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품절


(설경구) 이 감독님은 아마 또 그렇게 찍을 걸? 사람을 쫄게 하는, 일부러 극한 상황에 몰고 가는 그런 게 있거든. 이 감독님은 또 OK를 안 하셔. 왜 안 하시냐고 그러면 세상에 OK가 어디 있냐고 하시지. '야, 된것 같다'라거나 '뭐가 더 나오겠냐' 이러시지. <오아시스> 때는 캐릭터를 개에다 비유해 설명하시더라고. '암만 때리고 발로 차도 결국 주인 눈치 보며 슬금슬금 와서 꼬랑지 흔들어. 그게 홍종두야.' 설명 정말 죽이지? (정말 죽이네..) -188쪽

(설경구) 어떤 인물에 빠져 촬영하고 나면 그 인물이 나에게 찌꺼기처럼 남아 있을 때가 있어. 그래서 작품을 할수록 변태가 되나봐. 원래의 나와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가 버무려져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거지. 우리 어머니는 영화하면서 애 다 버렸다고 하셔. 변뎍도 심해졌고. 내가 생각해도 난 참 순한 아이였는데.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뭔가를 표현하고 사는 직업인데 정작 내 감정은 어떻게 표현하고 살아야 할지 말이야.-188쪽

ㆍ『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 권 한 권 줄어들 대마다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5권부터는 이제 반밖에 안 남았네 싶어 불안하더라니까요. 돈이 떨어졌는데 담배 몇 개비 안 남은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조정래) 『태백산맥』이랑 『아리랑』『한강』을 쓰고 났을 때 독자들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게 공통적인 독후감이었어요. 작가의 큰 기쁨이지.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던 건데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마흔에 시작해서 대하소설 세 편 끝내고 나니 60이에요. 내 중년이 어디론가 증발한 듯 허무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었지요. -193쪽

ㆍ『태백산맥』은 집필하시면서도 수많은 협박과 공갈에 시달리셨잖아요. 게다가 영화화되면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로 고발 당하시고....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게다가 오백 몇 십 가지 죄목이라뇨?

(조정래) 사법사상 가장 긴 고발장이었다지요 아마. 검찰에서 100여 가지로 줄이기는 했지만 그 죄목 하나하나에 객관적 자료를 못 대면 처벌받는다고 했어요. 결국 100% 다 객관적인 자료를 댔고 2005년에야 무혐의가 됐지요. 그전까지 빨갱이나 사회주의자, 빨치산은 흡혈귀다,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이렇게 가르쳤잖아요. 내가 문학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걸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것이지요. 소하와 정하섭이 연애하는 것이 『태백산맥』의 첫 시작입니다. 남로당 간부 정하섭은 이런 애끓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죠. 소설 덕분에 악마로 생각했던 대상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해요. -193쪽

(조정래) 소설가 김훈 씨는 소화랑 정하섭의 연애 이야기를 따로 놓고 보면 『춘향전』을 능가한다고 썼던 적이 있어요. 내 소설엔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요. 그건 남녀가 함께 역사를 짊어지고 간다는 의미지. 『태백산맥』맨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는지 알아요? 하대치와 외서댁이에요. 마찬가지 의미죠. 그런데 이걸 독자들이 알아채주길 바라는 거지. 내가 괄호 열고 설명을 써놓을 순 없잖아요. 소설은 상징과 생략의 미학이거든. -198-199쪽

ㆍ그런데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아세요? 감정선을 묘사해 놓으신 걸 보면 그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오시는 것 같다니까요.

(조정래) 문학은, 특히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잖아요. 인간끼리 얽혀야 사건이 생기고 그게 쌓여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예요. 개개인의 마음, 미세한 차이를 다 발견해야 하는 거지. 그러려면 정말 사람마다 가진 차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반 관상쟁이나 마찬가지예요. 내가 쓴 세 개의 대하소설에 나오는 인물만 1200여 명인데 다 달라요. 집사람은 나더러 귀신이래. -199쪽

(조정래) 어찌 보면 이 시대가 가장 불행해요. 일본 식민지 때 타인에 의해 말을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을 천시해요. 바깥을 나가보면 죄다 외국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써놨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광화문 세종대왕상 뒤에 있는 꽃밭 이름이 '플라워 카펫'이래요. 이런 얼빠진 놈들이 있나. 스스로 식민언어정책을 펼치면서 식민지를 자초하고 있다니까.-200쪽

ㆍ요즘 노래는 좀 아세요?

(신영복) 못 따라가겠어요. 노래보다 춤이 우선인 것 같기도 하고, 가사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파탄된 것 같기도 해요. 뭐더라? '네가 떠나갔을 때 내가 울고 있을 줄 알았지? 착각하지 마.'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공감은 잘 안 돼요.


ㆍ예전 노래에는 감정이입이 그대로 됐잖아요.

(신영복) 노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팝, 재즈 가사집만 봤어요. 비틀즈 노래만 해도 엄청나잖아요. 변혁적이고 깊이도 있고요.-288쪽

ㆍ『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서 나는 이런 세월을 견디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20년 하고도 20일, 억울하고 분하지 않으셨어요?

(신영복) 그런 질문도 들어봤죠. 그런데 어느 시대나 역사적 격랑 속에 희생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지금도 이집트, 리비아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지요. 크게 보면 민족의 운명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 특정인에 대한 분노는 온당치 않아요.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도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 감옥에서 보면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했어요. 나 같은 무기수는 시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288-289쪽

ㆍ함께 뜻을 모아 가면 그 뒤가 길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역사의 결정권자 역시 언제나 민중이라는 것이고요. 그나저나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직접적이거나 자극적인 단어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격한 말보다 훨씬 깊이 와 닿아요.

(신영복) 아녜요. 제동 씨처럼 행가늬 의미를 읽어주는 분이 많지 않아요. 전 제동씨의 그런 점이 돋보인다고 생각해요. 제동 씨 <토크콘서트> 가서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몰라요. 나는 학교 선생이라 개념적인 언어를 벗어나기 힘든데 제동 씨는 내가 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토크콘서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92-293쪽

ㆍ전에 선생님께서 자유의 의미를 말씀하시길,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신영복) 반 에덴이 쓴 동화 이야기를 자주 예화로 들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길섶에 있는 버섯을 가리키며 '이게 독버섯이다'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독버섯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죠. 옆에 있던 친구 버섯이 위로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일 뿐이야. 식탁에 오를 수 없다, 먹을 수 없다는 자기들의 논리일 뿐인데 왜 우리가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우리 자신이 갖는 인간적 이유, 존재의 의미를 가져야죠.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질서에 포획당한 환경에서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293쪽

ㆍ자기 이유를 가지면 개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신영복) 견딜 수 있는 힘, 자기 삶을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거죠. -294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5-24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5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