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생존과 번식, 기생에 특화된 식물이지요. 더스트시대의 정신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악착같이살아남고, 죽은 것들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한번 머물렀던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한자리에서 오래 사는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은 식물이지요."

"아영 씨의 추측이 맞아요. 모스바나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었어요. 제대로 된 약조차 아니었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약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만들어야 했어요. 당신이 추정한 것처럼 모스바나는 멸망의 시대와 긴밀한 관련이 있지요. 하지만 그건, 아영 씨가 예상한 방식대로는 아니랍니다."
나오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싱긋 웃었다.

무작정 여기 머물 수는 없다. 어떤 곳이든 열흘 이상 머무르지 않는 것이 믈라카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사람이지내다보면 반드시 그 티가 나고, 그러면 사냥꾼들의 표적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라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새벽마다 폐를 토해낼 것처럼 기침하는 아마라를볼 때마다 나는 랑카위의 연구원들에게 분노가 치밀었다.기회가 있을 때 제대로 되갚아주고 나왔어야 했는데.

"저 사람들, 믿지 마.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나는 아마라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여태까지 당한 일들을 떠올렸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도 없다. 그러니 호의를 최대한이용하고, 그들이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할 때 도망쳐야했다.

그 망할 실험을 당하기 전까지는 괜찮았다. 대신 다른것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더스트가 아닌, 그밖의 모든 것들이. 그래도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성종이 아닌 사람들, 그러면서도어리고 약한 사람들은 더 많이 죽었다. 그 모든 것이, 나는 끔찍하게 싫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모든 현실이.

아마라의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다.
아마라는 이제 그런 소문에 매달릴 만큼 내몰려 있었다.
소문 속 마을이 한때 정말로 존재했더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돔 시티와 작은 마을들을 불문하고모든 공동체들이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안전한 곳, 희망이 있는 곳 따위는 없었다.

"어떠냐? 여기가 너희가 찾던 곳이다."

"우리는 프림 빌리지라고 부르지. 기대했던 것보다 조촐하지 않나. 그냥 작은 마을일 뿐이야."

"나도 저 밖에선 그랬었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굳이 학교 같은 것을 만든걸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체로 하품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반면, 칠판앞에 선 어른들은 늘 의욕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어른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휴, 넌 역시 겁이 많구나? 나무 아래에서 입만 벌리고 열매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 굶어 죽는 거라고. 나TETRIE무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쟁취하는 사람만이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얼마 전부터 정찰 드론들이 자꾸 숲 경계에서 외부인을 발견한다는 거 알아? 나도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한데, 어른들은 우리한테 자세한 건 말 안 해주잖아. 대니도 자꾸 얼버무리기만 하고. 혹시 높은 데 올라가면 뭐 다른 게 보일까 그런 생각도 했었지."

"눈에 보이는 건 떠돌이들이 이미 건져가고 폐품만 남은 곳을 목적지로 삼지. 프림 빌리지에 대해 누군가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그런 폐허를 걷다보면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어, 타인의 무덤을 파헤쳐서 이곳의 삶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생각. 더스트 폴 이후로 세상은 예전보다도더 모순으로 가득해진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과 삶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어떤 기묘함. 어쩌면 이곳 프림 빌리지도 그런 장소일 수 있었다. 더스트 폴 이전에 여기 살았던 이들의 흔적일지도모르는, 오래된 옷가지나 낡은 가재도구를 발견할 때면나는 그들이 어디로 갔을지, 지금 살아는 있을지 짐작해보곤 했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 네가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모든 건 결과를 두고 말하는 것이니 네가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해야겠지. 그렇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 미어캣의 칼날이 닳아 있어서 넌 죽지 않았던 거야. 날카로웠다면 죽었겠지. 폭탄 로봇일 수도 있었어. 나오미, 다음에는 도망쳐야 해. 알겠지? 분명 네가 마을을 구한 건 사실이지만··"

"하지만 공개적으로 알려줄 순 없지. 그랬다간 레이첼이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눈치를 챌 테니까. 연금술사들이 제자에게 비법을 조심스레 전하듯이 그렇게 알려줘야해. 지금여기가 바로 그 고대의 비법 전수실인 거지. 네가 첫 제자인 거고. 가능하다면 다음 제자들도 가르쳐야겠지만."

"제조에 필요한 재료와 무게,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는것이 과학의 원칙이지. 하지만 이건 달라. 감추는 것이 널구할 테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야. 원칙이 네 약점이 되고, 편법이 네 무기가 되지. 이 비참한 시대가 끝날 때까지는 네 머릿속에 제조법이 완벽하게 들어가 있어야 해.
남이 볼 수 있는 기록은 절대 남기지 마. 아무리 신뢰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숨기는 게 좋아."

"제 생각은 분명해요. 우린 프림 빌리지를 지켜야 해요. 이 마을 밖은 아주 끔찍해요. 전 돔 시티의 사람들이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봤어요.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위해 절대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요. 인류를 구하겠다는생각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더스트에 버티는식물들을 가져가면, 그들은 횡재를 했거니 생각하며 뺏어가겠죠. 그러고는 우리를 죽일 거예요."

