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엄마 손을 잡고 따라온 한 중학생이 내게 바짝 붙어 다니면서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듯 재미있어하는 것이었다. 인왕산 수성동계곡에서 잠시 쉬어 갈 때도 내 곁에 붙어 앉아서는 무슨 얘기라도 해주려나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스스로도멋쩍었던지 손에 든 귤을 까서 권하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근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선생님 어렸을 때 얘기가요."
"실례지만 몇 살이세요?"
"선생님과 띠동갑이에요." - P5

하나는 『천변풍경』의 박태원이 소설 기법으로 받아들였다는 고현학(考現學, modern-ology)이다.  고현학은 과거의 유물을 연구하는 고고학(考古學,  archae-ology)의 방법론을 현대 생활사에 적용하는  민속학적 방법론으로 일본의 곤 와지로(今和次郞)가  관동대지진(1923) 이후 도쿄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면서 내건 개념이다. 이런 고현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서울 묵은 동네에 대한 나의 기억과 서술은 그 나름의 의의를 지닐 수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6

또 하나는 서성(書聖)으로 일컬어진 왕희지(王羲之)가  자기 집 정원인 난정(蘭亭)에서 벗들과 한차례 계회(契會)를 베풀고 그 모임을 기념하여 난정계서(蘭亭契序) 를  쓰면서 말한 마지막 구절이다.
후대 사람이 지금을 보는 것은 마치 지금 사람이 옛날을 보는 것과마찬가지일 것이니 (・・・) 후대에 이 글을 펼쳐보는 사람에게는 나름의감회가 있지 않겠는가.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後之攬者 亦將有感於斯文 - P6

북악산
서울의 주산, 그 오랜 금단의 땅 - P11

서울의 주산, 북악산
북악산(北岳山, 명승 제67호)은 높이 342 미터의  화강암 골산으로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리며 전체 면적은 약 360만제곱미터(약 110만평)이다. 산줄기의 흐름을 보면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에 있는 금강산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광주산맥)이 북한산을 거쳐 북악산에서 문득 멈추고 양팔을 벌린 형상이다. - P11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이 되어 도시계획을 세울 때 경복궁 북쪽 담장 밖 북악산 지역은 한양의 지세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 출입을 금지시켰다. 수도 한양의 방위체제상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과 북문인 창의문은 평소에는 닫아두고 필요할 때, 이를테면 창의문은 군사 이동이 있을 때, 숙정문은 가뭄이 심해 기우제를 지낼 때만 열어두었다. 당시 한양의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기 때문에 공간 운영에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 P14

백악사
북악산은 금단의 구역이었기 때문에 동쪽삼청동과 서쪽 청운동 사이에는 오직 백악사(白岳祠)라는 사당만  있었을 뿐 어떤 건물도 축조되지 않았다. 백악사는 북악산의 산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 P14

북악산은 진국백(鎭國伯)으로 삼고, 남산은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삼아 경대부와 사서인(士庶人) 모두 제사를 올릴 수 없게 하였다.

실록에서 말하고 있는 백악사는 북악산 정상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명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악산 정상에서는 조선 초기 기와편이 다수 수습된 바가 있다. - P15

조선왕조는 국난을 수습하면 그때마다 공신을 책봉했다. 공신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엄청난 것이었고 자손에게 상속되었다. 그러니 나라에공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공신책봉은 태조 때 나라를 세운 공이 있는개국공신부터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수습한 분무공신까지 모두 28번(삭제된 것을 제외하면 24번) 있었고 여러 형태의 공신회맹제가 열렸다. - P16

이 영빈관 건물은 박정희 시대 우리 관공서 건물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정면정관의 권위를 앞세우면서 골조가 콘크리트든 석조든 전통 지붕을 얹어 한옥의 이미지를 살리겠다는 뜻이 들어 있는데 결과적으로갓 쓰고 자전거 타는 어색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건축가가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이 권위주의 시절의 자취만을 볼수 있을 뿐이다. - P37

결국 나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기자들에게 공표했다. 그때 내 개인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저만은 옮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선사람이 사는 생활공간으로서 부적합하고 ‘풍수‘를 보아도 관저는 옮겨야 한다고 답했다. 이후 나는 청와대의 풍수 문제가 나올 때마다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한 풍수는 청와대 터가 아니라 관저 건물에 국한해 말한 것이었다. 청와대 자리야 예부터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칭송되는 길지인데 내가 그렇게 말할 리 있겠는가. - P43

