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 여덟 번째 인터뷰 특강, 청춘 인터뷰 특강 시리즈 8
강풀 외 6인 지음, 김용민 사회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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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따로 없다

 

김어준 먼저 청춘에 대한 정의부터 얘기해보지요. 사람들이 청춘을 굉장히 찬양하지요. 꿈을 품고, 목표를 세워 매진하고, 열정을 갖고 도전하라. 제가 볼 때는 다 웃기는 소리입니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청춘은 사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청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지금 성공했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나는 그때 열정을 갖고 살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지금 성공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요. 예를 들어 각하. 젊었을 때 안 해본 게 없지요. 이때 청춘 예찬이란 자기 자랑용이에요. 이런 부류는 스스로가 정말 대견해서 자신의 성공을 프로모션하느라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미화하고 신화화하지요. 그렇게 자기 청춘을 신화화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자기는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너희도 목표를 세우고 한계를 극복해라’ 라고 하는데, 한계를 왜 극복해요? 그건 가학이고 폭력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에 맞는 에너지를 타고 나지요. 그것만 다하고 죽으면 됩니다. 한계는 극복하면 안 돼요.(청충 웃음) 예를 들어 자기 뇌의 한계를 야바위로 극복하면 이명박이 되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치명적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정신적으로 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핑계를 대는 거지요. ‘나는 청춘이 아니라서 못하는 거다’라고 안전하게 거리를 확보한 다음 어린 사람들에게 해내라고 협박하는 거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젊었을 때도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빌려 이런 것들을 ‘청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릅니다. 실재하는 동양과 상관없이 서양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안전하도록 재구성해서 만들어낸 허구의 동양, 그게 오리엔탈리즘이잖아요? 그것처럼 서구 제국주의가 자기 우월성을 시화화하고, 동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낸 거지요.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젊었을 때는 그랬다는 말로 자기 청춘을 신화화하고, 지금 못하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로 쓰이는 게 현재 말해지는 ‘청춘’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기라고 하는 거지요. 실제로 청춘에 해당하는, 생물학적 나이로 20, 30대들은 뭘 하려고 해도 자원이 없고 경험도 없고 스스로 뭘 잘하는지 모르고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한 가지 목표를 세워서 매진하고 열정을 다하고 한계를 극복해서 일하라고 하죠?(청중 웃음)

 

세계 각지에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40대에 대해 연구를 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아무리 찾아봐도 공통점이 없었어요. 나중에 발견된 것이 뭐냐, 그들이 20대에 했던 일들의 대부분이 40대에 하고 있는 일들과 거의 상관이 없더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대, 20대 혹은 30대에 그때그때 해보고 싶은 걸 닥치는 대로 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자기가 그걸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자기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면 생각과 다른 게 많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그냥 관뒀어요. 그리고 또 다시 자기 관심을 끄는 일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이것저것 열심히 부딪쳐보니까 어느 순간 ‘어, 내가 이걸 잘하네, 생각보다 재미있네’ 하는 일을 우연히 발견한 겁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발견하고, 재미있고 좋아서 그 일을 몇 년간 해보니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10대, 20대 혹은 30대 초반까지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요. 해본 게 별로 없으니까요. 근데 앞서 말한 이 사람들은 관두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예요. 새로 시작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닥치는 대로 살았던 거지요.

 

한 사회에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은 노력과 능력 떄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웃기는 소리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정주영 회장, 요즘 태어났으면 비정규직이에요.(청중 웃음) 소 팔면 뭐합니까, 월세도 안 되는데. 그러니까 그분 인생의 9할은 운이라고 봐요. 시대와 장소, 그리고 당시의 정치 상황이 하필이면 맞아떨어진 거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1할은 뭐냐? 그게 능력이냐?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그게 운이 올 때 버티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청춘에 관한 진실은 이렇습니다. ‘청춘은 따로 없다.’ 평생 청춘의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거지요. 청춘을 10대, 20대, 30대, 이렇게 나누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렇다면 인생의 9할이 운이라고 했는데, 버티는 동아 무러 하냐?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하는냐?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126-129p.)

 

 

자기 욕망을 모른 채 숙제만 하는 인생

 

제가 〈한겨레〉ESC 지면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오랫동안 상담을 했는데, 사람들의 상담 내용이 70~80퍼센트는 똑같아요. 특히 20, 30대의 고민은 거의 똑같습니다. 대부분은 결국 자기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저한테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느냐, 어떤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느냐고 물어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ㅛ.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는 저도 몰라요. 사실 관심도 없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왜 묻는지는 알아요.

 

라캉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아이가 태어나면 보통 가장 먼저 엄마를 만나지요. 만약에 아이가 웃거나 걸었는데 엄마가 좋아하고 기뻐하면 아이는 당연히 그걸 보고 그 행동을 반복합니다. 엄마의 욕망을 아이도 욕망하는 거지요. 이건 성장하면서도 누구나 겪는 일이빈다.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친척들에게 칭찬받고 싶어하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하고, 그 기대를 좇아서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지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는, 10대가 될 수도 있고 20대가 될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10대 후반쯤에는 일어나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나이쯤 되면 다른 사람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구분이 안 된 채 성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아니면 부모나 선생님, 친구와 친지가 그 정도는 할 거라고 기대하니까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상태로 스무 살이 되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 거지요.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히는 거지요. 자기 욕망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언제 행복해지는지 어떻게 압니까.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압니까. 다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지금 현재 자기가 잘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모르는 거예요. 기준은 간단한데, 자기가 행복하면 잘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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