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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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 오. ‘절망 대 희망‘ 비율이 딱 절반이네요. 기적적입니다. 지난 1년, 구쩜구 대 영쩜일로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요. 바늘구멍만한 빛을 따라 ‘송길영‘ 이름 보고 예약주문해서 받은 책입니다. 책을 읽고 ‘5:5‘가 되었으니, 와우, 기적이 따로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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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도 더 전에 과학자들은 생명 세계 전체(꽥꽥거리고, 휙휙 지나다니고, 꽃을 피우고, 덩굴손으로 감아 오르고, 잎을 내고, 털이 복슬복슬하고, 초록이고, 경이로운 그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려는 과업에 착수했다.

(......)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과학의 젖을 먹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다 현역 과학자였다. 비 내리는 토요일이면 거실 바닥에서 아버지의 실험용 생쥐와 놀거나, 연방의 지원금을 받아 꾸린 실험실에서 어머니가 이런저런 실험을 할 때면 그 곁에 붙어 재잘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사춘기가 오기도 전에, 사랑이나 섹스, 멋진 헤어스타일의 힘을 알기도 전에, 나는 다양한 통계 기법(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한 건 카이제곱이었다)의 힘에 빠삭해졌다. 결혼도 과학자와 했고, 친구들도 대부분 과학자이며, 나 역시 과학자가 되었고 지난 20년의 대부분을 《뉴욕 타임스》에 과학자들이 내놓은 신기하고 경이롭고 새로운 발견들에 관한 글을 쓰며 보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쓰던 도중에 과학이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유일하게 타당한 방법도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시라.

내막을 들여다보니 생명의 분류와 명명은 오히려 훨씬 민주적인 일이며 심지어 과학의 지배력을 뒤집어엎는 일이고, 과학보다 훨씬 흥미로운 일이며 언제나 그래왔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

이건 내가 도달하리라 예상했던 곳도 그러기를 원했던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이란 게 늘 계획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렇게 된 게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책을 쓰는 일은 여러 겹의 발견들이 우당탕거리며 하나씩 펼쳐진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생명의 분류에 관해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이 수정되거나 폐기되거나 아예 거꾸로 뒤집혔다. 그리고 소중히 품고 있던 예전의 생각들이 밀려난 자리에서 나는 더 좋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생명의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에 질서와 이름을 짓는 사람들(과학자들과 나머지 우리 모두)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었고, 그 관점은 내가 상상으로도 그려볼 수 없었을 만큼 훨씬 더 흥미롭고 더 많은 약속으로 가득 차 있었다. (4%)


7%
이제 분류학이 상당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견고한 과학의 모습이 아니라 무언가 본능적인 것, 마치 희망처럼 새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서 영원히 새로 샘솟는 무엇 같아 보였다.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는 일, 자연의 질서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감지하는 일은 오늘날 축소된 형태의 분류학, 즉 추상적인 실험실 과학보다는 훨씬 더 큰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존재함, 살아 있음에 따르는 필수적인 기능이면서, 최소한 삶의 초기에는 억누를 수 없는 기능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이치에 맞는 얘기였다. 우리는 정확히 이런 식으로 진화했어야 마땅하다. 왜 아니겠는가? 바로 그렇게 미리 장착된 것처럼 판에 박힌 방식으로 생명의 세계를 바라보고 체계화하게끔 진화했어야 했다. 생명의 자연적 질서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한 가지 시각을 갖게 되는 일을 우리가 왜 마다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동굴에서 살았던 지저분하고 털이 북슬북슬한 우리의 조상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과 싸워야 했을 것이며, 무엇에 대처할 채비를 갖추고, 무엇을 분류하고, 체계화하고, 기억하고, 이름 붙이고, 식별하고, 무엇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아야 했을까? ‘그들이 먹는 것’과 ‘그들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바로 생명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자 대학 시절에 벌들에 빠져 있던 어느 교수님의 동물행동학 수업에서 배웠던 뭔가가 기억났다. 교수님은 생물학자들이 ‘움벨트Umwelt’라 부르는 것에 관해 설명해주었다.6 움벨트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로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이 용어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 개념은 아주 익숙하다.


