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 Grit - 잠재력을 실력으로, 실력을 성적으로, 결과로 증명하는 공부법
김주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11월
절판


지능이나 재능은 잠재되어 있다. 그러한 능력이 실제로 발휘되려면 마음의 근력이 필요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높은 수준의 성취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릿이다. ‘그릿(GRIT)’은 스스로의 능력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온갖 어려움과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발적인 열정으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끝까지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결국 또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음만 굳게 먹는다고 누구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근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그릿은 ‘끝까지 노력할 수 있는 힘’이며, 이 책에서는 그릿을 키움으로써 ‘진짜 공부 잘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8-9쪽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그릿을 키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키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이 공부 잘하기를 바란다. 그저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간절히 원한다. 그러한 간절함 때문에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닦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모의 이러한 행동이 아이의 학업성적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9쪽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마지못해 공부하는 것이 버릇이 되면, 아이의 뇌리에 공부는 엄마의 사랑을 위협하는 적으로 각인된다. 이런 아이는 자라면서 공부를 마음 속 깊이 증오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일을 잘 해낼 수는 없다. 하기 싫어하는 일을 꾹 참고 했는데도 그 일을 잘해내는 사람은 없다.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키려는 부모의 극성이 결국 아이의 인지능력과 학업능력을 저하시켜 아이의 성적을 떨어뜨린다. 나는 부모의 잘못된 개입이 아이를 오히려 무능력하게 만들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너무도 자주 보아 왔다.-9쪽

그릿은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힘, 즉 ‘자기동기력’에서 시작해,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나아가도록 자신을 통제하는 힘, 즉 ‘자기조절력’으로 완성된다. -13쪽

문제의 핵심은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이 아니다. 무엇을 해도 그것이 아이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선행학습이든 뭐든 얼마든지 괜찮다. 아이가 수학문제를 풀며 즐겁게 놀 수 잇다면, 아무리 높은 수준의 수학문제라도 얼마든지 풀게 하면 된다. 그러나 설령 놀이라 할지라도 종이접기든, 공놀이든, 모래성 쌓기든, 레고 만들기든, 그것을 강제로 시키고, 안 한다고 야단치고 닦달하고, 마치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이를 압박하면 절대 안 된다. 부정적 정서가 유발되는 순간 놀이든 선행학습이든 영재교육이든 좋지 않은 것으로 돌변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다.-22쪽

아이의 자기조졀력은 부모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해주고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몸과 마음은 절대적인 정서적 지원을 받아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 없이는 회복탄력성도, 그릿도 생기지 않는다. -23쪽

이 책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공부시간을 늘리고, 선행학습을 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무조건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적이 오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작정 공부를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시험을 잘 본다는 얘기고, 성취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 성취력의 근원이 바로 그릿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보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보면 100점 맞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많이 하는 아이가 시험을 잘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니다.

속된 말로 무조건 많은 내용을 머리에 때려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투입과 산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그릿을 발휘하여 공부할 내용을 머릿속에 잘 집어넣고, 이를 시험 때 잘 꺼낼 수 있어야 한다. -29쪽

‘투입’은 공부할 내용을 마스터하고 숙달(Mastery)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시험 볼 때 제대로 꺼내는 것이 바로 퍼포먼스다.

시험은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려면 오랜 훈련이 필요한 법, 그러나 무조건 훈련만 많이 한다고 해서 반드시 퍼포먼스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30쪽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를 생각해보자. 김연아 선수는 분명 세계적인 스케이트 선수들 이상으로 연습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에 참가한 많은 선수들 중에서 그의 연습량이 가장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가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3분 30초 동안의 실제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에, 대회에 참여했던 모든 선수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는 뛰어난 ‘성취력’을 갖췄던 것이다. 수년, 아닌 평생을 노력한 결과가 단 한 번, 3분 30초 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결정된다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이겨내고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그릿을 지닌 것이다. -30쪽

김연아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전 세계 관중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이 중계방송으로 자신의 경기를 지켜본다는, 즉 타인의 시선에 대한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는 엄청난 ‘마음의 근력’이었다. 압박감과 긴장감은 머릿속의 편도체를 활성화해 실수를 쉽게 유발한다. 다행히 김연아 선수는 주어진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릿을 갖추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불안감과 긴장감을 이겨내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30-31쪽

다른 종목 역시 마찬가지다. 축구에서 이기려면 선수들은 승리에 집착하기보다 공에 집중해야 한다. 시험을 잘 보려면 학생들은 시험 보는 순간에는 절대 성적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시험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집중력은 경기 직전, 혹은 시험 직전에 마음 먹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평소 긍정적 정서와 ‘나는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능력성장믿음을 꾸준히 높게 유지해야만 이러한 멘털에너지가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그릿의 기반이 된다. -31쪽