"돔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 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그래도 우린 식물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야 해."
"왜요?"
지수 씨가 짧은 침묵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거야."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그 식물들을 보며 고통은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과 늘 함께 오는 것이거나. 이 마을에 삶과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 식물이 나에게 알려준 진실은그랬다. 어느 쪽이든, 나는 더이상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저에겐 여기 하나면 충분한데요. 또다른 프림빌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곳,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의미 없는걸요."

나는 온실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 온실은 신전처럼보였다. 그러나 이제야 도달한 결론은, 신전을 지킬 사람들이 흩어지면 그 신전도 의미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그곳의 모든 이야기들이 막을 내리던 날,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프림 빌리지에 있는 내내 그 마지막날을 상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영은 나오미의 증언에 기반해, 그 온실 공동체가
‘프림(Forest Research Institute Malaysia, FRIM)‘이라는, 과거 쿠알라룸푸르 북서쪽의 국립공원 지역에 있었던 산림연구소 마을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당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겠습니다. 우리가 결국만나게 된 이유도요. 저는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같은 것을 쫓는 사람들이 하나의 길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고 믿거든요. 우리는 그 기이한 푸른빛에 이끌렸고, 또 같은 사람을 통해 연결되어 있네요. 그 사람의 생사를 알게 되면꼭 바로 알려주세요.‘

어떤 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바탕으로 결론을 내린다. 혹은 관측으로부터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확한 분석을 거쳐 귀납적으로 하나의 이론을이끌어낸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과학이 수행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떤 기묘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현상의 근거를 끈질기게 쫓아가보는 것 역시 하나의 유효한 과학적 방법론일지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식물들은 아주 잘 짜인 기계같단다. 나도 예전에는 그걸 몰랐지. 나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걸 알려준 녀석이 있었거든.‘

더스트에 취약한 사람들은 진작 다 죽었으니 살아남은사람들은 약하게라도 내성이 있었고, 그러니 몇 년은 살아남을 법도 했는데, 그런 공동체는 대부분 반년을 채 가지 못했다. 대개는 내분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일이었다.

지수가 정말로 레이첼에게 멸망에 대한 책임을 기대한것은 아니었다. 그가 솔라리타 연구소 소속이었다고 해도, 이 사태가 연구원 한 명의 의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솔라리타의 대책 없는 연구를 부추긴건 기후 위기를 간단한 솔루션 하나로 해결해보려는 데에얄팍한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 전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인류를 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건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돔 시티 안팎을 돌아다니며 지수가 도달한 결론은, 인간은 유지되어야 할 가치 있는 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해 지는 저녁, 하나둘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온기어린 이야기들을.

원예학을 전공한 아빠가 나에게 해준 대답은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라는 거였다. 지구 곳곳에실존하는 기이한 식물들에 대한, 끝없이 이어지던 이야기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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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으며 한해의 소망을 표현하기때문에 춘축문春祝文 이라고 부르기도한다. 이같은 글귀들을 대문이며 집안의 기둥과 문에 여기저기 붙인다. - P11

입춘春立春올해의소망을 대문에 붙이다
연일 영하로 뚝 떨어지는 날씨에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한낮에도 수은주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두툼한 겨울외투에 몸이 둔하다. 비둔한 몸놀림으로 천천히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뜻밖에 바람끝이 그다지 매서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난 겨울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준 나무들이 반갑다. - P13

해마다 겨울이 깊어질 때면 매화가 보고 싶어진다. 어떤 이는 매화에서 선비의 지조를 읽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매화를 아내 삼아한적한 호숫가에 은거하여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매화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뭐라 단언할 수 없는 마음속에서도 매화는 내 겨울의 연인이었다. - P13

퇴계는 임종할 때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고 한다. 그이의 인품과 덕은 고사하고 매화에 정성을 쏟은 것도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이제 뒤 집에 매화가 피었는가 수소문하는 도리 외에는 내가 할 일이 없을 듯하다. 매화 향기를 따라 술 한병 들고 가서 매화 구경을 하는 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호사가 아닐까 싶다. - P14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짙어진다. 올해는 입춘이 섣달에 들었다. 좀 이른 감이 든다. 아직 설날도 되지 않았는데, 입춘을 맞은목련은 봉오리를 곧추세운다. - P15

춘첩자에 담은 소망들 
막다른 골목에 이어진 대문 위로 춘첩자春帖(입춘방立春膀이라고도 한다)가 선명하다.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 먼지가 날린다. 금세붙여놓기라도 한 듯, 춘첩자의 먹빛에 윤기가 흐른다. 그리 잘 쓴글자는 아니지만, 그것도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달랑  넉 자만을 써놓은 것이지만, 볼수록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 P15

