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동단 경주로부터 서단 로마까지. 육로편

☆ 제1부. 실크로드 동단, 한반도 연장노선
제1장 한반도 남부
1. 실크로드 서단 로마, 동단 경주
2. 경주 로만글라스, 궤릉 무인석, 처용무
3. 상주, 문경, 충주. 상주 뽕나무, 비단
4. 서울, 경기. 풍납토성
제2장 한반도 북부
5. 평양. 명도전, 안악3호분 수박희, 수산리 고분벽화, 용강대묘, 쌍영총
6. 지안(집안) 각저총, 무용총, 광개토왕비
7. 선양, 철의 실크로드 교차로. 시베리아횡단철도, 한반도종단철도, 중국횡단철도, 만주횡단철도.

☆ 제2부. 북방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초원로
제1장 몽골
1. 차오양(조양). 영주, 용성, 유성, 화룡. 북연 풍발, 풍소불
2. 츠펑(적봉) 붉은 산봉우리. 홍산문화. 흉노, 동호, 오환, 선비, 거란 등 고대 유목민의 활동무대
3. 우란하오터(오란호특). 우란, 붉은. 하오터, 도시. 칭기스칸묘당
초원로의 요지. 한민족의 집단 취락지. 고구려성터
4. 다싱안링(대흥안령). 녹색보고. 남북 1200km, 동서 2~300km. 초원 실크로드의 중간 경유지
5. 디더우위(지두우). 디더우, 달단. 위 간 의 와전으로 달단의 왕, 몽골의 왕이라 해석하나 불확실. 유연의 고토회복, 고구려의 북방진출, 북위의 물길의 통로차단.
고구려 사절, 돌궐, 고구려 기마군단, 유연. 초원 실크로드의 요로. 어지나오얼 염호, 광개토대왕 395년 염수까지 정토해 3개부락 점령
6. 울란바토르, 붉은 영웅. 연평균기온 영하 2.9도 ㅠ
고비사막, 대형 공룡의 천국, 공룡의 보고. 초원도시. 몽골의 서정. 수하바타르(1920년대 몽골 혁명지도자)
7. 노인울라, 왕후의 산. 노인울라 고분군, 흉노가 남긴 귀중한 문명교류사의 흔적. 유목문화와 한문화 융합, 호한문화
8. 카라코룸, 검은 자갈밭.에르데니주 사원, 보석 같이 귀중한 사원. 역참제, 역참망 교역로. 퀼테긴 비. 오보, 이정표 경계표 신앙기능
9. 호브드, 호이트 쳉헤르 동굴 암각화. 오보, 흐미, 벽화
10. 바얀올기, 알타이 초원로와 몽골 초원로 연결. 스키타이인들의 동방 무역로 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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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오아시로의 도시들과 이름의 뜻, 잡지식

