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소설, 그 이상의 소설책!

 

희안하다. 기억, 추억, 회상, 첫사랑, 편지, 학창시절, 친구, 연인, 가족... 새로울 것 하나 없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인상적인 책을 쓸 수 있다니! 놀랍다. 단숨에 읽었다. 역시 나도, 끝까지 읽은 다음에 곧장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이야? 다시 말해 봐. 그게 정말 사실이야?" 되묻는 심정이 되듯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정말 틀림없는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소설, 이상의 소설책이라 할만하다.

읽기 전에는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읽고 나서는 책 뒷표지에 적힌 김연수(소설가) 작가의 소감에 완전히 공감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그 감상은 완전히 다를 수가 있는데(어느 정도는 다른게 정상이다. 감상이 완전히 같다면 더 이상 언급할 꺼리도 없을 뿐더러ㅡ그러면 재미없으니까ㅡ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질린다.), 이건 완전히 나와 같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는 한 소설가가 평생 좇아온 주제가 담겼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소설이 잘 읽히는 까닭은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가 소설을 다 읽어야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종말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모든 인생은 교훈적이다. 종말의 관점에서 다시 인생을 되짚어보면, 모든 건 원인과 결과로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 테니까. 마치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정교하게 씌어진 소설을 읽을 때처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소설이다. 죽을 때에야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내는 우리 인생을 닮았다. 원서 150페이지짜리인 이 소설을 두고 줄리언 반스는 "나는 이 작품이 3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건 꼭 인생에 대한 비유처럼 들린다. 마지막 순간, 이 인생의 의미가 드러날 때 우리는 한번 더 인생을 살아갈 테니까. 김연수(소설가)

 

 

그래서 작가와 나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와 나는 얼마든지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다만? 흐흐) 그것을 말(글)로 표현해 낼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작가와 나의 차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것은 희망이기도 하다. 나에게, 작가와 나의 차이(거리)를 줄여(좁혀) 보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것,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내가 설 수 있는 분명한 자리가 하나 생겼다는 점에서 그렇다. '독자'의 자리, 그것도 아주 '좋은'..

 

 

뚜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물론 그 연필 자국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원본이라는 의미에서, '뚜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 이 말은 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라는 말로 이어진다. 이 두 문장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원제: The Sense Of An Ending)』를 읽고 리뷰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생각난 말이다. 주인공(잠깐 주인공이 '나' 토니 웹스터(앤서니)인지 에이드리언 핀인지 헤깔렸다.(그만큼이나 이야기 한가운데에 에이드리언 핀이 항상 존재한다. 그는 22살에 죽었고, '나'는 60살이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아니, 그렇기 때문에 헤깔린 건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은 당연히 '나' 토니 웹스터다.

'나'는 '희미한 연필 자국' 대신 '뚜렷한 기억'을 가졌기에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나타난다. '나'의 '뚜렷한 기억' 속에 구슬이 서 말이다. 그러나 '나'에겐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 재간이 없다. 그래서 계속 헛다리만 짚는다. 대신 '나'에겐 시간이 있다. 드디어 '나'에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보배'..

 

그것이 보배일지 재난일지 그것조차 '나'에게 달린 문제이긴 하다.

'나'에겐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나는 다만 지켜보고 또 기다릴 뿐이었다. 시간은 내 편이다, 그렇고말고. 가끔 노래에서 진실을 얻을 때도 있는 법.(231p.)

 

시간은 내 편인가?

정말?

 

'시가아아아안은 내 편이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기숙사 방에서 혼자 빙글빙글 돌며 믹 재거와 듀엣으로 요들처럼 목청을 떨며 부르던 노래였다. 그런 고로, 다른 친구들이 의사와 변호사 과정을 밟고 공무원 시험을 볼 때, 나는 아랑고 않고 미국으로 갔고, 반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83p.)

 

시간은 누구도 편들지 않고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시간은 나를 어디에 내려놓을까.

 

나는 왜 시간에 떠내려가고 있는걸까.

나는 왜,

나는 어디로,

나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