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ㅣ 아무튼 시리즈 34
김지승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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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블랙윙에 대한 단상(今朝黑翼斷想)

어제 직원이 내가 쓰는 연필을 보더니 부러워했다. 연필이야 집에 차고 넘치니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집 책상 구석에 블랙윙 LAB 11.24.23 한 상자가 올라가 있기에 오늘 아침 출근하며 집어왔다.

사무실에 와서 상자를 열었다. 예전에 이 제품 가운데 희귀한 색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였다. 혹시 내 상자에도 들어 있나 싶어 한 자루씩 살펴보는데, 열두 자리가 다 차지 않는다. 세어보니 열 자루다. 두 자루가 없다. 언제 꺼내 썼는지, 누구에게 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에 제 갈 길을 간 모양이다.

LAB 11.24.23은 블랙윙 랩 시리즈의 아홉 번째 제품이다. 블랙윙이 3년 넘게 모아둔 ‘미스핏 연필’을 열두 자루씩 담아 2023년 11월 24일 내놓았다. 기존 제품을 만들다가 색이 고르게 나오지 않았거나, 칠이 한 겹만 입혀졌거나, 표면에 작은 흠이 생기는 등 외관상 정식 제품의 규격에서 벗어난 연필들이다.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필기 성능에는 문제가 없다.

상자마다 연필의 색과 심이 다르며 상자 번호도 따로 붙어 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열어봐야 안다. 그냥 버렸으면 불량품이었을 것을, 블랙윙은 세상에 하나뿐인 조합으로 만들어 한정판으로 팔았다. 장사를 참 잘한다.

나도 이 LAB을 여섯 상자쯤 샀다. 그런데 오늘 찾던 쨍한 파란색은 한 자루도 보이지 않는다. 파란색이 귀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블랙윙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산 여러 상자에는 없으니 적어도 내게는 희귀한 색이 맞다.

상자를 뒤지다 보니 2021년 마지막 날 북플에 올렸던 글이 생각났다. 그동안 사들인 연필을 한데 모아놓고 “몇 번을 태어나 죽어도 다 쓰지 못할 연필들”이라며 자랑했던 글이다. 그때 찍어둔 사진을 다시 펼쳐보니 수많은 연필 사이에 푸른색 블랙윙 한 자루가 보였다.

그 연필은 오늘 찾던 LAB의 파란색이 아니었다. 블랙윙 Volume 73, 레이크 타호였다.

레이크 타호는 2017년 6월에 나온 한정판이다. 연필 몸통에는 타호 블루 색을 입혔고, 표면에는 호수 주변의 지형을 본뜬 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은색 페룰과 흰색 지우개를 달았으며, 심은 진하고 부드러운 소프트 흑연이다.

숫자 73은 타호호의 투명도를 측정한 세키 깊이 73피트에서 따왔다. 한때 개발과 오염으로 맑은 물빛을 잃어가던 호수가 보전 노력으로 투명도를 회복한 것을 기념한 연필이다. 호수의 색과 지형, 환경보전의 의미까지 연필 한 자루에 담았다.

나는 이 연필이 나오기 전인 2016년 10월, 실제 레이크 타호에 갔었다.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넓고 푸른 호수와 그 뒤를 둘러싼 산을 직접 보았다. 이듬해 그 호수의 이름과 색을 담은 블랙윙이 나왔고, 지금 내게는 두 타스가 상자째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출시된 지 9년이 지난 지금은 온전한 한 상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연필이 되었다.

오늘 직원들에게 한 자루씩 나눠주려고 LAB 상자를 가져왔을 뿐인데, 두 자루가 없다는 것을 알차리고, 희귀하다는 파란색을 찾아보고, 5년 전 북플에 올린 글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 글의 사진 속에서 레이크 타호를 찾아내어, 10년 전 그 호수 앞에 서 있던 시간까지 돌아보았다.

LAB의 두 자루는 이미 어디론가 갔고, 찾던 쨍한 파란색은 애초부터 없었다. 대신 레이크 타호 두 타스가 여전히 내 연필 상자 속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연필은 쓰면 쓸수록 짧아진다. 하지만 연필 한 자루에 붙은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길어진다. 오늘 내 손을 떠나 직원들 손으로 건너갈 연필에도 또 하나의 이야기가 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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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속죄해야 합니다.
한 번 더 제게 이야기를 들으러 오세요.
이번에는 제가 말하는 대로 퍼뜨리세요.

