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셀프 트래블 - 2025-2026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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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여행 1일차 2026.2.10.
[독서여행보고1] 비애(Hüzün) 속에 잠든 천년 제국, 그 흑백의 시간을 마주하다
​- 오르한 파묵의 시선으로 본 이스탄불의 우중충한 첫인상과 여정의 시작 -

​1. 출국 및 현지 도착
​가. 항공 이동 사항
ㅇ (이동편명) 아시아나항공 OZ551편 (인천 ICN → 이스탄불 IST)
ㅇ (좌석등급) 이코노미 클래스 20K
ㅇ (소요시간) 약 12시간 비행 후 현지 시각 오후 당일 16시 06분 도착
ㅇ (특이사항) 장시간 비행이나 정시 도착하였으며, 입국 수속 원활함.

​2. 이스탄불 신공항(IST)
​가. 개요 및 연혁
ㅇ (공식개장) 에르도안 대통령 주도로 건설되어 2018년 10월 29일 공식 개장식을 거행함.
ㅇ (노선이관) 기존 아타튀르크 공항의 여객 노선 전면 이관(Big Move)은 2019년 4월 6일 완료되어 본격 가동됨.
​나. 시설 및 운영 현황
ㅇ (부지규모) 부지 면적은 약 76.5㎢로 인천국제공항(약 56.2㎢) 대비 약 1.4배 수준임.
ㅇ (공항분위기) 터키항공 허브답게 이용객은 많으나, 인천공항 대비 상대적으로 한산함.
ㅇ (운영관리)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컨설팅 및 노하우 전수로 청결 상태 및 동선 관리가 무난함. 화장실 지저분.

​3. 현지 기상 (2월 10일 기준)
​가. 기상 개황
ㅇ (기상수치) 기온 8°C, 습도 78% 내외의 쌀쌀하고 습하며 전반적으로 우중충한 날씨를 보임.
​나. 문학적 고찰
ㅇ (작가의 시선)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저서 『이스탄불: 추억과 도시』에서 흐린 하늘과 비바람을 도시의 핵심 정서인 ‘휘쥔(Hüzün, 비애)‘과 엮어 서술함.(전체독은 아직, 일부독)
ㅇ (현장연계) 금일의 우중충한 날씨는 작가가 ˝밝은 풍광보다 흑백의 도시 감각에 끌린다˝고 고백했던 그 지점과 맞닿아 있음.
ㅇ (감상총평) 여행 첫날 마주한 흐린 풍경 속에서, 오르한 파묵이 사랑했던 ‘진정한 이스탄불의 흑백 서사‘를 고스란히 느낌.

1) ​˝나는 이스탄불의 밤과, 저녁의 어스름과, 비 오는 날의 회색빛과, 겨울의 추위를 사랑한다.˝ (비슷한 뉘앙스로 여러 번 언급됨)
2) ​˝나에게 이스탄불은 언제나 흑백의 도시였다.˝ (작가는 햇살 쨍한 컬러풀한 이스탄불보다, 비 오고 눈 내리는 흑백의 이스탄불이 진짜라고 했음)
3) ​˝비애(Hüzün)는 이스탄불 전체에 깔려 있는 감정이며, 나는 이 감정을 사랑한다.˝

​4. 석식 (튀르키예 전통식); Saafi Döner - İkitelli
​가. 메뉴 구성
ㅇ (주요메뉴) 되네르 케밥, 필라프(밥), 라바쉬(Lavaş).
ㅇ (후식메뉴) 케말파샤(Kemalpaşa) (시럽에 절인 치즈 디저트).
​나. 평가 및 반응
ㅇ (본인평가) 현지 식문화 체험으로서 맛과 구성이 양호(무난함).
ㅇ (동행반응) 배우자는 현지 특유의 향과 입맛 차이로 인해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함.

​5. 숙소(Wanda Vista Istanbul, 완다 비스타 이스탄불
​가. 시설 특징
ㅇ (자본성격) 중국계 자본 운영 호텔.
ㅇ (내부장식) 로비 등 주요 공간에 중국풍 인테리어 양식이 반영됨.
​나. 시설 하자 및 조치
ㅇ (하자내용) 객실 입실 직후 키 카드 삽입 시 전원 불량, 메인 차단기(Breaker) 차단 확인.
ㅇ (조치결과) 즉시 원인 파악 및 차단기 복구, 현재 정상 가동 중.
다. (총평) 일본 호텔보다 월등히 넓으나 시설 노후, 지저분함. 중국호텔보다 상당히 수준 떨어짐, 유럽과는 비슷. 여긴 유럽이니까.

​6. 금일 일정 변경 사항
​가. 일정 변동 내역
ㅇ (변경대상) 그랜드 바자르, 피에르 로티 언덕.
ㅇ (조치사항) 현지 사정 및 동선 효율화를 위해 여행 마지막 날(8일차)로 연기됨.

​7. 향후 여행 일정 (개략)
가. 전일정: 2026.2.10~2.18., 7박9일, 하나투어 패키지, 4인 가족여행
​나. 주요 일정 요약 (7박 9일)
ㅇ (1일차) 2/10(화): 인천 출발 → 이스탄불 도착 (일정 일부 연기).
ㅇ (2일차) 2/11(수): 이스탄불 → 카이세리, 카파도키아(괴레메 등), 동굴 호텔.
ㅇ (3일차) 2/12(목): 카파도키아(열기구 옵션) → 콘야 → 아피온(온천).
ㅇ (4일차) 2/13(금): 아피온 → 안탈리아(유람선 투어 등).
ㅇ (5일차) 2/14(토): 안탈리아 → 파묵칼레(석회붕, 카트 투어).
ㅇ (6일차) 2/15(일): 파묵칼레 → 에페소 → 이즈미르 → 이스탄불 복귀.
ㅇ (7일차) 2/16(월): 이스탄불 시내(성 소피아, 블루모스크 등).
ㅇ (8일차) 2/17(화): 이스탄불(박물관, 궁전, 그랜드 바자르 등) → 공항 이동.
ㅇ (9일차) 2/18(수): 인천 도착.

존명(尊命). 현지시각 새벽 두시 이십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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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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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5일차, 2025.12.28.(일요일)
도쿄를 떠나 다시 집으로


1. 도쿄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참 맑았다.

지난 4일 동안 우리 가족을 품어주었던 도쿄의 건물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도쿄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돌아가는 날이다.

첫날에는 비가 내렸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N‘EX를 타고 시부야로 들어왔고, 비 내리는 거리를 걸어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여행이 어느새 마지막 아침을 맞았다.

방 안에 흩어져 있던 짐을 하나둘 캐리어에 집어넣었다.

여행 마지막 날의 짐 정리는 언제나 그렇다.

올 때보다 분명 짐이 늘었다.

