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 P4

김훈 씨는 어떤 잡지 인터뷰에서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다 죽어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 P11

스탈린 시대 소련의 정치체제를 냉정하게비판했으니까요. 하지만 오웰은 반공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 그것도 열렬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사회의 정의를 파괴한다고 믿었고, 모든 유형의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파시즘에 반대하는국제의용군의 일원이 되어 스페인내전에 뛰어들었던 것도 이런 신념 때문이었고요. - P15

오웰은 소설도 썼지만 정치 문제를 다룬 평론과 르포르타주도 많이 썼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이 대표적인 작품이죠. 세계  대공황 시기에 대량실업으로 무너진 탄광지역의 실태를 취재한 르포르타주입니다.  이 르포를 보면 오웰은 역사와 인간 존재의 심연(深淵)을 탐사하는 잠수부 같습니다. 저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는 내내 마치 물 밑에 들어간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그걸 쓰는 동안 오웰 자신도 그랬을겁니다. - P16

제게는 ‘미학적 열정‘과 ‘정치적 목적‘이 중요합니다. - P26

저는 자유롭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경제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 P27

저는 새로 책을 낼 때마다 쌀독이 가득 차는 것을 상상하곤합니다. 몇 년 동안은 책을 쓰지 않고 읽기만 해도 되는, 아직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행복이 찾아들기를 기대합니다. - P27

시골 공공도서관에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 P29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많은 결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가 시장경제를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때문일지도 모르죠. 자유를 귀중하게 여기고 자유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요. - P29

/ 제가 진보냐고요? - P38

소설 <토지>, <장길산>, <태백산맥>에서 우리는 인간 박경리, 황석영, 조정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인간의 사악함과 훌륭함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요. - P40

《맹자》에 나오는 ‘유자입정(井)‘ 이야기,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본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른 뛰어가서 구하겠지요. 왜요? 아이 부모한테 사례금을 받으려고?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을피하려고? 동네 사람들한테 칭찬을 듣고 싶어서? 아닙니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막 뛰어가서 구하는 겁니다. 생각은 그 다음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측은지심(心), 즉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본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고 약한 것에 대해 연민의 정을느끼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 P47

인간은 측은지심 말고도 여러 직관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오지심,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알면 부끄러워합니다. 사양지심, 좋은 일의 공을 남한테 돌리고 몸을 낮추려 합니다. 시비지심, 옳고 그름을 가려 옳은 일을 합니다. 맹자는 이런 마음을 4단이라고 하면서, 인의예지라는 문명의 규범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 P47

정언명령은 ‘이성을 사용하는 규칙‘입니다. - P49

그런데 세상에는 시비와 선악과 미추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 P49

글 쓰는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 욕망만은 아닙니다. 훌륭한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와 사상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념과 종교의 교조가 도덕적 미학적 직관을 질식시키기도 하거든요. - P50

민주주의는 여야가 싸우는 게 정상입니다. 안 싸우면 문제 있는 겁니다. 그 덕분에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게 아니라 악을 최소화합니다. - P53

사회에 좌우 또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인데도 정치를 할 때는 말을 못했습니다. - P53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P55

저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유용하고 훌륭한 내용을 깔끔하고 개성 있는 문장으로 쓰려고 애씁니다. - P65

영화감독 변영주 씨는 생각이 달랐던지,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프니까청춘이다》 류의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정말 ‘X같다‘고 생각합니다.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지들이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그것을 돈을 받아먹나요?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그걸 팔아먹나요? 아픈애들이라면서요?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 P67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위로하기위해 만든 말이지만, 아프면 청춘이 아니라 환자죠. 저는 ‘용감하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용기를 쉽게 불끈 낼 수있어 청춘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신나는 일 만나면 당당히선택해서 한번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야무지게 선택하길 바랍니다.

영화배우 박철민 - P68

《아프니까 청춘이다》 쓴 김난도입니다.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저를 두고 ‘X같다‘고 하셨더군요.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아무리 유감이 많더라도 한 인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모욕감에 한숨도 잘 수가 없네요.

