내용이 p.199~p.200에 걸쳐 나온다)
그렇긴 해도, 와인이 정치 경제학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질 때는 좀 다른 느낌이 나는 건 사실이다. 와인은 먹는 것 이전에, 우리의 어떤 문화적인(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집단적인 것에 이르는) 공간에 남다른 지위를 갖고 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아름답고 멋진 신화가 고고학적인 진실에 의해서 역사로 재구성 될 때, 떨어져 나가는 그 무언가의 상실과 닮았다.
포도주는 디오니소스 신화와 연결되는 남다른 시간과 부피를 가진 술이다. 그러나 여기에 레벨이 붙는 순간, 그 신화의 온도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저자의 말대로, 이 레벨에는 와인의 붉은 빛깔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학적인, 중층적인 문제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들 사이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우리는 단지 퇴근할 때, 탐스러운 와인 한 병을 고르고, 또 집에 와서 스포츠 재방송이나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홀짝 마시면 되니까. 무시하면 분위기, 그리고 낭만은 죽지 않는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달콤한 와인의 맛과 전혀 다른, 와인을 둘러 싼 차가운 현실을 대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상품에 수동적으로 매달린 소비형태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으로 보인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단지 와인을 즐기는 사람에겐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비판적으로 사물을 대하고, 자신이 자본주의에 맥없이 끌려다니는 걸 참기 어려운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와인은 기독교, 특히 카톨릭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와인과 포도원은 풍요로움을 의미하기도 하고, 성경에서 약속된 땅의 젖과 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