각자 챙겨온 물건에 여행하며 산 것들이 하나둘 보태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짐을 모두 챙기고 객실을 나왔다.


2. 4박을 보낸 호텔과 작별

이번 여행에서 4박을 보낸 곳은 JR EAST HOTEL METS SHIBUYA.

시부야역 신남개찰구와 가까워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기에 참 편한 숙소였다.

아침이면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했고, 밤이면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지친 몸으로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호텔을 나서기 전 가족들이 로비에 모였다.

캐리어와 배낭까지 챙기고 나니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9시 10분경 호텔을 나왔다.

호텔을 나와 시부야역으로 향했다.


3. 다시 시부야역

우리가 향한 곳은 시부야역 신남개찰구(新南改札, New South Gate).

이번 여행 내내 수없이 드나들었던 시부야역이지만 오늘은 목적이 다르다.

관광하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도쿄를 떠나는 길이다.

첫날에는 나리타공항에서 이곳으로 들어왔고, 오늘은 그 길을 거꾸로 돌아간다.

개찰구 앞에서 미리 준비한 승차권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시부야역 안으로 들어가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플랫폼에는 우리가 타고 갈 열차의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09시 45분.

나리타공항행 나리타 익스프레스(Narita Express), N‘EX였다.


4. 09시 45분, 나리타 익스프레스

우리가 탈 열차는 전 좌석 지정석인 나리타 익스프레스였다.

4호차 탑승 위치에서 기다렸다.

잠시 뒤 N‘EX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캐리어를 싣고 자리에 앉자 열차가 시부야역을 출발했다.

이제 정말 도쿄와 작별이다.

창밖으로 도쿄의 건물들이 뒤로 밀려났다.

며칠 동안 그렇게 복잡하게 느껴졌던 거대한 도시가 조금씩 멀어졌다.

도심을 벗어나자 풍경도 달라졌다.

높은 빌딩 대신 낮은 집들이 나타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논밭과 작은 마을들이 창밖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들판은 갈색빛이었다.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뒤로 숲과 야산이 이어졌다.

첫날에는 공항에서 도쿄로 들어오느라 앞으로 펼쳐질 여행만 생각하며 보았던 풍경이다.

도쿄에서 보낸 지난 며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5. 우리가 함께 걸었던 도쿄

이번 여행은 2025년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도쿄에서 보내기 위해 시작했다.

아키하바라와 아사쿠사를 돌아다니고, 에도성을 걸었다.

우에노공원에서는 왕인박사의 흔적을 만났고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 앞에도 섰다.

긴자의 화려한 거리와 츠타야서점도 돌아보고, 조조지에서는 오래된 에도의 흔적 뒤로 솟아 있는 도쿄타워를 바라보았다.

밤이면 또 다른 도쿄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모여든 것처럼 엄청난 인파가 쏟아졌다.

그리고 어제는 마님과 함께 후지노미야까지 다녀왔다.

일본을 여러 번 여행하면서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후지산을 처음 만났다.

신칸센 창밖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부터 시라이토 폭포와 타누키호에서 바라본 흰 머리의 후지산까지.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날이었다.


6.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다

N‘EX는 오전 11시경 나리타공항으로 들어섰다.

열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이동했다.

나리타공항 제1터미널.

첫날 일본에 도착해 설레는 마음으로 빠져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는 여행의 시작이었고 지금은 여행의 끝이다.

국제선 출발 안내를 따라 공항 안으로 이동했다.

캐리어를 끌고 긴 통로와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공항에는 일본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7. 일본에서 먹는 마지막 점심

오전 11시 30분경.

비행기를 타기 전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마지막 식사를 한 곳은 공항에 있는

‘돈카츠 신주쿠 사보텐(とんかつ新宿さぼてん)’.

여행 마지막 날 공항에서 먹는 밥이다.

테이블에는 돈카츠와 커다란 새우튀김이 올라왔다.

나는 따뜻한 우동도 함께 먹었다.

두툼한 유부가 올라간 우동에 돈카츠와 새우튀김까지 있으니 한 끼로는 충분했다.

아이들도 각자 주문한 음식을 먹었다.

며칠 동안 도쿄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먹었다.

초밥도 먹고, 로스트비프와 규카츠를 먹으려고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는 공항 식당의 돈카츠였다.

일본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라고 생각하니 평범한 점심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8. 공항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

밥을 먹고 출국하기 전 공항 안을 조금 더 둘러보았다.

기념품 매장에는 일본 각 지역의 이름이 들어간 스타벅스 머그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TOKYO, KYOTO, OSAKA, FUKUOKA를 비롯해 일본 곳곳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물건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다녀온 도시를 찾게 된다.

마지막 쇼핑까지 마치고 이제 출국장으로 향했다.


9. 이제 정말 일본을 떠난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구로 이동했다.

24번 게이트.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오후 1시 50분 출발
진에어 LJ0206편.

우리끼리는 청바지항공이라 부르는 그 비행기다.

나리타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다.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렸다.

며칠 전에는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나리타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느낀다.

출발하기 전에는 4박 5일도 제법 길어 보였는데 지나고 나면 언제나 짧다.

잠시 뒤 탑승이 시작됐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이륙시간이 좀 지나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려 일본 땅을 떠났다.

인천공항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다.


10. 하늘에서 바라본 일본의 산

고도가 높아지면서 창밖 풍경이 달라졌다.

아래로 산줄기가 끝없이 펼쳐졌다.

겨울 산의 능선에는 하얀 눈이 남아 있었다.

산과 산이 겹쳐지며 멀리까지 이어졌다.

어제는 후지산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보았는데 오늘은 비행기 안에서 일본의 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산도 사라졌다.

창밖은 온통 구름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그 위로 겨울 오후의 햇살이 비쳤다.

구름 위에서는 여행의 마지막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11. 네 식구의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

마님과 딸래미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출발할 때와는 다른 표정이 있다.

며칠 동안 그렇게 많이 걸어 다녔으니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함께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여행하던 것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이제는 딸래미가 식당을 예약하기도 하고 자기 일정도 챙긴다.

아들놈은 도시만 돌아다닌다고 불만을 터뜨리다가 후지산을 보러 가자니 새벽에는 못 일어난다며 호텔에서 게임을 하겠다고 했다.

각자 하고 싶은 것도 달라졌다.

그래도 다시 네 식구가 함께 도쿄에 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그것이면 됐다.


12. 다시 인천

비행기는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향했다.

구름 아래로 내려오면서 이제 여행도 정말 끝나간다.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지만, 오후 4시 40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수하물 찾는 곳으로 내려왔다.

전광판의 시각은 16시 47분.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며칠 전 이곳에서 캐리어를 끌고 출국장으로 향할 때만 해도 앞으로 펼쳐질 도쿄 여행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이제 같은 캐리어 안에는 일본에서 산 물건들과 지난 4박 5일 동안의 흔적이 함께 들어 있었다.

