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전사
마이클 크라이튼 외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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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서] 『13번째 전사』
― 야만인의 땅에서 전우를 만나다

“내 이름은 아메드 이븐 파할란, 이븐 알라바스, 이븐 라시드 이븐 하마드.”

1999년 존 맥티어난 감독의 『13번째 전사』는 오래전에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거칠고 묵직한 바이킹 액션영화였다.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벤돌, 곰가죽을 뒤집어쓴 전사들, 산등성이를 거대한 불의 용처럼 내려오는 횃불의 행렬,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발할라를 이야기하는 불바이와 북구 전사들의 모습이 강하게 남았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이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실제 10세기 아랍 여행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의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 위에 고대 영웅서사시 『베오울프』의 이야기를 얹었다. 실존 인물을 전설 속으로 밀어 넣고, 신화 속 괴물을 인간으로 바꾸고, 서로 말조차 통하지 않던 아랍인과 북구인들을 열세 명의 전사로 묶는다.

한쪽에는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바그다드에서 온 시인 아메드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가 처음에는 야만인이라고 여겼던 북구의 전사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사람인지 괴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벤돌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영화는 단순하지만 꽤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고, 믿는 신도 다르고, 살아온 방식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과연 서로를 이해하고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가.

『13번째 전사』는 그 답을 열세 명의 전사들에게 맡긴다.


1. 바그다드의 시인, 사실상의 유배길에 오르다

아메드 이븐 파들란에게 세상의 중심은 바그다드다. 글을 읽고 시를 쓰며, 예법과 문명을 알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권력자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은 것이 문제가 되면서 머나먼 북쪽으로 사절 임무를 받아 떠나게 된다. 명목은 외교사절이지만 영화 속 아메드의 처지에서 보면 사실상 추방이고 유배다.

그렇게 문명의 중심에서 살던 시인이 자신이 ‘야만인의 땅’이라고 여기는 곳으로 밀려난다.

아메드가 처음 만난 북구인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너무 다르다. 술을 마시고, 큰소리로 웃고, 싸우고, 죽은 왕을 불태우며 죽음을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인다. 식사와 위생에 관한 습관조차 아메드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에게 북구인들은 야만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구인들에게도 아메드는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들보다 작은 몸집에, 그들이 보기에는 개만 한 아라비아 말을 타고 나타난 남쪽 사람이다. 커다란 북구식 검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본다.

영화는 바로 그 거리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아메드가 북구인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생각하면 처음의 이 거리감이 더욱 중요하다.

처음에는 문명인과 야만인이었다.

마지막에는 전우가 된다.


2. 열세 번째 전사는 북구인이 아니어야 한다

불바이가 등장하면서 아메드의 개인적인 유배 이야기는 갑자기 영웅서사로 넘어간다.

불바이는 북구 전사들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그가 말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나 용감한지 떠벌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끊임없이 명령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판단을 기다리고, 싸움이 시작되면 그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다.

그런 불바이에게 흐로스가르의 나라에서 전령이 찾아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마을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며,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무녀가 뼈를 던져 점을 친다.

그곳으로 갈 전사는 열세 명이어야 한다.

전사들이 하나씩 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열세 번째.

열세 번째 전사는 북구인이 아니어야 한다.

그 한마디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던 아메드가 갑자기 전쟁에 끌려 들어간다. 아메드는 전사가 아니다. 불바이나 다른 북구인들처럼 전투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음을 명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열세 번째 전사가 된다.

그래서 『13번째 전사』는 처음부터 강했던 영웅들이 괴물을 무찌르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사가 아니었던 아메드가 어떻게 그들 사이의 한 사람이 되고, 마침내 서로 목숨을 맡기는 전우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3. 벤돌, 괴물의 얼굴을 한 인간

흐로스가르의 사람들에게 벤돌은 평범한 적이 아니다.

안개와 함께 나타난다. 사람을 죽이고 머리를 잘라 가져간다. 시체를 먹는다.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공격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수많은 횃불을 들고 내려오는 모습은 거대한 불의 용처럼 보인다.

더 무서운 것은 싸움이 끝난 다음이다.

분명히 죽였는데 벤돌의 시체가 남아 있지 않는다. 자기편의 시체를 모두 가져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벤돌은 점점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다.

칼에 맞아도 죽지 않는 놈들.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놈들.
죽은 사람을 먹는 놈들.
곰인지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놈들.

공포는 실제보다 더 큰 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불바이와 전사들이 벤돌을 상대하면서 그 공포의 껍질이 하나씩 벗겨진다. 그리고 결국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너무나 단순하다.

벤돌은 인간이다.

곰가죽을 벗기면 사람의 얼굴이 나온다. 칼에 맞으면 피를 흘리고 죽는다.

나는 이 순간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괴물이라고 믿는 동안에는 싸울 방법이 없다.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싸울 수 있다.

『베오울프』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괴물 그렌델을 영화는 이런 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진짜 괴물을 등장시키는 대신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괴물이라고 믿게 된 인간 집단을 등장시켰다.

괴물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은 곧 공포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이다.


4. 아메드는 귀로 배우고, 불바이는 눈으로 배운다

이 영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북구인들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던 아메드가 모닥불 주변에 앉아 그들의 말을 계속 듣는다.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이다. 하지만 아메드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반복되는 말을 듣고, 같은 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연결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단어가 들린다.

조금 뒤에는 문장이 들린다.

마침내 자신과 자기 어머니를 두고 농담하는 북구인의 말을 알아듣고 그들의 언어로 받아친다. 놀란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말을 배웠느냐고 묻자 아메드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들었다고.

실제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외국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것은 영화적 과장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현실적인 어학학습을 보여주려는 장면이 아니다.

아메드가 북구인들의 세계 바깥에서 구경하던 사람에서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아메드만 배우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메드가 자기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불바이가 아메드의 글에 관심을 가진다.

불바이는 아메드에게 소리를 글자로 그릴 수 있느냐는 식으로 묻는다. 말을 소리로만 기억하는 사람의 눈에 문자는 ‘소리를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메드가 땅에 글을 쓴다.

불바이는 그것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도 그 모양을 기억해 바닥에 써본다. 아랍어를 유창하게 익힌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메드가 사용하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스스로 따라 써본 것이다.

이 장면이 참 좋다.

아메드는 귀로 북구인의 세계에 들어갔고, 불바이는 눈으로 아메드의 세계에 들어가려 한다.

한쪽만 배우는 관계가 아니다.

아메드가 북구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불바이가 아랍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문화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다만 상대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들여다본다.

나중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이가 되는 출발점은 어쩌면 칼을 함께 휘두른 순간보다 이런 작은 장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5. 벤돌보다 먼저 무너져 있던 나라

그러나 벤돌이 강한 이유를 벤돌에게서만 찾으면 안 된다.

흐로스가르의 나라는 이미 내부에서 약해져 있다.

마을은 제대로 된 방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더 답답한 것은 밖에서 벤돌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데도 안에서는 권력과 후계를 둘러싼 의심과 다툼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해 불바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불바이가 도착해 백성들의 신뢰를 얻자 이번에는 불바이를 경계한다.

저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왕국을 차지하려는 것인가.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왕자리 걱정부터 한다.

나는 이 대목이 단순한 곁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벤돌은 단결해 있다.

흐로스가르 쪽은 갈라져 있다.

벤돌은 자신들의 지도자와 신앙을 믿는다.

흐로스가르 쪽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 상태에서 벤돌의 정체조차 인간인지 괴물인지 모르니 공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바이가 상대해야 했던 것은 벤돌의 칼만이 아니었다.