조금 의외였습니다. 남은 잘 위로하면서 정작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은 모르네!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 P70

글쎄요, 김난도 교수. 베스트셀러에 올라 서점가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과 본인이 세간에 회자되는 데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그저 책 많이 팔려 인세 늘어나는 데만 함박웃음 짓고 계셨나요? 그간 책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말씀하셔 놓곤 자신은 단 한 번도 아파하려 하지 않고 흔들리려하지 않으시네요 아직 청춘이고 어른이 안 되셔서 그런가? 아니면 자긴 이미 어른이니까 한 번도 아프고 흔들려선 안 된다는 건가요? - P71

오웰은 반공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 그것도 열렬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사회의 정의를 파괴한다고 믿었고, 모든 유형의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파시즘에 반대하는국제의용군의 일원이 되어 스페인내전에 뛰어들었던 것도 이런 신념 때문이었고요.

세계  대공황 시기에 대량실업으로 무너진 탄광지역의 실태를 취재한 르포르타주입니다. 

이 르포를 보면 오웰은 역사와 인간 존재의 심연(深淵)을 탐사하는 잠수부 같습니다.

저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는 내내 마치 물 밑에 들어간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그걸 쓰는 동안 오웰 자신도 그랬을겁니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본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른 뛰어가서 구하겠지요. 왜요? 

아이 부모한테 사례금을 받으려고?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을피하려고? 동네 사람들한테 칭찬을 듣고 싶어서? 아닙니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막 뛰어가서 구하는 겁니다. 생각은 그 다음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측은지심, 즉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본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리고 약한 것에 대해 연민의 정을느끼게 되어 있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아프니까청춘이다》 류의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정말 ‘X같다‘고 생각합니다.  - P67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

지들이 애들을 저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 처방전이라고 써서 그것을 돈을 받아먹나요?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가지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그걸 팔아먹나요? 아픈애들이라면서요? 

아니면 보건소 가격으로 해 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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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히코는 머리를 깎는다.
수염까지 깎으면 3,700엔.

새 손님은 없으니,
월 매출은 오르내림이 없다.

‘무코다 이발소’는 홋카이도 중앙부에 있는 도마자와 면에서 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은 1950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옛날 이발소다. 주인인 야스히코는 쉰세 살의 평범한 이발사, 스물여덟 살에 아버지로부터 이발소를 물려받은 후로 사반세기에 걸쳐 부부 둘이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그런데 아들 가즈마사가 도마자와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꺼냈다.

"나요, 우리 고향을 어떻게든 하고 싶어. 이대로 가다 젊은 사람이 싹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어. 할아버지 할머니만 남은 동네가 되다 못해, 나중에는 아예 없어질 거라고. 그건 안 되는 일이잖아. 나, 아버지 뒤를 이어 무코다 이발소를 맡을 거야."

그러나 야스히코는 복잡한 심정을 풀 길이 없었다. 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이런 시골에서 이발소에 앞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다들 한 달에 한 번 삿포로에 쇼핑을 다녀오는 길에 이발과 미용까지 하고 온다.

"이 도마자와에서 이발소를 해서 뭐 하겠나?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이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가는 마당에 어떻게 새 손님을 끌어들이겠어. 게다가 애당초 사람이 없잖아. 산을 향해 ‘자, 어서들 오십쇼’ 하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잖나 말이야."

"그럴 리가 있겠어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도마자와에서 새로운 장사를 한다는 게 지나친 모험이지.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힘을 내고 있는데, 노인네들 생각으로만 삐딱하게 보는 건 아닌가 싶네."

"인생이 다 인연인데요 뭐."

창밖에서는 눈이 부슬부슬 날리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점점 심해져 덧문을 때리는 소리가 온 집 안에 울리고 있었다. 탄광이 사라진 지금, 뭐가 좋다고 이런 벽지에서 살고 있는지 때로 자신도 알 수 없어진다.

야스히코는 머리를 깎는다. 수염까지 깎으면 3,700엔. 새 손님은 없으니, 월 매출은 오르내림이 없다.

야스히코는 앞으로 20년, 이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 후 이발소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가즈마사가 뒤를 잇겠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바바 할아버지가 아직도 차를 운전하시나?"

"그럼, 하고 있지. 늘 시장 보러 갈 때, 보는 걸."