1. 이식쿨 호: 이식, 뜨거운. 쿨, 호수. 투즈, 소금. 투즈쿨, 소금의 호수. 키르기스어. 테무르투 노르, 철의 호수. 카르무크 인
2. 알마티: 사과의 아버지, 카자흐어
3. 세미레치에: 일곱개의 물길, 러시아어. 제티수,카자흐어
4. 카자흐: 분리하다, 자르다, 투르크어
5. 타슈켄트: 타슈, 돌. 켄트, 도시. 돌의 도시. 투르크어
6. 중앙아시아5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7. 부하라: 수도원, 산스크리스트어. 부하라 샤리프, 성스러운 부하라
8. 우루무치: 아름다운 목장, 몽골어
9. 베제클리크: 아름답게 장식한 집, 위그르어
10. 투르판: 풍유로운 곳, 돌궐어
11. 아르크 고성: 성채, 페르시아어
12. 타클라마칸: 돌아올 수 없다, 위그르어
13. 이슬람 세계의 최고 종교학자인 이맘 부하리와
이슬람과 유럽 의학의 기초를 닦은 이븐 시나(아베세나), ‘대수학의 아버지‘ 알 콰리즈미 등 위대한 학자
14. 하디스: 무함마드의 언행록, 성훈=하디스
15. 부하라 학맥 삼총사: 성훈학자 부하리, 의학자 이븐 시나(아베세나), 수학자 알 콰리즈미
부하리: 본명 이븐 이스마일 알 주아피
이븐 시나: 본명 아부 알리 후사인 이븐 압둘라
알 콰리즈미: 본명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이븐 무사인, 영의 개념 도입, 알고리즘은 과리즈미 이름에서 유래, 대수학 창시
16. 메르브: 고귀한 메르브, 떠도는 도시, 성벽 230km
이슬람의 손꼽히는 대도시, 1220, 1221년 두번의 몽골군 유린으로 황폐화, 6일동안 22만명 살육, 만행저지름
17. 아슈하바트: 사랑의 거리, 투르크메니스탄어. 수도
18. 키질쿰: 붉은 모래, 터키어
19. 카라쿰: 검은 모래, 터키어
20. 호라즘: 태양의 땅, 그리스어. 호올루즘에서 유래, 호올리는 태양, 젬은 땅. 호라즘은 합성어
21. 아무다리야 강: 아랍어로 자이혼, 미친강. 물길이 아랄해, 카스피해로 자주 바뀌어서.
22. 우르겐치: 우르, 치다 때리다. 겐치, 수공 목제품. 손으로 나무를 두들겨 만든 공예품. 터키어
23. 마슈하드: 순교의 땅, 아란어. 아랍어
24.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도시, 그리스어
25. 타크테 잠시드(페르세폴리스): 타크테, 옥좌. 잠시드, 전설속 이란왕 이름, 이란인.
26. 낙쉐로스탐: 낙쉐, 조각 회화. 로스탐, 전설속 영웅 이름, 이란어. 페르시아 제왕들의 암굴묘.
27. 脫亞入歐: 아세아(亞細亞, 아시아)를 벗어나 구라파(歐羅巴, 유럽)에 들어간다는 뜻. 유럽화라는 뜻의 ‘구화주의‘(歐化主義)라고도 한다.
스즈키 켄타로(鈴木券太郎)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일본돈 만엔 지폐 얼굴
아시아도 아니고, 유럽도 아닌, 일본 그 자체로써 발전하고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28. 파사르가데: 페르시아인의 본영
29. 야즈드: 조로아스터(차라두스트라)의 성지
30. 이스파한: 세파한. 세파, 군인. 세파한은 복수형으로 군인들의 집결처, 군영. 이란의 진주, 세계의 절반이라는 미명을 간직한 이슬람세계 유수의 도시.
31. 테헤란: 🇮🇷 수도
32. 다마스쿠스: 🇸🇾 수도. 시대의 동반자, 동방의 낙원
다마스가 디오니소스(술의신)에게 스켄(술담는부대)을 준 데서 유래, 다마스켄. 물의신의 처인 다마키나와 관련시켜 물을 댄 땅
33. 팔미라: 대추야자, 그리스어, 라틴어
타드무르, 대추야자라는 뜻의 고대 셈어 타무르에서 유래
제노비아, 로마 식민통치에 반대한 팔미라 여왕. 로마군에 사로잡히고 300년 팔미라의 영화는 끝나다.
34. 홈스: 홈스야라는 미녀의 고장
35. 우가리트: 우가루에서 파생, 아카디어, 바빌론어
라어스 샤므라, 샤무라 꽃이 피는 갑(곶)
우가리트 알파벳, 세계 최초 쐐기꼴 알파벳 발견
알파벳, 지식을 특권층 독점으로부터 만인공유로 유도한 평등과 민주주의 촉발제
36. 술탄 살라딘: 고귀한 적(🇪🇺 측). 쿠르드족 출신. 아루수트 전투, 하틴 전투. 충돌의 시대, 살라딘의 재림을 꿈꾸다.
37. 알레포
38. 산르 우르파: 예언자의 도시. 아브라함, 욥, 엘리야 등 예언자들이 살던 도시. 산르, 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사람에게 시여하는 명예칭호. 우르파, 오스만제국시대 명문가 이름
39. 앙카라: 닻, 앙키라가 어원, 그리스어. 이 곳 특산물인 털깎이용 염소 앙고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정교수님은 이 설이 보다 신빙성이 있다 함
40. 아나톨리아: 그리스어 아나톨리코스, 해가 뜨는 곳, 동방.
41. 터키: 투르크, 힘쎈, 방패
42. 아타튀르크: 국부
43. 악사라이: 흰 궁전
44. 네브세히르: 새 도시
45. 카파도키아: 아름다운 말이 있는 곳, 페르시아어. 카트박투키아에서 유래
46. 데린쿠유: 깊은 웅덩이
47. 괴레메: 당신은 볼수 없다
48. 이스탄불: 토인비, 인류문명이 살아있는 거대한 노천 박물관
49. 토프카프 사라이: 토프, 대포. 카프, 문. 사라이, 궁전
궁전문앞에 커다란 대포를 걸어 놓은 데서 유래
50. 카데슈 조약: 히타이트, 이집트 사이의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
51. 보스포루스: 소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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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16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장정님 언젠가 실크로드를 밟으실 것 같습니다.!ฅ🐾

