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평등’을 ‘실질적 평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질적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라는, 즉 차이에 대한 존중이 평등의 본질임을 밝힌다.
차이에 대한 존중이란 인간다운 생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의 삶을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신체적 능력 등 기타의 사유로 상대적 기회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 병역 문제는 늘 정치인이나 다른 사람의 문제를 통해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다. 과연 우리 사회가 현 군 입대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여성들에게 입대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남녀평등의 대안적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폭력sexual violence이란 개인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정신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모든 성적 언행을 말한다.
오늘날 성폭력은 신체적 폭력이나 형법상 범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망라하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성적 농담을 반복하거나 외설적인 글을 메일로 보내는 일, 집요하게 전화를 걸거나 스토킹을 하는 것도 성폭력에 해당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성평등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성평등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나는 한국 사회가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 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뒤르켐은 자살은 개인이 선택한 것이지만, 자살률이 사회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을 보아 자살은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간주했다.
자살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행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 삶에 대한 고찰과 허무에서 자살을 한다.
서구 사회에서 자살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위해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급속도의 성장이 남긴 것들 지난 세기를 거치며 한국인들은 식민통치, 미군정, 한국전쟁, 동서냉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격랑 속에서 생존을 우선으로 지향하는 삶을 살아왔다. 특히 1960년대 이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 성장에 집중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단 기간 동안 목표를 달성하느라 다른 것은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국가와 국민적 지향은 그 목표를 달성하고 전 세계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물질적 팽창에 수반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모른 척하거나 경시함으로써 이후 큰 재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생애 단계마다 정해진 미션이 있다. 10대에는 입시를 위한 공부, 20~30대에는 취직과 결혼, 30~50대는 자녀 교육과 내 집 마련이 그러하다. 생애주기에 따른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서서히 준비하는 사람은 어딘지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사실 50대에도 할 수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며 평생 안 하고 살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생애주기별 과업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언제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일련의 삶의 수순을 밟아야만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수순을 밟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 감각이 부족하거나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생애주기에 따라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당히 고정적이다. 조금 다른 삶, 다른 선택을 원한다면 그 앞에는 수많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강요된 삶 "아니, 이제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으면 남자 친구도 사귀고 시집을 가야 될 거 아니야", "빨리 군대를 갔다 와서 취직을 해야지", "아유, 아직도 집 사는 준비 안 하고 뭐해?" 등은 명절 때 친척들이 주로 하는 레퍼토리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친척으로서 도움을 주는 조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방식에 대한 과도한 개입일 수 있다.
결혼해 가족을 꾸린 40~50대의 사람이 "아무래도 안 되겠어.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부터의 꿈은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야.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지금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겠어"라고 한다면 온 가족이 당황할 것이다. 가족 구성원의 바람을 응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의 바람이나 꿈, 희망 등은 많이 인내하고 희생되기를 요구받으며 사실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한국인의 삶을 보편적이게 만든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 불안 한국 사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경멸과 배제의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한국 사회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목표 아래 구성되어왔다. 남부럽지 않은 삶은 한 계단씩 오르며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부정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실패할 경우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면 ‘끝’이라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좀 더 다양한 삶의 가치가 등장해야 하고, 그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의 경험, 다른 방식의 삶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생애 단계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낙인을 찍는 문화는 결국 분노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진다. 다른 기회, 실패를 통한 성장 등 우리 사회에 삶에 대한 믿음이 전반적으로 생긴다면 자신의 분노감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폭력적인 태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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