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 달이네집 낮은산 어린이 1
권정생 지음, 김동성 그림 / 낮은산 / 2001년 6월
장바구니담기


비나리는 마을 이름이예요.
달이는 강아지 이름이구요.

달이는 강아진데 말을 한데요. 그뿐인가요.
달이는 강아진데 하늘도 쳐다보고 눈물도 흘린데요.
달이는 강아진데 꿈도 꾼데요.
이건 다 성당 신부님이 해준 얘기니까 믿어도 되요.
성당 신부님은 낙엽송 통나무집에서 달이랑 함께 살아요.

『비나리 달이네 집』은 그림책이예요.
그림책은 그림책인데 글이 더 그림같은, 신기한
그림책이예요.




"달아, 사람 다리가 몇 갠지 아니?"

"두 개."

"개 다리는 몇 개?"

"네 개."

"그럼 달이 다리는?"

"세 개."

"에구, 달이는 사람도 짐승도 아닌 도깨비구나.

아니면 무시무시한 괴물이고."

"아니야, 달이는 그냥 달이야."



비나리 마을은 경상도 북쪽에 있는 어느 깊고 깊은 산골에
있습니다.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 있어 동산에서 늦게 해가 뜨고,
서쪽으로 해가 빨리 집니다.
달이네 집은 비나리 마을 한쪽 가장자리 개울가에 있습니다.
낙엽송 통나무로 지은 납작한 집입니다. 그 집에서 달이하고
늙수그레한 아저씨 하나하고 두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두 식구라니까 좀 이상하군요. 진짜로 달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나이도 자세히 모르는
달이는 쪼꼬만 강아지이니까요.


그런데, 그 달이가 사람처럼 말도 할 줄 알고,
사람처럼 이것 저것 생각도 한다니 모르겠습니다.
비나리 마을 사람들은 달이가 사람처럼 말을 하는 걸
한번도 못 들었으니까요. 그러니 그 달이가 사람처럼
이것 저것 생각을 한다는 것도 이상할 수밖에 없지요.
달이는 그냥 서양 강아지, 푸들인지 발발이인지 꾀죄죄한
그런 짐승으로 보일 뿐 특별한 강아지 같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달이하고 함께 살고 있는 아저씨는
달이하고 재미있게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 아저씨는 나이 예순 살이 넘은 건지,
아직 예순 살이 덜 되었는지,
어정쩡한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아직 새파란 젊은이 같기도 합니다.
생긴 것도 그래요.
누구는 동글동글한 호떡처럼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덜 굽힌 군고구마같이 생겼다고 그러고,
또 누구는 어느 길가 비쩍 마른 장승처럼 생겼다고 하고,
누구는 남자인데도 하회탈 가운데 각시탈처럼
예쁘게 생겼다고 하거든요.
사람 생김새야 모두 비슷해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 않겠어요?
그러니 그 통나무집 주인 아저씨도
보통 사람처럼 생겼다고 하면
가장 확실하겠지요.


"달아, 사람 다리가 몇 개지?"

"두 개."

"그럼, 개 다리는 몇 개?"

"네 개."

"또 달이 다리는 몇 개?"

"세 개."

"달이는 도깨비가 아니면 괴물이구나."

"아니야, 달이는 그냥 달이야."


어느 날, 달이가 또 물었어요.

"아빠, 왜 내 이름이 달이야?"

"왜? 달이가 싫니?"

"그게 아니라, 왜 달이라 지은 거냐고?"

"그건 달이가 달님을 닮았기 때문이지."

"어째서 내가 달님을 닮았어? 사람들이 모두 내 이름하고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하는걸. 꼭 짝짝이 신 같대."

"사람들이 달이를 볼 줄 몰라서 그렇지,
달이는 꼭 달님을 닮았어. 그것도 둥그런 보름달님 말야."

아저씨가 아무리 그래도 달이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달이는 아저씨 혼자서
개울 둑길에 앉아 하늘의 달님을 쳐다보고 있는 걸 봤어요.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전에도 자주 자주 혼자서
달님을 쳐다보고 있을 때가 많았지요.

"아아, 그렇구나!"

달이는 그제야 알았어요.

"아빠, 이제 알았어!"

"뭘 알았니?"

"아빠는 달님을 좋아하는 거지?"

"……."

"그래서 내 이름이 달이가 된 거지?"

"……."

"그런데 아빠는 뭔가 마음이 추운 거지, 그렇지?"

"……."




"아빠, 어릴 때 뭘 했어? 달이처럼 꼬꼬만 할 때……."

아저씨는 얼른 대답을 안 했어요.

한참 있다가 입을 열어 말했어요.

"아빠가 달이처럼 쪼꼬만 할 때 전쟁이 있었지."

"……."

"폭격으로 집이 불 타고, 총으로 서로 죽이고,
식구들이 헤어지고……."

"……."

이번에는 달이가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