내용은 지금은 숨기겠습니다.
어차피 여기에 적어도 당신처럼 수준 낮은 인간은 이해 못 하겠지요.

두 번째
×××

왜 연락이 오지 않지?
자신의 죄를 인정해라.

안녕하세요.
전혀 답장이 없으시네요.

뭐, 그것도 이젠 괜찮습니다.
저는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로 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당신의 차크라도 열어드리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도록.
저를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빨간 여자와 남자애한테 집착하는 거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지, 남자애가 아니라, 아키라 군이라고 해야 하나. 세노 아키라 군."
순간적으로 크게 벌어진 그녀의 눈. 그 눈꼬리가 반짝였다.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긴 침묵 후, 내 눈을 보지 않고 그녀는 말했다.

어떻게 해서 그녀는 이런 정보를 찾아냈을까.
사소한 위화감이란 불씨는 다른 곳으로도 번졌다. 그녀는 우연히 ●●●●●에 대한 괴담에서 기묘한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하자 끌어당긴 것처럼 정보가 모여들었다. 마치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과연 이건 우연일까. 그녀는 처음부터 이 정보들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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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원숭이의 신이라고요."
"그렇군. 걔한텐 그렇게 가르쳤지. 이보게, 말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세상에다 대놓고 쓰거나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저만 아는 이야기로 하죠."
"그거는, 응? 신 같은 게 아냐. 그냥 남자지."
"남자요?"
"그래. 마사루라는 이름의 남자야."
"그냥 남자를 사당까지 지어 모시고 있다고요?"

"마사루네는 마사루가 아직 어릴 적에 부친이 곰한테 물려 죽고, 모친과 둘이 살았거든. 모친도 몸이 약해서 자리보전만 겨우 했다는구먼."

"아마 쓸쓸했던 게지. 유일한 가족이 없어져서. 손주 얼굴 보고 싶다던 모친의 바람도 이루어 주지 못했으니까. 모친 간병하는 데 여념이 없어서 마을 회합에 얼굴 한번 내밀지 않고. 스물 넘어서도 장가도 못 갔다고 하대."
"노이로제 상태였나…."
"집에 틀어박혀 이상야릇한 인형 하나 꾸며놓고 종일 말을 걸고 그랬다는 거야. 제 신부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가족을 갖고 싶었던 게지."

"남자가 여자더러 ‘당신 집에 감나무 있소?’ 하고 물어. 그러면 여자가 ‘있어요. 마침 감이 맺혔네요’라고 대답해. 그러면 또 남자가 ‘그 감을 받아도 되오?’라고 묻지. 여자는 ‘예. 따주셔요’라고 대꾸하는 거야. 물론 실제로는 감 같은 거 없어도 돼.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마음이 있는지 확인하는 풍습이야."

"뭐 그런 풍습이 있는데, 마사루에게 그걸 장난스레 가르친 놈이 있었던 거지. ‘감이 있는지 물으면 너도 신부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마사루는 그걸 실행했고요?"
"아니, 뭘 착각했는지, 쉴 새 없이 온 마을 여자한테 ‘감이 있으니 이리 온’ 하고 다녔다는 거야."

"그랬는데… 어느 날 밤, 마사루네 집 근처 사는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된 거야. 머리가 깨져서. 이제 범인 찾는데, 마사루네 밭에서 피 묻은 커다란 돌이 발견됐지 뭔가. 어디서 들고 온 건지 모르지만, 이 주변 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바위를 떼다 온 것 같은 큰 돌이었네. 그걸 발견하고 죽은 여자의 남편과 젊은이들이 마사루를 에워싸고 마구 때렸지."

"마사루는 그대로 맞아 죽었습니까?"
"아니지, 반쯤 죽은 상태로 곁에 있던 여자를 죽인 큰 돌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 죽어버렸다지 뭔가."

"아냐, 아냐. 그러고 나서 마을 여자가 몇 사람이나 죽었어. 다들 희한하게 죽었어. 그 돌에 머리를 박아서 죽어버렸거든. 마사루가 불러낸 거라는 말까지 나왔지."
"마사루의 저주에 걸렸다?"