상춘재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국빈들에게 우리나라 전통 가옥을 소개하고 의전 행사를 치르기 위한 목적으로세운 건물이다. 전형적인 한옥 구조로 되어 있으며 수령 200년 된 금강송을 사용해 그 재질감이 아주 뛰어나다. - P44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말하기를 서화를 보는  눈은 ‘금강안(金剛眼) 혹리수(酷吏手)‘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즉, 금강역사처럼 부릅뜬눈으로 보고, 혹독한 관리가 세금을 메기는 손끝처럼 치밀하게 따져야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이야말로 ‘혹리수‘가 펴낸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나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만 재확인을 해주고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었다. 그리고 그해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시상식 때이성우 본부장에게 문화재청장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 책은 2019년에개정판이 발간되었다. - P46

고종의 문집인 『주연선집 (珠淵選集)』에 실려  있는데 그중 등옥련정(玉蓮亭)은 다음과 같다.

화려한 산 저절로 우뚝 솟았고
그 아래 옥련정이 놓여 있구나
여름날엔 맑은 기운 많기도 한데
긴 계곡엔 푸른 나무 가득하네

華山天作屹
下有玉蓮亭
夏日多佳氣
溪長萬木靑 - P50

이 글씨는 누군가가 오래전에 북악산에 올라 한양을 내려다보면서과연 복지임에 감동해 새겨놓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암각상태로 볼 때 200년 이상은 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혹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복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군가를 시켜 새기게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그 내막이야 어떻든 북악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여기는 천하의 복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600년 이상 수도를 이어가고 있겠는가.  - P55

그래서 수헌거사(樹軒居士, 유득공의 아들 유본예로  추정)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악이 도성 북쪽에 있는데 평지에 우뚝 솟아났고, 경복궁이 그 아래 기슭에 있다. 서울 도성을 에워싼 여러 산 중에 이 산이 북쪽에 우뚝 뛰어나니 조선왕조 국초에 이 산으로 주산을 삼고 궁궐을 세운 것은 잘된 일이다. - P55

현실적으로 이미 개방된 청와대의 문을 다시 닫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나아가서는 최종적인  개방 형태에 대해서는 명확한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청와대라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을 앞으로어떻게 사용할 것이라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는 대통령혹은 문화부장관이나 문화재청장 개인의 상식적인 소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단편적이고 아이디어제공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P56

이럴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건축설계 경기‘를 여는 것이다. 그리고이것은 세기적인 설계 경기로 국제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을 것이다. 이때 반드시 커미셔너나 코디네이터 주도 하에 추진해야 한다. 지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뛰어난 건축가에게 이 책임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그 설계 경기는 국내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세계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좋은 마스터플랜도 구할 수 있고 더불어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국가 홍보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나는 이런 방향에서 청와대가 재정비되어 우리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간절하다. - P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르상티망 같은 피해의식이 있어요. 아라시마 씨가전형적인 그런 부류죠."
*실패자가 성공자에게 품는 증오, 질투, 원한, 복수심.

"그 사람들은 될수있으면 소설처럼 귀찮은 것은쓰고 싶지 않아해요. 그러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돌려쓰기처럼 다른상에서 낙선한 작품으로 다른신인상에 또 응모하죠. 그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을갖고 싶을 뿐입니다. 현실의 자신을 과거에 묻고 작가라고 소개하며 거들먹거리고 싶은 거죠. 그런 놈들이 득실득실합니다."

라시마 씨. 이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회사는 『변화의 조기 문고화‘와 『유현의 숲』의 동시 출간을 결정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보통 책을 단행본으로 먼저 출간한 다음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문고판으로 재출간한다.
그 대단한 이누카이도 말문이 막혔다. 살인사건피해자와 범인, 두 사람의 작품을 팔아먹으려는 심산이다.
그야말로 기회를 놓치지 않는 민첩함과 빈틈없는상술에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을 떠올렸다.