우리는 개들이 색깔을 볼 수 없어서 색채가 아니라 냄새로 그려진 우주에서 산다는 걸 안다. 멍멍이가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기둥과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교수님이 애지중지하던 벌들은 다면적인 구조의 눈으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벌들은 꽃에서 꿀이 있는 위치로 정확히 날아갈 수 있다. 꽃에 자외선으로 그려진 띠와 줄 패턴이 벌들을 그 자리로 안내한다. 하지만 움벨트는 개와 벌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심지어 인간에게도 있다. 우리는 그걸 ‘실제’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우리를 둘러싼 생명의 세계에 대해 우리 특유의 감각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 게 바로 움벨트다. 그리고 거기에 답이 있었다.

인간의 움벨트에는 내내 드러나지 않고 있던 중요한 의미 하나가 들어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생물의 체계적 질서를 감지하는 방식, 처음부터 내장돼 있으며 판에 박힌 그 방식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이 바로 움벨트(우리가 공통적으로 지각하는 세계)라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전에는 분류학과 관련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아주 많은 것의 원인이 움벨트임이 분명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서나 움벨트가 우리에게 질서를 보게 하고, 또한 그 질서에 근거해 행동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인간을 포함해) 한 종 안에서도 또 질서를 매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분류하고, 그들이 우리의 자연 질서 안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그러니까 흑인인지 백인인지 아시아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등을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의료를 처방하고, 적합한 화장실을 고르며, 장학금과 기회를, 심지어 사랑을 나눠주는 데까지 그 분류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우리의 움벨트라는 렌즈를 통해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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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투리 - 서울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읽어요? 아무튼 시리즈 70
다드래기 지음 / 위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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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공감, 카타르시스.
삼박자 딱 딱 맞아,
기대이상, 의미, 재미 다 챙긴 시간.
2024 추석 연휴 마지막날 근사하게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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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9-2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연휴 마지막날이라는 문구에 확 꽂혔습니다. 연휴가 길었군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ㅎㅎ

잘잘라 2024-09-22 23:34   좋아요 1 | URL
《아무튼 사투리》 읽으면서 여러번 웃었더니 홀가분해요. 길고 길었던 연휴, 드디어 끝나서 좋아요. 후회없어요. 후련해요.
 
스토리 설계자 - 고객의 욕망을 꿰뚫는 31가지 카피라이팅 과학 스타트업의 과학 4
짐 에드워즈 지음, 신솔잎 옮김 / 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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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연예인? 셀럽들의 셀럽? 평소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에 나오지 않던 게스트가 특별 출연했다거나 할 때 쓰는 말. 멋진 모습으로 출연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겸손한 태도, 유쾌한 말솜씨까지 보여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정가 22,800원. 슈퍼울트라짱, 개이득. 짐 에드워즈 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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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나는 틈만 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읽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매주 목요일밤마다 우리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을 책을 빌려 차에 싣고 왔다. 


(10쪽) 글쓰기는 아버지에게 집중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의력을 집중한 다음 그들의 생각과 관찰 결과를 종이에 적도록 시켰다. 아버지의 학생들은 샌 쿠엔틴 감옥의 창작 교실에 참여한 수감자들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도 글쓰기를 가르쳤는데 대부분 예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수감자들과 나에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도록 가르쳤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최대한의 명작과 희곡을 읽도록 시켰다. 시를 읽으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가 보다 대담해지고 독창적이 되기를, 그리고 자발적으로 실수를 범하는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카툰 작가 제임스 터버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를 역설했다. 아버지는 수감자들과 내가 감수성과 관찰력이 풍부하다는 것과, 우리에게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추억과 꿈과 의견이 있다는 것을(정말 그런지는 하느님만이 알겠지만) 자각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감수성은 고작 파리 한 마리가 크림 위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 아주 약간 화가 날 듯 말 듯 한 정도에 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정말로 집중에서 무슨 글이든 쓸 수밖에 없었다.


(14쪽) 아버지가 서재 책상에 앉아 자기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서재 바닥에 앉아 나만의 시를 썼다. 아버지는 2년마다 새 책을 발표했다. 