"그건 저기, 그래서야. 이렇게 비참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는 못 하니까. 그런데 마사루는 또 계속 모셔야 하고. 그래서 이름이 비슷한 ‘마시라사마’라는 원숭이 신으로 말하기로 하고 후세로 전한 거야. 실제로 나도 딸애한테 ‘마시라사마’라고 일렀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옛날에 『월간 Q』에 실렸던 사교 집단 잠입 보고서에는 그 불쌍한 가짜 신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비명에 간 마을 사람 하나가 가짜 신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사교 집단. 그녀들은 신을 대리할 돌을 사당에서 훔쳐내어 한 번 더 모심으로써 신을 숭배했다. 그리고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각지에 부적을 흩뿌려서 신의 존재를 널리 퍼뜨렸다.
힘을 되찾은 신은 일찍이 자신이 묻혔던 산으로 여자를 불러들였다.
모든 것은 ‘가족 만들기’.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사교 집단. 그녀들은 신을 대리할 돌을 사당에서 훔쳐내어 한 번 더 모심으로써 신을 숭배했다. 그리고 신앙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각지에 부적을 흩뿌려서 신의 존재를 널리 퍼뜨렸다.
힘을 되찾은 신은 일찍이 자신이 묻혔던 산으로 여자를 불러들였다.
모든 것은 ‘가족 만들기’.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여기까지 읽고 당신 눈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을까?
만약 보였다면 더는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앞으로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기다리고 있는 결말이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
반대로 보이지 않았다면 부디 보일 때까지 읽어주길.

"내게는 보였어. 그러니 부디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지금도 찾고 있는 ‘어떤 인물’.
그것은 세노가 아니다. 그녀가 본 것이다.

정보가 있으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

그런데, 오자와 선생은 유령이란 거 믿으시나? 그래. 그렇지.
나? 나는 말이지, 호러 작가니까 뜻밖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령은 믿지 않아요.
오랜 세월 호러 작가로서 쌓아 온 경험에서 내린 내 지론이지만, 유령이란 건 사람의 공포심이 만든 거야.

공포의 대상은 전국 공통이지만,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여 이름을 바꾸어가며 전승되기도 해요.
메리는 집 전화가 없어진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때로는 문자 메시지로 연락하지. 이젠 뭐, 메리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괴담은 없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 남을 거야.

산, 강, 바다에 대한 괴담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 인간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공포가 시대에 걸맞게 다양한 이름을 얻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지.

다만 일부 예외는 있어.
아주 좁은 지역에만 알려질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건 그 지역의 독특한 괴담으로 전해지는 거야. ●●●●●의 초등학교가 바로 그런 거였고.

그러다 알게 된 게 어떤 학생과 그의 모친이 자살한 사건이고.
당시 사건이 보도된 신문 기사 사본도 있어. 취재 메모 사이에 끼워두었지. 꼼꼼한 성격은 이럴 때 도움이 된다니까. 자, 이거.

사망한 건 당시 11세였던 ○○ 아키라 군. 맞아, ‘了’라고 쓰고 아키라라고 읽지.
성은 ‘세노’였어. 그러니까 ‘세노 아키라’ 군.

왜 그래? 안색이 나쁜데? 괜찮은 거야? 아이고, 그래. 그럼 계속할게.

아까, 게재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잖아.
그게 이 집 이야기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무도 안 사는 집을 두고 동네에서는 ‘부적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거기에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의 유령이 나온다면서.
그 모친이 종종 빨간 코트를 입었던 모양이야.
아무래도 현실에 아직 남아 있는 폐허에 관해서는 못 쓰겠더라. 게다가 쓰자고 맘먹으면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는데 윤리적으로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서 그냥 묻어둔 거야.

아키라 군의 이야기도, 모친의 이야기도 학생들 사이에 전해지는 줄거리를 대체로 따랐지만, 이야기의 세부적인 면은 좀 각색을 했어.
목격자가 행방불명되어 버렸다면 누가 그 이야기를 들었겠냐 하는 거지. 후후.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정말 유령이나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면, 이건 적어도 인간에게 해가 되는 거야. 코로나바이러스랑 같을지도?
일단 엮여버리면, 무차별로 공격을 개시하지. 피해 정도도 다양하고. 너무나 부조리한 이야기야.
유령이 그런 거라면, 나는 지금까지 취재한 괴담을 씀으로써 독자에게 해롭기 짝이 없는 것을 흩뿌린 셈이 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있을 리 없어. 있으면 배기겠어?