괴물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 서로를 믿지 못하는 내부의 불신까지 함께 상대해야 했다.

외부의 적 앞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권력욕과 의심.

어쩌면 벤돌보다 먼저 이 나라를 약하게 만든 진짜 적은 그쪽이었는지도 모른다.


6. 모두 죽일 수 없다면 뿌리를 친다

불바이는 벤돌을 한 명씩 모두 죽여 전쟁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열세 명의 전사가 아무리 강해도 수적으로 압도적인 벤돌족 전체를 칼로 베어 없앨 수는 없다. 첫 전투부터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그러자 방향이 달라진다.

벤돌을 움직이는 뿌리를 찾아야 한다.

정신적 중심인 ‘어머니’, 그리고 뿔을 쓴 군사적 우두머리.

그 둘을 없애야 한다.

불바이 일행은 벤돌이 숨어 사는 동굴까지 들어간다. 폭포 뒤에 감춰진 동굴 안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상상했던 벤돌의 세계가 실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뼈와 시체, 식인의 흔적, 그리고 그 집단의 중심에 있는 벤돌의 어머니.

불바이는 마침내 그녀를 죽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에 당한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불바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런데 벤돌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벤돌을 전투로 이끄는 우두머리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에서 불바이는 죽어가는 몸으로 다시 일어나 그 우두머리와 맞선다.

우두머리가 죽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벤돌의 전사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싸움을 멈춘다.

그리고 물러난다.

열세 명의 전사가 벤돌족을 몰살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움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었던 정신적 중심과 군사적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이 전쟁의 승리는 숫자의 승리가 아니다.

적의 뿌리를 찾아 끊어낸 승리다.


7. 두 개의 기도, 그리고 불바이의 마지막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아메드는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한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적어두었던 기도문이 지금 다시 보아도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생각했던 모든 것과
생각하지 못한 모든 것,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과
말하지 않았던 모든 것,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과
행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신이시여, 부디 용서하소서!

아메드의 기도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는 전혀 다른 신을 믿는 북구 전사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보라, 저기 나의 아버지가 보인다.
보라, 저기 나의 어머니와 자매들, 형제들이 보인다.
보라, 태초까지 이어지는 내 민족의 혈통이 보인다.
보라, 그들이 나를 부른다.
그들은 내게 그들 가운데 자리를 잡으라 한다.
발할라의 전당에서,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그곳에서.

나는 이 기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살려달라는 말이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적을 모두 죽이게 해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다.

대신 죽은 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말한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있고, 태초부터 이어져 온 조상들이 기다리는 곳.

발할라의 전당.

죽음을 피하려는 기도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기도다.

이슬람교도인 아메드는 발할라를 믿지 않는다.

북구인들은 아메드가 믿는 알라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전투를 앞둔 순간 두 기도는 이상할 정도로 닮아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믿는 신과 죽은 자들에게 마음을 맡긴다.

같은 신을 믿어서 전우가 된 것이 아니다.

믿는 신이 다른 상태 그대로 서로를 위해 싸운다.

그리고 불바이는 이미 죽어가고 있다.

벤돌의 어머니에게 당한 독이 몸에 퍼져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워서 죽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자 불바이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나는 이 장면 때문에 불바이를 단순히 힘센 바이킹 전사로만 볼 수가 없다.

그에게 지도자는 뒤에서 사람들에게 싸우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앞에 서는 사람이다.

불바이는 벤돌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린다.

그 순간 벤돌들은 싸움을 멈추고 물러난다.

나라를 구한 뒤 불바이도 조용히 죽는다.

왕좌처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전 전사들이 읊었던 기도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발할라의 전당에서,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곳.

실제 바이킹들이 저 기도문을 그대로 읊었는가 하는 역사적 문제와는 별개다.

영화 속 불바이에게만큼은 그 기도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북구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바라보던 아메드도 이제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본다.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고, 결국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들이다.

종교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살아온 세계도 달랐지만, 이제 그 차이보다 함께 흘린 피가 더 중요해졌다.

바그다드의 시인은 그렇게 열세 번째 전사가 되었다.


8. 볼가강의 롱십, 그래도 이것만은 못 넘어가겠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지도를 한번 펼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불바이의 배다.

실제 이븐 파들란이 10세기 볼가강 유역에서 루스인들을 만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스칸디나비아계 사람들이 발트해에서 동유럽의 강과 호수를 이용해 러시아 내륙으로 들어왔고, 볼가강 유역까지 교역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영화 화면에 실제로 등장하는 배다.

불바이가 타는 것은 몇 사람이 어깨에 둘러메고 옮길 수 있는 작은 카누나 하천용 조각배가 아니다.

분명 롱십 계열이다.

긴 선체에 여러 개의 노가 있고 돛대가 서 있다.

그리고 불바이 주변의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볼가강은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흐르는 강이 아니다.

발트해와 볼가강을 오가려면 여러 강과 호수를 이어가야 하고 수계가 끊기는 곳에서는 육상을 넘어야 한다.

흔히 바이킹의 동방교역로를 설명하면서 “배를 육지로 끌어 옮겼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말은 쉽다.

배를 끌었다.

하지만 실제로 배를 물에서 육지로 꺼내는 순간부터 일이 시작된다.

짐을 내려야 하고, 선체를 물 밖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통나무나 썰매 같은 운반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이나 가축의 힘으로 배를 끌어 분수령을 넘어야 하고, 다른 수계에 도착하면 다시 배를 물에 내려 띄워야 한다.

아무리 바이킹 배가 흘수가 얕고 다른 대형 선박보다 가볍다고 해도 영화에 나온 것은 분명 롱십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략 당시 메흐메드 2세가 함선을 육지로 넘겨 골든혼에 집어넣었던 일을 떠올린다.

오스만 제국은 국가였다.

군대가 있었다.

많은 인력과 물자, 가축과 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런 국가가 비교적 짧은 육상구간을 넘기는 것조차 대규모 작전이었다.

그런데 불바이는 제국의 황제가 아니다.

동인도회사처럼 곳곳에 지점과 인력과 물류망을 갖춘 거대한 상단의 주인도 아니다.

영화 화면에서 그 주변을 따라다니는 전사도 많지 않다.

그 인원으로 저 롱십을 몰고 볼가강과 발트해 사이의 수계를 오간다?

나는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바이킹이 볼가강까지 왔다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올 수 있다.

물건도 올 수 있다.

실제로 교역망도 존재했다.

구간마다 배를 갈아탈 수도 있었을 것이고, 화물을 내려 육로로 옮긴 뒤 다른 강에서 다른 배에 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지의 인력과 현지 운송수단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 복합적인 장거리 물류망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다는 사실과 영화에 보이는 저 롱십 한 척을 소수의 불바이 일행이 그대로 끌고 다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길이 있다는 것과 저 배로 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내게 이것은 단순한 옥의 티가 아니다.

실제 이븐 파들란이라는 인물을 끌어오고, 그가 실제로 볼가강에서 루스인들을 만났던 역사적 사실까지 이용한 영화라면 정작 그곳에서 다시 북유럽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조금은 생각했어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지리와 수송에 관한 고증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커다란 허점을 알고 난 뒤에도 『13번째 전사』가 싫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일까.

아마 이 영화가 결국 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여행가 이븐 파들란을 『베오울프』의 세계로 데려간 발상은 여전히 재미있다. 신화 속 괴물을 벤돌이라는 인간 집단으로 바꾼 것도 흥미롭다. 괴물의 공포를 벗겨내고 인간임을 확인한 뒤 그들의 정신적·군사적 중심을 무너뜨리는 과정도 좋다.