새봄을 맞으며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행운을 맞으려는 소망을담아 사람들은 춘첩자의 글귀를 지어 붙인다. 많이 알려진 춘첩자는 立春大吉 建陽多慶‘,‘國泰民安  家給人足‘,‘雨順風調 時和年豊‘과 같은 글귀다. 
‘입춘을 맞으니 크게 길하고, 봄이되니 경사가 많아라‘,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과 사람은 넉넉하기도 해라‘, ‘비와 바람 순조로우니, 시절은 조화롭고 올해도 풍년든다‘는 내용이니, 붙이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만하다. 봄을 맞으며 한해의 소망을 표현하기 때문에 ‘춘축문春祝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같은 글귀들을 대문이며 집안의 기둥과 문에 여기저기 붙인다. - P16

봉각 동쪽으로 어여쁜 해 막 오르자
향로 연기 아른아른 맑은 하늘에 흩어진다.
봄바람은 정말 임금님 뜻과 같아
곤궁한 마을 가난한 집에도 고루 불어주리.

麗日初升鳳閣東 爐煙細細散晴空
春風政似君王意 應遍窮村白屋中
임제, <입춘첩자 대전立春帖子大殿>, 
《백호집白湖集》권3  - P17

궁궐 대전에 붙이기 위한 춘첩 한시 작품이다. 봉각은 원래고려시대 문하門下省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는 모든 관아의 사무를 총괄하는 곳을 말한다. 대궐 건물 위로 해가 비치고 향로에서는연기가 아련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한편으로는 나른한 느낌으로,
또 한편으로는 우아한 필치로 궁궐의 정경을 화려하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했다. 어여쁜 일출을 맞아 한없이 기분 좋을 때 부는 봄바람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가. 세상 어디든 봄바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듯이, 임금의 은택역시 아무리 궁벽지고 가난한 삶에도 온화하게 미친다는 것이다.
지체의 차이에 상관없이, 빈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봄바람은 공평하게 불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봄을 맞는다. 그 봄처럼, 임금의은혜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감싸면서 우리의 삶을 생육해준다는 내용이다. - P18

흔히 사용되던 춘첩 대련으로 위에서 소개한 것 외에도 ‘壽山福海처럼 장수하시고바다처럼 복을 받으시라)‘  라든지가지 재앙은 물러가고 백 가지 온갖 복은 오라)‘ 같은 글귀도 많이 쓰였다.
草綠 南極壽星明과 같은 구절도 있다. ‘훤초萱草‘는  원추리를 말하는데 주로 집안의 내당화단에 많이 심었다. 집이 보통 남향이라고할 때 내당은 가장 깊은 후원에 속하므로 북쪽에 건물이 위치한다. - P18

그래서 ‘부당‘이다. 그곳은 나이 드신 여성들이 주로 거처했기때문에, 북당의 훤초는 나이 드신 어머니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또한 남극성은 보통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이라서 수성으로부른다. 그러니 ‘북당에 원추리 푸르고, 남극의 수성이 밝아라‘ 라는 말에는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 P19

이처럼 대궐이나 관청에서는 임금의 장수를 빌고 임금의 은혜가백성들에게 골고루 퍼져나가기를 기원했고, 일반 여염집에서는 부모님의 장수와 집안의 평안함을 비는 것이 보통이었다. - P19

재앙도 병도 없이 영화로움만 가득
하늘이 내리신 임금 은혜, 집안에 모였다.
게다가 느긋하고 한가롭게 늘그막 즐기니
분에 넘치는 이 내 생애, 더 바랄 게 없어라.

無災無病飽榮華 天賜君恩萃—家
兼得優閑娛晚境 更無餘望侈生涯

김안국金安國,  <임오년 입춘에 아이들이 문에 붙일 입춘 구절을 요청하길래 써서 주었다 壬午立春 兒輩請門帖句 書與>, 
《모재선생집慕齋先生集》권3  - P19

사물 때깔은 생생한 뜻 알아
조화로운 봄 기운은 지극히 어진 마음 펼친다.
새롭게 삼라만상 열치고
남은 은택 흘러서 사람들에게 미치기를.

物色知生意 陽和布室仁
惟新開萬化 餘澤及流人
김구金絿 <문에 붙일 입춘 글귀를 쓰다題立春帖戶>, 
<자암김선생문집自菴金先生文集》권11 - P20

사실 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겨울인 것만은 부인할 수없다. 
입춘立春의 ‘‘은 ‘곧, 즉시‘ 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서다‘ 는 뜻과는 달리 쓰인 말이다. 그러니 ‘입춘‘은 곧 봄이된다는 의미니, 봄의 문턱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점을 지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봄을 뜻하는 ‘을 썼다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 P21

우를 종종 본다. 어른들이 이따금씩 하시는말씀 중에 ‘글씨 잘 쓰면 고생한다‘는 게 있다. 아마도 글씨를 잘 쓰면 고급 관리가 되기보다는 실무를 담당하면서 고생만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기도 한다. - P21

그렇지만 다른 쪽에서는 ‘신언서판身言書判‘ 이라고 해서, 글씨를 잘 쓰는 능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 중의 하나로 꼽히던 적도 있었다. - P22

