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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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인| 

 

      봄밤 

        나 죽으먼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오새 삼마넌짜리도 많
      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 도ㅑ 알었지 하고 노가
      다 이아무개(47새)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냄새로 출렁거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
      아무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어와 비닐봉다리를 쥐여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
      를 한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좌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 혀 자슥들아 하며 용봉
      탕집 장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리
      집에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네유 해쌋며 푼수 주
      모(50세)가 빈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이마넌인데 십마넌만 내세유, 해서 그래두 되까유 하며 지
      갑들 뒤지다 결국 오마넌은 외상을 달아놓고, 그래도 딱 한잔만
      더, 하고 검지를 세워 흔들며 포장마차로 소매를 서로 끄는 봄밤
      이다. 

        죽음마저 발갛게 열꽃이 피어
        강아무개 김아무개 오아무개는 먼저 떠났고
        차라리 저 남쪽 갯가 어디로 흘러가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졌으면 싶은 

        이래저래 한 오마넌은
        더 있어야 쓰겠는 밤이다. 

 

 

- 여보세요? 

- 나다. 

- 누구세요? 

- 나야 나. 니 껍데기. 지 껍데기 목소리도 못알아듣냐아. 

- 누구............. ! 엄마?  

- 그래 나라니까. 

-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 술 마셨어?  

- 마셨다 왜. 난 술 마시면 안되냐? 응? 니 아빠는 허구헌날
   술 취해서 늦게 들어오는데 나는 술 마시면 안되냐? 엉? 흐윽~ 

- 엄마. 어딘데? 어디서 그렇게 술을 마셨어?  

- 야. 너 결혼하지 마. 혼자 살어! 자유롭게 훨훨 자유롭게 살어. 

- 알았어. 알았으니까. 

. . . . . 10년? 20년?  아무튼 오래된 이야기.
엄마가 술 취한 목소리 처음이고 또 전화 목소리라 처음엔 진짜
엄만줄 몰랐다. 엄마가 술을 마셨다는 것만도 당황스러운 일인데
거기다 엄마가 한 말, "나 니 껍데기다" 가 어찌나 쎘는지,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울엄마 생일은 음력 삼월 초하루.
계절로는 봄. 봄. 

김사인의 시 「봄밤」을 읽으니 엄마가 보고싶다.
등장인물은 죄 남잔데─아니구나 "십이마넌인데 십마넌만 내세유"는
아줌마 톤이구나. 아무튼. 딱히 연관된 무엇도 없는데
시가 마음을 흔들어 엄마가 보고싶다.  

엄마 보고 온지 하룻밤 밖에 안지났는데
엄마가 보고싶다.  

하루 종일, 엄마가 담궈준 열무김치, 오이소박이로만 밥을 먹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아작아작 씹는 맛에 딱 익은 감칠맛.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이 가~ 

얼른 먹고 또 해달래야지!
아작아작 오이소박이 맛있는 계절. 

보고싶은 마음을,
시 읽기로 달랜다.  

그러기에 딱 좋은 시다.
그러기에 딱 익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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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4-0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시도 감상글도 격하게 마음을 흔드는 봄밤입니다!!

잘잘라 2011-04-06 10:58   좋아요 0 | URL
역시 열정가는 감성도 풍부하시군요. 순오기니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