대장정 2022-03-16 06:32   좋아요 2 | URL
정수일교수님에 의하면 실크로드의 한반도동단은 경주. 경주~상주~충주~한양~평양~영변~강계~지안(퉁구)~~ 우리 모두 이미 밟았습니다ㅎㅎ

Falstaff 2022-03-16 0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하라, 이것이 수도원, 성스러운 수도원이었군요!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습니다.
* 27번은 ‘脫亞入毆탈아입구‘의 타이포 같습니다.

대장정 2022-03-16 10:47   좋아요 2 | URL
지적 감사합니다.수정했습니다. 등ㅅ같이 베끼는거도 제대로 못하고 ㅠㅠ. 구는 毆가 아닌 歐가 맞습니다. 이 책에서도 歐로 표기,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서도 歐. 부하라에 다녀오셨나 보군요, 부럽습니다.
 

이슬람은 지식과 학문의 탐구를 속세와 내세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인간생활과 활동의 필수로 익무화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는 "그 누가 현세를원한다면 지식을 얻어야 하고, 그 누가 내세를 원한다 해도 지식을 얻어야 하며, 또그 누가 이 두 가지를 다 원한다 해도 역시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지식 습득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의 학문을 이야기할 때 으레 인구회자되는학문은 멀리 중국에까지 가서라도 구할지어다‘ 라는 말로 학문 탐구를 독려하고 있다. - P197

루어지면서 지역별 학문중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찍이 헬레니즘 문화를 맛본데다가 페르시아와 인도, 심지어 중국 문화의 영향까지도 받아 오던 실크로드 육로의 요충지 부하라가 바로 그러한 중심지의 하나였다. 그 중심지 형성의 선도자는부하라 학맥의 삼총사로 불리는 성훈(聖訓) 학자 부하리와 의학자 이븐 시나, 수학자 알 콰리즈미다. 이들은 이슬람 세계를 두루 편답하면서 자신들의 학문세계를 개척하고 나서는 부하라에 돌아와서 여러 신학교와 사원들을 전전하면서 후학들에게학문을 전수했다. 이들 삼총사의 학문적 업적은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유럽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근대적 학문의 기반을 닦는 데 불후의 기여를 했다. - P197

가령 상사병에 관해서는 체중과 체력의 감퇴, 발열 등 만성적 증상이 나타나며, 그치료법은 사모하는 상대방과 결혼시키는 처방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가 병리현상과 심리현상을 아우른 ‘심신의학법‘ 으로 한 왕자를 치료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망상증에 걸린 왕자는 자신이 소라고 믿고 소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자기를 잡아먹어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이븐 시나는 도살꾼으로 가장하고 이 왕자가 너무 여위어 앙상하니, 우선 살찌워 놓아야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왕자는 마음껏먹다 보니 병세는 어느새 말끔히 가시고 건강은 회복되었다. 이른바 심신의학법의 효험이다. 그밖에 그는 알코올을 소독제로 추천한 최초의 의사이기도 하다. - P199

중세 무슬림들은 수학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수학 발전에서 그들은 영(雲, 0)의 도입과 대수학의 정립이라는 두가지 특출한 기여를 했는데, 그 진두에는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 콰리즈미(780~850)가 있다. - P200

그가 쓴 「집합과 분할으 서」라는 논문이 12세기 인도 숫자에 대한 콰리즈미의서」라는 제하에 라틴어로 번역됨으로써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영을 포함한 숫자를알게 되었다. 숫자에 얽힌 사연에 무지한 유럽인들은 아랍인들에게 전수받은 이 인도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 로 오인한 나머지 16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으로 써 오던로마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대체해버렸다. 영어의 ‘사이퍼(cipher: 0, 암호)‘는
‘영‘ 혹은 ‘공(空)‘, ‘무(無)‘ 라는 아랍어 쉬프르에서, 그리고 알고리즘(algorism:아랍식 기산법, 아라비아 숫자)‘은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 P200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은 수를 단순한 영의 개념으로 본 데반해 알 콰리즈미는 상호관계적인 개념으로 인식함으로써 대수학이라는 새 학문을탄생시켰다. 그는 대수학에서의 문제풀이 절차가 마치 외과의사가 부서진 상처를다시 원상회복시키는 수술과정과 비슷하다고 하여 아랍어 외과 전문용어인 자브르(접골, 깁스)‘를 빌려 대수학을 ‘자브르‘ 라고 했는데, 그것이 영어 ‘앨지브러(algebra: 대수학)‘ 의 어원이다. - P201