무엇보다 서로를 야만인과 이방인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함께 싸우면서 전우가 되는 과정이 좋다.

아메드는 북구인들의 말을 귀로 듣고 배운다.

불바이는 아메드가 쓰는 글자를 눈으로 보고 배운다.

아메드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고, 불바이는 마지막까지 발할라를 향한다.

어느 누구도 상대에게 자기 신을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같은 신을 믿어서 친구가 된 것이 아니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적과 싸우고, 서로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전우가 된다.

그래서 『13번째 전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도를 펼치면 롱십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만, 불바이가 죽어가는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시 영화를 보게 만드는 이야기.


발할라의 전당.

용감한 자들이 영원히 살아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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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바로크
비로소 쟁취한 평화를 새기다 - P267

네덜란드 곳곳을 수놓는 색색의 튤립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유산이다. 그 시절 네덜란드는 오랜 투쟁 끝에 거머쥔 자유와 구슬땀으로 일궈낸 풍요로 활기가 가득했다. 안락하고 편안한 일상의 틈에서 움튼 자본주의 아래 화가들은 각자의 시선을 캔버스에 담았다. 네덜란드 미술은 그렇게 피어났다.
ㅡ튤립밭, 네덜란드 - P268

나는 낡은 붓을 들고 홀로 서서.
하나님께 영감을 구하는 단순한 사람일 뿐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 P270

북유럽 바로크를 이끈루벤스

#북유럽 바로크 #루벤스 #안트베르펜
#궁정화가 #외교관 #사업가

17세기 화가 중 바로크 미술처럼 다채롭고 화려한 인생을 살다 간 화가가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 탁월한 그림 솜씨에 사업 수완까지 좋았던 인물이죠.
화가라고 하면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는게 아닌가요? - P271

화가라고 하면 외롭게 살다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지는 게 아닌가요?

이 화가는 그런 삶과 거리가 멀어요. 살아있을 때부터 그림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서 화가들의 왕‘이었고, 유럽의 여러 왕이 그의 그림을 너무나 갖고 싶어 해서 왕들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이 화가는 바로 루벤스입니다. 북부 유럽 출신이지만 알프스산맥을 오가며 바로크 미술을 유럽 전체로 확산시킨 주인공입니다. - P271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전시된 십자가를 세움 
루벤스가 안트베르펜에 돌아와서 그린 첫 번째 대규모 작품이다. 성 발부르가 성당의 중앙 제대화로 제작되었지만, 나폴레옹 시대에 약탈당했다가 1815년 반환되어지금은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자리한다. - P276

이 그림 이전에는 교훈적인 내용을 크게 그리고 사물은 배경에 소품처럼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전통적 화면 배치를 완전히 뒤집어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배경에 넣고 사물을 앞자리에 내세운 겁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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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10개 주는 독립하지 못했나요?
플랑드르 남쪽 지역의 10개 주는 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안트베르펜은 반란의 중심지였지만, 스페인 군대가 이곳을 잔혹하게 진압해서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 P298

루벤스의 활동 지역 루벤스는 지겐에서 태어나 쾰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12세에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간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만토바에 살며 로마 등지를 여행하고, 만토바 공작의 명으로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도 일한다. 또한 마리 드 메디시스의 연작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으며, 스페인과 영국 외교 사절로서 런던과 마드리드를 오간다. - P299

설마 한복을 입은 건가요?
글쎄요, 학계에서는 이 인물의 국적과 관련하여의견이 분분합니다. 중국인으로 보기도 하고, 한국인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복이 중국식도포인지 한복인지 다소 애매하기 때문이죠.
정확히 어느 나라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저는 한국인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이 쓴 모자가 우리 전통 모자탕건과 비슷하고, 남자를 그리기 위한 루벤스의 준비 드로잉도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루벤스가 한국의 복식과 외양을 구전으로듣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보고 나서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07

앞쪽 배는 사람들을 질서 있게 구해내지만 바로 오른쪽 뒤의 배는 위태로워 보입니다. 사람을 잘 구하는 앞쪽 배는 개신교를 상징하고, 위태로운뒤의 배는 가톨릭을 상징합니다. - P329

167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동인도회사는 상선 150척, 군함 40척, 직원 5만 명, 군대 1만 명을 보유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 P344

전성기를 누렸던 네덜란드와 영란전쟁의 흔적을 살피려면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을 찾아야 합니다. 라익스 뮤지엄으로도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의 국보급 미술품이 가득합니다. 이중에서도 한 점을뽑아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명화를 한자리에 모은 2층 정중앙에 당당히 자리할 정도로 네덜란드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이죠. - P345

그림의 대상이 일상적인 소재에서 점점 사치품으로 바뀝니다. 이처럼 16세기에는 소시민의 소박한 삶을 나타내는 정물화가 대부분이었다면, 17세기에 들어서 정물화는 부유층의 고급스러운 삶을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 P358

그러나 만개한 해바라기 사이로 병들어 시든 꽃이 눈에 띕니다. 삶을 예찬하는 동시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전통이반 고흐 같은 19세기 인상주의 화가에게까지 이어진 셈이죠. 반 고흐역시 네덜란드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찍부터 전통적인 네덜란드 정물화의 특성을 알았을 겁니다. - P365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를 세계 최초로 보는 구체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1602년에 설립되었다고 말씀드렸죠. 동인도회사는 최초로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을 발행하여 만든 회사였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발행한 주식 역시 공공장소에서 거래했는데요. 바로 이 목적에 맞게 새롭게 지은 건물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였습니다. - P377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튤립 버블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희귀한 튤립을 갖기 위해 돈을 있는 대로 끌어다 쓰면서 튤립 가격이 천정부지로솟구칩니다. 가장 귀한 품종이었던 셈퍼르 아우휘스튀스는 구근 하나가격이 20배 가까이 오릅니다. 1633년에 500 길더였던 구근이 불과 4년 만에 1만 길더가 된 거죠. 1636년에 배 한 척이 500 길더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인 셈입니다. - P386

그게 문제였어요. 이런 상황이 사람들의 조바심을 불러일으켰고, 너나 할것 없이 꽃 재배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극에 달한 기현상도 결국 끝을보입니다. 1637년 2월, 오를 대로 오른 튤립 가격이 상승을 멈추거든요. 불과석 달 만에 수요가 급격히 줄고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합니다. 이 여파로파산자가 속출하자 네덜란드 정부까지 개입해서 간신히 위기를 넘깁니다. - P387

당시 유럽 국가 중 사회 전 계층이 미술품을 거래한 곳은 네덜란드뿐입니다. 힌트는 부의 분배에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비교적 부가 고르게 주어진 사회였습니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투자나 투기를 할 수 있는 잉여 자본을 갖고 있었죠. 일찌감치 거래 문화에 익숙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한 겁니다. - P392

힌트는 오른쪽 아래 계단에 놓인 칠판에 있습니다. ‘풍요 속 사치를 조심하라‘는 속담이 적혀 있는데요. 그림 속 집주인처럼 눈 감은 채로 손을 놓으면 힘들게 쌓은 재물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경고를 담은 겁니다. 천장에 달린 바구니 속 목발, 지팡이, 회초리는 사치로 재물을 몽땅 잃었을 때얻게 될 질병과 빈곤을 의미합니다. - P401