(15쪽)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즉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희귀한 노동 계층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살림이 결코 넉넉했던 적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다. 


(24쪽) 결국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자 열아홉 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큰 포부를 안고 샌프란시스코로 옮겨갔건만 꿈을 실현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했다. 나 자신의 무능을 처절히 깨닫고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자신감이라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불신과 자학 속에서 세상을 원망했다. 나는 그 도시의 거대한 건축 회사의 타자수로 취직을 했다. 외부와 차단된 품질 관리 부서에서, 해일처럼 밀려드는 삼중의 서식들과 메모들을 처리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자칫 딴생각을 하다가는 꼬여 버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따분하기도 해서 얼마 안 가 눈가에 고리 모양의 다크 서클이 생겨났다. 나는 마침내 이러한 서류 작업이 대부분, 그곳에 정말로 폭탄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일을 소재로 짧은 단편소설도 썼다.

  "얼마간은 매일매일 써라."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글쓰기를 피아노의 음계 연습하듯이 해라. 너 스스로 사전 조율을 하고 나서 말이다. 글쓰기를 체면상 갚아야 할 빚(노름빚)처럼 다루어라. 그리고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해라."


(26쪽) 그런 생활을 몇 년이나 반복했다. 내 책을 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최근에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희망은 대변혁을 가져오는 인내심"이라고 말했다. 


(30쪽) 그러나 매번 예상은 빗나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다만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출판이라는 게 생각만큼 화려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일러둔다. 창작은 그 자체로 너무나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가르쳐 주며, 또 수많은 놀라움을 준다.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카페인을 좋아하므로 다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다도 그 자체라는 것을 발견할 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글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큰 부상을 돌려준다.


(42쪽)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한 학생이 울먹이듯이 호소한다.

"당신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보세요."


(62쪽) E. L. 닥터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 다다를 수 있다."


(62쪽) 다른 어디선가 이야기한 적 있지만, 언제나 거듭해서 내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다. 30년 전 당시 열 살이었던 나의 오빠는 새에 관한 리포트를 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오빠는 3개월 기한을 부여받았지만, 마감 하루 전날까지 한 줄도 써놓지 않았다. 우리는 휴가차 볼리나스에 있는 가족의 오두막집에 가 있었고, 오빠는 식탁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종이 한 묶음과 연필과 열어 본 적 없는 새 도감들에 둘러싸인 채, 눈앞에 놓인 과제의 거대함에 짓눌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옆에 앉더니, 오빠의 어깨에 팔을 얹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65쪽) 이제 짧은 글 한 편 쓰기보다 실질적으로 훨씬 더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하겠다. 그것은 바로 '조잡한 초고'라는 개념이다. 


(71쪽) 거의 모든 명문도 형편없는 초고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일단 무슨 문장이든 써볼 필요가 있다. 내용은 상관없다. 시작이 반이라고, 종이 위에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친구는 첫 번째 원고를 '내린 원고(down draft)'라고 부른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모두 종이에 내려 쓴 원고라는 뜻이다. 두 번째 원고는 '올린 원고(up draft)'라고 부른다. 한 번 수정하여 내용이 향상된 원고라는 뜻이다. 세 번째 원고는 '치과 원고(dental draft)'라고 부른다. 모든 치아를 하나씩 하나씩 다 검사하듯, 각각이 흔들거리는지 너무 붙었는지 썩었는지 혹은 하늘의 도우심으로 여전히 건강한지 살펴본 원고라는 뜻이다. 


(75쪽) 완벽주의는 압제자의 목소리이다. 


(75쪽) 완벽주의는 청소할 일이 두려워 되도록 어지르지 않고 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들은 인생이 그만큼 활발히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원래 난잡함이란 대단히 풍부한 다산성의 땅이다. 