나는 유령을 믿지 않아. 그래서 지금도 평온하게 살고 있지.
나쁜 말은 안 할 테니 정체를 밝히려는 짓은 그만둬.
내가 하려고 했던, 학교에 전해지는 무서운 이야기의 근원을 규명하는 작업과, 하는 일은 같아도 목적이 달라.
‘유령의 정체, 알고 보니 마른 참억새’라는 속담도 있잖아.
유령의 정체가 마른 참억새였다면 한시름 놓지. 하지만 만약 그게 마른 참억새가 아닌 무언가였다면 선생은 어쩔 거야?

나는 점프하는 여자와 아이의 괴담에서 모자가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준 공포가 만들어낸 소문이라는 마른 참억새를 보았어. 그런데 선생은 뭘 볼 생각이야?

…그나저나 선생은 결혼은 하셨나? 이런 일만 하다 가족한테 걱정 끼치고 그러면 안 돼. 아, 아, 혼자시구먼. 그렇지, 이 업계에는 많지. 나도 남 말을 할 때가 아니지만 말이야.
뭐? 어머 그래요. 이혼을…. 뭐, 요즘 시대에 드문 일도 아니니까.
밥은 제대로 챙겨 먹어? 혼자면 돌봐 주는 사람도 없어서 큰일이야. 보니까 제대로 챙겨 먹는 거 같지 않네. 안색이 안 좋아. 편의점 음식만 먹으면 안 돼. 이런 괴담만 쫓아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우울해질 거야. 괜찮으면 내가 아는 애를 소개해 드릴까? 착하고 성실한 애야.

「오리타 씨, 상담하셨던 그 건, 찾아냈습니다! 예전에 저희 주간지에서 취재한 ●●●●●의 사건에 등장하는 망상병 여자가 보낸 편집니다.」

******

• 첫 번째
×××씨

오랜만입니다.
세노입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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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에서는 지갑 사정이 허락하는 한 현장 조사까지 염두에 두고 계속 화이트맨의 정보를 모을 생각이다. 조사를 계속하느냐 마느냐는 본지의 매출에 달려 있다. 독자 여러분께 계속해서 본지의 구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얼핏 보기에 세련된 디자인의 명품 원피스로 몸을 감쌌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인상적인 A씨는 여성 패션지의 베테랑 편집자다.

"방대한 양의 사진과 눈싸움을 해서 몇 패턴까지 일단 추려내요. 골라낸 후보 컷을 카메라맨에게 전달하고 그 이미지들을 리터치(밝기를 보정하는 등, 이미지를 가공하는 작업)해서 돌려받으면 이제 입고네요. 물론 지면의 러프 스케치, 디자인 발주, 에디터가 쓴 문장 확인 등 산더미 같은 작업과 병행하면서 말이에요."
그런 가운데 한번은 표지에 쓸 모델 사진을 도무지 결정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는 A씨.

"그때 빠져 있던 것이 ‘IMG-0053’이었어요. 납품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촬영에 실수가 있었다거나, 리터치로도 도저히 살릴 수 없을 만큼 잘못 찍혔거나 그랬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아무래도 그 컷을 표지로 쓰고 싶다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어요."

그것은 새카만 이미지였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새카만 이미지였어요. 렌즈 뚜껑을 까먹고 안 벗겼나? 생각했죠. 뭐 그런 이미지를 표지에 쓸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컷을 인쇄소에 넘겼죠."

교정도 미처 끝나기 직전이어서 A씨는 그 페이지의 펑크를 메워야 했다.
"여느 때처럼 B군에게 촬영을 맡긴 페이지였기 때문에 급하게 전화해서 B데이터(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를 포함해 일단 촬영한 것을 전부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또 ‘IMG-0053’의 이미지가 새카맸어요.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서둘러 적당한 이미지를 골라 넘겼지만요. 다만 ‘IMG-0053’이라는 문자열과 새카만 이미지는 본 적이 있어서 머리에 남더라고요."