태양의 땅‘ 호라즘, 스트라본은 이렇게 명명하면서 이곳엔 태양의 빛을받아 자란 고귀한 나라들이 있었다고기술하고 있다. 천혜의 땅에 찬란한문명이 깃들었다는 의미다. 기름진 델타에 2백만 년 전에 이미 문명이 싹다면, 그곳은 분명 인류문명의 한 발원지임에 틀림 없다. 이른바 인류문명의 발원지라고 하는 4대 고대문명론 이 도전을 받아야 할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런데 있다. - P233

히바는 박물관 도시‘ 답게 유적유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는가에서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다. 유적유물은 역사의 퇴물이 아니라 보물이다. 그것은 어제의 증언이고 오늘의 자긍이며 내일의 길잡이다. 유적유물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 값어치를 제대로 헤아리는 사람만이 문명인이며 미래창조형 인간이다. - P241

한 시간 더 달려 드디어 팔미라(Palmyrtal)에 도착했다. 한사코 이곳을 찾은 것은실크로드의 전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 V. Richthofen) 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서북 인도로 가는 길 연변에서 고대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처음으로 이 길을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ssen: 독일어로 비단길), 즉 ‘실크로드‘ 라고 명명했다. 그러다가역시 독일의 동양학자 헤르만(Herrmann A.)은 그 동안 중앙아시아에서 지중해 동안의 이 팔미라까지 이어지는 오아시스 곳곳에서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된 사실에근거해 이 비단교역의 길을 팔미라까지 연장하고 ‘실크로드(일명 오아시스로)"라고재천명했다. 요컨대, 팔미라에서 중국 비단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실크로드오아시스 육로는 오늘날처럼 지중해 동안까지 연장된 것이다.
- P321

이어 11세기까지는 비잔틴 시대를 맞는다. 이곳에 엉킨 숱한기독교 이야기는 이때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다. 몽골군과 티무르군의 군화 자국도 역력하다. 11세기 투르크족의 유입에 묻어 들어온 이슬람 문명은 오늘로 이어진 주도 문명이다. 카파토키아를 비롯한 아나톨리아에 대한 로마제국의 지배를 되새길 때마다 저 유명한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곳을 정복하고는 개선장군답게 세계를 향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라고 포효(砲)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에도 해가 지는 날은 분명 있어,
오는 길은 가는 길의 시작이고, 승리는 패배의 예고였다는 사실(史實)을 세상은 보고야 말았다. - P361

역사상 원정이건 교역이건 간에 두 대륙을 오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잇는 다리가필요했음은 불문가지다. 기원전 4세기 유럽 쪽의 시티안으로 원정을 떠난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의 명령에 따라 최초의 다리가 놓였다. 70만 페르시아 군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배와 뗏목을 이어 붙여 가교를 만들었다. 그 후2천여 년 동안 배로만 오갔지 그 누구도 다리를 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3년 사상 처음으로 두 대륙을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가, 그리고 15년 후인1988년에는 파티흐(정복자) 술탄 무함마드 다리가 놓였다. 두 다리 밑으로는 매년 5만여 척의 각종 선박이 지나간다. - P376

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이스탄불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보스포루스 다리(일명 아타튀르크 다리)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갔다 오는 다리 여행을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들로 몹시 붐빈다. 유럽에서 아시아 쪽으로 가는 차량 통과료는 3리라(한국 돈으로 2천 원 정도)이나, 아시아에서 유럽 쪽으로 오는 통행료는 무료다. 유럽 쪽의 생활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양쪽 인구는 비슷하지만 유럽 쪽에는 백화점이 7개가 있는 반면에 아시아 쪽에는 3개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다리는1950년에 건설계획을 짜 놓고 공사는 20년 후인 1970년에야 시작해 터키 공화국 수립 50주년이 되던 1973년 10월 29일에 총 공사비 2, 300만 달러를 들여 완공했다. 공사는 영국의 클리블랜드 엔지니어링과 독일의 호치티예프 사(社)가 맡았는데, 길이는 1,560미터고 폭은 33미터이며, 바다로부터의 높이는 64미터이다. 현수교(懸垂橋)로서 다리를 지탱하는 지름 0.5센티미터의 강철 철사만도 무려 10, 412개가 사용되었다. 하루에 20만 대의 차량과 60만 명의 행인이 지나다닌다. 2002년 통계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긴 현수교이며, 세계에서는 일곱 번째로 긴 다리라고 한다. - P377