흔히 똑똑하다, 유능하다, 공부를 잘한다, 일을 척척 잘해낸다고 하는 것은 성취력이 높다는 뜻이다. 성취력 향상이란 어떤 일이든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우는 것을 뜻한다. 그릿은 모든 종류의 성취력과 깊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결국 이 책은 성취력을 향상시키는 법에 관한 것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자기가 맡은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은 같지만, 이 책에서는 우선 학생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법을 다루고자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해서 더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법이다.-31쪽

만일 당신이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면, 공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거나 공부는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신 아이가 당시보다 훨씬 더 공부 잘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이 지닌 공부에 관한 잘못된 관념을 강요하거나 물려줘서는 안된다. 이 책을 통해 공부에 관한 당신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그것이 어렵다면 아이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공부를 강요하지 말고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기 바란다. 그래야 적어도 아이의 공부를 방해하지는 않을 테니까.-42쪽

공부와 관련된 두 번째 오해는, 지능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므로 평생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마치 자동차 엔진의 출력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 엔진은 출고될 당시부터 그 성능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지능은 평생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자신의 신념, 감정상태 동기부여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켈빈 에드룬트는 실험을 통해 간단한 동기부여만으로도 아이들의 지능지수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우선 그는 5~7세의 어린이 79명을 상대로 지능검사를 실시했다. 그러고는 7주 후에 이 아이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다시 한 번 비슷한 지능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쪽 그룹 아이들에게만 맞히는 문제 하나당 M&M 초콜릿을 하나씩 주기로 약속했다. M&M 초콜릿의 달콤함을 맛보고 싶은 이 그룹 아이들은 다른 그룹 아이들에 비해 지능지수가 무려 12점이나 높게 나왔다. 7주만에 지능지수가 갑자기 향상될 리는 없으니, 초콜릿을 받고 싶다는 ‘동기’가 아이들의 지능지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48쪽

능력성장믿음 VS 능력불변믿음

지능 변화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해온 스탠퍼드 대학의 캐롤 드웩 교수도 지능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인간의 지능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변화한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지능이나 능력에 대해 일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능력불변믿음(fixde mindset)’이다. 본인의 지능과 능력은 이미 일정한 수준으로 정해져 있고,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노력하지 않아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고 믿는 것이기도 하겠군.. ㅎㅎ) 아이의 성적이 유전적 지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수많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대표적인 고정관념이 바로 이 ‘능력불변믿음’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능력성장믿음(growth mindset)’인데, 이는 노력 여하에 따라 자기의 지능이나 능력이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49-50쪽

"너는 참 머리가 좋구나.", "너는 참 똑똑하구나."라는 식의 말은 능력불변믿음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이러한 칭찬을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의 지능이 노력과는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자기는 왠지 운 좋게 머리가 좋게 태어났다는 믿음을 키워간다. 지능이나 능력을 칭찬하는 것은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사실은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능력성장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지능이나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의 노력과 과정을 칭찬해주어야 한다. -50쪽

능력불변믿음을 지닌 사람의 뇌와 능력성장믿음을 지닌 사람의 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뇌영상 연구결과도 있다. 능력불변믿음을 가진 사람의 뇌는 자신이 몇 점을 받았는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했는지에 관한 정보가 주어질 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고 활성화된다. 따라서 이들은 결과에 집착하고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려 든다. 반면 능력성장믿음을 지닌 사람의 뇌는,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풀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활성화된다. 따라서 이들은 과정에 더 집중하며, 문제를 잘 풀거나 일을 더 잘하는 것 자체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53쪽

어떠한 일에 실패하거나 역경이 닥쳐왔을 때, 혹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능력불면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재도전을 얼른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움츠러들고 마는 것이다. 결국 성취의 원동력인 열정과 끈기를 발휘할 수 없다. 반면 능력발전믿음을 가진 사람은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해봐서 안 되면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능력발전믿음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와 함께 열정과 끈기를 선사한다. 능력성장믿음이 그릿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드웩은 의지력의 고갈 역시 의지력의 양이 고정되어 있다는 관념의 반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능력성장믿음을 지닌 사람들의 의지력은 고갈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54쪽

일부러 공부 안 하는 아이들

머리가 좋다는 칭찬 한마디가 뭘 그리 심각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지능에 대한 칭찬이 불러오는 파장은 의외로 크다.