"제가 찍은 53번째 사진은 늘 그래요. 무슨 저주라도 받았는지."
아무래도 술자리여서 그랬는지 A씨와 그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크게 흥분했다고 한다.
저주받았다니 무슨 말이냐고 흥미진진하게 묻는 사람들에게 약간 압도된 모양인지 B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년 전, 국토교통성의 기획으로 전국의 댐에서 ‘댐 카드’가 발행되었다. 댐의 사진과 기본 정보가 인쇄된 카드는 댐을 직접 방문해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건설된 ●●●●●에 있는 그 댐은 중력식 콘크리트댐으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특징인,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댐이었다고 한다. 다른 댐과 비교해서 딱히 볼거리가 있는 댐은 아니었고, 오히려 자살 명소로 지명도가 더 높았다.

몇 개의 모퉁이를 돌고 계단을 내려가 안내받은 대로 변위계 관리실이며 방류 게이트 관리실 등을 순서대로 둘러보았다. 복잡하게 뒤얽힌 터널 안에서 만에 하나 일행을 놓쳤다가는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만 같아 B씨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어중간하게 열려 있는 것이 신경 쓰여서 딴에는 친절한 마음으로 닫아놓으려고 손을 뻗은 B씨는 문을 닫기 전에 무심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청소 도구 같은 용품은 없었고, 로커 바닥에 놓인 프랑스 인형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여기 부임했을 때 이미 그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꼭 거기 놔두어야 한다고 선임이 후임에게 대대로 전하는 가르침인 모양입니다. 왜 놔두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찍어두라는 의미 같았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사진을 보며 한껏 분위기를 띄우고 싶었을 것이다.
천박한 제안에 질색하면서도 일감을 주는 출판사 사람의 말을 거스를 수 없어 B씨는 직원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인형을 촬영했다.

"그게 그 취재에서 찍은 53번째 사진이었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IMG-0053’의 데이터를 확인해 보니 새카만 것이 찍혀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편집자는 아쉬워했지만요. 그 이후로 제가 촬영할 때마다 53번째 사진에는 어김없이 새카만 것이 찍힙니다. 일에도 지장이 있으니 제발 좀 봐줬으면 싶네요."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종, 다양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취재하잖아요? 저도 알죠. 상황상 이렇게 말은 했지만, 속마음은 다른 데 있는 대답. B군이 뭔가를 숨기고 있구나, 금세 알아차렸죠."

"게다가 전 그 사진을 봤을 때 ‘새카만 사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B군은 ‘새카만 것이 찍혔다’라고 했어요. 이상하죠.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면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니까요. 그 사진에는 무언가가 찍혀 있고 제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신경을 쓰는 눈치였어요."

"입안이었어요. 아마 사람의 입일 거예요.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안을 화면 가득 촬영한 사진이었어요. 위아래의 흰 열은 치아고, 한가운데에 찍힌 것은 혀였죠."

"그런데 그 후로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어요. 눈 뜨고 나면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서운 꿈이에요. 산속 같은 데서 크게 입을 벌린 남자가 쫓아오는 꿈을 꿔요. 저도 저주에 걸려버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도 B씨에게 임시로 납품받는 사진 데이터에는 ‘IMG-0053’이 없다고 한다.

약 2년 전, 대학 3학년이었던 A씨는 학교 테니스 동아리에 소속된 동갑내기 남자와 사귀고 있었다.
1학년 무렵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가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무렵엔 매일 밤, 그 사람도 포함해서 다 함께 밤새 술도 마시며 꽤 천방지축으로 놀았죠."

"마시로사마22라고 불렀다는 것 같아요. 하는 방법은 간단한데, 서 있는 상태로 두 손을 위로 들고 ‘마시로사마, 마시로사마, 이리 오세요’라고 외친 다음에 그 자리에서 세 번 점프해요. 그게 다예요. 그렇게 하면 마시로사마한테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남자 친구가 ‘나 해볼래!’라며 비틀비틀 나서더니 ‘마시로사마, 마시로사마, 이리 오세요’ 하고 크게 외치고는 폴짝 뛰었어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모두 깔깔 웃었죠. 하도 웃으니까, 걔도 우쭐해져서 ‘한 번 더 할 테니까 내 폰으로 찍어줘! SNS에 올릴 거야’라며 제게 스마트폰을 건넸어요. 찍고 나서 스마트폰을 돌려주니까 신나서 SNS에 동영상을 올리더라고요."

"동영상 올린 지 5초도 안 됐는데 벌써 ‘좋아요’가 찍혔어. 게다가 모르는 계정이야."