짐을 찾아 네 식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13. 여행을 마치며

202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비 내리는 도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그리고 12월 28일.

맑은 겨울 하늘 아래 도쿄를 떠났다.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장소도 많이 만났지만 오래전 기억과 다시 이어진 순간들도 많았다.

에도성을 걸으며 일본의 역사를 생각했고, 우에노에서는 왕인박사를 만났다.

사이고 다카모리 앞에서는 일본의 근대사를 떠올렸고, 조조지에서는 에도시대의 절 뒤로 솟아 있는 도쿄타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하루 전에는 그동안 그렇게 보고 싶었던 후지산을 드디어 만났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가족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여행이었다.

마님과 나, 딸래미와 아들놈.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걷고, 기다리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여행이 끝나면 결국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순간들이다.

비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한 도쿄 여행은,

구름 위로 펼쳐진 겨울 햇살을 바라보며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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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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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4일차, 2025.12.27.(토요일)
물의 고향 시라이토 폭포와 구름 사이 후지산(오후편)


13. 버스에서도 계속 따라오는 후지산

시라이토 폭포를 출발한 버스는 타누키호(田貫湖)를 향해 산길을 달렸다.

창밖을 바라보는데 또 후지산이 나타났다.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조금 지나면 또 눈 덮인 정상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 신칸센에서 처음 후지산을 본 뒤부터 계속 이렇다.

신후지역에서도 보고,
택시에서도 보고,
미노부선에서도 보고,
후지노미야에서 시라이토 폭포로 가는 길에도 봤다.

그리고 이제 타누키호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또 보고 있다.

오늘은 정말 후지산의 흰 머리를 질리도록 본다.

구름이 조금만 움직여도 산의 모습이 달라지고,
보는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또 다른 후지산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오늘 하루 사진의 절반은 후지산이 차지할 것 같다.


14. 오전 10시 10분, 타누키호에 도착하다

오전 10시 10분경 타누키호(田貫湖)에 도착했다.

후지산 서쪽의 아사기리고원에 자리한 호수다.

동서 약 1km,
남북 약 0.5km,
둘레 약 3.3km.

크게 부담 없이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크기의 호수다.

버스가 떠나고 주변이 조용해졌다.

도쿄에서 들었던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소음은 사라지고,
호수와 숲, 겨울 하늘만 남았다.

입구에는 TANUKIKO FUGAKU TERRACE

라고 적혀 있었다.

타누키호 후가쿠 테라스(田貫湖富岳テラス).

‘후가쿠(富岳)’는 후지산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 후지산을 바라보기 위한 테라스다.

이름 한번 참 제대로 지었다.


15. 호수와 후지산 사이를 걷다

호숫가 길로 들어섰다.

키 큰 삼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숲길을 지나자 타누키호가 바로 옆으로 나타났다.

겨울이라 나뭇잎은 대부분 떨어졌지만 오히려 시야가 탁 트였다.

호수는 잔잔했고,
파란 하늘에는 커다란 구름들이 빠르게 흘렀다.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타누키호는 헤라부나(ヘラブナ) 낚시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헤라부나는 일본에서 즐겨 낚는 붕어의 일종으로, 섬세한 찌의 움직임을 읽어 낚는 일본 특유의 붕어낚시 문화가 발달해 있다.

물 위에는 오리들이 떠다녔다.

도쿄에서 사흘 동안 사람에 치이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이런 길을 걸으니 완전히 다른 여행에 온 것 같았다.


16. 구름이 열리자 다시 후지산

문제는 구름이었다.

타누키호에 도착했을 때 후지산은 대부분 구름 뒤에 숨어 있었다.

“아이고. 여기까지 왔는디 좀 보여주지.”

그런데 호숫가를 걷다 보니 구름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얀 정상부가 다시 나타났다.

후지산이다.

이번에는 아침 신칸센에서 본 모습과 또 달랐다.

눈 덮인 산 정상 아래로 구름이 허리띠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에는 타누키호의 푸른 물이 펼쳐져 있었다.

산과 호수와 구름이 한꺼번에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17. 손바닥 위에 후지산

마님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후지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호수를 배경으로 둘이 셀카도 찍었다.

나도 손을 펼쳐 후지산을 올려놓았다.

마님도 똑같이 해봤다.

사진으로 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아까 신칸센에서 후지산 정상만 보여도 그렇게 흥분했는데,
이제는 호수 앞에 서서 후지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고 있다.

하루 만에 후지산하고 많이 친해졌다.


18. 구름과 후지산의 숨바꼭질

후지산은 계속 모습을 바꿨다.

구름에 완전히 가렸다가,
정상만 빼꼼 내밀었다가,
잠시 뒤에는 거의 산 전체가 드러났다.

조금 지나면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또 나타났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면 구름이 덮이고,
포기하고 걸어가면 다시 모습을 보여준다.

후지산하고 숨바꼭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

완전히 가려져 보지도 못한 것이 아니라,
기다리면 계속 다시 나타나주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후지산의 흰 머리를 정말 질리도록 봤다.

그런데도 카메라는 계속 후지산 쪽을 향하고 있었다.


19. 타누키호에서 바라본 후지산

호수 건너 후지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잠시 멈췄다.

푸른 호수,
겨울빛의 갈대,
검은 숲,
그 뒤에 하얀 후지산.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도 멋있었다.

완전히 맑은 날의 후지산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구름 사이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후지산은
보일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오늘 처음 본 산인데 벌써 수십 번을 본 것 같다.

책으로 보고,
사진으로 보고,
플래티넘 #3776 만년필로 모아두었던 후지산.

그 산이 오늘 하루 종일 눈앞에 있다.

참 묘한 기분이다.


20. 모토스호는 다음에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모토스호(本栖湖)가 있다.

플래티넘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만년필 가운데 하나인 ‘모토스(本栖)’의 바로 그 호수다.

만년필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이름이니 실제 호수도 한번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왔는디 모토스호도 가볼까?”

마음 같아서는 바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정이 맞지 않았다.

아쉽지만 포기했다.

만년필 속 모토스호는 가지고 있지만 실제 모토스호는 다음 여행으로 남겨두었다.


21. 타누키호를 떠나 다시 후지노미야로

호숫가를 계속 걸었다.

뒤를 돌아봐도 후지산,
조금 걷다 고개를 들면 또 후지산이었다.

구름 사이로 하얀 정상이 보일 때마다 또 사진을 찍었다.

평생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던 후지산을 오늘 하루에 몰아서 보는 것 같았다.

시라이토 폭포에서는 무지개를 봤고,
타누키호에서는 후지산을 질리도록 봤다.

마님과 둘이 호숫가를 걷고,
사진을 찍고,
또 후지산을 바라봤다.

멋진 하루다.