어려서부터 아이의 지능을 계속 언급하면서 "우리 아이가 머리는 참 좋아오.", "우리 아이는 똑똑해요.", "우리 아이는 영재예요." 라는 식으로 계속 칭찬한다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유능감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불리화(self-handicapping)’를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어렸을 적부터 똑똑하네, 영재네, 하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아이일수록 커가면서 자기불리화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자기불리화란 자신에 대한 평가가 걸린 중요한 퍼포먼스 전에 스스로에게 불리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공부를 안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냥 공부가 하기 싫고 노는 것이 편해서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안 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아주 철이 없고 어리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만 되면, 아이들은 시험이 다가오는데 공부를 안 하는 상태를 매우 괴로워한다. 도덕적으로는 죄책감마저 느낀다. 차라리 공부하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더 기분 좋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아이들은-55-56쪽

불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공부를 안 한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고, 공부를 안 하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두려운데도 공부를 안 한다. 도대체 어째서일까?

사람의 욕구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아존중의 욕구다. 쉽게 말해 스스로를 가치 있는 인간이라 여기고 싶은 마음이다. 한마디로 자존심이자 자기존재가치에 대한 확신이다. 아이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주변에서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부모님, 선생님, 가까운 친구들이 속으로 나를 바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가히 엄청나다. "이번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나는 바보임에 틀림없어."라는 두려움은 더욱 크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56쪽

자기불리화를 하는 아이들은 시험이 가까워오는데도 의도적으로 공부하기를 회피한다. 일부러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논다든지, 자꾸 딴짓을 한다든지, 밤새 친구들과 카톡을 하거나 온라인 게임을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러한 행동은 의도적이라기보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태에 빠진 아이들은 왠지 집중을 못하고 불안해하면서 책상 앞에 앉기조차 싫어하고 책을 펴지도 않고 자꾸 딴짓만 하게 된다. 아이들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좌절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부정적 정서 때문에 자기불리화가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기불리화의 무의식적인 목적은 다음날 시험을 망칠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미리 민드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못 봤다면 정말 무능하다는 취급을 받겠지만, 시험 전에 쿨하게(?) 친구들과 노느라 공부를 안 해서 시험을 못 본 거라면 적어도 무능하지는 않다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불리화는 자신이 무능하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일종의 자기합리화다.-57쪽

자기불리화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나는 공부를 안 해서 시험 못 본 것이다. 머리가 나쁘고 능력이 없어서 못 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발동하는 방어기제다. -57쪽

콘빙턴(1992)의 ‘자기가치이론(theory of self-worth)’에 따르면 학생들이 높은 성적을 받고자 하는 가장 큰 동기는 긍정적인 셀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똑똑해 보이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셀프 이미지가 시험을 망침으로써 한순간에 날아간다면?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좌절,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경멸과 무시는 그 어떠한 처벌이나 협박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은 어떤 짓이라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특히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지극히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청소년에게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는 존재 가치와도 직결된다. 자신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때로는 옥상에서 뛰어낼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58쪽

자기불리화는 학생이 노력과 능력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린 초등학생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으며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특히 중학생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실제 여러 연구들이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의 연령 대에서 자기불리화가 폭넓게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59쪽

인간의 능력은 두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인지능력이다. 지능 혹은 재능으로 불리며, 인지능력이 높으면 똑똑하다, 머리가 좋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다른 하나는 비인지능력이다. 끈기와 열정, 집념, 도전정신, 동기부여, 회복탄력성 등이 이에 해당하며, 비인지능력이 높으면 열정적이다, 끈기가 있다, 참을성이 많다, 침착하다, 자신감이 충만하다, 집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83쪽

비인지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릿(grit)이다. 그릿은 자신에 세운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84쪽

그릿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능력성장의 믿음(Growth Mindset),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자기가 하는 일 자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내재동기(Intrinsic Motivation), 목표를 향해 불굴의 의지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끈기(Tenacity) 등이다.

(......)

지능이나 재능은 일종의 잠재력이다. 그릿은 각자 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힘이다.-85쪽