그 계정은 게시물 0개, 팔로워는 0명, 팔로잉은 A씨의 남자 친구뿐이었다.
A씨는 어쩐지 으스스했지만, 남자 친구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 눈치였다.
당연하게도 마시로사마의 어떤 계시도 나타나지 않아서, 화제는 다른 방향으로 옮겨갔고 한바탕 흥이 오른 뒤 그날의 술자리는 마무리됐다.

계정이 ‘좋아요’를 찍는 것은 특정 사진이나 동영상도 아니었다. 남자 친구가 올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바로 ‘좋아요’를 눌렀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A씨 남자 친구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나자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어쩐지 서먹서먹해지더라고요. 저랑 함께 있어도 즐거워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건성이랄까. 혹시 나도 모르게 맘 상하게 한 게 있나 물어봐도 그렇지 않다고만 하고. 이미 제게서 마음이 떠났나 싶어서 슬펐어요."
어느 날 밤, A씨는 남자 친구의 집에 자러 갔다.

"걔가 계속 사과를 하고 있었어요. ‘미안해요’, ‘그건 못 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요. 터무니없는 여자한테 잡혀서 저와 헤어지란 말을 듣고 있구나 싶었죠."

A씨는 침대로 돌아왔지만 남자 친구는 아침까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A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자 친구의 집을 나섰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 또 남자 친구의 집에 자러 간 A씨.
"이젠 뭐 오기였죠. 반드시 증거를 잡고야 말겠단 생각이었어요."
바람기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A씨가 선택한 것은 남자 친구의 스마트폰이었다. 예전에 데이트했을 때, 남자 친구가 A씨 앞을 걸으면서 스마트폰의 잠금 화면을 해제한 적이 있었다. 볼 생각은 없었지만, 우연히 보인 그 비밀번호를 A씨는 기억했다.

화면에는 그가 보낸 일방적인 메시지만 대량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상대방이 보낸 답장은 전혀 없는데, 남자 친구는 계속 「미안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많아서 다 보지도 못했지만, 최근 몇 주 동안 계속 보낸 듯했어요. 하루에 몇십 통씩 보냈나 봐요."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A씨는 바람 핀 증거를 운운하기 전에 남자 친구에게 이유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남자 친구의 손에는 가위가 있었다.
그때 A씨는 처음으로 남자 친구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그는 울고 있었다. 웃는 표정을 억지로 붙여놓은 듯한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A씨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지켜보았다.
남자 친구는 저항 없는 A씨에게 다가와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가위로 싹둑 잘라냈다.

"환청을 들은 게 아니라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이걸로 일단 괜찮으니까’, ‘인형을 너로 할 테니까’ 같은,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렸어요."
A씨의 머리카락 다발을 들고 남자 친구는 침대 곁으로 가서 봉제 인형을 손에 쥐었다.
토끼 캐릭터 모양의 그 인형은 예전에 A씨와 남자 친구가 데이트할 때 들른 게임 센터의 인형 뽑기 기계에서 뽑은 추억의 물건이었다.

남자 친구는 그 인형에 머리카락을 둘둘 감았다.
그 후 머리카락이 감긴 인형을 손에 쥔 채, 쓰러져 있는 A씨 곁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다 함께 술을 마셨던 그날부터 그는 무엇과 바람을 피웠던 걸까요. 도대체 무엇한테 사과했던 걸까요."

일단 산으로 꾀는 것은 여성에게 집착하고 있다.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사건의 진상」이나 「신종 UMA 화이트맨 발견!」에서 알 수 있듯이 산으로 꾀는 것의 본체는 끝내 산에서 나오지 않고, 어떤 영향을 받은 남성을 이용해 여성을 산으로 끌어들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끌어들이는 남성들이 살아 있는지, 이미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부터 희미하게 느끼고는 있지만, 여성을 유인하는 목적은 ‘신부’로 삼으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다만 SNS에서 강령술을 해버린 남성이 걸려든 「바람기」 에피소드에도 있듯이 인형을 대역으로 바침으로써 신부가 되는 위험을 모면할 수 있는 것 같다. 신사 사당에도 다수의 인형이 방치돼 있었고, 댐 지하 시설의 로커에도 프랑스 인형이 놓여 있었다. 그 인형들도 대역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종 UMA 화이트맨 발견!」이나 「기다리고 있다」처럼 대역이 없어도 살아 있는 예외도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그저 운 좋게, 일시적으로 살아남았던 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보증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 빨간 여자는 어떤 사상에 근거하여 남자아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퍼뜨리려고 했다. 또는 남자아이의 존재, 의식 자체를 퍼뜨리려 했다.
"하지만… 연결될 것 같으면서도 연결되지 않아. 산으로 꾀는 것과 빨간 여자."

