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건물 무엇인가
김용식 지음 / 기문당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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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초모위언(草茅危言)
- 초야에 묻힌 재야인사가 나라의 정사에 대하여 통탄하여 논의함. 또는 그런 논의

건축과 교수, 건축설계사무소 대표인 친구들과 녹색건축에 대하여 얘기하는 도중 한 친구가 "너는 재야(在野)냐" 하고 물었다.
재야라...... 그 정의가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ㆍ공직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민간에 있으면서 활동하는 사람
ㆍ일정한 정치세력이 제도적 정치조직에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친환경건축이나 에너지절약에 관한 각종 제도ㆍ법규 제정에 참여한 적이 없고 이에 관련된 정부의 연구 용역에도 참여한 바가 없으니 공지에 나아가지 않은 것과 비슷하고, 간혹 유사한 일에 자문으로 참여한 적은 있으나 그 때마다 친환경건축에 관한 각종 제도ㆍ법규를 만들고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해당 분야 전문가 그룹의 사람들과는 의견이 달라 이런 제도권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어서 재야 인사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필자는 '공직' 이나 '제도적 정치조직' 같은 소위 친환경 관련 전문가 그룹에 참여키를 원하지는 않는다.-3쪽

근본적인 생각이 많이 다르고 그들의 벽 또한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서 초모위언(草茅危言)으로 내가 생각하는 녹색건물로의 방법에 대하여 미력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 건국대학교에서는 그 동안 4학년 졸업설계시간에 졸업 후의 진로에 관계없이 모두가 설계 및 계획 작품을 해야 했으나 2003년도부터는 사회에 몸을 담으려는 본인의 희망 전공별로 졸업설계를 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지도하는 전공은 환경 및 설비 분야로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우리 클래스의 이름을 E2E(Energy to Environment)라 하여 그 해에 건축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갖는 부문을 주제로 삼아서 학생들과 졸업설계를 함께 했다.-3쪽

ㆍ친환경건축의 에너지 관련 부분
ㆍ이중외피시스템
ㆍ바람길
ㆍ공동주택의 일조환경, 환기계획
ㆍ실내공기환경
ㆍ유비쿼터스 홈, 병원 등을 통한 유비쿼터스(Ubipuitous)의 의미
ㆍ한국 고건축의 자연환기 이용방법
ㆍ에너지절약 설비시스템의 성능 및 운전방법
ㆍ바닥공조시스템

이러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하여 친환경건축을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하는지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의 친환경적 고려사항과 외국의 친환경건물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고, 어떤 점을 따라 할 수 있고 따라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필자는 이 책에서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던 졸업작품을 통하여 필자가 가졌던 생각, 또 각종 심의 때 여러 건축물들을 보면서 필자가 느꼈던, 그리고 필자가 전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2011년 5월 연구실에서 원고를 집필하며
김 용 식
-4쪽

합천해인사의 장경각은 제로에너지 박물관

제로에너지하우스는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태양열,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보조열원으로 자급자족하는 주택을 말한다. 우리나라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해인사의 장경각은 보조열원으로도 기계적인 신재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실내습도와 환기를 적절히 유지하는 제로에너지 박물관이다.

팔만대장경을 조금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한떄는 기계장치로서 온습도를 유지시키는 건물을 짓기도 하였으나 장경각보다 오히려 대장경판을 보존하기 어려워 현재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

장경각은 주변의 지형과 기후를 고려한 배치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재료, 환기와 채광을 고려한 평면, 입면, 단면 등으로 대장경판을 보존함으로써 현대기술로도 따라 가기 힘든 건축물이다. 장경각 지붕에는 나는 새도 앉지 않고 판고 안에는 거미줄도 치지 않는 이적이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81쪽

팔만대장경의 재료인 나무는 습기에 취약하기 때문에 장경각은 습기를 조절하는데 우선적인 고려를 했다. 바닥은 습기를 흡수하는 석회와 숯, 소금을 겹겹이 다진 후 황토를 얹어 여름철에는 습기를 흡수하고 겨울에는 방출하여 적정 수준의 습기가 자연적으로 유지되게 하였다. 노출되어 잇는 나무 서까래와 단순한 형태의 받침대 위에 진흙과 기와로 뾰족하면서도 둥글게 지은 지붕도 직사광선에 의한 온도변화를 방지하고 공기의 자유로운 순환을 가능케 하였다.

장경각은 습도와 온도 유지뿐만 아니라 환기, 즉 통풍을 많이 고려하였다. 건물배치는 주변지형이 북쪽이 높고 막혀 있으며 남쪽은 아래로 열려있기 때문에 남쪽 아래에서 북쪽으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판전 건물을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게 위치하였다. 특히 습기가 많은 여름철 동남풍은 판전을 타고 옆으로 흘러나간다. 또한 이 지점은 계곡에서 불어온 공기의 습도가 어느 정도 떨어지는 높이이기도 하다. 이는 곧 건물 내부의 적절한 습도 유지와 원활한 통풍에 직결된다.
-81~82쪽

또한 건물 외벽은 위, 아래 두 개의 창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창과 위창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건물의 정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후면의 창은 이와 반대로 되어 있다. 이것은 큰 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함과 동시에 가능한 한 내부에 공기가 골고루 퍼진 후에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장경각은 이렇게 통풍을 통하여 습도와 온도를 적절히 유지시켜 대장경판을 오래도록 보존시킬 수 있게 하였다.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이요한 제로에너지 건물인 것이다.-83쪽

체계적인 과학이 없었을 당시에도 이러한 과학적인 원리로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나 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이다.