그림 오른쪽 요리하는 두 하녀 앞에 깨진 달걀 껍데기가 마구 널려 있습니다. 당시 달걀 깨기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특히 속이텅 빈 달걀은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생식 능력이 없음을 뜻하죠. 아니나 다를까 아이를 안은 아버지 뒤에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남성이 있습니다. 짓궂은 웃음이 마치 자신이 진짜 아버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 P403

네덜란드의 김홍도 
이렇듯 얀 스테인은 세속적인 블랙 코미디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을 더 소개할게요. 다음 페이지에 있는 마을 학교라는 작품입니다. - P403

얀 스테인, 마을 학교, 1670년경,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남자 선생은 술에 취해 있고 여자 선생님만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제각각 소란스러운 모습이다. - P404

당시 네덜란드 교육 체계의 문제점을 풍자한 그림일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네덜란드에서 초등 교육이 얼마나 활발하게 운영되었는지 엿볼 수 있죠 네덜란드는 시민사회였는데요.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평민이 이끄는 사회여서 교육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학교 풍경을 담은 얀스테인은 한국에서 특이한 별명으로 불립니다. 바로네덜란드의 김홍도인데요. 얀 스테인이 그린 또 다른 마을 학교를 보면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 P405

왼쪽 페이지의 그림은 간척 사업 전1300년대 네덜란드 지형입니다. 군데군데비어 있죠? 그러나 15세기에 접어들며 오늘날 국토의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은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었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을 정도죠. 수 세기에 걸쳐 국토를 직접 일군 노력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 P409

좋은 지적입니다. 이 인물은 언제든지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전쟁을 치르며 용병을 동원했지만, 병력의 핵심은 시민군이었습니다. 민병대가 잘 짜여 있어서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비상시에는 전쟁터로 나갔죠. 여기서 의기양양한 사냥꾼은느긋하게 사냥길에 나서지만 국가에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지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되었을 겁니다. - P418

이번에도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만 담은 게 아니네요.
국토에 대한 인식을 치밀하면서도 친절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장르가 풍경화였던 거죠. 평범해 보이는 자연과 생활의 터전이 네덜란드인들에겐정성껏 일군 세계였습니다. 풍경을 화폭에 담는 과정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었을 거예요.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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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8 - 바로크 문명과 미술 : 시선의 대축제, 막이 오르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8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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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역사를 읽으며] 『난처한 미술이야기』 로마 바로크
― 위대한 미술과 건축 뒤에 가려진 권력, 노동, 그리고 길


『난처한 미술이야기』 8권의 첫 번째 무대는 로마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바로크 미술을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장 지나지 않아 미술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교황과 추기경이 나오고, 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대응이 나오고, 성당과 광장, 도로와 수로가 이어졌다. 그림과 조각을 읽다 보니 어느새 도시와 권력의 역사를 읽고 있었다.

로마 바로크의 화려함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교황의 권력과 막대한 돈이 있었고, 예술가의 천재성이 있었으며, 그 뒤에는 돌을 나르고 벽돌을 쌓고 높은 비계에 올라가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화려함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번 로마 바로크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 그 질문을 하게 되었다.


1. 위대한 건축물 아래에서 사라진 사람들

회화와 조각에는 대개 작가의 이름이 남는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베르니니라고 하면 작품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거대한 건축물은 다르다.

설계자의 이름은 남지만 실제 건물을 만든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다. 돌을 채석한 사람, 운반한 사람, 비계를 세운 사람, 돌을 다듬은 사람, 벽돌을 쌓은 사람의 이름은 대부분 사라졌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공사를 서두르던 식스토 5세 시기에는 수백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었고 야간에는 횃불을 밝히며 작업했다고 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좋은 노동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완성된 돔을 올려다보며 미켈란젤로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높은 곳에서 횃불을 밝히고 일했던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위대한 건축에는 늘 위대한 건축가가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건축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과 문화유산을 존중한다는 것

앞서 『난처한 미술이야기』의 서문을 읽으면서 나는 ‘존중’이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로마 바로크를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우르바노 8세는 베르니니를 아끼고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교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판테온 현관의 고대 청동이 뜯겨 나갔고, 상당량은 산탄젤로 성의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로마에는 이런 조롱까지 생겼다.

“야만인이 하지 않은 일을 바르베리니가 했다.”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 과거의 문화유산까지 존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에 이르면 더 심하다. 뛰어난 미술품을 알아보는 안목은 탁월했지만, 갖고 싶은 작품을 얻는 방법은 권력자의 그것이었다.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매장」은 페루자의 성당에 있던 제단화였지만 1608년 어느 밤 수도사들의 협조 아래 몰래 반출되어 로마로 옮겨졌고, 결국 시피오네 보르게세의 소유가 되었다.

화가 주세페 체사리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를 받자 그의 소장품 105점이 압수되었고, 교황 바오로 5세는 그것들을 조카 시피오네에게 넘겼다. 그 가운데에는 카라바조의 초기작도 들어 있었다.

도메니키노의 경우는 더욱 기가 막힌다. 보르게세가 그의 「아르테미스의 사냥」을 탐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라 도메니키노가 넘기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작품을 강제로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화가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림이 탐나는데 화가가 안 준다고 감옥에 처넣은 것이다.

이쯤 되면 미술 사랑이라기보다 권력을 이용한 소유욕에 가깝다.

오늘날 보르게세 미술관에 가면 수많은 명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미술을 사랑하는 것과 미술을 존중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소유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 역시 같은 말이 아니다.


3.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로마의 십자가 아래 서기까지

로마 곳곳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했다.

로마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이집트에서 옮겨온 것들은 고대 로마에서 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는 상징이 되었다. 다시 수백 년이 흐른 뒤 교황들은 그것을 로마의 주요 광장과 성당 앞에 세우고 꼭대기에 십자가를 올렸다.

하나의 돌기둥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집트의 종교적 상징에서 로마 제국의 권력과 전리품의 상징으로, 다시 교황권의 상징으로.

식스토 5세가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옮겨 세우는 과정도 놀랍다. 수백 명의 인력과 수십 마리의 말, 수많은 권양장치를 동원해야 했다.

누군가는 저것을 미술사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종교사로 볼 것이다.

나는 자꾸 공사부터 보였다.

저 무거운 돌을 어떻게 들었을까.
어떻게 운반했을까.
어떻게 세웠을까.

토목쟁이는 어쩔 수 없다.


4. 발로 뛴 개혁가, 카를로 보로메오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도 모든 사람이 권력과 예술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카를로 보로메오는 교구를 직접 돌아다니며 성당과 수도원을 살피고, 사제 교육을 정비하고, 교리교육을 확대했다. 책에 따르면 수백 개에 이르는 교리학교가 운영되었다.

그가 죽은 뒤 고향 아로나에는 높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내부로 들어가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동상이고, 훗날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바르톨디도 그 구조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거대한 동상도 흥미롭지만 나는 보로메오의 ‘발로 뛰는 개혁’ 쪽에 더 눈이 갔다.

교회가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거대한 성당을 짓던 시대에 직접 현장을 돌아다닌 성직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5. 식스토 5세가 한 일은 성당만이 아니었다

식스토 5세 역시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권력을 과시했고 로마를 가톨릭의 중심도시로 재편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쿠아 펠리체 수로를 건설하고 도로망을 정비했다.

성당은 교황권의 얼굴을 만들었지만 수로는 시민에게 물을 공급했다.

여기서 나는 속으로 한마디 했다.

건축은 사치, 토목은 실용.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 그래도 수로와 도로가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바꾼다는 점에서는 토목쟁이로서 괜히 어깨가 올라간다.