오아시스로의 변천사를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극동에서 로마까지의 길이 일시에 개통된 것은 아니다. ‘세계의 지붕‘ 이라고 일컫는 파미르 고원을 사이에 두고 동서 각지에 짤막짤막한 길들이 단절적으로 널려 있었다. 그리고 파미르 고원 횡단로가 뚫리면서 이 길들이 서로 이어져 비로소 동서의 오아시스들을 관통하는 완결된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파미르 고원 서쪽의 서아시아 지방에는 기원전 6세기경에 이미 정비된 교통로가있었다.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 재위) 때에 인도 서북부의 간다라 지방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정연한 교통망이 사통팔달하여 영내 23개 주와의 연계가 원활했다. 그 바탕에서 오아시스로의 발단이라고할 수 있는 수도 수사부터 아나톨리아의 사르디스에 이르는 이른바 ‘왕의 길‘이 개통되었다. - P383

즉 한반도의 남단(경주) 에서 출발해 서울(한주)과 평양을 지나 강계(동황성) 에서압록강을 건넌 다음 선양(심주)이나 요중(광주)을 거쳐 고대 한 중 접경지인 초양(영주)에서 중국 땅으로 접어든다. 6세기께 초양은 고구려가 지배한 동북아 최대의 국제무역도시였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산하이 관(임투관)을 넘어 베이징(유주)에 도착한다. 이어 동·중· 서로의 세 갈래 길을 따라 남하해 뤄양에 이른 후 서진해 시안에 도달하면 서역으로 이어지는 오아시스로와 맞닿는다. 그렇게 되면 서단을 로마로 하고 동단을 경주로 하는 오아시스로의 전 노정이 복원된다. 그 총 연장거리는약 1만 5천 킬로미터(약 3만 7천리)로서, 하루에 100리씩 걸으면 주파하는 데 꼭 1년이 걸린다.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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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한반도는 중국 및 일본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영국도 유럽대륙과 연결되어서 섬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타이,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등은 ‘순다(Sunda)‘ 라고 부르는 큰 대륙이었다. 현재의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태즈메이니아 역시 하나의 대륙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를 ‘대-오스트레일리아(Greater Austrailia)‘ 혹은 
‘사훌(Sahul)‘ 이라고 부른다. 순다와 사출 사이에는 수심이 낮은 바다 위에 섬들이 점점이산재해 있었다. 순다까지 육상으로 걸어온 초기 인류는 이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바다를 건너 사출, 즉 현재의 오스트레일리아 방향으로들어왔을 것이다. 항해 거리는 약 70킬로미터-에 달한다.(Desclèves 2017a, 1:116)

약 6만 5,000년전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주변 섬들에 들어와 살게 된 사람들을 애보리진(Aborigine)이라 부른다.
인류의 등장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보다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수천 년 안에24종의 대형 동물 중 23종이 멸종했다. 거대유대목 동물(giant marsupial), 예컨대 캥거루와비슷하게 생긴 키 2미터의 동물들은 초기 애보

리진이 제작한 암각화에도 등장하지만 이후 멸종했다. 인간이 이 멸종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이주가 한 번에 끝난 게 아니라 이후에 여러 차례계속되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000~5,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개를 들여왔는데,
이것이 이 지역의 사냥 문화에 결정적 변화를가져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Préaud, 15)

아메리카에 이주한 최초의 사람들을 고(古)-인디언(Paleo-India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통상 ‘인디언(인도 사람이라는 의미니 분명 잘못된 이름이다)‘이라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이주 역시 빙하기의 해수면하강과 관련이 있다. 바다가 현재보다 수십 미터 더 내려가 있으므로 베링해협은 바다가 아니라 바닥이 드러난 땅이었는데, 이를 베링기아(Beringia)라 부른다. 이렇게 북동시베리아와서부 알래스카가 육로로 연결되어 있던 약 1만6,000~1만 7,000년 전 시기에 아시아계 사람들이 이 육교(陸橋, land bridge)를 넘어 아메리카로 들어왔고, 그 후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주하며 확산해갔다는 것이 기존 정설이다.