또 하나의 제로에너지건물, 석굴암

장경각보다 훨씬 전에 건축되었던 석굴암은 일제에 의하여 그 원형을 잃고 지금은 기계적 냉난방장치에 의해 보존ㆍ유지되고 있으나 원래의 석굴암은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여 실내의 습기와 통풍을 제어한 또 하나의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다. 석굴암의 석상이 있는 본실의 10개의 감실 속에는 자연통풍을 위한 구멍이 있고,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환기구로서 이용되어 석굴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고 외부의 건조한 공기를 받아들인다. -84-85쪽

또한, 석굴암은 암석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암석의 다공질을 통해 서실로 들어온 찬공기로 인하여 석실 안이 외부보다 양(+)의 공기압을 유지하게 되어 외부 습기의 유입을 차단하게 한다. 이러한 다공질의 재료를 이용한 제습 기능은 우리나라와 같이 여름철이 습한 지역의 심각한 결로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 적용될 수 있다.
석굴암은 평지가 아닌 샘이 흐르는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계곡물을 석굴암 밑으로 흐르게 하여 석굴암 안에 발생하는 습기를 아래로 모이게 하고 암석의 다공질을 이용하여 그 습기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잘못된 보수공사, 즉 콘크리트로 석굴을 감쌈으로써 석굴암 내부에 습기가 차고 풍화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와 같은 자연적인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86쪽

한옥은 패시브 하우스

에너지절감형 단열주택을 패시브하우스라 한다. 우리나라 한옥은 현대의 주택과 비교해보면 에너지소비량에서 확실히 에너지가 적게 소비되었던 패시브 하우스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한옥은 구들에 의한 온돌난방 말고는 여름철에는 어떠한 기계적인 냉방장치가 없었다. 따라서 연간 사용되는 에너지는 지금보다 훨씬 적은 패시브 하우스라는 말이다.
건축가 김원의 「온돌예찬」이라는 글에서 보듯이 온돌은 난방과 동시에 밥도 지을 수 있고, 더운물을 만들 수도 있는 효율적인 난방ㆍ급탕 겸용 보일러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온돌은 에너지효율이 100%가 넘는다. 한옥에 냉방장치가 없다고 해서 여름철에 살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나름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게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87-88쪽

비교적 더운 지역에서는 대청마루를 지면에서 어느 정도의 공간을 두어 건축함으로써 지면의 열기나 습기를 대청마루 밑의 공간을 통해 배출시키고 대청마루는 통풍이 잘 되도록 하였으며 주변의 나무들은 주변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도 가질 수 있게 식재하였다. -88쪽

지역마다 한옥의 구조가 다른 것을 보면 한옥은 지역마다의 지리적, 기후적 화경의 특성을 매우 잘 반영한 패시브 디자인을 과학적으로 적용한 주거라 할 수 있다. 과거부터 우리나라 한옥은 요즘의 패시브 하우스처럼 벽체나 창호가 에너지절감형 단열성능 갖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절감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에너지를 스스로 절약하는 형태로 사용되었다. 옛선조들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환경에 맞게 스스로 적응을 잘한 것이다. 더우면 등목을 한다거나 시원한 모시적삼을 입고 부채를 부치고, 떄로는 마당에 평상을 놓고 그 위에 돗자리를 펴서 식사도 하고 눕기도 하면서 더위를 기분 좋게 이겨냈다. 추울 때는 내복, 털옷을 걸치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며 방안에서 화로를 지피면서 추위 또한 분위기 있게 이겨냈다. -89쪽

그러면 오늘날의 주택은 한옥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의 주택 대부분은 공동주택, 즉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에 한옥의 환경적 특성을 살리기가 힘들 수 있다. 여름철에는 열용량이 큰 콘크리트가 밤이 되어도 낮동안 뜨거운 태양열로 덥혀진 열이 쉽게 빠져나가기 힘들다. 또 용적률을 높여 아파트를 배치하다 보면 일조나 통풍이 원활하지 못한 주거가 단지 내에서도 많이 생긴다. 2층 이상만 되면 마당도 없고 1층 앞에 식재해 놓은 나무의 효과를 보기 힘들다. 자연환경을 이용할 수 이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에너지를 줄인다고 두꺼운 단열재로 벽체를 만들고 틈새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기밀한 이중유리로 시공된 아파틑는 겨울에는 실내가 건조하며 숨이 턱턱 막힌다. 이럴 때 기계식 환기장치를 틀면 되겠지만, 무엇보다 전기요금이 많이 청구될 것이 염려되어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무덥고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아파트 안에 머무를 수 없다. 주상복함아파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90-91쪽

사람들 또한 환경에 대한 적응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가는 건물마다, 자동차 안에서도 냉난방장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냉난방을 하지 않는 집에서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제 아파트에서는 한옥의 느낌을, 한옥과 같은 환경적응을 할 수가 없다. -91쪽

앞서 보듯이 한옥, 석굴암, 장경각 같은 우리나라 건축물은 통풍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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