떨어진 동전,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인간의 체온은 외부 온도와 상관없이 항상 일정온도를 유지해. 하지만 자율신경에 이상이 오면 체온 조절이 불가능해져서 신체 기능에 지장을 주지.
즉 원인은 자율신경 이상이기에 동사가 반드시 추운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설령 한여름뙤약볕이라고 해도 조건만 맞으면 동사해. 원래 동사라는 건 특이소견이 적긴 한데, 저온 상태에서 헤모글로빈과 산소가 결합해 산소 헤모글로빈 농도가높아지므로 시반이 선명한 붉은색을 띠어. 같은 이유로 좌우 심실의 혈액 색상에도 차이가 나지. 그리고 온몸을 도는 심장의 피는 추출해서 내버려 두면응고돼. 또 이번 경우에는 다른 요인으로도 동사를추정할 수 있어."

"알코올은 뇌를 마비시켜 일정량 이상을 섭취하면 심박 기능을 제어하는 뇌간부, 나아가 생명유지에 관여하는 중추 부분까지 마비시키지. 혈중알코올농도 0.40퍼센트를 넘으면 만취자의 절반은 한두시간 만에 사망해. 잘 걷지못하고 의식이 흐릿하고말도 제대로 못 하지.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해. 알코올 때문에 혈관이 확장돼서 빠르게 체온을빼앗겨. 공원 벤치에 쓰러지면 꼼짝도 못 하는 상황에서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하지."

"빈축은 돈을 내고라도 사라, 라는게 우리사훈이라서요."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 얼굴은 어딘가 측은하게느껴졌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시궁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존재는 물고기 정도일 테다.

"자신이나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정당화하는 인간보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인간을 더 믿을 수 있거든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능력을 옳게 평가할 수있으니 일을 할 때도 실패가 적죠."

이누카이는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변화는 계절만의 것이아니다. 시대도 유행도 마치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흘러간다. 내 주위에서는 아내의 태도가 그러했다.
예전에는 햇살처럼 따스했던 아내가 지금은 북풍처럼 차갑다. 그것은 마치 온도를 한껏 내린 냉장고처럼………."

"너처럼 살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 나쁜 인간으로 보이나 보지."
"그건 아니지."
데루유키는 비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은 원래 다 나빠.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이지."
"너란 놈은!"

"옛날부터 도덕주의자였던 형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인간은 누구나 가슴속에 악의를 품고 있어. 우리 야쿠자들의 악의는 겉으로 티라도 나니 애교지. 아무튼 간판이니까. 그런데 평소에 숨기고 있는 아마추어들은 감당이 안 된다니까."

노노개호: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사회현상을 뜻하는 말로,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나타난 신조어,

"바뀌었다기보다는 완화됐다고 해야겠지. 성동일성 장애자의 성별 취급에 관한 특례법, 이름이 길지? 성별을 바꾼 것을 사회가 인정한다는 뜻으로, 요점은 뭐 호적이나 주민등록표 내용을 변경하는 거야. 그 조건이 예전보다 완화됐어요. 즉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도 간다 미시마초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조금 특이한 괴담 자리를 마련해 왔다. 사람들이 하룻밤 동안 한 방에 모여 순서대로 괴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꾼 한 명에 듣는 사람도 한 명, 한 번에 하나의 이야기를 청하여듣고 그 이야기를 결코 바깥에는 흘리지 않으며,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
이것이 미시마야의 특이한 괴담 자리의 정취이다.

지금 막 들어온 소식입니다. 조금 전 오후 8시 20분 쯤, 주자동차도다카이도 인터체인지 부근에서도로를 달리던 고속버스가 방호책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승무원과 승객 중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방호책의 이음매에 처박힌 형태로 차체 왼쪽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파손된 버스가 TV 화면에 크게 나오고 있었다. 마치 종이처럼 구겨진 버스의 모습은 충돌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경상을 입은 듯 구급대원에게 응급처치를 받으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큰 사고를 내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졸음운전을 했습니다."

교통조사과로 발령받은 지 벌써 5년이다. 신입 니시키노에게 요모기다는 만주 박사 같은 존재인데 그새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쓰러져 있었다. 최근 2, 3년 동안 교통사고 사망자 수 추이는 연간 4 명에서 5천 탈락이였는데, 자신이 경찰관이 된 해에는 9천 명을 넘어섰다. 교통전쟁이라고 불립 치 오래인데 그 상황이 완화되었다고는 해도 전쟁 상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사체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다행인 편이다.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진사체, 배속 내용물이 아스팔트에 쏟아져 흩어진 사체, 상반신이 저며지다시피 한 사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이누카이의 지적을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은 와중에, 교통조사과에서는 고다이라를 자동차운전 과실치사상죄로송치하자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물론 그보다 중죄인 위험운전치사상죄 적용도 논의했지만 원래 졸음운전이나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의 운전은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아서 이안은 단박에 무산됐다.