우리 속담에 ‘가게 기둥에 입춘‘ 이라는 것이 있다. 춘첩자를 써붙인다고 하니 가게 기둥과 같이 초라한 곳에도 큼지막하게 써 붙였다는 것이다. 이는 격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한 치장을 한 경우를말하지만, 한해살이가 잘 될 수 있도록 비는 의미에서 붙이는 것이니 가게 기둥이면 어떻고 곳간 문앞이면 어떻단 말인가. 소망을 담아 붙이는 마음이 참으로 소중한 것 아닌가. - P23

붉은 매화 한 송이, 입춘을 장식하다 

간밤 샛바람에 북두칠성 바뀌더니
길섶 버드나무에 눈이 막 녹았다.
새벽 되자 나무 한그루 흐드러진 살구꽃처럼
작은 다리 저편 외로운 마을 향해 피어났다.
분명 이는 조물주가 성근 모습 싫어해서
일부러 때깔을 어여쁜 꽃으로 도와준 것일 테지.
푸른 가지와 잎사귀 구분할 필요 있겠는가
온갖 꽃다지 속에서 최고의 지위 뺏았는걸.

昨夜東風轉斗杓  陌頭楊柳雪纔消
曉來一樹如繁杏 開向孤村隔小橋
應是化工嫌粉瘦 故將顏色助花嬌
青枝綠葉何須辨 花卉叢中奪錦標

원희元淮 <입춘날 붉은 매화를 감상하며立春日賞紅梅> - P21

하루에 잠깐 드는 볕을 받으며 차가운 풍매화속에서도는 피어난다. 우리의 생도 그렇게 잠깐 드는 봄볕으로 일년의 험난한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은 아닐까. 입춘이 반가운 것은, 어쩌면 잠깐의 봄볕을 한껏 받아보고 싶은 소망 때문이리라.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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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버카
호버카는 SF소설 작품에 나오는 이동용 차량이다. 현재의 자동차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는 이동 수단인데, 보통의 차량처럼 조종을 해야한다. 차이점은 나는 효과뿐이다.

실제 날 수는 없으나, 추진력을 사용해 지면으로부터 약간 떠 있게 된다. 반중력 원리 같은 것이 사용되어서 일반 차량에서 발생하는 마찰력을 없애게 된다. 공기부양차와는 달리 먼지를 날리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수면이나 평평한 땅위를 떠서 움직이는 호버 크래프트가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호버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호버카는 가상의 장치에만 사용되는 말이다. 스타 워즈나 스타트랙 같은 SF영화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 김초엽 첫 장편소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마침내 재건하는 사람들의 마음."

낡은 차가 덜컹거리며 오르막 흙길 앞에 멈춰 섰다. 끊겨 있는나무 계단, 낡은 이정표와 부서진 난간들. 한때 국립공원이었던이곳은 이제 인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흩어진 자갈과 바위만 가득했다. 길 양옆의 고무나무들은 줄기 표면이 까맣게 변했고 발톱에 긁힌 듯한 겉면에 말라붙은 수액만 섬뜩한 흰색이었다. 아래로 축 늘어진 야자 잎들은 어두운 잿빛으로 죽어 있었다.
"돌핀을 가지고 있었으면 저 안쪽까지는 올라갈 텐데."

"흙이 말라 있어. 비가 오랫동안 안 왔나봐."
수년간 더스트가 증식하며 기후도 엉망이 되었다. 바람도, 구름도 예측 불가능했다. 몇 달 사이 더스트 농도가 짙어지면서 말레이반도 남부에 가뭄이 이어졌다. 바싹 마른 흙으로 보아 원래열대우림이었던 이 숲도 지금은 건조해진 것 같았다.

더스트가 휩쓸고 간 숲은 죽음 같은 적막으로 덮여 있었다. 야생동물은 물론이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수북히 쌓인 낙엽 더미에 발이 푹푹 빠져 들었다. 땅 위로드러난 거대한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나오미는 아래만 보고 걸었다. 한 시간쯤 걸었는데도 숲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빼곡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점점어두워졌다.

"조심 좀 해. 내성이 널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지켜주진 않아."
나오미는 어깨를 으쓱하고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러고는 다시한 걸음 물러나 사체와바닥을 살폈다. 기묘한 점이 한 가지 더눈에 띄었다. 오랑우탄의 넓적다리 일부분이 손바닥만한 잎을가진 덩굴식물로 뒤덮여 있었는데, 마치 오랑우탄이 죽은 이후에 자라난 것 같았다. 나오미가 중얼거렸다.

"난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렇지? 숲 밖으로 나가도 안개는 언제든 찾아올거야. 평생 도망치며 살 수는없어. 나오미 너는 그럴 수 있지만, 난 그럴 수 없어. 내가 마지막으로 진실을 확인하게 해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거나 예쁘거나, 하다못해 약으로 쓸 수 있는 식물 외에는 더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같았다.

"그럴 땐 역시 ‘생물다양성‘이지. 생물다양성이 우릴 구원할거야. 더스트 종식 이후 가장 먼저 재건된 지역도 생물다양성이잘 보존된 지역이었다, 뭐 이런 얘기라도 써놔야지. 더스트 폴이또 터질 수도 있다고 겁도 좀 주고."