「온라인 의사 상담 서비스 게시글」에는 상담자의 아들이 휴양소의 폐허에 갔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사건의 진상」에 나온, 산의 서쪽에 있는 건물이 아닐까. 장소가 확실하게 적혀 있지는 않지만, 그 폐허는 지금도 심령 스폿으로 유명하다. 그것 말고는 그 근방에 달리 큰 폐건물이 없다.
게다가 단편 「바람기」에 나오는 ‘마시로사마’를 불러내는 의식, 이때의 움직임이 빨간 여자를 연상시킨다.
빨간 여자와 남자아이가 살았을 부적집은 저주 스티커와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지금은 거의 다 떼어냈지만, 스레드에서는 ‘了’라고 적힌 스티커의 존재가 넌지시 비쳤다.

자꾸만 생각이 곁길로 새는 것을 인정하며 건물을 바라보다 문득 그것을 알아차렸다. 정면의 건물, 무수한 창에 드문드문 밝혀진 불빛. 그 하나에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마치 아이가 서 있는 듯한 작은 그림자가. 무심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그저 잘못 본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한다. 창가에 놓인 비품을 사람의 그림자라고 잘못 보았을 뿐이었다. 나는 지쳐 있는 걸까.
"무슨 일이야? 갑자기 말도 없이."
스마트폰 너머로 세노가 목소리가 들렸다.
"아냐, 딱히."
"뭐야. 유령이라도 봤나 했네."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1991년경 설립된 신흥 종교로 ‘스피리추얼 스페이스’라고 불리는 그 교단은 일반적인 종교 단체와 달리 교조가 없다.
또 불교 계통이나 신토 계통, 혹은 기독교 계통과도 달라서 특정한 신불을 숭배하지도 않는다. 그녀들이 숭배하는 것은 ‘우주’ 자체다.

본지는 독자적인 경로로 이 교단의 어두운 소문을 접했다.
신자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중에는 가족이 동반 자살한 사례까지 있다고 했다.

잡지 취재가 아니라 입교 희망의 방식으로 잠입, 신자와 접촉함으로써 마침내 내부의 충격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하는 여성 작가가 쓴 보고서다.

어디까지나 ‘스피리추얼 스페이스’는 신앙 대상을 따로 두지 않으며, 중앙에 놓인 돌은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란다.
우주의 힘을 지닌 돌 곁에서 포교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한다.

편집부는 그녀가 먹은 식사에 어떤 약물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 그 후 교단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교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도 폐쇄돼 있었다.
긴키에 거주하는 작가에게 현지로 직접 가달라고 의뢰했는데, 시설 건물은 텅 비어 있었고, 보고서에 나온 큰 돌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집단이든 웃는 낯으로 서민들에게 접근하면서 사실은 세뇌와 금전 착취 같은 범법을 저지르고 있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본지는 계속해서 악랄한 사교 집단이 숨기고 있는 어둠을 파헤치고자 한다.

"사당? 아, 마시라사마의…. 거기라면 알지. 옛날엔 어른들이 걸핏하면 을러댔으니까."
"예? 정말요? 지금은 텅 빈 그 사당 말씀이시죠? 마시라사마라고 하나요?"
"뭐? 텅 비었다고? 거기엔 마시라사마의 돌이 모셔져 있을 텐데."

"종교 시설? 아, 그 수상쩍은 짓을 했던 집단. 이젠 없지, 그거. 기억하기로는 건물이 휴양손가 뭔가 됐다가 나중엔 계속 내버려뒀을걸. 그거랑 뭔 관계가 있는 거야?"
"그 종교 시설의 신자가 돌을 가지고 간 게 아닌가 싶은데요."

"원숭이요?"
"그렇다니까. 희고 커다란 원숭이. 우리 어릴 적엔 ‘늦게까지 나돌아다니면 마시라사마가 신부로 데려간다’ 하고 어른들이 을러댔지. 미신 믿는 아재들은 감 따는 철이 되면 감을 공물로 바치러 갔고."
"감을요?"
"그래, 먹는 감. 알지? 원숭이는 감을 좋아한대."

