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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과 탈주 트랜스 소시올로지 2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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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이 어쩔 수 없이 당하는 배제의 폭력이라면. '탈주'는 능동적인 삶의 선택이고, 중심의 권력을 교란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저자 고병권은 지난 정권과 지금의 정권에서 '신자유주의'의 연속적인 강화와  그로부터 생겨나는 어떤 (정치적) 폭력의 징후를 본다. 이 폭력은 일단 주변의 대중들에게 향한다. 어쩔 수 없이 떠도는 대중, 그러나 여기에도 자각이 생길 수 있고, 그러한 전환-태도 변경은 새로운 실천을 가능케 하는 싹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탈주라는 움직임이다. 이 책은 떠돌이 대중의 실상을 그 바닥의 심연에서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특별한 조건들로 이루어진 임계점을 기다리는 거대한 실천이 아닌, 지금 가능한-즉각적인 실천을 자극하는 텍스트를 제공한다. 

니체와 들뢰즈는 이 책의 전개에 큰 좌표를 준다. 그러나 바람직한 점이 있다면, 니체와 들뢰즈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들쑥날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텍스트에는 그 외에도 다른 이론과 사상들이 어떤 드러냄을 위해 효과적으로 쓰인다. 그래서 저자의 목소리는 다른 인용된 소음에 잦아들지 않고 분명하게 독자들을 찾아간다. 

그러한 저자의 분명함과 강한 목소리 뒤에는 짚고 넘어갈 부분들도 눈에 띈다. 일단 대중을 너무 쉽게 한 뭉터기로 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대중은 권력의 장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중심에 머물면서 국가의 생리를 애써 감내하기도 한다. 정당하지 못한 권력을 향해 자신들의 성난 몸짓을 보이기도 하고, 혹은 그러한 (대중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떤 대중을 선택하느냐인데, 암묵적으로 저자가 가리키는 곳은 알겠지만, 그 점을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대중이라는 이름 안에는 현실적으로 봉합하기 힘든 균열들이 있는데, 실천의 토대가 되는 그 부분에 대한 인식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극복과 관련해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진보적인 시각도 더 철저하지 못한 점이 있다. 즉 인문학자들의 경직된 '나누기 놀이', 그들만의 '정상성'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마치 니체의 어조인양 "'정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쟁점은 무시한 채, '정상'이라는 게 원래 있었던 것처럼 간주하듯이 말이다." 라는 부분, 그리고 이어지는 "이 점에서 오류는 진리의 협력자이며 , 비정상은 정상의 다른 얼굴이다. 철학자들은 오류를 극복하고 진리에 도달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진리 자체이다."   

인문학자들이 위와 같이 객관적인 오류에 갇혀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러한 오류가 지금 현실에서 어떤 힘을, 가치를 가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 거짓과 진실을 구분해서 진실을 선택하거나 그것을 구성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이 없다면, 이 현실에 작용하는 힘을 단지 '거짓'이라며 몰아세우기 이전에, 왜 그러한지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다시 바꿀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력에 의해) 그것이 역전-성공했을 때, 그것들도 역시 오류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맥락에선 '거짓'과 '오류'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이 된다.  

저자는 아마 재소자, 광인, 동성애자도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부분이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다. 가령, 흔히 정상의 성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보는 동성애는 정상 안으로 들어가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이상성애에 대해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변태들과 유아성욕자 등등 말이다. 이들도 과연 정상에 넣을 수 있을까, 아니면 비정상에 여전히 포함되는 '그들'은 있는 것일까?  

'1부 3_혁명 앞에서의 머뭇거림'에는 니체의 먼 목소리가 들리듯이 먹구름의 비유로 대중들의 잠재된 요동을 표현한다. 여기서 저자는 대중들이 자기 삶을 좌우하는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불안을 야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결정을 정치 책임자들이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중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할 때, 거기에도 역시 불안은 생긴다. 정치와 사회가 혼란할 때, 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생기고, 지금도 여전히 역대 대통령 중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이유는 그러한 심리가 어느정도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대중의 이런 이중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악에서 자신의 선함을 보는 것을 니체는 탐탁치 않게 여겼다. 저자의 목소리에 니체가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역설적이게도 니체가 반겨하지 않을 거 같은 분위기에서도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자발적인 능동성과 긍정이 스스로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부도덕에 대한 반향일 경우, 원한은 은닉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전염 속도는 상당히 빨라진다. 그러므로 정부에 대한 거센 대중의 몸짓에서 그러한 원한의 징후도 함께 읽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단지 많은 숫자가 그 힘의 강도를 말해주진 않으니까. 아마 저자도 촛불시위에서 그렇게 많은 대중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을 의아해 하는데, 거기에도 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데모스 없는 데모크라시'. 고병권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한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 추방된 대중과 같이 길을 걸었고, 그 땀내 나는 현장의 목소리를 이 텍스트에 옮겨 심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단지 사유 안에서만 맴도는 허황됨이 적다. 대중에 대한 열정이 앞서, 더 근본적인 성찰에는 소홀한 면도 없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건 '실천'인데, 요새는 즉각적인 실천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것이 마치 유행같기도 하다. 그런데, 실천의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정말 어리석은 짓일까?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구식의 냄새가 나는 태도일까? 다시 니체를 불러 들이자. 니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지금 당장 무조건 실천하라는 자도 있고, 혹은 대지가 움트는 그날, 그때 같이 일어나라!고 말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누가 실천하고, 누가 말하는가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대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저자가 참여한 <코뮨주의 선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최근 시국의 문제와 촛불시위에 대한 더 밀착된 시선을 알고자 할 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니체는 디오게네스의 말을 따라서 "누구 하나 아프게 하지 않고 어떻게 위대한 철학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나 같으면 문장의 앞뒤를 바꾸어 썼을 것 같다. 즉 "위대한 철학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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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07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