(76쪽) 당신은 그 모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새로운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것을 깨끗하게 하거나, 어떤 것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거나, 움켜잡을 수도 있다. 단정함이란 어떤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정함은 내게 숨을 참는 상태나 정지된 만화 화면을 떠올리게 한다. 글쓰기란 그와 반대로 숨 쉬고 움직이는 것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나는 스물한 살 때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았다. 걸핏하면 목구멍이 붓는 체질이었고, 의사는 마침내 내 편도선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 침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너무 목이 아파서 빨대 하나를 물려고 입을 벌리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진통제 처방을 받았지만, 진통제를 먹어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간호사를 불러 다른 처방을 받거나, 아니면 (내가 마약 중독을 우려하는 점을 고려해서) 다른 약과 혼합한 마약 처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둘 다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상사와 말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간호사는 자기 상사가 점심을 먹으러 갔으며, 내게 다른 건 별로 필요 없고 단지 껌을 사서 열심히 씹으면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껌을 씹는다니, 생각만 해도 목구멍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몸은 상처를 입었을 때, 그 부위의 근육을 단단히 뭉침으로써 더 이상의 폭력이나 감염이 일어나지 않게 상처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 경직된 근육을 다시 이완시키고 싶으면 그 근육을 충분히 사용해서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패미가 밖에 나가서 껌을 사다 주었고, 나는 마지못해 껌을 씹기 시작했다. 엄청난 적대감과 의심을 내비치면서 말이다. 처음 껌을 씹었을 때 목구멍 안쪽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몇 분 더 씹자 모든 고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96쪽) 내가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우리는 모두 출발할 때 자신만의 마음의 땅을 부여받는다고 했다. 당신도 하나, 무서운 필 삼촌도 하나, 나도 하나, 트리샤 닉슨도 하나, 모든 사람이 하나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당신은 정말 마음대로 자유롭게 땅을 활용하게 된다. 과일나무나 꽃들을 심거나, 채소를 알파벳 순서대로 분류해서 심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땅을 놀려도 상관없다. 거대한 창고형 마트처럼 만들고 싶다면, 혹은 폐차장으로 만들고 싶다면, 당장 그렇게 하면 된다. 땅 둘레에는 담장이 있고 문도 있는데, 만약 사람들이 계속 당신의 땅에 침범하여 땅을 망치거나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신에게 시키려고 애쓴다면, 당신은 나가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당신의 땅이니까. 


(97쪽) 같은 이유로, 당신의 등장인물들도 자기만의 마음의 땅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그 땅을 돌보거나 방치한다. 당신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 알고 싶어 하는 것중 한 가지는 바로 각 인물들 땅의 상태이다. 그 땅에 무엇을 기르며, 땅의 모양은 어떤가? 이러한 지식이 글에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당신이 글로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들의 내면의 삶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97쪽) 당신은 스스로 만든 인물 가운데 일부는 편애할 것이다. 아마 그들은 당신의 분신이거나 혹은 당신의 일면을 지닌 사람일 테니까. 당신은 똑같은 이유로 일부 인물들은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때로 당신이 사랑하는 일부 인물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풍부하지 못할 테니까.


(98쪽) 좋은 인물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행동들이 필연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기 때문이고, 우리가 언제나 완벽하게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 탓에 당면한 결과로부터 당신이 그들을 보호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의 이야기는 밋밋하고 재미없어질 것이다. 마치 지루한 현실 세계처럼 말이다. 


(105쪽) 보통 한 인물의 결점들은 그(그녀)를 오히려 호감이 가는 인물로 만든다. 나는 작중 화자를 선정할 때, 내가 평소 친구로 선택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나와 똑같이 수많은 결점을 지닌 사람들 말이다. 자의식이 강한 것도 나쁘지 않고, 일을 미루는 버릇이나, 자기기만, 어두운 성격, 질투, 비굴함, 탐욕, 중독 성향도 괜찮다. 그들은 너무 완벽해서는 안 된다. 완벽이란 공허하고 비현실적이며,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너무 따분하다. 


(105쪽) 나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있었으면 한다. 친구든 소설 속 화자든 너무 빨리 자신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면, 나는 흥미를 잃는다. 그런 상황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과식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유머러스하다면 그가 희망을 품고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 확실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희망이나 회복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105쪽) 우리는 모두 자기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운명에 직면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점이다. 