강원도 해월, 폐허에서 유해 잡초 이상 증식······ 인근 마을 민원 쇄도해

산림청과 회의한다는 일이 저건가? 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긴 더스트생태연구센터이고, 잡초를 다루는  곳은 아닌데. 더스트 시대나 재건 직후에 번성했던 잡초라면 모를까. 그래도 윤재와 박 팀장 정도면 식물 관련 문제에서 여러 해결책을 알 테니조언을 구하러 온 것일 수도 있었다.

2129-03-02, 해월 폐기 구역 B02 인근, 산림청.
Hedera trifidus
VOCs, 토양, 잎·줄기추출액 성분 분석 부탁드려요.
"혹시 제 자리에 있는 이거, 윤재언니 샘플이에요?"
"그거 아영 씨한테 좀 부탁할게요. 미안, 다들 바빠가지고."

괴담이라는 것들은 대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현상을 공포와 미스터리로 얼버무리는 이야기다. 딱히 창의적인 발상의 씨앗이 되지도 않는다. 읽고 나면 어딘가 으스스하고 찝찝한 기분이 드는데, 그 중독적인 상태가 또다른 괴담들을 읽도록 이끌 뿐이다. 아영은 여기서 온갖 이상한더스트 크리처들에 대한 제보를 많이 읽었지만, 실제로 학계에서 그런 존재를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확인해서 나쁠건없지.‘

[악마의 식물이 내 정원에 자라고 있는데, 이거 혹시 멸망의 징조 아니야?]

알려진 영어 명칭은 모스바나, 송악속의 상록성 덩굴식물로 흔히 키우는 관상용 담쟁이의 근연종이다. 더스트 이전 식물들에대한 자료가 많이 사라진 탓에, 기원이 어디인지는 정보가 없었다. 다른 식물들에 피해를 입힐 정도로 강한 침투성 식물이고,
땅에서도 넓게 퍼져 잘 자라지만 주로 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다. 독성이 있어 피부염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식물의 거의모든 부위가 사람에게 위험하며 특히 잎과 열매는 더 강한 독성을 가진다.
"생각보다는 평범한데?"

모스바나는 재건 직후에는 지구상의 전 대륙에 퍼져 있을 정도로 엄청난 확장성을 자랑했지만, 생태계 다양성이 회복되면서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급격히 밀려났고,현재는 일부 지역에 정착한 사례 외에는 흔히 발견되지 않았다.그만큼 한번 보이면 ‘왜 이게 갑자기 나타났지?‘ 하는 의문을 생기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지만 그 생존력이 어마어마한 만큼, 일단 한번 모스바나가 자랐던 장소라면 오랫동안 땅속에서동면 상태로 있던 씨앗들이 싹을 틔우거나 하는 일은 얼마든지가능했다.

"만약 누가 마음먹고 벌이는 일이면, 범인을 특정하는 데에저희가 도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파악할수는 있겠지만 저희가 수사기관은 아니니까요. 생태학적인 추적도 장기간 지켜봐야 의미가 있는 거고요. 어쨌든 인위적인 사건인지, 자연적인 상황에 의해 일어난 일인지 같이 조사해볼 테니자료를 공유해주세요. 방제 대책도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지 내부 의견을 구해볼게요."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아영이 네가 아직이해하기는 어렵지?"

결국은 더스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밌지. 정적이면서 아주 역동적이야. 나는 이 정원에 손을 안 대는데도, 자신들만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루고 있지. 참 흥미로운 존재들이야."

"할머니는 타운의 어른들이 위선자라고 말했지만, 어른들만그런 건 아니에요. 아이들도 다 조금씩 비겁하거든요. 여기 아이들은 제가 내년이면 여길 떠난다는 걸 알아서 저를 더 쉽게 괴롭혀요. 도와주는 애들도 없고요. 정작 그러면서 타운 어른들에 대한 비난은 잘 거들죠. 그래서 전 사람은 누구나, 모두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위치에 따라 좋은 사람인 척할 뿐이라고요."

"나도 어느 순간 깨달았지. 싫은 놈들이 망해버려야지, 세계가 다 망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오래 살아서, 절대 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 대신 싫은 놈들이 망하는 꼴을 꼭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살 수 없었지. 도저히 살 수 없었는데, 그런데………… 돔 밖에도사람은 있었어. 사람이 아닌 것들도 있었고, 어떻게든 악착같이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었단다."

"식물들은 아주 잘 짜인 기계 같단다. 나도 예전에는 그걸 몰랐지. 나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걸 알려준 녀석이 있었거든."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미생물이나, 땅을 헤집고 다니는 벌레들, 바다와 호수의 조류,축축한 곳마다 균사를 뻗치는 균류.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는 더스트 시대가 끝난 이후 가장 먼저 재건된E도시였다. 동시에 멸망이전의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었고,더스트생태학에 대한 연구도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다. 재건 육십 주년 기념 생태학 국제 심포지엄이 이곳에서 열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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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스카 라이초(平塚雷鳥 1886~1971) 여성 해방운동가이자 『청탑』의 창간인. ‘청탑青鞜’은 19세기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신여성을 지칭하던 ‘블루스타킹’을 한자어로 바꾼 단어다.

