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고마워요. 난 행복을 위해서 천국에 가려는 거예요. 현실은 지상에서 겪을 만큼 겪었어요.
돈 후안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 있어야만 해요. 왜냐하면 지옥은 비현실적인 자들과 행복을 구하는 자들의 집이니까. 말했듯이 현실을 지배하는 자들의 집인 천국과, 현실의 노예들의 집인 지상, 그곳들로부터 유일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죠. 지상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서로 남녀 주인공이니 성인이니 죄인이니 하며 연극을 하는 보육원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육체 때문에 자기들의 바보 같은 낙원에서 끌어내려졌지. 기아와 추위와 갈증, 노련과 쇠약, 질병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이 그들을 육체의 노예로 만드는 겁니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소화시켜야 하죠. 한 세기에 세 번씩 새로운 세대가 생겨나야 하고. 신앙과 낭만, 그리고 과학의 시대도 결국 모두 〈절 건강한 동물로 만들어 주세요〉라는 단 한 가지의 기도로 내몰리고 맙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육체의 이런 압제에서 도망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당신은 전혀 동물이 아니니까. 당신은 유령이고, 환영이며, 환상이고, 관습이고, -178-179쪽
죽지도 늙지도 않죠. 한마디로 말해, 육체가 없는 거예요. 여기는 사회적 문제도 없고 정치 문제도, 종교 문제도 없어요. 무엇보다 좋은 건 아마 위생상의 문제도 없다는 사실일 겁니다. 여기서는 겉모습을 아름다움이라 하고, 정서를 사랑이라 하며, 감정을 영웅주의라 하고, 소망을 미덕이라 해요. 지상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이곳에는 당신을 모순에 빠뜨리는 가혹한 사실도 없고 요구와 가식 사이의 아이러니컬한 대조도 없으며 인간 희극도 없이, 오직 영원한 낭만과 우주적 멜로드라마만 있을 뿐이에요. -179쪽
마왕 (돈 우안에게) 내 통치 영역의 이점에 대해 아주 유창하게 설명했으니, 이젠 또 다른 곳인 천국의 결점에 대해서도 똑같이 공정하게 다루어 주시오.
돈 후안 친애하는 부인, 제가 보기에 천국은 놀거나 겉치레나 하는 대신 살고 일하는 곳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대면하며, 마법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피할 수 없고, 확고부동함과 위험이 곧 영예가 되는 곳이죠. 만일 여기서도 지상에서도 연극이 계속되어 전 세계가 하나의 무대가 된다면, 천국은 적어도 무대 뒤에 있는 셈이죠. 그렇지만 천국을 비유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난 당장 그곳으로 갈 겁니다. 그 이유는, 거짓말과 지겹고 비속한 행복의 추구를 피해 내 영겁의 시간을 명상 속에서 보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석상 으악!
돈 후안 사령관 각하. 각하의 혐오를 탓하지는 않습닏. 화랑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무미건조한 장소니까요. 그렇지만 당신이 아름다움이나 쾌락 같은 낭만적 신기루를 명상하며 즐거워하듯, 나 또한 무엇보다도 내가 관심을 두 것을 명상하며 즐거워 하지요. 즉 삶 말입니다. 그건 삶 자체를 관조하는 더 큰 능력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180-181쪽
힘이지요. 내 두뇌가 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아닐 테죠. 내 두뇌의 반밖에 안 되는 쥐도 저처럼 움직이니까요. 단순히 일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고자 하는 맹목적인 노력 속에서 나 자신을 죽이지 않도록 말이지요.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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