오전 11시 30분경.

이제 타누키호를 떠날 시간이 됐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후지노미야 방면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뒤 버스가 도착했고 마님과 함께 올라탔다.

버스가 타누키호를 벗어나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또 후지산이 따라왔다.

구름에 가려졌다가,
잠시 뒤 다시 흰 정상을 보여주었다.

아침부터 실컷 보았는데 떠나는 길까지 후지산이 배웅해주는 것 같았다.

타누키호는 조금씩 멀어졌다.

이제 다시 후지노미야로 돌아간다.


22. 이제 다시 도쿄로

오전 11시 30분경 타누키호를 출발한 버스는 후지노미야를 향해 산길을 내려갔다.

아침부터 그렇게 많이 본 후지산인데 돌아가는 길에도 자꾸 창밖으로 눈이 갔다.

구름 사이로 흰 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주택가 지붕 너머로 보였다가 커다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조금 더 달리면 또 하얀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아침 신칸센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는 조금 달랐다.

이제는 후지산이 오늘 하루의 배경처럼 느껴졌다.

버스는 산기슭을 내려와 다시 후지노미야 시내로 들어왔다.


23. 오후 12시 40분, 후지노미야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다

후지노미야역(富士宮駅)으로 돌아왔다.

역 앞 세븐일레븐에 들러 돌아가는 길에 먹을 것들을 샀다.

영수증 시간은 오후 12시 40분.

참치마요네즈 주먹밥과 샌드위치 등을 챙겼다.

아침부터 계속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점심을 먹을 만한 시간은 없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맛집 찾아 앉아서 천천히 먹는 날이 있는가 하면, 기차시간 맞추느라 편의점 주먹밥 하나 들고 뛰는 날도 있다.

오늘은 후자다.


24. 오후 12시 49분, 미노부선으로 후지역까지

후지노미야역 전광판에는 미노부선(身延線) 후지역(富士駅) 방면 열차가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탈 열차는 오후 12시 49분 출발 후지역행 보통열차.

아침에는 후지역에서 8시 6분 열차를 타고 후지노미야로 왔으니 이제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오후 12시 49분 열차에 올랐다.

아침에는 앞으로 펼쳐질 하루가 궁금해 창밖을 내다봤다면 돌아가는 지금은 조금 느긋했다.

시라이토 폭포도 봤고, 무지개도 봤고, 타누키호도 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후지산을 오늘 원 없이 봤다.


25. 후지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신후지역으로

미노부선을 타고 후지역까지 돌아왔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후지역과 신후지역은 철도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아침에는 신후지역에서 후지역까지 택시를 탔고, 돌아가는 길에는 반대로 후지역에서 다시 택시를 탔다.

신후지역(新富士駅)으로 이동했다.

아침에는 하루를 시작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지나갔던 길인데 돌아올 때는 한 번 지나온 길이라 훨씬 익숙했다.

신후지역에 도착해 도쿄 방면 신칸센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26. 신후지역에서 먹는 늦은 점심

신칸센을 기다리며 아까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먹을 것을 꺼냈다.

참치마요네즈 삼각주먹밥.

그리고 달걀샌드위치.

마님과 각자 하나씩 들고 사진도 찍었다.

화려한 음식도 아니고 특별한 지역음식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시라이토 폭포와 타누키호를 돌아다닌 뒤 먹으니 이것도 맛있다.

신후지역에서 마님과 주먹밥과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아침에도 신칸센을 타며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고, 돌아가는 길에도 다시 신칸센을 기다리며 간단하게 배를 채운다.

오늘은 참 기차여행다운 하루다.


27. 오후 1시 40분경, 다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오후 1시 40분경.

신후지역에서 도쿄 방면 신칸센에 올랐다.

우리가 이동할 구간은 신후지에서 도쿄·시나가와까지다.

아침에는 후지산을 보러 내려왔고 이제 다시 거대한 도시 도쿄로 돌아간다.

기차에 자리를 잡으니 비로소 몸이 좀 풀렸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여기저기 갈아타며 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오늘 보고 싶었던 것은 다 봤다.

차창 밖으로 도시와 풍경이 차례로 지나갔다.

후지산 기슭의 숲과 호수는 점점 멀어지고 다시 빽빽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8. 다시 도쿄, 그리고 시부야로

도쿄로 들어오자 다시 사람이 많아졌다.

기차에서 내리고 JR 야마노테선(山手線)으로 갈아타 시부야로 향했다.

조용한 타누키호에 있다가 시나가와역과 야마노테선의 사람들 틈에 들어오니 같은 날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며칠 동안 계속 봐왔던 도쿄인데도 오늘은 유난히 복잡하게 느껴졌다.

아침에는 마님과 둘이 호텔을 나섰지만 이제 시부야로 돌아가 아들과 다시 합류할 시간이다.

딸래미는 아직 일본 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은 예정대로 호텔에서 요괴워치를 잡으며 하루를 보냈다.

아들과 합류하고 나니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다.


29. 오후 4시 29분, 오늘 저녁도 역시 기다림

마님과 나, 아들까지 셋이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딸래미는 아직 일본 친구를 만나고 있어 돌아오지 않았다.

찾아간 곳은 스시만(すし萬).

오후 4시 29분.

가게에 도착해 웨이팅을 걸었다.

인원은 3명.

우리 번호는 137번이었고, 화면에 떠 있는 호출번호는 125번이었다.

그러나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또 기다린다.

이번 여행은 먹으려면 일단 기다려야 하나 보다.

아키하바라에서 로스트비프를 먹을 때도 기다렸고, 규카츠를 먹을 때도 한참 기다렸다.

오늘 초밥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약 50분을 기다렸다.

오후 5시 20분경이 되어서야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젠장.

밥 한번 먹기 참 힘들다.


30. 아들아, 광어가 없다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느라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이제 초밥만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마님과 나, 아들까지 셋이 자리에 앉았다.

마님과 나는 생맥주를, 아들은 음료를 앞에 놓고 일단 한숨을 돌렸다.

자, 이제 먹어보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광어가 없다.

정확히는 거의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지 않았단다.

“뭐?
광어가 없다고?”

아이고.

50분이나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하필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광어가 거의 떨어졌다니.

오늘 하루 후지산을 보고 기분 좋게 돌아왔는데 여기서 갑자기 열이 받는다.

“아니, 초밥집에 광어가 떨어지믄 우짜자는겨.”

그래도 여기까지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다시 나갈 수도 없다.

남아 있는 광어 몇 점부터 챙겨 먹고 다른 초밥들을 주문했다.

참치도 먹고, 새우도 먹고, 이것저것 접시는 계속 쌓였다.

광어 때문에 시작은 좀 거시기했지만 마님과 나, 아들 셋이서 늦은 저녁을 잘 먹었다.


