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장바구니담기


1
기억

우리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정보를 잘 잊어버린다.

(...)사랑에 깊이 빠진 젊은 남녀가 헤어질 순간에 이르자, 아쉬운 마음에 여자는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기억을 잃을까 두려워 까맣게 태운 지팡이 끝으로 무덤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 선을 따라 그린다. - 8쪽

`그 여자`를 그릴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페르메이르는 구체적인 상황과 순간, 즉 무아지경에 빠져 멀리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문제에 골몰하는 여자의 모습을 선택했다.- 10쪽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잔안함의 정도는 철천지원수 저리 가라다. 우리는 사랑이 충만함의 강력한 원천이길 바라지만, 사랑은 때때로 무시, 헛된 갈망, 복수, 자포자기의 무대로 변한다. 우리는 부루퉁하거나 쩨쩨해지고,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어떻게 혹은 왜 그런지 이해조차 못하고서 자신의 삶과 한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맹세했던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예술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100쪽

회복력

주디스 커의 유쾌한 동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를 보면, 소피와 소피의 엄마와 함께 차를 마시러 느닷없이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회복력이다. 불운하고도 아주 이상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진 않는다. 문제에 맞는 해결책은 어딘가에 있고, 예상치 못한 일은 적응하면 된다. 어려움은 기회로 바뀐다.- 114쪽

요약하자면 어려움이란 정상적이라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분야의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인성의 여러 요소를 계발해야 한다. 건물을 세우고, 학교를 운영하고, 병 제조 회사를 경영하고, 주식시장에서 성공적인 투자를 하고, 선거운동을 계획하는 일 등,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타고난 결함들을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여기에는 헛된 희망, 위험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 실패의 고통스러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나약함, 달갑지 않은 사람의 충고는 듣지 않으려는 편협함 등이 포함된다.- 191쪽


인생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니콜라 푸생, <샘에서 발을 씻는 남자가 있는 풍경>, 1648년경


(194p.)... 이 그림은 T. S. 엘리엇의 시집 [4개의 4중주]에 수록된 `작은 현기증`의 인상적인 구절, ˝역사는 지금 이곳 영국이니˝의 시각적 등가물이다. 엘리엇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강한 흐름에 반대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번잡하고, 혼란스럽고, 느리고, 속되고, 무섭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엘리엇은 주장한다. 가장 존경스럽고 기록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시기들도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노동도 이와 같다. 노동은 대단히 가치 있고 잔잔히 순항하고 있을 때조차 대개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인정과 보상이 부족하기만 느껴진다.- 19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