레푸지움,refugium, 비교적 기후변화가 적어 다른 곳에서는 멸종한 종이 살아남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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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간 종주. 24.7km, 6시간38분, 3.7km/hr
체력은 기르는 것이 아닌 유지하는 것.
항상 느끼는 바지만 실천이 어렵다.

ㅇ 망이, 망소이의 난. 공산성, 공주 명학소
공주 명학소는 현재 내 사는 대전. 대전의 탄방동(숯구워 팔던곳?) 일대다.
지금은 번화가이고 대전에서 아파트값이 매우 비싼곳 중의 하나다.
이 당시 공주는 충청도 제일가는 도시, 공주목.

망이 · 망소이 난과 공산성
고려시대 민중 봉기와 공산성.
고려시대에는 금·은 세공품, 도자기, 종이 등을 만드는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소‘ 라고 불렀다. 공주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명학소‘ 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 살던 망이 · 망소이 형제가 1176년(명종 6) 귀족들의 횡포와 차별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공주목으로 진격해 공산성을 점령하고 반란의 본부로 삼았다. 
공산성이 다시 한 번 역사의 무대가 되는 순간이다. 
정부는 이들을 달래려고 명학소를 말 잘들으라는 의미의 ‘충순현‘ 으로 잠시 미봉책으로 승격시키고 조위총의 난을 진압한 정부는 군대를 명학소로 돌려 난을 일으킨 이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자 이들은 다시 세차게 일어나 충청도 일대를 휩쓸었으나, 관군의 반격으로 
망이 · 망소이의 난은 진압이 되고 말았다.

ㅇ고려사절요. 망이, 망소이 난 기사는 한줄. 6월에 망이의 고향 명학소를 승격하여 충순현이라 하였다.
(신서원 판, 신편 고려사절요 중권 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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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3-12 2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그리고 부러워요

대장정 2022-03-12 21:2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게으름피우다 간만에 하니 힘들어요ㅠㅠ 꾸준해야는데요~~☆☆

청아 2022-03-12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4키로요!! 대장정님 와우👍👍<희박한 공기 속으로> 제 인생 논픽션입니다ㅎㅎ

대장정 2022-03-12 22:1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ㅎㅎ 그런가요. 죄송한데요, 전 읽으면서 좀 짜증이 많이 나더라고요. 돈 벌이에 ㅎㅈ한거 같은, 준비가 안돼있고 기상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언능 산에서 내려와야지, 게기다가 다들.... ㅠㅠ

청아 2022-03-12 21:43   좋아요 3 | URL
저도 분노하며 읽었어요. 노트북등등을 본인이 직접 짊어질것도 아니면서 셰르파에게 주어 참극의 발단 중 하나가 되었죠ㅠㅠ

대장정 2022-03-12 21:57   좋아요 3 | URL
네, 분노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에베레스트를 돈으로 오르려다.ㅡㅠ 모든 화근은 돈이다.

페넬로페 2022-03-12 2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제가 산책 나갔다가~~
제가 사는 구의 둘레길이 24km정도 되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지인에게 하루에 24km를 다 걸을 수 있을까? 라고 했거든요^^
대장정님은 6시간 반만에 거뜬하게 걸으셨네요.그것도 산길을요^^
역시 ‘대장정‘님이십니다^^

대장정 2022-03-12 23:02   좋아요 3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저는 쬐끔 걷는 수준이고 하루저녁 날 새서 100km씩 산타는 사람들 수두룩하더라구요ㅠㅠ~~☆☆

바람돌이 2022-03-13 0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닉네임 대장정이 마땅한 날이네요. 하루 24킬로라니....
대장정님 체력 짱입니다. ^^ 공주가서 공산성 걸은적은 여러번인데 명학소가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몰랐는데 지금은 대전에 소속된 탄방동이군요. 다음에 이 지역 가게 되면 기억해야겠네요.

대장정 2022-03-13 09: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장시성(루이진)에서 산시성(옌안) 까지 장장 15,000km를 행군한 홍군의 대장정에서 차용했네요. 탄방동 남선공원에 가면 망이망소이난 기념탑도 있고 동네 유래도 소개해 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