31. 다시 시부야의 밤거리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낮의 후지노미야와는 정말 다른 세상이다.

대형 전광판에서는 광고가 쏟아지고 건물마다 불빛이 번쩍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흘러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쪽으로 걸어갔다.

며칠 동안 시부야를 계속 돌아다녔지만 오늘 밤 사람 숫자는 또 달랐다.


32. 워매, 세계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나

스크램블 교차로에 도착했다.

워매.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맞은편 횡단보도 끝이 사람으로 꽉 찼다.

옆쪽도 사람.

대각선 건너편도 사람.

어디를 봐도 사람뿐이다.

“세계 사람들은 여기 다 모였나벼.”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앞에서 오고, 옆에서 오고, 대각선에서도 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교차로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사람 속에 들어가 있으니 내가 길을 걷고 있는지, 사람 물결에 떠밀려 이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사람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의 인파는 차원이 달랐다.


33. 수천 명이 움직이는 도쿄의 풍경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인도로 빠져나갔다.

잠시 뒤 자동차들이 교차로를 차지한다.

그리고 다시 신호가 바뀌면 사람들이 쏟아진다.

이 장면이 계속 반복된다.

스크램블 교차로를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많이 봤다.

그런데 실제로 그 한가운데 들어가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전광판과 네온사인, 높은 빌딩, 버스와 자동차,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

도쿄라는 도시가 가진 에너지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는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후지산을 보고 흥분했다.

낮에는 시라이토 폭포의 물소리를 듣고 타누키호의 조용한 길을 마님과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부야 한가운데서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34. 후지산에서 시부야까지, 참 멋진 하루

스크램블 교차로를 몇 번이나 바라보고 사진도 실컷 찍었다.

아침부터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후지산을 찍고,
시라이토 폭포를 찍고,
무지개를 찍고,
타누키호를 찍고,
마님을 찍고,
다시 후지산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에는 사람을 찍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아침의 주인공이 후지산이었다면 밤의 주인공은 시부야의 사람들이었다.

평생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었던 후지산을 오늘 처음 만나 원 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저녁에는 시부야로 돌아와 아들과 합류해 함께 밥을 먹고 밤거리를 걸었다.

광어가 거의 떨어져서 잠깐 열받은 것만 빼면 말이다.

아침 5시부터 시작한 긴 하루였다.

후지산의 흰 머리도 질리도록 봤고, 시라이토 폭포의 무지개도 봤고, 타누키호도 걸었다.

그리고 하루의 끝에는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멋진 하루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내일은 벌써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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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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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4일차, 2025.12.27.(토요일)
물의 고향 시라이토 폭포와 구름 사이 후지산(오전편)


1. 새벽 5시, 결국 마님과 둘이 떠나다

새벽같이 일어났다.
아직 밖은 깜깜했다.

어젯밤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에게 후지노미야에 가자고 했더니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느냐고 물었다.

“5시에는 일어나야 헐틴디.”

그 한마디에 아들은 바로 포기했다.

“못 일어납니다.
차라리 호텔에서 하루 종일 게임할랍니다.”

딸래미는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고, 결국 오늘 후지산을 보러 가는 사람은 마님과 나 둘뿐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새벽의 시부야 거리는 지난 며칠 동안 보았던 모습과 또 달랐다.

밤마다 사람으로 넘쳐나던 시부야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조용하다.
오전 5시 20분경 시부야역(渋谷駅)에 도착해 JR을 타고 도쿄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도쿄를 벗어난다.
목적지는 후지산 기슭의 후지노미야(富士宮)다.


2. 새벽의 도쿄역, 고다마를 기다리며

오전 6시가 조금 넘어 도쿄역에 도착했다.

도카이도·산요 신칸센(東海道・山陽新幹線) 승강장으로 들어서자 전광판에는 이른 아침부터 열차들이 줄줄이 떠 있었다.

노조미(のぞみ), 히카리(ひかり), 고다마(こだま).

이름도 일본답다.

노조미(のぞみ)는 ‘희망·바람’,
히카리(ひかり)는 ‘빛’,
고다마(こだま)는 ‘메아리’라는 뜻이다.

도카이도 신칸센에서는 이름뿐 아니라 역할도 서로 다르다.
노조미는 도쿄·나고야·교토·신오사카 등 주요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는 최속달 열차이고, 히카리는 노조미보다 정차역이 많으며, 고다마는 도카이도 신칸센의 모든 역에 정차한다.

우리가 탈 열차는 오전 6시 30분 출발 고다마 701호(こだま701号).

도쿄에서 나고야 방향으로 내려가는 도카이도 신칸센이다.

오늘 목적지인 신후지역(新富士駅)은 노조미가 서지 않는다.
우리는 신후지에 정차하는 고다마를 타고 간다.

열차에 오르기 전 아침거리도 준비했다.

샌드위치와 부드러운 카츠샌드.
그리고 플랫폼에서 따뜻한 커피도 샀다.

한겨울 이른 아침의 신칸센 플랫폼.
손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열차를 기다리니 이제야 조금씩 잠이 깨는 것 같았다.


3. 오전 6시 30분, 고다마 701호 출발

오전 6시 30분.

고다마 701호가 도쿄역을 출발했다.

역시 신칸센이다.

도쿄를 벗어나자 열차는 말 그대로 쌩쌩 달렸다.

마님과 나란히 앉아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카츠샌드로 아침을 먹고 따뜻한 커피도 마셨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였지만 창밖 풍경이 도시에서 산과 들로 바뀌기 시작하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다.

일본을 여러 번 여행했지만 지금까지 후지산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진으로는 수도 없이 봤다.
일본을 상징하는 산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후지산을 소재로 한 물건도 좋아했다.

일본 플래티넘(PLATINUM)의 #3776 센추리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만년필(万年筆)도 모았다.
후지산 주변의 다섯 호수를 하나씩 표현한 모토스(本栖), 쇼지(精進), 사이(西), 야마나카(山中), 가와구치(河口) 시리즈다.

‘#3776’이라는 이름부터 후지산의 높이 3,776m에서 따온 만년필이다.

그리고, 후지산과의 인연은 한번 엇갈린 적도 있었다.

재작년쯤 후지산을 등반하려고 하나투어 패키지여행까지 예약했었다.

이제 후지산을 보겠구나 했는데 출발을 앞두고 일이 생겼다.

마님이 사무실 체육행사로 대둔산에 갔다가 다리를 삐어서 돌아온 것이다.

결국 여행을 취소했다.

마님은 부상 때문에 취소수수료 없이 취소가 됐는데, 멀쩡했던 나는 위약금을 물고 취소해야 했다.

ㅠㅠㅠ.

그렇게 한번 만나려다 실패했던 후지산이다.

후지산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정작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한번은 여행까지 예약했다가 가지 못했던 그 후지산을 오늘 드디어 만나러 간다.