오스기 사카에(大杉栄 1885~1923), 아라하타 간손(荒畑寒村 1887~1981)은 정치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일본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에 큰 궤적을 남겼다.

「옥중의 여자가 남자에게」라는 단편소설로 일본 사회에 낙태 논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편집 여담

마키노 신이치牧野信一
마키노 신이치는 191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사일보사에 입사해 잡지 『소년』과 『소녀』 편집자로 일하며 ‘마키노 시치로’라는 필명으로 『소녀』에 소녀소설을 썼다. 동시에 동급생 열세 명과 함께 동인지 『13인』을 창간했다. 이듬해 8월 「볼록거울」로 이름을 알리는 한편 『소녀』의 투고자였던 스즈키 세쓰와 교제를 시작했다. 「공원에 가는 길」, 「비탈길 고독 탐미」를 잇따라 발표하며 신진 작가로 인정받자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오다와라로 내려가 결혼, 전업 작가가 됐다.
「편집 여담」은 『소년』, 『소녀』에 실린 편집 후기에서 발췌한 글이다.

히나마쓰리
일본에서 3월 3일에 여자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축제로 전날부터 붉은 제단 위에 히나 인형과 복숭아꽃을 장식하고 쑥떡, 백주, 소라, 조개 같은 음식을 올린다.

펜을 쥐고

다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
다네다 산토카는 서른한 살이던 1913년 3월 하이쿠 잡지 『층운』에 처음으로 하이쿠를 투고하는 한편 와카 동인으로 활약했다. 당시 『층운』은 가인 오기와라 세이센스이가 만들던 잡지로 보다 자유로운 하이쿠와 와카를 지향했다. 계절어나 음수율 같은 정형성을 따르는 정통 하이쿠를 짓던 그에게 오기와라 세이센스이의 ‘자유율 하이쿠’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자신의 운율을 중시하며 하이쿠와 와카를 읊기 시작했고 1916년 3월 『층운』의 첫머리를 장식하며 자유율 가인의 대명사가 됐다. 「펜을 쥐고」는 1913년 4월 와카 회람잡지 『사십 여인의 사랑』에 실린 글이다.

소식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년 이와테현 출생. 1902년 중학교를 중퇴한 뒤 도쿄로 올라와 일본 시가문학에 혁신을 불러온 잡지 『명성』에 투고하는 한편 동인 ‘신시사’에 참여했다. 1905년 열아홉 살에 첫 시집 『동경』으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생계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1908년 『명성』이 폐간되자 이듬해 기타하라 하쿠슈, 히라이데 슈 등과 함께 낭만주의 문예지 『묘성』을 창간했다. 1910년 정형성이 아닌 자율을 중시하며 솔직한 감성을 읊은 가집 『한 줌의 모래』를 펴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일본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 1912년 4월 13일 스물여섯 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죽음을 앞둔 심정을 소박한 언어로 노래한 가집 『슬픈 완구』가 출간됐다.
「소식」은 1909년 2월 잡지 『묘성』에 실린 편집 후기다.

편집자 시절

우메자키 하루오梅崎春生
우메자키 하루오는 1946년 9월 자신이 편집을 담당한 『순진』 창간호에 「사쿠라섬」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업 작가로 활동했다. 『군상』과 첫 인연을 맺은 작품은 미완의 연작 「해시계」로 격월로 네 번에 걸쳐 연재되다가 중지됐다. 이후 단편 「어떤 청춘」, 「S의 배경」, 「모델」을 발표하는 한편 1955년 미군 비행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스나가와 주민의 이야기를 다룬 르포르타주 「스나가와」를 써서 화제를 모았다.
「편집자 시절」은 1961년 10월 잡지 『군상』에 실린 글이다.

나는 그해 12월에 아카사카서점을 그만두었다. 이제 글로 먹고살 수 있을 테니 자른다고 에구치 편집장이 말했으니 ‘잘렸다’고 봐야 하나. 글로 먹고사는 일은 굉장히 힘들었다. 이듬해 1년은 가난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주문이 없진 않았건만 일찍 슬럼프에 빠져서 이후 15년간 쭉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다.

편집 당번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
1890년 도쿄도 출생. 1917년 도쿄대 불문과에 입학해 프랑스문학과 러시아문학에 심취했다. 1919년 파리로 유학 가서 연극을 공부한 뒤 1923년 귀국, 이듬해에 희곡 「낡은 완구」를 발표하며 극작가로서 인정받았다. 1930년 『유리 하타에』를 펴내며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1936년 기쿠치 간,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과 함께 『문예간담회』를 창간했다. 1937년 작가 구보타 만타로, 시시 분로쿠와 함께 극단 ‘문학좌’를 세우고 새로운 연극 운동을 벌이며 연출가로서 수많은 신인을 길러냈다. 1950년 미시마 유키오 등과 ‘구름회’을 만들어 소설가의 희곡 집필을 권유했다. 1954년 3월 4일 연극 연습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이튿날 예순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편집 당번」은 1936년 2월 잡지 『문예간담회』에 실린 글이다.