특히 식스토 5세는 주요 성당과 순례지를 도로로 연결했다. 의도는 종교적이었다. 순례자가 움직이고 교황권의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길이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교황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다니고, 수레가 다니고, 물건이 이동하고, 장사가 이루어진다.

권력을 위해 만든 길도 결국 시민이 이용한다.


6. 길을 생각하다 톤유쿡이 떠올랐다

도로 이야기를 읽다가 돌궐의 톤유쿡이 생각났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한다”는 말이 흔히 톤유쿡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문은 아니다. 다만 그가 돌궐의 힘은 정착과 성곽이 아니라 이동성에 있다고 보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톤유쿡에게 이동은 군사력이었다.

식스토 5세에게 이동은 종교와 도시를 조직하는 힘이었다.

시대도 장소도 목적도 전혀 다르지만 둘 다 움직임이 힘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벽은 막지만 길은 연결한다.

건축물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종교도 결국 길이 있어야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7. 금서와 화형, 감시와 검열

그러나 가톨릭이 미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만 보고 이 시대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는 없다.

교회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예술 후원자 가운데 하나였지만, 동시에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그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권력이기도 했다.

금서목록이 있었고 종교재판이 있었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1600년 로마에서 화형당했고 갈릴레오는 1633년 재판을 받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베로네세의 그림은 종교재판소의 심문을 받았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그려진 나체에는 훗날 천이 덧그려졌다.

예술을 키운 손과 예술의 경계를 그은 손이 같은 손이었다.

그래서 바로크의 찬란함만 보고 있으면 한쪽을 놓치게 된다.

그 화려함 뒤에는 금서와 화형, 감시와 검열도 있었다.


8. 천지창조의 암흑버전,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그림을 처음 보면서 내가 떠올린 말은 이것이었다.

천지창조의 암흑버전.

화면 대부분이 어둡다. 그런데 결정적인 부분에 빛이 들어온다.

「성 마태오의 순교」에서는 살인이 벌어지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죽은 그리스도의 육체에 빛이 떨어진다.

어둠의 배경, 빛의 사건.

한마디로 하면 『어둠 속의 사건』이다.

발자크의 소설 제목인데, 카라바조의 그림에도 제법 잘 어울린다.

그의 빛은 아름다운 장식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빛이 들어오는 순간 사건이 시작된다.


9. 카라바조, 그림은 천재, 삶은 파국

카라바조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성인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성인과 사도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이상적인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름지고 지친 얼굴, 더러운 발, 거리에서 만날 법한 사람의 몸을 하고 있다.

성 마태오의 순교도 성스럽고 장엄한 순교라기보다 로마 뒷골목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처럼 보인다.

나는 이 점이 카라바조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성인을 신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얼굴 속에서 성스러움을 찾았다.

미술사적으로 왜 위대한지는 알겠다.

그러나 솔직히 그의 그림에 정이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너무 어둡고 거칠다. 빛은 강렬하지만 그 빛이 비추는 세계가 편하지 않다.

감탄은 하지만 내 곁에 두고 보고 싶은 그림은 아니다.

게다가 인간 카라바조의 삶까지 알고 나면 더욱 그렇다.

싸움을 일삼았고 결국 사람까지 죽였다. 살인 이후 로마를 떠나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를 전전했고, 교황의 사면을 기대하며 로마로 돌아오던 길에 1610년 생을 마쳤다.

그림에서는 전에 없던 세계를 열었지만 그의 삶은 끝까지 거칠었다.

그림은 천재, 삶은 파국.

그리고 카라바조의 빛은 그가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루벤스가 그 빛을 받아들였고, 네덜란드의 카라바조 추종 화가들을 거쳐 렘브란트에게도 이어졌다.

다만 빛의 성격은 달라졌다.

카라바조의 빛이 사건을 드러내는 빛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사람의 얼굴과 내면을 비추는 빛에 가깝다.

카라바조, 어둠의 배경, 빛의 사건.
렘브란트, 어둠의 배경, 빛의 인간.


10. 카라치는 신화를 그려도 종교화처럼 보였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카라바조와 거의 같은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했지만 방향은 전혀 달랐다.

카라바조가 거리의 현실을 화면 안으로 끌고 왔다면 카라치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전적 아름다움을 다시 구성했다.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인체와 구도를 연구했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파르네세 갤러리의 신화화를 보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로마 신들의 사랑 이야기인데도 꼭 종교화처럼 보인다.

소재는 신화인데 그림의 언어가 르네상스와 교회미술의 장엄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라치는 신화를 그려도 성당 천장처럼 보이고, 카라바조는 성인을 그려도 로마 뒷골목처럼 보인다.

두 화가의 차이가 이보다 선명할 수 있을까.


11. 천장이 사라졌다

안드레아 포초의 천장화에 이르자 바로크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림을 그렸는데 천장이 없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 건축의 기둥과 그림 속의 기둥이 이어지고, 그 위에 다시 건축이 솟아오르다가 천장이 열리며 하늘이 나타난다.

실제 건축, 그림 속 건축, 열린 하늘, 천상의 세계.

고개를 들고 보면 천장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정해진 위치에서 바라보면 원근법이 정확하게 맞아 실제 건축과 그림의 경계가 사라진다.

카라치가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면 포초는 천장 자체를 없애버렸다.

17세기의 가상현실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12. 신들의 사랑이라지만, 여성에게는 사랑이 아니었다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와 「아폴론과 다프네」는 기술만 보면 경이롭다.

대리석에 손가락이 들어가 살이 눌리는 것처럼 보이고, 다프네의 손끝에서는 잎이 돋아난다.

그런데 이야기를 알고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강제로 데려간다. 아폴론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 다프네를 계속 쫓아간다. 다프네는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버리고 나무가 되어야 한다.

신들의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보다 권력과 폭력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아폴론 같은 남성 신들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눈으로 읽으면 참 써글 놈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고대의 신들에게 오늘의 도덕을 그대로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오늘의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남성 신의 욕망이 사건을 시작하고, 여성은 납치되거나 도망치거나 변신해야 끝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베르니니의 조각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다.


13. 베르니니, 대리석은 뜻대로 했지만 땅은 뜻대로 하지 못했다

베르니니는 분명 천재다.

「페르세포네의 납치」에서 대리석을 살처럼 만들었고, 「아폴론과 다프네」에서는 딱딱한 돌을 잎과 나뭇가지로 바꾸었다.

「성 테레사의 황홀」에서는 조각 하나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제단을 무대로 만들고, 조각을 배우처럼 배치하고, 코르나로 가문의 사람들을 극장의 관객처럼 양쪽 벽면에 앉혔다. 위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까지 이용해 하나의 장면을 만들었다.

조각, 건축, 빛, 관람자까지 모두 계산한 공간 연출이었다.

그런 베르니니에게도 뼈아픈 실패가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탑이다.

기존 종탑 기초는 선임 건축가 카를로 마데르노가 마련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 위에 베르니니가 자신이 설계한 거대한 종탑을 올리면서 발생했다.

기존 기초와 지반에 이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베르니니의 책임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그 위에 새로운 구조물을 올리기로 했다면 기존 기초가 추가 하중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더구나 마데르노가 종탑용 기초를 만들던 단계에서 이미 파사드에 균열이 나타났다면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

17세기에 오늘날 같은 지반조사와 구조해석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기존 구조물의 상태와 새로 추가되는 하중을 살펴야 한다는 생각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탑과 성당 파사드에 균열이 나타나자 1645년 여러 건축가에게 원인과 대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미 베르니니와 결별해 독립 건축가가 된 보로미니도 여기에 참여해 종탑의 안정성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철거를 주장했다. 반면 보강을 통해 살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인노첸시오 10세는 1646년 종탑 철거를 결정했다.