4. “후지산이다!”

신후지역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자꾸 창밖을 살폈다.

오늘 처음 만나게 될 후지산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열차 진행 방향 오른쪽 차창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지산(富士山).

처음에는 구름에 가려 산허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구름 위로 정상 부분만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어? 저거 후지산 아녀?”

마님과 나 둘 다 창밖으로 시선이 꽂혔다.

열차가 조금 더 달리자 구름 사이가 열리면서 눈을 뒤집어쓴 정상부가 점점 선명해졌다.

워매.

후지산이다.

일본을 여러 번 다니면서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고, 한번은 여행까지 예약했다가 가지 못했던 후지산을 드디어 처음 만났다.

순간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

카메라를 들고 연달아 셔터를 눌렀다.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던 후지산은 어느 순간 눈 덮인 정상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사진으로 수없이 봐왔던 바로 그 모습이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거대한 원뿔형 산.
그 아래는 구름에 잠겨 있고 정상만 하늘 위로 솟아 있었다.

책과 사진으로 보고, 만년필로까지 모았던 후지산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

아들아.
니가 이걸 놓쳤다.


5. 오전 7시 34분, 신후지역에 내리다

오전 7시 34분경 신후지역(新富士駅)에 도착했다.

고다마에서 내려 플랫폼을 걸으며 다시 후지산을 바라봤다.
역에서도 구름 사이로 눈 덮인 정상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후지노미야행 열차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후지역은 도카이도 신칸센 역이고, 우리가 타야 할 미노부선(身延線)은 후지역(富士駅)에서 출발한다.
두 역은 철도로 직접 이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택시를 탔다.

오전 7시 38분경 신후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후지역으로 이동했다.

택시 창밖으로도 후지산이 계속 따라왔다.
도시 어디에서 고개를 돌려도 저 거대한 산이 배경처럼 서 있는 풍경이 신기했다.


6. 신칸센에서 로컬열차로

후지역 남쪽 출구(富士駅南口)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JR 미노부선(身延線)을 타야 한다.

전광판에는 우리가 탈 열차가 정확하게 표시돼 있었다.

08:06.
보통(普通).
니시후지노미야(西富士宮)행.
2번 승강장.

두 량짜리 작은 로컬열차였다.

조금 전까지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신칸센을 타고 왔는데 이제는 동네를 천천히 이어가는 작은 전철이다.

오전 8시 6분 열차가 후지역을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후지산 주변의 주택과 들판이 지나갔다.
도쿄에서 보던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던 ‘자연’이 이제야 나타났다.

정작 그 녀석은 호텔에서 닌텐도를 하고 있겠지만.


7. 오전 8시 25분, 후지노미야에 도착하다

오전 8시 25분경 후지노미야역(富士宮駅)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라이토 폭포(白糸の滝)로 가는 버스가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한다.

환승시간은 불과 5분.

열차에서 내려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오전 8시 30분.
후지노미야역을 출발했다.

신칸센에서 택시로, 택시에서 미노부선으로, 다시 버스로.

도쿄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교통수단을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연결이 신기할 정도로 딱딱 맞았다.


8.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를 지나 산 아래로

버스가 후지노미야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곧 창밖으로 커다란 붉은 도리이가 나타났다.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富士山本宮浅間大社).

오늘은 버스에서 바라보며 그대로 지나갔지만 그냥 후지노미야에 있는 큰 신사 하나는 아니다.

후지산 자체를 신성한 산으로 숭배해온 일본의 후지산 신앙과 깊이 연결된 곳으로, 전국에 1,300여 곳이 있다는 센겐신사(浅間神社)의 총본궁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주제신은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노미코토(木花之佐久夜毘売命).
별칭으로 센겐다이진(浅間大神)이라 불리며 후지산의 신으로 숭배되어 왔다.

후지산은 지금 우리 눈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산이자 관광지로 먼저 보이지만, 옛사람들에게는 언제 다시 불을 뿜을지 모르는 거대한 화산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신이 머무는 신성한 산이었다.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의 기원 역시 후지산의 분화를 진정시키고 산의 신을 모시는 신앙과 연결되어 전해진다.
후지산 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이곳 역시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의 주요 사전 가운데 본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보호 아래 1604년에 조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후지산과 이 신사의 관계는 산 아래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후지산 정상부의 8부 능선 이상에는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의 경내지로 여겨지는 구역이 있으며, 정상의 분화구 자체도 신성한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말하자면 후지노미야 시내에 있는 이 신사와 멀리 솟아 있는 후지산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장소가 아니라, 오랜 후지산 신앙 속에서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인 셈이다.

2013년 후지산이 ‘후지산-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 때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도 그 가치를 이루는 구성자산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 우리가 향하는 시라이토 폭포도 같은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의 구성자산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단순히 폭포 하나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후지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공간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시간 때문에 버스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커다란 붉은 도리이가 뒤로 멀어졌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주택은 줄어들고 들판과 산이 가까워졌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후지산은 구름에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조금씩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도쿄의 고층빌딩과 전철역을 돌아다니다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일본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9. 오전 9시, 시라이토 폭포

오전 9시경.

버스가 시라이토노타키(白糸の滝)에 도착했다.

도로 표지판에는 일본어와 영어뿐 아니라 한글로도

‘시라이토노타키’ 라고 적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폭포 쪽으로 걸었다.

안내판을 따라 숲길로 접어들자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시라이토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 전체에서 수십, 수백 갈래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하얀 실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라이토(白糸).

말 그대로 ‘흰 실’이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


10. 땅속에서 솟아나 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

시라이토 폭포가 신기했던 것은 단순히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물줄기가 위쪽 강에서 한꺼번에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절벽의 지층 사이에서 물이 솟아나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지산에 내린 비와 눈이 화산지층 속으로 스며든 뒤 오랜 시간 지하를 흐르다가 이곳에서 용출하면서 폭포를 만든다.

절벽의 검은 화산암 사이에서 물이 끊임없이 배어 나와 가느다란 흰 실처럼 떨어졌다.

폭 약 150m에 걸쳐 수많은 물줄기가 이어지는 모습은 다른 폭포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숲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포가 점점 가까워졌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가느다란 실 같던 물줄기들이 가까이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11. 시라이토 폭포에 뜬 무지개

폭포 아래로 내려섰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정말 멋졌다.

왼쪽에서는 굵은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지고, 오른쪽 절벽 전체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검은 화산암과 초록빛 이끼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이어졌고,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흘렀다.

그리고 햇빛이 폭포의 물보라에 닿는 순간 희미하게 무지개가 나타났다.

“여보, 저기 무지개.”

폭포 한가운데 작은 무지개가 걸렸다.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
파란 하늘과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검은 절벽을 따라 수없이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
그리고 그 위에 잠시 나타난 무지개.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여기까지 온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 기분이었다.