새하얀 지면

『반장난面白半分』
작가이자 편집자 사토 요시나오가 ‘재밌어서 견딜 수 없는 잡지’를 만들자며 소설가 요시유키 쥰노스케 등의 도움을 받아 창간한 월간지. 1972년 1월호(창간호) 96쪽, 150엔으로 3만 부 발행했으며 편집장은 반년마다 이노우에 히사시, 엔도 슈사쿠 등 당대 인기 작가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1972년 7월호에 나가이 가후가 썼다고 알려진 에로소설 「작은 방의 맹장지 속」(1907)을 원문 그대로 실어 외설문서 판매죄로 당시 편집장 노사카 아키유키, 발행인 사토 요시나오가 기소되었다. 소설가 마루야 사이이치가 특별 변호인으로, 유명 작가들이 증인으로 나서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사회에 ‘성적 표현의 자유’라는 화두를 던진 이 사건은 결국 1980년 11월 28일 유죄로 최종 판결이 났고, 이 소식을 알린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새하얀 지면」은 1977년 9월 『반장난』에 실린 내용이다.

하나모게라어는 외국어처럼 들리지만 실제 아무 뜻도 없는 가짜 외국어를 가리킨다. 개그맨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약한 다모리(タモリ 1945~ )가 처음 방송에서 말한 이후 하나의 개그 코드로 자리잡았다.

작가 명단에서 빼버릴 테야

호리 다쓰오堀辰雄
호리 다쓰오는 고등학교 시절 훗날 러시아문학 번역가로 명성을 떨치는 진자이 기요시를 만났다. 진자이 기요시는 어릴 적부터 수학을 좋아해 수학자를 꿈꾸던 호리 다쓰오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고, 두 사람은 평생 벗으로 지내며 여러 동인지를 함께 만들었다. 그중 『문학』은 요코미쓰 리이치를 중심으로 호리 다쓰오, 진자이 기요시, 가와바타 야스나리, 요시무라 데쓰타로 등 일곱 명의 작가가 뜻을 모아 1929년 창간했으며 1930년 3월 제6호로 종간됐다.
「작가 명단에서 빼버릴 테야」는 1929년 『문학』 편집을 담당하며 진자이 기요시에게 보낸 편지다.

출간 연기에 대해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
『문장독본』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알려주는 일종의 작법책으로 1934년 11월에 출간됐다. 내용은 크게 문장이란 무엇인가, 문장 단련법, 문장의 요소로 나뉜다. 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수만 부가 팔려나갔고, 이후 1950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신문장독본』을, 1959년 미시마 유키오가 『문장독본』을 출간하는 등 일본 출판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출간 연기에 대해」는 1934년 10월 잡지 『중앙공론』에 실린 글이다.

아무도 안 봐, 아무도.그러니 신경 쓸 것 없잖아

『작가의 마감』은 발문도 해설도 필요 없는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줄지어 나와서 이런 심약한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쓰려고 마음먹은 날이 되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위경련이 일었다."(사카구치 안고)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요코미쓰 리이치) "14일에 원고를 마감하란 분부가 있었습니다만, 14일까지는 어렵겠습니다. 17일이 일요일이니 17일 또는 18일로 합시다."(나쓰메 소세키) "열흘이나 전부터 무엇을 쓰면 좋을지 생각했다. 왜 거절하지 않았을까."(다자이 오사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불치병을 선고받은 환자가 거친다는 다섯 단계를 정식화한 바 있는데, 혹시 마감을 뭉갠 작가들이 그와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지 않을까? ①부정: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임무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②분노: 왜 이 청탁을 수락한 거야, 바보같이! ③타협: 그래도 먹고 살려면 해야 하는 일이야. 약속을 어길 수는 없어. ④우울: 대체 나는 왜 이런 일을 매번 해야 하는 걸까?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아. ⑤수용: 이게 내 팔자니 할 수 없지.

글이란 내 마음대로 써서, 내 마음대로 발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터넷이 이 두 가지 자유를 마련해주었다지만, 글을 써서 고료를 받아야 하는 직업 작가들 거의 모두는 이 두 가지 자유에 괘의치 않는다. 아니, 괘의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실은 저 두 가지 자유를 뿌리쳐야만 한다.

직업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고 자기 마음대로 제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경이면 오히려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퇴출을 맞이한 상황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직장인들은 출근과 업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소원이지만, 그 두 가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을 보통 ‘실업자’라고 한다. 바로 그런 때문에 직업 작가들은 자유가 아닌 주문 제작과 원고 마감이라는 이중 구속에 목숨(생계)을 걸게 된 것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에게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마감 스트레스가 있었을 법하지 않다. 주문 제작과 원고 마감은 모두 출판 산업과 돈을 내고 글을 읽는 독자가 생기고부터 생겨난 절차다.

