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말하다
데이비드 두쉬민 지음, 추미란 옮김 / 정보문화사 / 2013년 6월
품절


나는 거의 매일 참가자들에게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이미지를 한 장씩 제출하라고 말한다. 몇 가지 규칙은 있지만 대체로 어떤 사진이든 괜찮다. 사진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목적만 있으면 된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프레임 안에 무엇이 보이는지, 그 속에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그 특정 사진이 나오게 하기 위해 어떤 결단들을 내린 것 같은지에 대해 말하는 법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은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사진가가 사진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말을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굳이 카메라로 관심을 돌릴 이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15쪽

때로 적당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어휘력 부족의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문제는 이해의 부족에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는 사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말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변하는 모습은 늘 경이롭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다가 결국 사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겪은 참가자들은 예외 없이 자신의 비전과 원래의 의도에 더 가까우면서 더 인상적인 사진을 창조하게 된다. 그래서 책 제목이 『사진을 말하다』가 된 것이다. 사진 언어를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 언어를 더 폭넓고 더 세련되게 이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사진에 대해 말하는 과정을 통해 사진 언어에 대해 배울 것이고 결국에는 더 능력 있는 사진가가 될 것이다. -16쪽

일단 나의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결정된다. 아무 단어나 던져놓고 말이 되기를 기대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진가들은 늘 그런 짓을 한다. 과정에 완전히 참여하지 않고 찍고 싶은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냥 찍는다. 하지만 그 의도를 알아낸다면 응시의 폭을 좁힐 것이고 렌즈, 셔터 스피드, 노출을 가장 잘 선택할 수 있을 것이며 색다르고 좋은 원근감을 얻게 될 것이다. 의도는 중요하다. 의도가 원동력이다. 의도가 없다면 필름이나 센서에 제먹대로 빛을 노출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행위에 전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4쪽

물론 밖으로 나가 뭐든 원하는 대로 찍어도 좋다. 하지만 의도 혹은 비전의 역할을 무시한다면 말하고 싶었던 혹은 보여주고 싶었던 이미지가 아니라고 좌절하게 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미지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잘 몰랐던 것이 그 이유이다. 나아가 원하는 대로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먼저 좀 더 확실히 하고 그 다음 끝없이 기술을 연마하라. 그럼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수단을 점점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전과 기술이 서로 충돌과 화합을 거듭하며 하나의 표현-예술을 창조해내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작업하게 될 것이다. -24쪽

내가 비전 중심 사진론을 펼치면 가장 흔히 돌아오는 반응이 그렇다. "의도를 생각할 필요도 없고 비주얼 언어를 배울 필요도 없어요. 저는 직관적으로 찍는걸요!"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다. 물론 직관적으로 찍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가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찌나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는지 나는 그냥 내 장비들을 다 팔아 치우고 다시 저글링이나 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를 의식하고 구체적인 비주얼 언어를 사용하는 일들이 하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직관적으로 찍는 사람의 경우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첫째, 겉으로 보기에는 멋진 이미지를 간단히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도 사실은 비주얼 언어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수년 간 내면화한 결과 정말로 직관적으로 찍는 것이다. 시인이 되기 위해 국어 문법 교재를 집필할 정도로 문법에 통달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직관적으로 찍는 사람은 이 책이 필요 없다.
-27쪽

두 번째는 예술적/기술적으로 게을러서 ‘직관적으로 찍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프레임 안에 무엇을 넣을지, 그것들을 어떻게 배열할지에 대해 좀 더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면 훨씬 더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이 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혹은 필요하지만 읽을 리가 없을 것이다. -27쪽

나는 지금 마일즈 데이비스의 를 듣고 있다. 이런 연주의 힘이 직관적 촬영의 힘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무수히 연주해서 악기를 다루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으며 음악 언어의 내면화를 완전히 마친 상태라서 감정(의도)과 표현 사이가 단 한 순간의 의식적 생각도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하나가 된, 그야말로 경지에 오른 재즈 뮤지션의 연주 말이다. 그것은 흐름이다. 그런 일은 한순간에 일어난 마술 같지만 유전이나 재능 때문은 아니다. 혹은 어머니가 어쩌다 아기 머리 위에 라이카 카메라를 떨어트렸다고 해서 생겨나지도 않는다(기묘한 흉터를 생겼을지 몰라도). 그런 일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일어난다. 우리는 대부분 영재가 아니고 내가 아는 최고의 사진가들도, 물론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창조적인 사람들이지만 오랜 시간 힘들게 기술을 이해하고 연마했기 때문에 그런 흐름을 갖게 된 것이다. -27쪽

의미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면 당신이 그 사진 속에 의미를 넣어야 한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작업을 물 흐르듯 직관적이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곳까지 가기 위한 지름길은 없다. 최고의 사진가들은 명확한 의도(그 의도가 그저 느낌일 뿐일지라도)와 그 명확한 의도를 드러내는 비주얼 언어라는 기술, 둘 다를 겸비한 사람들이다. -28쪽

자기 소설에 아무 이유 없이 필요 없는 말들을 마구 써넣는 소설가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다 그렇게 해놓고 소설가가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생각하고 그 말들이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를 비난하는 소설가는 더더욱 드물 것이다. "맙소사,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나는 그냥 그 페이지에 아무 단어나 막 던져놓은 것뿐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왜 프레임 안에 이런 저런 것들을 넣었는지, 혹은 넣지 않았는지를 물으면 그런 말들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학생들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냐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말한다. "음, 그게 말이죠. 거기 있었으니까요." 아니다. 그것은 거기 없었다. 물론 그것은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진 안에 있는 건 당신이 거기 있도록 ‘허락했기’때문인 것이다. 사진기술자인 우리에게는 우리 의지대로 요소들을 포함하고 배제할 수 있는 많은 방식이 있다.-28-29쪽