"그리고, 그거, 인형. 할머니가 손바느질한 인형을 바치러 갔지. 거기 계단이 많거든. 운동할 겸, 딱 좋지."
"그랬군요… 인형을 거기에…."
"여기도 댐 옆에 국도가 생길 때 다들 떠나서 사람이 줄었지. 옛날에는 집도 많았는데 이젠 사는 사람도 거의 없네. 마시라사마 이야기도 이젠 아는 사람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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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 중에 UMA를 본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본지 작가의 입소문이 발단이 되어 편집부는 UMA(미확인 생물)의 목격자인 H씨와 접촉하기로 했다. - P-1

듣자니 H씨는 돗토리현에 거주하며 대기업에 근무 중인 35세 직장인이었다. 적어도 우주와의 연결 고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한 그가 6년 전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갔다가 UMA를 목격했다고 한다. - P-1

UMA란 Unidentified Mysterious Animal의 약어로, 쉽게 말해서 미확인 생물이란 뜻이다. 이름대로 실제로 존재하는지 증명되지 않은 생물을 가리키는 총칭이다.
영어로 쓰여 있어 외국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명칭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다. 모두 다 아는 UFO가 Unidentified Flying Object(미확인 비행 물체)의 약칭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어 1976년 일본의 모 유명 SF 전문지가 명명한 것이 시초다. 덧붙여 영어로는 크립티드(Cryptid)라고 부른다. - P-1

일본에서 미확인 생물이 UMA냐 요괴냐 하는 논쟁은 히로스에 료코가 배우냐 아이돌이냐 하는 논쟁만큼이나 무의미하다.
갓파가 자신을 UMA로 부르건 요괴로 부르건 신경 쓸 리 없지 않은가? 우리 같은 매스컴이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의가 내려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스컴이란 어지간히 죄가 깊은 장사꾼이다. - P-1

여자의 감은 UMA에도 작용하는 모양이다. 처음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Y씨였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또 자꾸만 먼 곳이 신경이 쓰였다. H씨가 이유를 묻자 멀리서 어떤 시선이 느껴진다면서 댐을 사이에 둔 맞은편 산을 가리켰다. - P-1

이어서 틀어놓았던 라디오가 이상해졌다. 전파는 잡히지만, 때때로 남자 목소리 같은 소리가 방송에 섞여 들려왔다.
H씨 귀에는 신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M군은 "어—이—"로 들린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니 또 그렇게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 P-1

1975년 야마나시현 고후시에서 초등학생 2명이 UFO와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탑승자를 목격했다고 알려진 사건. 두 아동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현장 부근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목격 증언과, 7년 후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목격 증언도 더해져 일본에서는 UFO와 관련해 신빙성을 따질 때 거론하는 유명한 사례다. - P-1

저녁이 되어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다 함께 텐트를 차에 옮겨 실었을 때, H씨는 야영장 근처에 전망대 안내판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전망 좋은 장소에서 기념 촬영을 하려고 가족 모두 그 전망대로 가기로 했다. - P-1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댐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산이 있었다. 거리로 치면 500미터쯤 떨어진 그 산의 중턱, 나무들 틈에서 하얀 것이 보였다고 한다. 펄럭펄럭 움직이는 그것은 흰 천이 나무에 걸리며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보였다. - P-1

그것은 매우 커다란 손이었다. 나무들 틈새로 그 손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희고 커다란 몸도 보였다. 벌거숭이 같았다. 아마 크기가 몇 미터쯤 되어 보였다.
손은 그리 오라고 하듯 이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쌍안경에서 눈을 떼자 Y씨와 M군이 걱정스럽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H씨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시끄럽게 들려오던 벌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 P-1

한참 있다가 정신을 차린 H씨가 쌍안경에서 눈을 떼었을 때, Y씨와 M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해서 전망대 계단을 뛰어 내려왔더니 두 사람은 손을 붙잡고 주차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Y씨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웃으면서 "가요"라며 잠꼬대하듯 반복할 뿐이었다.
H씨는 억지로 두 사람을 차에 태우고 그곳을 떠났다. 차에 타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린 모양이지만, 전망대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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