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받고 잊어버리지 못한,
변소 휴지의 효용성에서 우연히 벗어난 원고 청탁서
나는 이걸 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힌다.

잡지 편집자들에게 원컨대

내게 보내는 청탁서엔 이렇게 써주오
모월 모일까지
당신을 죽여달라거나
날더러 죽으라고!
그리고 덧붙여 주서하시오
마감일을 지켜달라고!

누굴 죽일 만한
열정과 고뇌가 없는 곳엔
희망도 없는 것인가?

장정일

마감: 1. 하던 일을 마물러서 끝냄. 또는 그런 때.
        2. 정해진 기한의 끝.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마감’의 뜻이다. 일본어로는 ‘しめきり(시메키리)’, 영어로는 ‘deadline(데드라인)’.

다자이 오사무는 "어떻게든 꾸밈없이 쓸 수 있는 경지까지 가고 싶다. 단 하나의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는데, 글을 팔아 먹고사는 장사꾼인 나는 어떻게든 『작가의 마감』이 2쇄, 3쇄, 4쇄를 찍어 지금 남몰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가 시리즈’를 엮고 번역하는 것이 지금 단 하나의 즐거움이다.

안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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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4절기의 마지막,
가장 춥다는 大寒이다.
영상 5도를 기록하고 있다.
올 겨울 제일 따뜻한거 같다.
비가 제법 내린다.
따뜻한 멸치국수를 점심으로 아들과 아내와 함께 곱배기로 먹는다.
딸은 3주 동안 영국으로 놀러갔다.
부러운 일이다.
비의 도시 런던엔 비가 안 온단다.
같이간 친구가 어제 핸드폰을 쓰리당했단다.
대영제국 시민들이 왜 그러는 것인까?
선진국이라, 세계를 제패했다 떠드는 무리들이, 일등시민이라 자부하는 그들이...
그렇지 그때도 그들은 도적이었다.
지금도 한낯 도적일뿐이다.

뱃속이 뜨끈하니 세상 부러울게 없다.
나는 비오는 날이 좋다.
비 맞고 돌아다는 것도 좋다.

비가 내리고 있다 - 미야모토 유리코

가는 빗발로 비가 내리고 있다.
어두컴컴한 서재 책상 앞에 평소처럼 앉아 나는 눈앞에 있는 단풍나무의 말로 못 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다.

정말로 아름답다.

아주 선이 얇게 갈라진 어린잎의 모임.
잎 하나하나가 모두 옅은 콩색을 한 채로 둥글게 휘듯이 모인 표면에는 비에 젖은 둔은색과 짙은 자색이 풍기고 있다.
가는 잎 끝에 점점 모여가는 작은 물방울 빛.
잎에 중첩되어 만들어진 향기로운 그림자.

입에 전해지지 못할 정도의 부드러움과 약한 빛을 가진 꺼림칙할 정도의 둥근 윤곽은, 안개 낀 것처럼 비 내리는 하늘과, 주위의 검은 선과 구별되어 있다.

나는 가만히 지켜본다.

끊임없이 주륵주륵……주륵주륵……내리는 비는 저 나무 위에나 어떤 나무 위에나 똑같이 내리고 있건만, 단풍나무의 어떤 부분에도 보이지 않는 미동마저 일으키지 않은 채 무서운 조용함을 고수한다.

이 침착한 광경이란.

저 생기 넘치는 단풍이 꿈적도 하지 않는 건 ―

만약 손가락을 얹으면 따스한 핏기운이 느껴지는 인간의 피부처럼 탄력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풍부함‘을 가진 나무는 내게 식물보다는 오히려 동물――마치 여자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아름답다.

너무나 조용하다.

그 주위서 마치 동떨어진 듯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모두 저 몸의 근처서 울리고 움직이며 싸우는 현재의 모습서 벗어나 비도 내리지 않고 빗방울도 떨어지지 않는 굉장히 조용한 세계에 자리한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애정과 열린 마음으로 나무를 보는 사이에 밀어낼 수 없는 감격이 서서히 마음 안쪽에서 뿜어져 저 잎끝에서 가장 반대편의 잎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펼치게 되었다.

이 나무는 조용하다.

내 마음도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그렇건만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다.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1899년 도쿄도 출생. 1916년 어린 시절 아사카 할머니 댁에서 본 시골의 삶을 묘사한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발표해 천재 작가로 주목받았다. 1924년 자전적 소설 『노부코』를 쓰는 한편 1927년 소련에 다녀온 뒤 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 일본공산당에 가입했다. 1932년 문예평론가이자 공산주의자인 미야모토 겐지와 결혼했지만, 이듬해 그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고 자신도 검거와 석방을 거듭한 끝에 집필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번역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가며 1945년 남편이 석방될 때까지 구백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1947년 패전 후 피폐해진 사회를 여성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반슈평야』를 펴냈다. 1951년 1월 21일 쉰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일곱 번째 편지」는 20년간 남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감옥으로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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