"그거, 좀 걱정스러운데. 작년에도 주차장에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잘못 밟아서 그대로 논에 처박혔잖아. 얼마 전에는 슈퍼마켓 뒤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하다가 나랑 딱 마주쳤다고. 할 수 없이 내가 뒤로 차를 뺐는데. 이제 운전은 위험하지 않겠어?"

"아버지가 파킨슨병도 앓고 있었나 봐. 검사를 했더니 여러 가지가 나왔어. 역시 힘들 것 같아. 의사가 수술은 어쩌겠느냐, 인공호흡은 할 거냐, 여러 가지로 묻는데, 연명 치료는 하지 말라고 부탁했어. 어머니도 수긍하는 눈치고."

"무슨 소리야. 쇼와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고. 형제가 많으면야 장남이 가업을 잇는 게 도리겠지만, 우리 세대부터는 어느 집이든 둘뿐이잖아. 그런데 집에 얽매인다는 건 불합리하지. 게다가 도마자와 같은 시골에서, 누가 고향에 남으라고 할 수 있겠어."

"여자 쪽이 평균 수명이 길다는 거, 하느님 조화 중에서는 꽤 히트작 아니겠어. 여기 있는 댁들도, 부인이 먼저 저세상으로 가면 어떻겠어? 어쩔 줄 모를걸."

시골은 정말 그렇다. 관습을 따라야 편하지 거스르면 오히려 성가시다.

"안녕하세요. 틈이 나서 왔습니다. 평일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주말에도 안 기다립니다."

세가와가 비아냥거린다.

다이스케, 농사 그만둘 건가? 그럴 수 없겠지. 도마자와를 떠날 건가? 그럴 수 없겠지. 그럼 훌훌 털어버리자고. 모두가 한 연못 안에서 똑같은 물을 먹고 살고 있어. 그게 도마자와야. 그러니까 어울려. 자기를 버리고 그냥 어울리라고. 그럼 편히 살 수 있어."

"알면서 뭘 물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 도마자와에 아무 변화 없어라."

세가와가 먼 곳을 보듯 아련한 눈길로 담담하게 얘기한다. 야스히코는 이 불알친구가 의외로 냉철해서 안심했다. 이것이 연륜이라는 것일 게다.

어색한 분위기만 남았다. 이 일은 한동안 화근으로 남을 듯하다. 그러다 이내 잠잠해질 것이다. 좁은 동네니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는 중재에 나서고, 그리고 어쨌든 화해한다. 이 동네는 지금까지 줄곧 그래 왔다.

"좋기는 뭐가 좋아. 온 세계 사람들이, 홋카이도에 저렇게 조그맣고 못난 동네가 있구나, 하고 정말로 생각하면 어쩔 거야?"

셋이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얘기다. 매일 잠복을 하는 형사도 대화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서로 농담도 던지자 거리가 갑자기 좁혀졌다. 야스히코는 이때도 대화의 힘을 다시 한 번 통감했다.

군고구마처럼 따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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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무코다 이발소

내가 좋아하는 삿포로, 홋카이도

札幌市, さっぽろ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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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가도 되나요?
오줌눌때 마다 나한테 물을거 없어. 그냥 가

40년동안 허락받고 오줌누러갔다
허락받지 않으면 한방울도 안 나온다.
슬픈 현실이지
사회에서 내가 살수 있을리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가석방을 취하당해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갈 궁리만 한다.

기억하세요. 레드.
희망은 좋은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 편지가 당신을 발견하길 빌고
그리고 건강하길 빕니다.
당신의 친구, 앤디

바쁘게 살던지, 바쁘게 죽던지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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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9-02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맞네요. 그런 대사가 있었네요. 지금까지 두번인가 세번 봤는데. ㅋ 두 배우가 연기를 참 잘했어요. 언젠가 더빙판을 본적도 있는데 앤디 목소리 담당했던 성우도 잘 했는데 저 개인적으로 더빙시대가 그립더라구요. ㅋ

대장정 2023-09-02 10:31   좋아요 1 | URL
명작은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 제 맛이죠. 모건 프리먼 굿😮👍👍

페넬로페 2023-09-02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띵작입니다.
몇 번봐도 지루하지도 않고, 대사도 좋아요.

