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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의 아이들 - 이민아 간증집
이민아 지음 / 시냇가에심은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땅끝?
땅끝.
너는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저는 땅끝이 가장 먼 아프리타나 파푸아뉴기니 같은 곳인 줄 알았어요.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고 풍스도 다른 곳이 땅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낸 땅끝은 그런 곳이 아니었어요. 아무도 다다를 수 없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는 곳이 땅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땅끝에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저는 이 세상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제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나 세상에서 원하는 기대치와 달맀기 때문에 제가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저를 잃어버렸어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나 자신이 싫고, 그래서 사랑을 받을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는 완전히 자기만의 방 안으로 들어가서 갇혀버린 사람들. 저는 그 사람들이 땅끝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사람이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을 할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쟤가 행복한 줄 알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지금 이 세상에서 소외되어 자신만의 동굴 안에 혼자 숨어 있는 그런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이 아이들이 그 동굴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면 그 아이를 묻어두고 어른이 되죠. 어른이 되는데, 진정한 사랑이라든지 어떤 창조력이라든지 이런 것을 거기다 같이 묻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지옥이라는 곳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단절되다가 나중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단절되는 장소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도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고 땅끝입니다.
외로움과 회의와 모든 소망이 끊긴 절망. 저는 그런 사춘기를 보냈어요.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제게는 대답이 없습니다. 사는 게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매일 가기 싫은 학교에 가서 내가 아닌 사람인 척해야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상을 많이 하고 꿈을 꾸면 총천역색으로 꿈을 꾸는데...... 꿈을 꾸지 않기로 작정을 했어요. 공상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어요. 그런 것들이 너무 방해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어요. 사람들을 사랑하면 제가 너무 상처를 받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아빠, 우리, 동생, 친구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되겠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너무 외골수더라,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모든 성격을 완전히 바꿔야겠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살아야 됐어요. 그분들이 원하시는 그런 딸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춘기를 보내면서 너희들은 담벼락 속의 하나의 돌에 불과해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라든지 허무주의적인 노래들을 들으면서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그렇게 존귀한 존재가 아니야.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니 그냥 다른 사람처럼 되면 되지, 하면서 제가 저 자신을 꽁꽁 묶어가지고 사람들의 기대와 나 자신의 기대, 그리고 안전함, 두려움 이런 감옥 속에 가둬놓고 문을 잠그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나와서 이 세상이 원하는 사람으로 살기 시작했어요. 대학교 들어가면서 그게 되더라고요. 그게 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나 자신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투쟁이 끝났다는 소리죠. 그냥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으로 내가 나 자신을 만들어가면서 저에게는 진정한 즐거움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흥분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195~196p.)
'하나님도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고 땅끝'이라면 나도 땅끝에 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땅끝에선 살고 싶지가 않다. 아니, 살고 싶든지 말든지 그게 문제가 아니고, 땅끝에선 사람이 살 수가 없다. 땅끝에선 살아도 산 게 아니다. 고통이 멈추지 않고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도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나는 나를 어찌할 수도 없다. 그저 고통을 받고 그저 괴로움을 느끼면서 그저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내가 나를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커피를 마실 수가 있게 된 것일까. 나는 언제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와 『땅끝의 아이들』을 읽고, 『땅끝의 아이들』을 쓴 이민아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내가 할 수 없었다면 누가, 누가 나를 그곳에서 꺼내준 것일까? 왜 나를 그곳에서 꺼내준 것일까? 어떻게 나를 그곳에서 꺼내준 것일까?
『땅끝의 아이들』을 읽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던 질문,
『땅끝의 아이들』을 읽고서야 할 수 (정확히 말하면 '느낄 수') 있게된 대답.
질문과 대답을 함께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내가 걸어가는 길에 아주 중요한 책이 될, 아니 이미 된,
『땅끝의 아이들』.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 설령
모든 사람이 읽는다 해도 모두 다 나처럼 느낄 수도 없겠지.
그래서 리뷰는 이것으로 끝이다.
누구든 필요한 때에 필요한 그 곳에서
이 책을, 또는 다른 어떤.. 필요한 책을 읽게 되리라 믿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