베르니니에게는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기초 자체의 선행 문제도 있었지만, 그 기초 위에 자기 종탑을 올린 최종 설계자로서 베르니니의 책임 역시 크다.

그래서 토목쟁이인 나는 이 대목에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 건축가도 기초를 우습게 보면 망한다.

조각에서는 대리석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건축에서는 땅과 기초가 허용하는 한계를 잘못 판단했다.

대리석은 뜻대로 했지만 땅은 뜻대로 하지 못했다.


14. 좁은 땅에서 자기 건축을 만든 보로미니

보로미니는 베르니니와 전혀 다른 종류의 천재였다.

처음에는 베르니니 밑에서 일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발다키노 작업에서도 베르니니를 도왔다.

그러나 훗날에는 독립된 건축가가 되었다.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다. 보로미니가 베르니니의 조수였다는 이야기에 이어 종탑 문제에서 베르니니를 비판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자칫 종탑을 만들던 당시에도 보로미니가 베르니니의 조수였던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종탑 공사가 본격화되었을 때는 이미 둘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점을 책에서 한 문장이라도 분명하게 구분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로미니의 진가는 산 카를리노 성당에서 더욱 잘 보인다.

그가 받은 땅은 넉넉하지 않았다. 작은 부지 안에 성당과 예배공간, 수도사들의 생활공간까지 집어넣어야 했다.

그런데 보로미니는 좁은 부지를 핑계로 삼지 않았다.

타원과 오목한 면, 볼록한 면을 이용해 공간을 짜고, 흰색과 구조 자체만으로 내부에 움직임을 만들었다.

넓은 공간을 받아 크게 짓는 것보다 이런 조건에서 필요한 기능을 모두 넣고 아름다움까지 갖추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다.

현실의 제약이 설계자의 능력을 드러낸 셈이다.

베르니니가 색과 조각과 빛을 끌어와 공간을 연출했다면, 보로미니는 선과 면, 구조 자체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이렇게 구분해 보고 싶다.

베르니니는 공간을 연출하는 천재이고,
보로미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천재였다.


15. 베르니니의 화려한 재기보다 보로미니 쪽에 더 마음이 갔다

두 사람의 경쟁에서 결국 더 화려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베르니니였다.

종탑 실패로 큰 위기를 맞았지만 코르나로 가문의 의뢰를 받아 「성 테레사의 황홀」을 만들며 자신의 능력을 다시 보여주었다.

나보나 광장의 콰트로 피우미 분수에서도 베르니니는 다시 교황의 마음을 얻었다.

보로미니는 이미 1647년 콰트로 피우미 분수 설계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베르니니가 별도로 만든 분수 모형을 본 교황은 결국 베르니니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책에 실린 두 사람의 설계안과 모형을 비교해 보면 결과적으로 교황이 왜 베르니니의 안을 선택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보로미니의 안은 단순하고 정제되어 있는 반면, 베르니니의 모형은 오벨리스크 아래를 과감하게 비우고 거대한 바위와 조각을 배치해 훨씬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그 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광장이라는 거대한 공간까지 만들어 로마 바로크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보로미니의 삶은 달랐다.

그 역시 독창적인 작품을 계속 남겼지만 후원 관계와 공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고 성격도 베르니니와 달랐다.

둘은 불과 약 100미터 거리를 두고 각자의 성당을 만들기도 했다.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와 보로미니의 산 카를리노.

가까운 거리에서 두 천재가 서로 전혀 다른 건축을 만들고 있었다.

보로미니는 1667년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을 단순히 베르니니와의 경쟁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하나의 이유만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베르니니의 화려한 재기보다 보로미니 쪽에 더 마음이 갔다.

그는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건축양식을 분명하게 보여준 또 하나의 천재였다.


16. 화려함만으로는 로마 바로크를 설명할 수 없다

로마 바로크를 처음 보면 화려하다.

성당은 거대하고, 천장은 열리고, 조각은 움직이는 것 같고, 분수와 광장은 도시 전체를 무대로 만든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로마 바로크는 내게 화려함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 뒤에는 교황권이 있었고, 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대응이 있었으며, 문화유산을 자기 시대의 필요에 따라 사용한 권력이 있었다.

이름이 남지 않은 노동자들이 있었고, 금서와 종교재판도 있었다.

그리고 길과 수로가 있었다.

카라바조는 성인을 거리의 인간으로 그렸고, 카라치는 고전의 아름다움을 다시 구성했다. 포초는 천장을 없애버린 듯한 환상을 만들었고, 베르니니는 조각과 건축과 빛과 도시를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다. 보로미니는 주어진 공간 안에서 자기만의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다.

천재도 실패했다.

예술을 사랑한 후원자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빼앗기도 했고, 화가를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찬란한 예술을 후원한 교회가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래서 로마 바로크는 내게 단순한 미술양식이 아니었다.

로마 바로크는 위대한 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교황의 권력과 종교, 도시를 만든 기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노동이 함께 들어 있는 시대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화려한 성당과 조각 사이에서 나는 자꾸 길을 보았다.

권력자가 만든 길이든 순례자를 위한 길이든, 길이 만들어지면 결국 사람이 걷는다.

로마 바로크를 읽으면서 미술을 보았지만, 그 미술을 가능하게 했던 도시와 사람도 함께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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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이야기 - 작가가 수년간 추적한 공포 실화
이정화 지음, 조승엽 그림 / 네오픽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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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보고서] 『오싹한 이야기』, 귀신 이야기는 짧을수록 밤이 길어진다


나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실제로 겪었다며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마지막 한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그런 괴담 말이다. 그래서 《심야괴담회》 같은 프로그램도 좋아한다. 한 사연이 끝나면 잠깐 소름을 털어내고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워떻게 됐댜?”

이 한마디 하면서 듣기에 괴담만 한 이야깃거리도 없다.

이정화의 『오싹한 이야기』가 딱 그런 책이었다.

책은 도시 괴담, 학교 괴담, 꿈 괴담, 외지 괴담, 해외 괴담으로 나뉜다. 「헬러윈 데이」, 「마라탕 중독」, 「지옥철」, 「해 진 뒤의 골동품 시장」, 「러닝 크루에서 홀로」, 「사이버 감옥」, 「거꾸로 매달린 아이」, 「연습실에서」, 「자각몽」, 「가위 당당」, 「5·16 도로」, 「폐사우나 체험」, 「저수지의 악몽」, 「야소보」, 「푸껫 채식주의자 축제」까지 열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목만 죽 훑어봐도 내가 좋아하는 괴담 종합선물세트다.

이런 이야기의 좋은 점은 귀신이 특별한 장소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만날 수 있고, 운동을 하다가도, 학교에서도, 핼러윈 축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가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곳이 내일 괴담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공동묘지는 안 가면 그만이지만 지하철은 내일도 타야 하고, 한강도 다시 가야 한다.

그래서 이런 귀신 이야기가 더 께름칙하다.


가장 먼저 내 발목을 잡은 건 「지옥철」이다.

주인공은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검은 후드 티를 입은 남자를 본다. 시계는 오후 3시 13분에 멈춰 있고, 열차 칸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등을 돌리고 선다. 순환선인데도 상왕십리역이 종점이라는 기괴한 방송이 나오고, 검은 후드 티의 남자는 주인공에게 죽음을 예고한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난다.

