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매진>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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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저 그림의 밖에 있으면서 그림의 안에 영향을 끼치는 액자처럼, 영화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안쪽으로 간섭을 하는 파레르곤(parergon) 같은 글쓰기는 어떠냐는...".
즉 전문성과 무거운 호흡(긴 문장)으로 줄기차게 (영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닦달하기보다 일단 가벼운 제스처로서, 영화의 새로운 징후를 건드림, 여기에 이 책의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그 징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저자도 베냐민(벤야민)에 기대어 인식하고 있듯이 기술이 되겠고, 구체적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지금과 같은 과도기다.
그럼 본격적인 읽기에 앞서, 우리도 잠시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놀이를 해보는 건 어떨까? 이 책, 시각의 대상으로서 이 책을 가지고서 말이다. 우선 겉표지를 보면, 디지털 미학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을 횡단하듯이 검은 글씨로 '진중권의 Imagine 이매진'이 시각적으로 자신을 외치는 듯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이란 문구가 보인다. 아마 도시의 야경으로 치자면, 가장 시선을 끄는 네온 광고에 해당하겠다. 그리고 이 책의 안 쪽을 조심스럽게 들어가면, 바로 프롤로그에 당도하는데,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이것은 영화비평이 아니다, 담론의 놀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이 지점엔 분명 독자를 묘하게 자극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인문학적 상상'과 '담론의 놀이'가 영화들을 스치면서 어떻게 펼쳐질까? 라는 기대감을 높인다. 그러나 바로 본문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의) 텍스트는 자신이 밖에 걸어 둔 광고를 망각한 듯, 촘촘하게 박힌 단단한 전봇대(가령 용어, 인명, 인용)가 자유로운 활보를 더디게 하는 거리 풍경을 보여준다.
저자의 주관적인 상상력과 기발한 담론의 놀이는 찾기 어렵고, 그나마 짧은 글들인데, 용어와 인명, 인용들이 경직된 알맹이처럼 꽤 많이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것이 필요하지만, 유효적절하게 쓰였다고 보긴 어렵다. 이 책의 탄생배경이 전에 영화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주제별로 묶었다는 걸 고려하면, 그 한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순 있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는 광고, 소개 문구를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총 10장으로 구성한 이 책에서, 1장 영화의 죽음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적 흥분을 준다. 영화의 초창기에 가장 혁명적이었던 에이젠슈테인과 현재 상업성과 거리를 두고 개성적인 작가주의 작품을 생산하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이 포문을 연다. 특히 그리너웨이 감독의 다중 프레임 실험(영화 화면 안에 여러 화면이 생성)은 실제로 변화하고 있는 영화의 가장 적극적인 모범으로 꼽을 만 하다.
그 외 기억에 남는 것들은, 영화 <웨이킹 라이프>, <수면의 과학>, <블루 벨벳>과 관련된 글들이다. 프롤로그에서는 여기서 다룬 영화들이 우연히 주어진 소재임을 밝히면서, 대신 담론의 놀이를 펼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오히려 소재들은 적절해 보인다. 모르겠다. 저자는 자신이 발휘한 담론의 놀이가 만족스러웠는지도. 그리고 독자들 중에서도 그러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영화의 새로운 징후인 디지털 영화들에 대한 맛보기를 할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이 책에서도 언급한 <디지털 시대의 영화>, 주관적인 글쓰기와 재미가 보이는 영화 감상으론 <철학으로 영화보기 영화로 철학하기>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인용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저자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가 있는데, 여기서 자유롭고 지적인 '담론의 놀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디지털 같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나는 꿈의 신화학과 상징주의를 믿지 않아요. 왜 모든 이가 똑같은 연상을 가져야 하죠? 나는 우리 모두가 각각 자신만의 연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영화 <수면의 과학>의 감독 미셀 공드리의 태도가 담긴 글.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