자율성, 자기동기력의 핵심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는 완벽한 자율성의 상태, 그 자체다. (...)아이들은 자기의 외부 환경을 스스로 변화시킬 때 무한한 즐거움을 느낀다. 물장난이나 모래 장난을 특히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이나 모래는 내 손이 닿는 대로 바로바로 반응한다. 아이가 종이를 구기고 방을 온통 어질러놓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109쪽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자율성의 핵심이다. 이렇게 노는 아이들은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열심히 한다. 다른 어떤 것을 얻고자 물장난을 하고 방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들이 ‘노는’ 방식이다. 자율성이야말로 놀이의 기본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놀이’가 될 수 없다. 똑같은 행위라도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야 재미있는 놀이가 되고 내재동기가 생겨난다. -110쪽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게임을 열심히 한다. 게임 자체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한다. 왜 그럴까? 왜 아이들은 게임에 대해서는 강한 내재동기를 갖는 것일까? 역시 자율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자율성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다.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일이고, 본인이 스스로 결정해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게임은 다르다. 오늘 어떤 게임을 할지, 누구와 할지, 어떤 맵을 선택하고, 어떤 종족을 선택하고, 어떤 아이템을 장착해서, 어떤 전략으로 싸울지 등을 모두 스스로 결정한다. 게임하는 내내 내가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자기통제의 느낌도 충분히 만끽한다.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내가 체험하는 세상은 모두 나의 손끝에서 통제되며 내 결정에 의해 전개된다. 이러한 자율성 때문에 게임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110-111쪽

아이의 자율성은 되도록 어려서부터 키워줘야 한다. (...)공부와 관련해 아이의 자율성을 키워주려면, 우선 공부 안 하면 인생을 완전히 망칠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인생에는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분명히 가르쳐주어야 한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많은 일 가운데 하나가 공부이며, 공부는 네가 좋아서, 선택해서 하는 것이라는 기본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실히 심어줄수록 좋다. -122쪽

불굴의 의지나 집념, 즉 그릿이 필요할 때는 일이 잘될 때가 아니라, 일이 잘 안 풀릴 때다. 공부에 비유하자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척척 이해되는 게 아니라, 잘 이해되지 않고 어렵게 느껴질 때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현재 겪는 쓰라린 실패는 좌절하지 않는 내 노력의 과정일 뿐이다. 그러한 집념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릿의 또 다른 핵심 요소인 ‘자기조절력’이다.-141쪽

자기조절력은 어려운 일을 오래도록 견딜 수 있는 지구력이며 끈기이며 집념이다. 이를 키우려면 자기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내가 70점밖에 못 받았지만, 노력하면 90점, 100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곧 유능감 혹은 효능감이다.(......)

디씨와 라이언 교수의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나는 내가 하려는 일을 잘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해낼 수 있다’는 유능성 지각 혹은 유능감은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적 요구 중 하나다. 일상생활 속에서 유능감을 느껴야 사람은 행복해지며, 집념과 끈기를 발휘할 수 있다. 유능감이 높은 이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장점과 강점에 대해 더 많이 더 자주 생각한다. 반면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더 많이 떠올릴 수록 유능감의 수준은 낮아진다.

어려서부터 "네가 그런 걸 어떠헥 하니?", "네 주제를 알아야지.", "이런 못난 놈.",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등의 꾸지람을 계속 듣고 자란 아이들은 실제로 멍청해진다.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여길수록 사람은 무능해진다. -142쪽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멘털 에너지의 근원은 바로 전두엽이다. 쉽지만 결고가 좋지 못할 것 같은 일과 어렵지만 보다 바람직한 결과가 예상되는 일 사이에서, 전두엽은 어려운 쪽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든다. 가령 지금 당장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지만 내일이 시험이니 욕구를 억누르고 공부에 집중하려면, 전두엽의 ‘자기조절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일상적인 습관이나 늘 하던 행동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도 다 전두엽 덕분이다.

전두엽의 이러한 기능은 ‘만족의 지연(delay of gratification)’으로 나타난다. 지금 당장 작은 욕구를 참으면 더 큰 보상이 온다는 것을 안다면, 눈앞에 보이는 만족을 취하는 대신 미래의 더 큰 보상을 위해 자기통제를 하는 것이 만족의 지연이다. -154쪽

이처럼 강한 자기조절력이 발휘되려면 전두엽의 기능이 강해야만 한다. 실제 뇌영상 연구를 통해서도 자기조절력이 높은 사람들의 전두엽 활동성이 더 높다고 확인된 바 있다. 전두엽의 기능이 약한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자기조절력과 의지력이 발휘되지 않으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데 자기조절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못하는 것이다. -156쪽

자기조절력을 키우려면 우선 자그마한 일부터 의지력을 발휘해 실천해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자기조절력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157쪽

스스로 감정의 변화를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감정조절이 서투르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혹은 슬퍼하거나, 자신의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두엽의 기능이 약화되어 변연계를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161쪽

전두엽의 기능이 무력화되면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폭력적 행동을 저지를 우려마저 높아진다. 스스로 분노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매우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162쪽

사람의 뇌에는 여러 부위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 완성되는 것이 바로 전두엽이다. 전두엽의 성장이 완성되는 것은 만 25세 전후다. 만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은 두뇌적으로는 아직 미성년자이며, 전두엽이 변연계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는 나이다. -162쪽

전두엽은 가장 늦게 완성되기 때문에 유전적인 영향을 가장 덜 받으며, 동시에 환경적 요소인 교육과 훈련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부위이기도 하다.-163쪽

자기조절력의 가장 큰 적, 스트레스

전두엽의 기능이 이처럼 중요한데도 오늘날 청소년의 전두엽 기능은 눈에 띄게 약해져 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급속히 늘어가는 학교 폭력, 청소는 우울증, 자살률 등이 바로 그러한 증거다. 전두엽을 위협하는 최대 적은 ‘스트레스’다. 두려움, 분노, 좌절감 등의 부정적 정서는 전두엽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지만,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전두엽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킨다.