12. 마님과 둘이 맞은 멋진 아침, 그리고 타누키호로

폭포를 배경으로 마님과 사진을 찍었다.

둘이 셀카도 찍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천천히 폭포 주변을 걸었다.

어제까지는 네 식구가 도쿄의 사람들 틈에 섞여 바쁘게 돌아다녔다.

오늘은 마님과 둘뿐이다.

딸래미는 일본 친구를 만나고 있고,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은 호텔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결국 마님과 내가 둘이서 후지산 아래까지 왔다.

신칸센 차창에서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을 처음 보고 흥분했고, 시라이토 폭포에서는 절벽을 따라 흰 실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무지개까지 만났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보람이 있었다.

마님과 둘이 맞은 후지산 아래의 아침은 참 좋았다.

폭포를 충분히 둘러본 뒤 다시 위쪽으로 올라왔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시라이토 폭포가 내려다보였고, 다리를 건너며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봤다.

이 물길은 시바가와(芝川).

후지산에서 흘러나온 물을 품고 흐르는 강이다.

하늘에는 새 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녔다.

폭포 입구 쪽으로 돌아와 버스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타누키호(田貫湖).

시라이토 폭포에서 조금 더 후지산 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호수다.

정류장에는 타누키호와 휴가촌 후지(休暇村富士) 방면으로 이어지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오늘은 렌터카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날이다.

신칸센을 타고,
택시를 타고,
미노부선 로컬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시라이토 폭포까지 왔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후지산 아래의 호수로 들어간다.

타누키호.

그보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모토스호(本栖湖)도 있다.

플래티넘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만년필 가운데 하나인 ‘모토스(本栖)’의 바로 그 호수다.

만년필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이름이라 실제 모토스호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가서 모토스호까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정이 맞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포기했다.

만년필 속 모토스호는 가지고 있지만 실제 모토스호는 다음 여행으로 남겨두었다.

버스가 올 시간이 가까워졌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다 타누키호 방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라이토 폭포가 뒤로 멀어졌다.

이제 다음은 타누키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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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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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3일차, 2025.12.26.(금요일)
백제의 흔적을 지나, 긴자와 도쿄타워의 불빛 속으로(오후편)


13. 오후 2시 50분, 이제 긴자로

오후 2시 50분경 우에노공원 산책을 마치고 다시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도쿄메트로 긴자선(東京メトロ銀座線)을 타고 다음 목적지 긴자(銀座)로 향했다.

오후 3시 10분쯤 긴자역에서 밖으로 나왔다.
우에노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대형 백화점과 명품점, 유리와 금속으로 번쩍이는 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에노에서 오래된 일본을 보고 왔다면 긴자는 완전히 현대의 도쿄였다.


14. 마님과 딸은 쇼핑, 나와 아들은 커피

긴자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가족이 둘로 나뉘었다.
마님과 딸은 쇼핑을 하러 가고, 나와 아들은 커피나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자들은 쇼핑허고, 우리는 커피나 묵자.”

처음 찾아간 곳은 EXITMELSA(イグジットメルサ)였다.
건물 안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하며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드럽게 많다.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다.

“아이고, 여기는 안 되겄다.”
결국 다시 밖으로 나왔다.


15. 긴자 식스, 츠타야 서점으로

다음으로 향한 곳은 GINZA SIX(ギンザ シックス)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긴자 츠타야 서점(銀座 蔦屋書店)으로 올라갔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책과 미술·디자인 관련 서적, 각종 전시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 안에도 스타벅스가 있었다.

“여기서는 앉을 수 있겄지.”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많다. 역시 자리가 없다.

긴자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결국 커피는 포기했다.
아들과 함께 서점을 둘러보다가 근처 의자에 앉아 마님과 딸이 쇼핑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16. 끝없이 달리는 사람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GINZA SIX 중앙 아트리움에 설치된 재미있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의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사람들이 LED 화면 위를 끝없이 뛰어다녔다.

영국 현대미술가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Marathon. Women.》이라는 작품이었다.
여성 달리기 선수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선과 색으로 표현한 영상작품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여러 개의 화면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달리고 있으니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커피는 못 마셨지만 아들과 의자에 앉아 서점도 구경하고, 달리는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17. 오후 4시 7분, 긴자에서 도쿄타워로

마님과 딸도 쇼핑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후 4시 7분경 GINZA SIX에서 가까운 히가시긴자역(東銀座駅, A11)으로 이동했다.

히가시긴자역에서 도에이 아사쿠사선(都営浅草線)을 타고 다이몬역(大門駅, A09)으로 향했다.
오후 4시 20분경 다이몬역에서 전철을 내렸다.

긴자의 명품거리에서 전철을 타고 불과 10여 분 이동했을 뿐인데 밖으로 나오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조조지(増上寺)를 지나 도쿄타워까지 걸어갈 차례다.


18. 다이몬을 지나 조조지로

다이몬역에서 나와 조조지 쪽으로 걸었다.
곧 길 한가운데 커다란 붉은 문이 나타났다.

다이몬(大門).

말 그대로 ‘큰 문’이라는 뜻으로 조조지로 들어가는 길목을 상징하는 문이다.
조조지의 바깥쪽 총문에 해당하는 문으로, 지금은 이 일대의 지명과 지하철역 이름에도 ‘다이몬’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의 다이몬은 에도시대의 문이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고, 옛 문을 본떠 193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조조지가 1598년 지금의 시바(芝)로 옮겨올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성에서 사용하던 문을 조조지의 정문으로 내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이몬을 지나자 멀리 나무 사이로 도쿄타워의 붉고 흰 철골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식 빌딩 사이에 오래된 절의 문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다시 도쿄타워가 보이는 풍경이 묘하게 어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자의 명품매장과 GINZA SIX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정거장 옮겼을 뿐인데 전혀 다른 도쿄가 나타났다.


19. 도쿠가와의 절, 조조지

다이몬을 지나 조조지(増上寺)로 들어갔다.
정식 명칭은 산엔잔 고도인 조조지(三縁山広度院 増上寺)로, 정토종의 대본산 가운데 하나다.

조조지의 역사는 에도 막부보다도 오래됐다.

1393년 유요쇼소(酉誉聖聰) 상인이 지금의 도쿄 지요다구 일대에 창건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온 1590년 도쿠가와 가문의 보리사가 되었다.

1598년에는 현재의 시바(芝)로 옮겨왔다.

어제 에도성을 걸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세우고 이 도시를 일본의 중심으로 키워가는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오늘은 그 도쿠가와 가문의 절에 와 있는 셈이다.

에도시대 조조지의 규모는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약 25만 평에 이르는 경내에 48개의 부속 사찰과 100여 개의 학료가 들어서 있었고, 약 3,000명의 수행승이 머물렀다고 한다.