현실의 열차는 정상적으로 상왕십리역에 도착하지만 주인공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이 들린다. 뒤따라오던 열차가 상왕십리역에서 아직 출발하지 않은 앞 열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조금 전까지 주인공이 타고 있던 바로 그 열차의 마지막 칸이었다.

날짜가 마음에 걸렸다.

2014년 5월 2일.

찾아봤더니 정말 그날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이야기가 갑자기 더 오싹해졌다. 사고 뒤 찌그러진 열차 안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던 검은 후드 티의 남자. 그는 정말 주인공을 데리러 왔던 저승사자였을까.

사고는 실제로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괴담은 바로 이런 틈으로 들어온다.


「헬러윈 데이」의 붉은 원피스 여자도 소름을 돋게 한다.

주인공은 축제 한쪽 구석 벤치에서 혼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다. 그런데 불과 1초도 되지 않아 찍힌 다음 사진에서는 그 여자가 주인공의 어깨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있다.

곧 사람의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몰려오고, 여자는 주인공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며 “넌 내 거야”라고 외친다.

핼러윈은 원래 사람들이 귀신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날이다. 그러니 진짜 귀신 하나가 그 틈에 섞여 있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가짜 귀신 수백 명 사이에 진짜 하나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분장인지 아닌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러닝 크루에서 홀로」 역시 일상의 공간인 한강을 공포의 장소로 바꾼다.

동트기 전 한강에서 크루들과 달리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의 발소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짙은 물안개 속에서 어떤 여자가 달려오는데, 속도가 사람이 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결국 여자와 부딪히고 만다.

가까이에서 본 얼굴은 익사체처럼 검게 변해 있고, 두 눈은 짐승처럼 붉다. 그 여자는 주인공의 뒷덜미를 잡고 강가로 질질 끌고 가 한강으로 뛰어드는 행동을 반복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더 무서운 것은 장소가 한강이라는 점이다. 특별히 흉흉한 곳도 아니고, 밤이나 새벽이면 운동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물안개 짙게 낀 새벽 한강에서 저 멀리 누가 혼자 달려오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빠른지는 굳이 재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


가장 기괴했던 이야기는 「마라탕 중독」이었다.

주인공은 배달 앱에서 늘 시켜 먹던 마라탕집이 계속 준비 중으로 뜨자 직접 식당을 찾아간다. 장소는 관악산 어귀, 상호도 제대로 없는 허름한 식당이다.

그런데 주방에서 본 것은 음식점에서 볼 만한 광경이 아니었다.

척추가 기괴하게 꺾이고 덩치가 큰 아저씨가 자신의 팔뚝을 중식도로 그어 붉은 피를 가마솥에 뚝뚝 떨어뜨리며 “다 마셔!”라고 외친다.

나중에는 강령술에 쓰인 부적의 기운이 마라탕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무당의 설명까지 나온다.

배달 음식이라는 것이 생각해 보면 참 묘한 구석…… 아니, 찝찝한 구석이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주방에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현관 앞에 놓인 봉투를 받아 그냥 먹는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마라탕에 무엇이 들어갔느냐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께름칙해진다.

그래도 마라탕을 끊을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해 진 뒤의 골동품 시장」도 빼놓기 아깝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밤의 골동품 시장에서 갑자기 꽹과리 소리가 울린다. 농기구를 든 농사꾼부터 샹들리에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까지, 오래된 기물에 깃들어 있던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이 산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순간 수많은 시선이 한꺼번에 꽂힌다.

놋그릇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던 할머니 귀신과 막사발에서 튀어나온 진돗개 백구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온다는 대목도 재미있다.

골동품에는 이전 주인이 있다.

누군가 평생 아끼던 물건이었을 수도 있고, 죽는 순간까지 곁에 두었던 물건일 수도 있다. 그 물건에 기억만 남는지, 다른 무엇까지 따라붙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집 안에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도 괜히 생긴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진 이야기도 있었다.

「사이버 감옥」이다.

고등학생 다연은 죽은 학생의 계정으로부터 계속 메시지와 알림을 받는다. 다른 계정은 무음으로 돌릴 수 있는데 유독 그 아이의 계정만 무음 설정이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라는 물건은 늘 손에 들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도망갈 곳도 없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죽은 학생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연도 바로 그 5인방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죽은 아이가 자신을 찾아오자 다연이 내뱉는 말들이 섬뜩하다.

“네가 알아서 죽은 거잖아.”
“다른 애들도 괴롭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나는 이 말이 이 책에 나오는 웬만한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다연은 자신이 괴롭히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도 괴롭혔지만 다른 아이들도 함께했다는 데 기대어 자기 몫의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려 한다. 결국 피해자의 죽음마저 “네가 알아서 한 일”이라며 피해자에게 돌린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다른 애들이 더 심했잖아.’
‘설마 그것 때문에 죽었겠어.’

다연까지 포함한 5인방 모두가 한 아이를 괴롭혔으면서, 막상 책임을 물으면 각자는 자기보다 더 나쁜 누군가를 찾아 뒤로 숨는다.

여럿이 함께 저지른 폭력이 어느 순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죽은 학생의 계정이 끊임없이 다연을 따라다니는 설정도 잘 어울린다. 학교에서 끝나지 않고 SNS와 메신저를 통해 피해자를 집까지 따라갔던 괴롭힘을, 이번에는 죽은 피해자가 같은 방법으로 가해자에게 돌려준다.

귀신이 휴대전화 속에서 복수한다는 설정이 무섭지는 않고 통쾌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말 오싹했던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돌아보기 전에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부터 묻는 마음.

어쩌면 귀신보다 그게 더 무섭다.


그리고 「5·16 도로」에서는 귀신 이야기를 읽다가 토목쟁이 버릇이 발동했다.

친구 둘과 제주 여행 중 안개 낀 산길을 지나던 화자는 신체가 훼손된 수많은 귀신들을 본다. 숙소로 돌아와 찾아보니 자신이 지나온 곳은 5·16도로, 지금의 지방도 제1131호선이었다. 책에서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귀신 목격담이 전해지고, 과거 도로공사 과정에서 많은 인부가 희생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화자는 자신이 본 사람들이 그때 죽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귀신보다 먼저 도로가 궁금해졌다.

5·16도로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만들어졌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누가 이 길을 만들었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찾아보니 5·16도로라는 이름과 달리 길의 역사는 5·16보다 훨씬 오래됐다. 1930년대부터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도로가 있었고, 해방 이후 한동안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가 1950년대부터 복구됐다. 5·16 이후에는 한라산 횡단도로의 대대적인 확·포장공사가 추진됐다.

오늘날에는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을 넘어 서귀포로 내려가는 지방도 제1131호선이다. 성판악을 지나고 숲이 도로 위를 덮는 구간도 있으며, 급커브와 안개가 잦은 산악도로다. 실제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반복돼 왔다.

밤에 안개까지 끼면 괴담 하나쯤 생겨날 만한 길이기는 하다.

그런데 책에 나온 “과거 도로를 깔 때부터 많은 인부들이 희생됐다”는 문장이 다시 마음에 걸렸다.

토목쟁이는 이런 데서 귀신보다 공사부터 본다.

정말 공사 중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누가 사업을 맡았고, 당시 제주에서 도로공사를 담당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1962년 제주도 산업개발국장 김한준이 사업을 총괄했다. 김한준은 북제주군수와 제주도 지방과장 등을 거친 행정관료였다. 실제 건설 실무 쪽에는 홍성림 건설과장이 있었다.