대장정 2023-09-02 22:18   좋아요 2 | URL
띵작요?🤔 네, 좋은 대사가 많아요. 특히 모건프리먼 독백이 참 좋아요. 목소리도요

얄라알라 2023-09-02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영화를 그리 좋아하던데, 대사 하나하나 다른가봐요.
전 영화를 보고도 저 대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혹 다음에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이번에는 대장정님 덕분에 저 대사와 장면 눈여겨 보고 듣게 되겠네요~

대장정 2023-09-02 18:10   좋아요 1 | URL
가석방 심사시 모건프리먼 대사도 참 좋습니다.

얄라알라 2023-09-03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담(?) 돌 무더기(?) 사이의 편지가 너무 좋았어요^^ 모건 프리먼 대사는 또 뭘까...대장정님께서 제 물음표를 확 늘려놓아 주셨네요 ㅎ

대장정 2023-09-03 17:48   좋아요 1 | URL
그 편지 일부가 위의 글(앤디)입니다. 이참에 다시 한번 보시죠^^.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평등’을 ‘실질적 평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질적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라는, 즉 차이에 대한 존중이 평등의 본질임을 밝힌다.

차이에 대한 존중이란 인간다운 생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의 삶을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신체적 능력 등 기타의 사유로 상대적 기회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 병역 문제는 늘 정치인이나 다른 사람의 문제를 통해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다. 과연 우리 사회가 현 군 입대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여성들에게 입대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남녀평등의 대안적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폭력sexual violence이란 개인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정신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모든 성적 언행을 말한다.

오늘날 성폭력은 신체적 폭력이나 형법상 범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망라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성적 농담을 반복하거나 외설적인 글을 메일로 보내는 일, 집요하게 전화를 걸거나 스토킹을 하는 것도 성폭력에 해당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성평등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성평등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오늘부터 타인지향적 삶과 이별합니다

나는 한국 사회가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 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르켐은 자살은 개인이 선택한 것이지만, 자살률이 사회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을 보아 자살은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간주했다.

자살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행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 삶에 대한 고찰과 허무에서 자살을 한다.

서구 사회에서 자살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위해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급속도의 성장이 남긴 것들
지난 세기를 거치며 한국인들은 식민통치, 미군정, 한국전쟁, 동서냉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격랑 속에서 생존을 우선으로 지향하는 삶을 살아왔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 성장에 집중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단 기간 동안 목표를 달성하느라 다른 것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국가와 국민적 지향은 그 목표를 달성하고 전 세계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물질적 팽창에 수반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모른 척하거나 경시함으로써 이후 큰 재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생애 단계마다 정해진 미션이 있다. 10대에는 입시를 위한 공부, 20~30대에는 취직과 결혼, 30~50대는 자녀 교육과 내 집 마련이 그러하다. 생애주기에 따른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서서히 준비하는 사람은 어딘지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사실 50대에도 할 수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며 평생 안 하고 살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생애주기별 과업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언제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일련의 삶의 수순을 밟아야만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수순을 밟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 감각이 부족하거나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애주기에 따라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당히 고정적이다. 조금 다른 삶, 다른 선택을 원한다면 그 앞에는 수많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강요된 삶
"아니, 이제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으면 남자 친구도 사귀고 시집을 가야 될 거 아니야", "빨리 군대를 갔다 와서 취직을 해야지", "아유, 아직도 집 사는 준비 안 하고 뭐해?" 등은 명절 때 친척들이 주로 하는 레퍼토리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친척으로서 도움을 주는 조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과도한 개입일 수 있다.

결혼해 가족을 꾸린 40~50대의 사람이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부터의 꿈은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야.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지금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겠어"라고 한다면 온 가족이 당황할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바람을 응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의 바람이나 꿈, 희망 등은 많이 인내하고 희생되기를 요구받으며 사실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한국인의 삶을 보편적이게 만든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 불안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경멸과 배제의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한국 사회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목표 아래 구성되어왔다. 남부럽지 않은 삶은 한 계단씩 오르며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부정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실패할 경우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좀 더 다양한 삶의 가치가 등장해야 하고, 그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의 경험, 다른 방식의 삶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생애 단계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낙인을 찍는 문화는 결국 분노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진다. 다른 기회, 실패를 통한 성장 등 우리 사회에 삶에 대한 믿음이 전반적으로 생긴다면 자신의 분노감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폭력적인 태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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