교토의 지온인(知恩院)과 함께 정토종을 대표하는 거대한 사찰이었다.

특히 조조지는 도쿠가와 쇼군들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2대 히데타다(秀忠), 6대 이에노부(家宣), 7대 이에쓰구(家継), 9대 이에시게(家重), 12대 이에요시(家慶), 14대 이에모치(家茂), 모두 여섯 명의 쇼군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14대 쇼군 이에모치의 부인이었던 황녀 가즈노미야(和宮)의 묘도 이곳에 있다.

에도성을 정치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조조지는 그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가문의 죽음과 제사를 품은 공간인 셈이다.

어제 에도성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오늘 조조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조지로 들어가는 산게다쓰몬(三解脱門)도 그냥 지나칠 문이 아니었다.

‘삼해탈문’이라는 이름에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번뇌에서 벗어난다는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의 문은 1622년에 재건된 것이다.

높이 약 21m, 폭 약 19.5m의 거대한 2층 목조건축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45년 도쿄대공습 때 조조지의 많은 건물들이 불타 사라졌지만 산게다쓰몬은 살아남아, 에도 초기 조조지의 모습을 전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남았다.

2층에는 석가삼존상과 십육나한상, 조조지 역대 고승들의 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문을 지나 조조지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시대의 두 풍경이 한눈에 겹쳐졌다.

앞에는 오래된 사찰의 기와지붕.
그 바로 뒤에는 붉고 흰 철골의 도쿄타워.

에도의 도쿠가와와 현대의 도쿄가 한 화면 안에 함께 들어왔다.

이 풍경이 참 인상적이었다.


20. 시바공원에서 바라본 도쿄타워

조조지를 지나 시바공원(芝公園) 쪽으로 걸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질 무렵 도쿄타워가 시야를 거의 가득 채웠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다.

도쿄타워는 높이 333m로 1958년에 완공됐다.
전후 일본의 성장과 함께 오랫동안 도쿄를 대표해온 상징물이다.

가족끼리 번갈아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도 한 장 찍고, 마님과 애들도 사진을 남겼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도쿄타워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낮에는 붉고 흰 철골이 선명하던 탑이 점점 따뜻한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어제는 도쿄 스카이트리. 오늘은 도쿄타워.

도쿄를 대표하는 두 탑을 이틀 연속 만난 셈이다.


21. 오후 5시경, 아카바네바시에서 다시 시부야로

도쿄타워 구경을 마치고 아카바네바시역(赤羽橋駅, E21)으로 내려갔다.

오후 5시경 도에이 오에도선(都営大江戸線)에 올랐다.

아카바네바시역에서 아오야마잇초메역(青山一丁目駅, E24)까지 이동했다.

아오야마잇초메역에서 도쿄메트로 긴자선(東京メトロ銀座線)으로 갈아타 시부야역(渋谷駅, G01)으로 향했다.

아침에 시부야에서 출발해 도쿄역, 우에노, 긴자, 조조지, 도쿄타워까지 돌아다닌 뒤 다시 시부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데 아직 오늘의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저녁이다.


22. 숙소 코앞인데, 규카츠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오후 5시 20분경 시부야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러 찾아간 곳은 규카츠 모토무라 시부야점(牛かつもと村 渋谷店)이었다.

시부야역 남쪽, 우리가 묵고 있는 JR EAST HOTEL METS SHIBUYA에서도 가까운 곳이었다.
밥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위치가 딱 좋았다.

“밥만 묵고 숙소 들어가믄 되겄네.”

그런데 가게 앞에 도착하고 보니 또 줄이다.

워매.

어제는 로스트비프를 먹으려고 기다렸고, 오늘은 규카츠다.

오후 5시 20분쯤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게 안내에는 현재 대기시간이 약 40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오래 기다렸다.

해는 지고 사람은 계속 늘어났다.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일본 와서 밥 한번 먹기가 왜 이렇게 힘든겨.”


23.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규카츠

오후 6시 반이 가까워져서야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작은 매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 규카츠 정식이 나왔다.

겉은 바삭하게 튀겨져 있었지만 안쪽은 붉은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테이블 위 작은 석판에 고기를 한 점씩 올려 원하는 정도로 더 익혀 먹는 방식이었다.

밥과 미소시루, 양배추, 여러 소스와 반찬도 함께 나왔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으니 맛이 없으면 화날 판이다.

그런데 맛있다.

한 점씩 석판에 올려 지글지글 구워 먹으니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영수증을 보니 오후 6시 54분.
4명 식사금액은 총 14,720엔이었다.

오늘 저녁도 결국 제대로 먹었다.


24. 오늘의 마지막 스타벅스

저녁을 먹고 마님은 바로 숙소로 향하고 아이들과 나는 시부야 거리를 조금 더 걸었다. 스타벅스에 들러서 커피를 사기 위해서다

오후 7시 10분경 다시 스타벅스에 들렀다.

커피와 말차라떼를 사서 숙소로 가져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도 스타벅스에서 시작했다.
긴자에서는 스타벅스를 찾아 EXITMELSA와 GINZA SIX 두 군데나 돌아다녔지만 자리가 없어 결국 한잔도 못 마셨다.

그런데 마지막은 또 스타벅스다.

이번에는 매장에서 마시지 않고 음료를 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25.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의 선택

오후 7시 50분경 숙소에 도착했다.
사온 커피와 말차라떼를 꺼내놓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앉아 오늘 하루의 마지막 한잔을 마셨다.

오늘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하루 일과가 끝나자 아들이 갑자기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빠, 나는 자연 같은 데도 보고 싶은데 계속 도시만 돌아다니잖아요.”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이번 여행 들어 시부야, 도쿄역, 아키하바라, 아사쿠사, 긴자까지 계속 도쿄 도심을 돌아다녔다.

“좋아. 그러면 내일 후지노미야 가자. 후지산 보러.”

그러자 아들이 물었다.

“몇 시에 일어나야 돼요?”

“한 5시에는 일어나야 헐틴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못 일어납니다.”

아까 자연을 보고 싶다던 녀석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그럼 어쩔껴?”

“차라리 호텔에서 하루 종일 게임할랍니다.”

ㅠㅠㅠ.

녀석이 하겠다는 게임기는 2016년쯤 사준 지바냥 닌텐도였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간만에 그 게임을 실컷 하고 싶단다.

딸래미는 내일 하루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딸래미가 빠지니 아들과 함께 셋이서 후지산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은 새벽 5시 기상이라는 말 한마디에 후지산 대신 닌텐도를 선택했다.

그래.
놀러 왔으니 하고 싶은 것도 해봐야지.

내일은 딸래미는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가고, 아들은 호텔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

그리고 마님과 나는 둘이서 후지산 아래로 간다.

후지노미야(富士宮).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마님과 둘만의 여행이다.

도쿄여행 3일차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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