어릴 때 학대를 받았거나 가정폭력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된 아이들은 자라면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스트레스로 인해 전두엽이 덜 발달되기 때문이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던 아이들도 전두엽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되어 인지능력과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164쪽

그러나 경제적 빈곤 자체가 전두엽 발달의 저하를 낳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빈곤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부정적 정서의 유발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165쪽

스트레스는 왜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신체 여러 기관의 기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긴장, 두려움, 짜증, 분노, 좌절감 등의 부정적 정서는 뇌의 편도체라는 부위를 활성화한다. 편도체는 변연계의 핵심적 부분으로 편도체의 활성화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분비시킨다.

돌도끼로 사냥을 하던 구석기 시대 사람 고인돌 씨를 상상해보자. 그는 현대인이 겪는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니었겠지만, 분명 때때로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갑자기 토끼고기가 먹고 싶었던 고인돌 씨는 돌도끼 하나 어깨에 둘러메고 사냥을 나섰다. 얼마쯤 숲길을 지났을까, 그는 갑자기 집채만 한 멧돼지 한 마리와 마주쳤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이게 된다. 그의 시각정보는 비상신호를 보내고, 그의 편도체는 급격히 피가 몰리면서 활성화된다. 편도체의 신호를 받은 시상하부는 스트레스호르몬인 글루코코르티코이드가 마구 분비되어 혈액 속으로 공급되도록 명령을 내린다. 체내에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가 높아지면 팔, 다리 등과 같은 근육에 새로운 피가 몰리면서 에너지가 공급된다. -166쪽

스트레스 호르몬은 이처럼 우리 몸을 외부의 적 멧돼지로부터 ‘도망가든지 아니면 싸우든지’의 상태로 만든다. 도망가거나 싸우려면 근육에 에너지가 집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스트레스의 본래 의미다.

에너지가 근육으로 몰리면서 목덜미와 어깨는 힘이 잔뜩 들어가서 뻣뻣해진다. 대신 위장 등 소화기관에 공급되던 혈액양은 급격히 줄어든다. (...)당장 시급하지 않은 위장기관의 소화기능은 일단 정지된다. 마찬가지로 생식기능도 일시정지 상태에 빠진다. (...)우리 몸에 침범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 시스템도 일시정지된다. 지금 세균보다 훨씬 더 크고 위협적인 적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으니까.

고인돌씨의 이러한 스트레스 상태는 아마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5분 이내에 결판이 났을 것이다. 그 안에 멧돼지를 때려잡든지, 아니면 도망가든지 했을 테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잡혀 먹히든지. 어떤 경우든 더 이상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 따라서 "도망가든지 싸우든지"의 스트레스 상태는 5분 혹은 길어야 10분 정도 지속되다 말았을 것이다. 이것이 스트레스의 본래 모습이다. -167쪽

그러나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이 마주하는 멧돼지는 어떠한가? 도저히 5분, 10분 이내에 해결될 수가 없는 멧돼지들이다. 학기마다 계속되는 중간고사 멧돼지와 기말고사 멧돼지는 몇 달 전부터 학생들 앞에 나타나서 어른거린다. 한 번에 때려잡을 수도, 그렇다고 도망갈 수도 없는 멧돼지들이다. 게다가 대학입시와 수능 멧돼지는 몇 년 동안 수험생의 편도체를 활성화하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온몸이 뻐근해지면서 근골격계 질환이 찾아오고, 소화는 잘 되지 않아 위장장애가 생기며, 면역 시스템은 약화되어 감기, 몸살, 두통을 달고 살게 된다. -168쪽

인간관계, 스트레스의 만병통치

자연히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전두엽이 자기통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활성화된 편도체가 오히려 전두엽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에서 전두엽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그것은 결국 ‘건강한 인간관계’로 귀결된다.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과계가 튼튼하고 강한 소속감과 연대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잘 이겨낸다.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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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모모 2014-02-18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는 좋은 내용이 정말 많아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