형법 제211조 2항, 자동차 운전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여 사람을 사상케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또는 백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그 상해가 가벼운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해 형을 면제할 수 있다.

자동차운전 과실치사상죄의 조문은 읽을수록 이번 사건과 일치했다. 더욱이 피의자 고다이라 신지에게는 음주벽이나 사소한 위반 기록도 없다. 체포 후 태도도 성실하고 사고 직후부터 사죄 의지도 어필하고 있다. 우수한 변호사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정상 참작을 이끌어 내리라.

"실제로 말입니다, 하루 운행거리 제한이 670킬로미터라는 기준부터가 정상이 아니에요.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형사님도 심야에 670킬로미터를 운전해 보세요. 분명 도중에 녹초가 될걸요?"

"그렇겠죠. 버스회사 운행 관리 담당자들은 전부 연속 운전 거리는 4백 킬로미터 정도가 한계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670킬로미터라는 기준은 국토교통성에서 내놓은 지침일 텐데………."
"그 670킬로미터의 근거를 아십니까?"
"분명, 국토교통성이 전국 아흔두 개 전세버스 사업장의 운행 데이터를 추출해서 분석한 결과……였을 텐데요."

"표면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현장의 목소리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670킬로미터라는 제한 기준에 다른 근거가 있다는 말이지요."
"다른 근거라니요?"
"물론 이건 우리 기사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긴 하지만, 오사카에서 도쿄 디즈니랜드까지 거리가 딱 670킬로미터거든요."
"설마요. 그냥 우연이겠죠."

"설마가 사람 잡는 일 많습니다. 형사님도 공무원이니 매년 국토교통성에서 트럭 협회나 대기업 여행대리점에 낙하산 보내는 거 아시잖아요. 만약 그런 황금노선이나 장거리를 운전기사 한 명으로 커버할 수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득이죠."
"하지만 이번처럼 운전기사의 과도한 근무가 사회 문제시되면 국토교통성도 기준을 수정하라는 압박을 받을 겁니다."

실제로 언론 보도가 과열되고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토교통성의 안전정책과는 제한 기준 670킬로미터의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검토에 감시체제 강화를 목적으로 한 새 법인 창설 안도 당연히 따라붙었다.

한 노인의 죽음, 그리고 지나치게 착실한 젊은이 한 사람의 앞날을 제물 삼아 관료들이 또다시 약속의 땅을 넓혀갔다. 그것이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부끄러움이 남는다. 두 눈을 뻔히 뜨고도 정말 죄많은 자들을 못 본 체하고 마는 분한 마음도 남는다. 지금 요모기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제물이 된 젊은이의죄상을 현실적으로 타당하게 만들어 주는 것 정도다.

"이건 제 지론인데, 세상에는 완전히 착한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속이는 자와 속은 자만 있을 뿐입니다."
"고다이라 씨에게 사람을 속이는 자라고 하는 건 듣기 거북하군요."
"제가 언제 고다이라를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까? 그 반대입니다. 고다이라는 속은 자입니다."
"네?"

"학교폭력은 뒷골목에서 못난 인간이 못난 인간을 괴롭히는 짓이야. 그래서 강자와 약자가 있으면 반드시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비단 요즘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야. 우리 때도 있었어. 그러니까 몇 년이 지나도 학교폭력 자체는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한데……… 하지만 이번 일로 교장이든 야가미 선생이든 징계를 받으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학교폭력은 언제 어디에나 있어. 제 몸 지키기에 급급해 책임 회피할 궁리나 하는 놈들이 교사거나교육위원회에 있는 한 이런 사건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
"하루키. 넌 괜찮은 거지?"
어머니가 문득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괴롭힘당하지는 않지?"
"엄마, 내 성격 알지? 이번 마사야 사건 때는 나서기는 했지만 원래 눈에 띄지 말고 소란도 일으키지 말자는 주의잖아. 그런 콘셉트니까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흠, 글쎄.........