:프레임

화가라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건 무엇이든 캔버스에 옮길 수 있겠지만 사진가에게는 약간의 제약이 따른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만 찍을 수 있다. 우리의 예술은 무언가를 ‘창조’하기 보다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사진 예술이 창조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창조적이다. 하지만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재료를 찾는 예술이고 프레임이 있어 우리는 그 재료들을 포함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 프레임 안에 어떤 것들을 넣고 또 어떤 것들은 빼는 행위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들 좀 봐봐! ‘이것들’이 중요하다고!"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프레임 밖의 것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각의 프레임 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프레임은 본질적으로 사진 안에 요소를 넣고 빼는 선택을 위한 도구이다. -33쪽

프레임과 ‘프레이밍’은 다르다. 프레이밍은 요소들을 프레임 안에 들여놓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프레이밍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어쨌든 프레이밍으로 인해 사진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강력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매년 수백만 장이 넘는 사진이 창조되고 그 모든 사진이 좋은 사진이든 나쁜 사진이든 나름 특별한 것들을 사진 속에 들여놓으면서 나름의 세상을 만든다. 그런 사진들은 놓치기 쉬운 삶의 측면들에 주의를 돌리게 한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인용하기 좋아하는 것처럼 사진은 삶을 인용하고 싶어 한다. 전체 연극도 중요하지만 엄선된 인용구 하나가 전체 연극보다 더 강력하고 더 오래가는 정수를 내포할 수도 있다. -34쪽

나는 『리어왕』의 모든 문장을 인용할 수는 없지만 내게 의미 있는 문장 몇 개를 인용할 수는 있다. 나는 리어왕의 전체 줄거리를 숙고하기보다 그 비극의 마지막 대사를 더 많이 생각할 것이다.

이 불행한 시대의 무게를 짊어져야 할 것이다.
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을 말하라.

"카메라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부조리하다. 삶을 인용할 때 카메라는 전후 관계를 무시한다. 우리는 프레임으로 아주 작은 조각들을 창조하고 그것으로 완전히 간과되었던 관계들을 암시한다. 주변 세상을 잘라버림으로써 프레임 속에 살아남는 것 위에 우리 관심을 온전히 집중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보여준다. 그것이 프레임의 힘이다. 사진가의 일은 프레임을 어디에 놓을지 선택하는 것이다.-34쪽

:평면화

어쩌면 카메라처럼 세상을 보는 것이 사진을 가장 빨리 배우는 요령일 것이다. 세상을 카메라처럼 보게 되면 카메라는 결정적인 순간 인간과 완전히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카메라를 소유한 일반인이었던 우리는 비로소 사진가가 된다. 굳이 묻는다면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나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카메라처럼 보고, 3차원 세상을 2차원 세상으로 평면화(플래트닝: flattening)하는 도구가 카메라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냥 카메라를 든 일반인일 뿐이다. 카메라처럼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카메라가 세상을 번역하는 방법을 예측하기 시작하고(번역이라는 말이 꼭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의미 있게 소통하기 위해 그 번역가를 잘 이용할 수 있게 된다.

-37쪽

문제는 카메라가 바보라는 점이다. 카메라를 만든 사람들의 그 모든 지성이 고스란히 내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번역이나 통역이 아니라 직역만 할 수 있게 태어났다. -37쪽

카메라는 우리가 뽑아내고 싶은 사각의 장면을 3차원 현실에서 찾아내 2차원 그림으로 평면화한다. 카메라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그 평면화가 전경과 후경을 끌어붙여 전봇대가 누군가의 머리를 관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입체감을 주지 않을 것이다. 단지 평평하게만 할 것이다. 카메라는 우리가 보통 보는 현실(3차원)의 언어를 취한 다음 2차원 언어로 직역한다. 그 과정에서 그 직역가를 의도적으로 조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카메라는 번역가가 아니다. 번역은 우리의 일이다. -39쪽

풍경 사진가로서 당신의 첫 반응은 아마도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사람들에게 지구의 아침 햇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보는 방식, 그 장면에 대한 ‘당신’의 느낌을 표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사진은 표현이다. 항상 그렇다. 당신만의 주제 혹은 소재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다면’ 그것들을 왜 찍겠는가?-45쪽

모든 예술 형태가 각자의 언어를 갖고 있다. 음악같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강력한 예술의 경우 듣는 이는 그 예술을 논하는 데 필요한 지식 하나 없이, 혹은 아주 조금만 갖고도 그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첼로를 켤 줄 모르고 음악에도 거의 문외한이지만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을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 관객은 음악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충분히 배워야 한다. 사진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책 한 권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우리의 사진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고 웃고 울고 질문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46쪽

나는 사람들이 ‘좋네요’혹은‘괜찮네요’라고 생각할만한 사진을 찍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사진을 찍겠다는 의도로 사진을 찍은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나는 사람들이 단순히 좋아하기보다는 뭔가를 느끼고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를 바란다. 내 사진을 좋아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대화에서 나의 관심은 사진가들에게 고양이나 무지개 사진 따위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시각 언어를 인식하는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50쪽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반응하는 사진을 창조하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우리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더 유념해서 살펴야 한다. 어떤 사진이 좋다면 여기서 적절한 질문은 ‘왜 좋은가?’이다. 그 사진의 무엇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가?-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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