  가끔씩 기대와 달리 재미도 없고 그리 똑똑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 역시 훌륭한 친구나 화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역경에서 살아남았거나 역경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 있다면 더 좋다. 이런 것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소재인데, 사실상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한쪽 손은 이쪽 바위 위에 얹고, 다른 쪽 손은 저쪽 바위 위에 얹은 , 양쪽 엄지발가락으로는 잠깐이라도 디딜 만한 단단한 곳을 찾아 더듬거려야 할 때가 있다. 바위 표면을 가늠하느라, 웃고 떠들거나 샴페인을 터뜨리거나 재치를 부릴 시간도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매력적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겪어야 할 일을 그들이 앞서서 그것도 품위 있게 해내는 것을 보면 그저 반갑고 기쁘다. 


(111쪽) 플롯은 캐릭터들로부터 비롯된다. 당신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책상에 앉아 당신이 그 인물에 대해 알아낸 것을 글로 쓰고 날마다 점점 더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낸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캐릭터들은 당신이 꿈꾸는 플롯을 위해 졸개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당신의 캐릭터에게 임의로 부여한 플롯은 플롯의 흉내에 불과하다. 


(112쪽) 나는 플롯에 대해서는 걱정 말라고 강조한다. 캐릭터에 대해서만 걱정하면 된다고. 그 인물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게 내버려 두고, 자연스럽게 그들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고, 그들의 삶을 살게 하라. 그러면서 호시탐탐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관계의 발전이 플롯을 창조한다. 


(112쪽) 그러니까 등장인물에 초첨을 맞추면 된다. 예를 들면 포크너의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 소설 주인공들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비록 그의 캐릭터들이 당신이 데이트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우리는 그들이 실재하는 인물이며, 그들이 하는 일이 그들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우리는 그가 만든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캐릭터들 때문에 포크너를 읽는다. 


(113쪽) 각각의 인물이 세상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 그걸 알아야만 무엇이 급선무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발견을 행동으로 표현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의 인물들이 그 일을 시작하거나 매달리거나 방어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그떄 가서 당신은 그들을 데리고 오거나, 나쁜 상황에서 좋은 상황으로 회복시키거나, 상실한 것을 되찾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는 위기 상황에 두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긴장도 만들 수 없을 것이고, 당신의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113쪽) 하키 선수를 생각해 보라. 얼음 위에 하키공이 하나 정도 있는 게 좋다. 공이 없다면 그는 꽤나 우습게 보일 것이다. 


(117쪽) 드라마는 독자의 시선을 끌기 좋은 방법이다. 드라마의 기본 공식은 설정(setup), 발전(buildup), 클라이맥스(payoff)이다. 농담의 구조와 같다. 설정은 우리에게 게임의 공식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발전은 당신이 모든 움직임과 방향 이동 방식을 집어넣는 곳으로, 거기에서 당신은 칠면조의 살을 모두 발라낼 수 있다. 클라이맥스는 '도대체 우리가 왜 여기까지 도달했는가?'라는 ㅈㄹ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당신이 전달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드라마는 앞쪽과 위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118쪽) 드라마엔 반드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캐릭터들을 계속 앞으로 전진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의 걸음이 아무리 느리다 하더라도 말이다. 


(122쪽) 나는 몇 년 전 앨리스 애덤스가 단편소설에 관해 강의하는 것을 들었다. 그 강의에서 거론된 한 가지 관점이 관객석에 있던 글쓰기 지망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후부터 나도 내 학생들에게 그 관점을 전해 주게 되었다. 물론 나는 언제나 출처를 밝힌다. 그것은 ABDCE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은 Action(행동), Background(배경), Development(발전), Climax(절정), Ending(결말)을 말한다. 당신은 먼저 액션부터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를 유인하기에 충분하고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백그라운드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 캐릭터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서서히 발전시켜서, 그들이 무엇에 가장 관심을 쏟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것들로부터 플롯과 드라마, 행동, 긴장이 자라날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이 절정이라는 한 지점에서 만날 때까지 그들을 계속 몰아가고, 절정을 기점으로 주인공들은 모든 것이 변화된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결말이 따라온다. 이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무슨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352쪽)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 웃음 짓게 만들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따라서 손뼉을 친다. 거듭거듭 짓눌리는 대신 말이다.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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