"그런데 중2라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만 14세 미만이면 법률상 성인과 같은 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야. 교도소에는 가지 않을 거야. 하지만 가정법원의 판결로 소년원에 갈 수 있어."
"그렇게 끔찍한 짓을 했는데도 그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이에요?"
"소년법은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개정 이야기가 나온단다. 적용 연령을 낮췄는데 이번에는 그 적용 연령보다어린아이가 흉악범죄를 일으켰지. 마치 도돌이표처럼."
"그런 건 이상해요."

"너희 나이 때는 아직 모를 테지만 평범하게 산다는 것도 나름대로 힘들고 대단한 일이란다. 게다가 평범하기에오히려 더 수많은 사람과 희노애락을 나눌 수 있지.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밤에 안심하고 푹 잘 수 있다. 평온한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범죄자는 그렇지 못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열지 못하며 불안해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지지. 그게 갱생하지 못 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형벌이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이렇게 우수한 도자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때우리보다 뒤처졌던 사람들도 해온 일들을 미처 따라잡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만의 울타리 안에서 맴돌다보니 우리의 도자문화를 보편화·세계화시키지 못한 탓이다. 단언컨대, 자포니즘 도자기의 어디엔가는 조선백자의흔적이 묻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등한시하다보니 발견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했을때, 우리는 세계에 대고 우리의 도자문화가 유럽에 영향을 미쳤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94

이제 우리는 자신을 세계사적 지평에 올려놓고 우리가
가졌던 것과 갖지 못했던 것을 반듯하게 가려내면서 이어가야 할 것은 또한 무엇인가 깊이 사색해봐야 할 것이다. - P195

유용한 수산지원이나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제대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지못하다는 것이 그들의 일치된 평가다. "한국은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국민의 잠재된 에너지는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비숍의 지적이다. - P199

조선인들의 성정(性情)이나 생활관습은 언제  어디서나 이방에서온 서양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인들의 건전한 도덕과따뜻한 인정은 서양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음을 곳곳에서 찾아볼수 있다. 한반도를 8년간 12번이나 여행하고 『한영대사전』을 편찬해우리나라 영어교육에 큰 족적을 남긴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게일(J.S. Gale)은 저서 『전환기의 조선』 (1909)에서 한국인은 정직해서 신뢰할 수 있고, 신용을 중시하며 문서가 아니라 구두로 한 약속도 철저히 지키는 등서양인보다 더 훌륭하다는 호평을 내린다. - P201

조선에 대한 서양인들의 이해나 이미지는 이토록 다르다. 이러한편차는 근원적으로 보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주의적 · 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인식지평에서 바라보는가 아니면 남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이해하려는 타자의 인식지평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근본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의 조선체류기간이나 체험의 심도, 그리고 정보수집대상과 경로의 차이도 그러한 편차를 낳게 한 객관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 P203

서양인들이 본 조선을 떠올리노라면 비분강개하기도 하고 애상이나 회한에 젖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그것을 피하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공자가 "논어"의「학이(學而篇)」에서 말하듯이 "어디로  가려는지 알고 싶거든 어디서 왔는지 되돌아봐야 하기 [往而知來者]" 때문이다. - P204

고구마가 알려지면서 재배된 시기는 1760년대다. 당시 예조참의였던조엄(趙)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쓴 기행문인 『해사일기 (海事日記)』에 의하면,  그가 일본으로 가던 길에 쓰시마섬[對馬島]에서  고구마를 발견해 들여왔다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쓰시마섬에 감저(甘藷)라는 것이 있는데, ‘효자‘ 혹은  ‘고귀위마‘로 부른다고 하면서, 이것을 가져다가 심으면  문익점의 목면처럼 백성들을 매우 이롭게할 것이라고 말한다. - P219

1905년에 국내 최초의궐련으로 ‘이글‘이 생산되었으며, 일제시대에는 30여 종의 담배가 출시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로서의 담배 도입은 당초부터 적지 않은 저항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배에 인이 박인다는 이유로1650년경에 인조가 금연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 P224

조상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에도 그것을 통째로 삼키는 것이아니라 우리의 기호와 실정에 맞게 고치고 새김질하여 완전히 소화함으로써 전통문화로 승화 고착시켰다. 이것은 문명교류에서 보기드문 순기능적 수용의 본보기다. - P225