그러자 또 궁금해졌다.

홍성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확인되는 기록을 보면 홍성림은 당시 제주도 건설과장으로 5·16도로 공사 실무를 맡았고, 훗날 제주도 개발국장까지 지냈다. 도로와 건설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임은 확인되지만 정확한 직렬이 토목직이었는지, 토목공학을 전공했는지까지 보여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옛 제주지방국토관리청도 생각났다.

5·16도로 공사와 함께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이 나오기에 혹시 그것이 훗날 제주지방국토관리청으로 바뀐 조직인가 싶었다.

그것도 아니었다.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제주에 있던 제주축항사무소가 나오고, 국토건설단은 이와 별개의 조직이었다.

귀신 이야기 한 편 읽다가 도로의 역사와 옛 관청 조직까지 들여다본 셈이다.

토목쟁이가 귀신책을 읽으면 가끔 이렇게 된다.

다만 책에 나오는 ‘도로를 깔 때 많은 인부가 희생됐다’는 부분은 조금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5·16도로 공사에서 정확히 몇 명이 숨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사망자 명단이나 통계는 나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 화자가 본 신체가 훼손된 사람들이 도로공사 희생자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괴담의 영역에 남겨두는 편이 좋겠다.

귀신이 정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도 그 귀신 이야기가 붙어 있는 길은 실제로 있고, 그 길의 역사를 찾아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괴담이 좋다.


물론 『오싹한 이야기』의 열다섯 편이 모두 똑같이 무서운 것은 아니다.

한 편을 읽고 “에이, 이건 좀 뻔헌디” 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바로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께.

나는 이런 옴니버스식 짧은 괴담을 아주 좋아한다. 하나의 거대한 공포를 몇백 쪽씩 끌고 가는 것보다 작은 공포를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 좋다.

《심야괴담회》를 볼 때도 그렇다.

한 사연이 끝나면 무서웠던 장면을 잠깐 생각하다가도 금세 다음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뭔 일이여?”

그러면서 한 편씩 넘기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실소가 터지면서도 서늘한 것이 조금 남는다.

귀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승사자가 정말 검은 후드 티를 입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강령술로 끓인 마라탕이 정말 있는지, 한강 물안개 속에 억울한 익사체가 숨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안개 낀 5·16도로에서 누군가 정말 그것들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굳이 확인해 볼 필요는 없으니께.

다만 밤늦은 2호선에서 검은 후드 티를 입은 남자가 맞은편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본다면 다른 칸으로 옮길 것이고, 새벽 한강 물안개 속에서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누군가 달려온다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혼자 화장실 가는 게 쪼까 망설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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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고 다른 애가 무덕이 본 적 있어?"
"몰라."
"그럼 혹시 거꾸로 말고 바닥에 내려와서 무덕이랑 논 적 있어?"
"아니." - P-1

"수상장(樹上葬) 하던 나무 말이야. 옛날에 아이가 죽으면 그 시신을 짚으로 싸 가지고 나무에 매달아 놓는 풍습을 가진 마을이 있다 하더마는, 여가 거긴가 보네." - P-1

"아이고야,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다. 이거 덕달이 나무고만. 뭐더러 학교 터에 이런 걸 남겨 놔 가지고……. 쯧쯧."
"덕달이…… 나무요?" - P-1

그리고 얼마 후, 학교의 허가를 받았는지 그 나무 밑에서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커다란 굿판이 열렸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주는 천도제였다고 합니다. - P-1

제가 외로울까 봐 좋은 곳으로 간 무덕이가 친구를 보내 준 것일지도 모르죠. 홀로 남겨진 아이가 느끼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무덕이는 겪어 봤을 테니까요.

벌써 15년도 넘은 일이네요. 제가 나온 대학교는 경기도에 있는 한 예술 대학인데요. 저는 실용음악과였고 그 안에서도 기타 전공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귀신들 중에는 예술을 좋아하는 귀신이 꽤 많은가 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딱히 귀신이 나올 만한 장소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학교 음악실이나 미술실,
연극 연습실 같은 곳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가 종종 있더라고요.

산안개가 끼면서 공기도 차갑고 축축한 느낌마저 들었고요. 신입생 때여서 연습실의 밤 분위기를 잘 몰랐던 거죠. 하지만 이미 셔틀버스는 끊겼고 터미널까지 가는버스도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집에 갈 수도 없었어요.

"호, 제법인데...... 잼을 걸어 볼까."
뮤지션들끼리 모이면 재미있는 게, 마음만 맞으면 즉석에서 애드리브를 겨루는 잼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때의 저는 프로 세션들처럼 수준급의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학교에 들어와서 잼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어떻게든 잼을 걸어서 그 곡을 같이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연주를 하면서도 느껴지는 건, 피아노가 나를 리드하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저의 솔로 연주에 맞춰 코드를 변주하면서 살짝살짝서브 멜로디까지 얹는 게 들리자 절로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이 자식, 뭐지? 쩐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각 방에는 정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복도 끝 계단 근처까지 오게 된 저는 왠지 오싹해져서 다시 제 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방금 그 피아노 연주는 대체 누가 했단 말인가요.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진짜 너무 오싹해서 체온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성호(聖號)를 그으며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어요. 그러자 이어폰이삑삑 하더니 고장이 나 버리는 거예요. 너무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때부터 제 귀에는 피아노 연주만이 꽂히듯 들려왔어요. 근데 이게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뇌에 때려 박는 느낌이랄까.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환청인가? 내가 미친 건가? 갑자기?‘

갑자기 방 안의 불이 꺼졌어요.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렸고, 그 사이에 제 눈은 점점 어둠에 익숙해졌어요. 그러자 보였습니다. 아니, 보고 말았어요. 어떤 여자의등을요.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제 방 안의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이후로 다시는 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렇게 점점 연습에 소홀해졌고, 결국 저는 현재 음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밤새도록 그 귀신과 잼을 나눴다면 저는 음악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하고요. 물론 그 뒤로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죠.

자각몽이라고 아시나요? 맞아요, 루시드 드림. 그게 자각몽이에요. 정확한 뜻을 말하자면 내가 꿈을 꾸고 있다. 현재 내가 꿈속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꿈을 꾸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각몽이라고 아시나요? 맞아요, 루시드 드림. 그게 자각몽이에요. 정확한 뜻을 말하자면 내가 꿈을 꾸고 있다. 현재 내가 꿈속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꿈을 꾸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각몽을 어떻게꾸게 된 거냐, 글쎄요. 어떤 사람들은 연습을 통해서 자각몽을 꾸기도 한다는데 저는 어느 날 꿈에서 그냥 알게 됐어요. ‘아, 꿈속이구나‘ 하고 한번자각몽을 꾸기 시작하면 그 빈도는 점점 늘어납니다. 그런데 자각몽을 자주 꾸게 되면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일 년에 한 번, 태국의 푸껫에서는 음력 9월의 첫날부터 9일 동안 ‘낀쩨(ñ, 채식주의)‘라 불리는 채식주의자 축제가 열립니다.

9일간 흰옷을 입고 중국의 도교에서 비롯한 아홉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채식만을 하는 금욕 생활과 고행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행운을 비는 행사라고합니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고,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보거나 체험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는괴이한 사건들이기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지는 오로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귀신의 존재를 믿느냐‘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귀신은 있다‘보다는 ‘사람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가 더 정확한 저의 입장입니다.

‘단지 재미있는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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