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어떻게 쓸 것인가 - 한 줄도 쓰기 어려운 당신에게
임정섭 지음 / 경향BP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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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글쓰기 훈련을 시작한다면 당신은 경험과 읽기의 양분을 흡수해야 한다. 이윽고 필사와 마구 쓰기를 통해 싹이 돋아나고 묘사와 요약, 줄거리 쓰기를 통해 줄기를 뻗는다. 이어 사유와 생각 쓰기 속에서 굵은 나무로 성장하며 서평과 에세이, 소설과 같은 가지로 갈라진다. 마지막으로 은유, 직유와 같은 수사법과 다채로운 글쓰기 기술을 통해 꽃을 피운다. 한 톨 씨앗이 우람한 나무가 된다. 우리는 늘 잊고 살지만 경이로움 그 자체다. -5쪽

●●●교실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될까요?"
선생님이 물었다. 한 아이가 대답했다.
"얼음물이요."
그때 다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봄이 와요."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론되는 사례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오는 마법이 일어난다.(봄이 와서 얼음이 녹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시인 김경주는 '눈물은 자기 안의 빙하가 녹는 것이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렇지 않은가. 참회 혹은 용서를 통해 차갑고 딱딱한 내 마음 속 응으리는 언젠가 한순간에 뜨거운 눈물로 흘러내릴 수 있다. 결국 한 시인의 통찰로 인해 다음과 같은 명문장이 만들어졌다.
"얼음이 녹으면 눈물이 됩니다."-24쪽

사람이 글을 쓰는 행위는 나무에 꽃이 피는 이치와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 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어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는 애써 가꾸지 않고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 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은 성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ㅡ 정약용
-64쪽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 싶습니다. 내 주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이기 싶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통해 마음속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 쓰는 재능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어떤 일이라도 잊을 수 있습니다. ㅡ 안네 프랑크-64쪽

난 태양을 그릴 땐, 사람들에게 태양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밀밭을 그릴 땐 밀알 안에 든 원소 하나하나가 영글은 터지는 순간을, 사과를 그릴 땐, 사과즙이 표피를 밀고 나오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사과 씨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려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싶어. ㅡ쥐디트 페라뇽, <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112쪽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꺠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보면 어쩔까.

ㅡ마종기, '꽃의 이유'-138쪽

글쓰기는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요구한다. 하루에 네 페이지씩 글을 쓰려면 나는 하루에 꼬박 열다섯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창작의 마술이나 나만의 비밀, 창작 비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과 접촉을 단절한 채 커피를 충분히 비축해 놓고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귀에 꽂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방법밖에 없다. ㅡ기욤 뮈소-194쪽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ㅡ박완서.-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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