끝으로 『표해록』의 행간마다에서 저자 최부의 높은 소양과 도도한기질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만의 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최부는 조선의 문사로서 
포학지사(範學之士, 박식한 인사)다움을, 
조선의 사람으로서 정도직행지사(正道直行之士,  바른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인사)다움을 
조선의 관리로서 충군애국지사(忠君愛國之士)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P233

최부의 표해록』이 3대 중국기행문의 하나라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4대 세계기행문의 하나로 꼽힌다. 이렇듯 우리는 자랑스러운 세계적 문화유산을 다수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세계적 문명교류에도 기여해왔다고 당당히 자부할 수 있다. - P234

우리 겨레의 5,000년 문명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순간도 세계와 동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늘 남들과의 어울림 속에서무언가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그 주고받음은 공간적 매체인 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명사에서는 문명을 소통시키는 길을 통틀어 씰크로드(Silk Road)라고 한다. 씰크로드를 제쳐놓고 문명의 교류나 세계성을 논할 수 없다. - P237

요컨대 씰크로드는 문명의 유대이고 세계로의 이음길이다. 그런데 이 본연의 유대와 이음길이 무시당해왔으니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P238

한 나라의 세계성은 비단 보편적 가치의 공유,
즉 보편성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가치의 창출, 즉 개별성에 의해서도 보장된다. 사실 모든 보편성은 교류를 통한 개별성의승화다. 개별성을 떠난 보편성이란 있을 수 없다. - P251

‘문명교류기행‘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교류사적 이해에서 시동을 건긴 여정으로서, 그 지향점은 ‘한국 속의 세계와 그 세계성을가늠하는 데 있다. 비록 영욕이 엇갈린 역사지만 그것이 우리와 운명을 같이해온 역사이고, 또 그 연장선상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는 더 냉철하게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점검하며 내일을 설계 - P2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오덕 李五德, 본관?

출생 1925년 11월 14일

사망 2003년 8월 25일 (향년 77세)

이오덕을 읽어보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줄 미처 몰랐다.
읽은책, 가지고있는책 단 1권 ㅠㅠ

<알라딘 저자소개>
1925년 11월 4일에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 태어나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살에 경북 부동공립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예순한 살이던 1986년 2월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스물아홉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에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이원수의 권유로 어린이문학 평론을 쓰게 된다. 1973년에는 권정생을 만나 평생 동무로 지냈다. 우리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1977년에 어린이문학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절대 자유의 창조적 정신을 발휘한 어린이문학 정신을 ‘시정신’, 그에 반하는 동심천사주의 어린이문학 창작 태도를 ‘유희정신’이라 했으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린이문학의 ‘서민성’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어린이문학인이 새로운 문명관과 자연관, 아동관에 서지 않고서는 진정한 어린이문학을 창조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가들과 함께 어린이문학협의회를 만들었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탰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2-10-23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네요. 얼마 전에 <우리글 바로쓰기 1>권만 읽었어요^^; 한 작가를 파려면 다른 읽기는 물리쳐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ㅎㅎ

대장정 2022-10-23 08:31   좋아요 1 | URL
선생님, 요즘은~ 7년전에 한권읽었어요. 퐁당퐁당 읽으면 그래도 괜찮더라구요. 책 준비해서 한번 해볼랍니다.ㅎㅎ^^.

프레이야 2022-10-23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이오덕 읽기 대장정 시작하시네요. ^^
모아놓으니 이렇게나 많군요. 집에 두세 권 있는데 읽었던 게 까마득합니다. 깨끗한 우리말 쓰기 이오덕 선생님 불러주셔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심한 번역투도 그렇고 오염된 우리말 우리글 쓰고 있진 않은지 말이죠.

대장정 2022-10-23 09:26   좋아요 2 | URL
ㅎㅎ 아직요, 준비가 아직 안됐습니다. 정수일교수님 책 사기만하고 읽지 않은게 많아서 교수님 책 좀 빼고 연장준비해서 시작하려구요. 제가 하는일이 건설쪽이라 아직 일본말이 많이 남아있고 저 자신도 무의식?중에 아주 많이 사용하고 있네요.ㅠㅠ 선생님책 읽으면서 반성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