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를 훔쳐라 - +3
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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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p. 거리의 악사에게 사로잡히다 

연습에 연습을 축적한 표현자의 기교는 역시 좋은 거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만났다. 그것은 시부야의 구내에서 들었던 바이올린 소리다. 진부한 감상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었으면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거리공연 같은 것이지만, 바이올린이 연주되자 무시하고 지나가기가 꺼림칙하다는 묘한 가책이 마음속에 끓어올라 그만 10분쯤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그것은 그런 음악이었다.
북유럽 출신처럼 보이는 얼굴에 나이는 이십 대 후반이나 되었을까? 한 남자가 혼자 연주를 한다. 

  이 시부야역 구내 광장에는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며칠 간격으로 갈마들며 등장한다. 호궁 타는 중국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여섯 명으로 편성된 안데스 인디오들이 페루 음악으로 인기를 모은다. 그러면 이번에는 호궁이 편성을 네 명으로 강화하여 반격을 꾀한다. 그 중간 중간에 어설픈 색소폰 주자가 끼어들기도 하고 반도네온 주자가 구슬픈 탱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등 참으로 다종다양한 공연자들이 저마다 영고성쇠를 펼친다.  

  그러나 그 바이올리니스트 주위에는 다른 공연자와는 조금 다른 공기가 있었다. 뭐랄까 거리 악사 특유의 퇴폐적인 냄새가 없었다. 반주 피아노를 테이프레코더로 해결하는 연주. 테이프 음질은 좋지 않다. 그러나 바이올린이 조용히 울리기 시작하면 인파의 흐름에 긴장이 생겨나고 곧 연주자 둘레에 작은 담이 둘러쳐진다. 그리고 그것은 곧 두터운 사람의 담장으로 변한다. 

 레퍼토리는 <아베마리아>나 <지고이네르바이젠> 같은 몇 곡. 지극히 평이한 멜로디와 뛰어난 연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곡목이 섞여 있다. <지고이네르바이젠>은 그 탁월한 연주 기술로 관객을 침묵케 하고 <아베마리아>는 흘러나오는 한 줄기 음색만으로도 눈물을 나오게 하는 포용력으로 역시 주위를 침묵하게 했다. 

  과연 대조적인 곡목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나는 짐작한다. 여행비 벌이를 겸한 연주자의 현장훈련이겠지.
어느 곡목에서나 상당히 기량이 느껴져서 안심할 수 있다. 듣고 있는 이쪽 심정을 연주자에게 완전히 맡겨도 결코 배반당하지 않을 수준이다. 참으로 마음이 평온하다. 

  처음 들은 <아베마리아>는 가사로 보자면 맨 처음의 '아' 하는 소절(매우 긴 소절이지만)이 흐를 뿐인데도 나는 문득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났다. 생으로 듣는 바이올린 음색에는 그 정도의 표현력이 있었던 셈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동의 뿌리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반응하고는 조금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리에서 한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은 바람에 흔들리는 한 가닥 코스모스처럼 맥없는 것이지만 표현 기술을 극도로 높임으로써 한 가닥 코스모스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 깊은 곳으로 아주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굉장히 섬세한 '바늘'이 된다. 붉은 실을 꿴 그 바늘이 내 감각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콕콕 정확하게 누벼 나간다. 

  아아, 그렇구나. 나도 이와 똑같은 바늘로 바느질을 하려고 해 왔던 것이구나. 가슴에 울컥하던 뜨거운 것은 바로 절실한 공감이었다. 그것은 표현자로서 나의 내부에 축적되어 온 기교적 부분에 대한 격한 공감이기도 하다. 장르를 뛰어넘어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것과도 교감할 수 있는 기교적인 감동인지도 모른다. 

  미숙한 디자이너이지만 기교에 대한 애착이라면 나의 내부에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개인기에 대한 경도는 한 발만 어긋나도 보수적이고 독선적인 세계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 아마도 소통의 전문가라는 자의식, 즉 중립적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괜한 자의식이 어딘가에서 기교에 대한 집착을 고루한 직인 기질이라고 멀리하고 거기에 파고드는 것을 주저하는 심리를 낳았을 거라고 본다. 현대의 예술 표현은 그런 소박한 감동과는 조금 먼 곳에 있다. 고전이 경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수성의 요새를 벗어나 미완성이라도 좋으니 새로운 바람을 쐐 보자, 테크놀로지라는 순풍도 불어 주니까, 이것이 지금(20세기) 예쑬 표현의 기본적인 조류다.  

  음악도 그렇고 미술이나 디자인, 건축, 패션 세계도 그렇다.
기술의 성숙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 감각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 대뇌피질에 새 시대의 지성과 감성의 리얼리티를 일깨워 주는 것. 모든 표현 영역은 그런 것을 모색하며 발전해 왔다. 내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바이올린의 노스탤지 음색에 금방 사로잡힌 것은 작업에 지친 내 감각이 힘겨워서 흘리는 넋두리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막차시간이 다가오는 역 앞이었다. 분명히 조금은 지쳐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음색을 지탱하고 있는 단련된 기교는 내 마음속 아픈 곳을 정확하게 쿡쿡 찔렀던 것이다.  

  길 가던 무정한 관객을 앞에 두고 숱한 연습을 거친 기술을 자기 느낌대로 낭랑하게 연주하는 모습은 순결하고 아름다웠으며 '표현하는 자'의 절실한 원풍경을 새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신뢰하고 그리워하던 무엇을 뜻밖에 재회한 심정이었고, 그런 감정의 고양은 정체 모를 의욕이 잔물결처럼 일어나도록 가만히 일깨워 주었다. (237p.) 

 

짧은 디자이너 경험에 비추어 우아함이란 관리하거나 강제하거나 계획하는 것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그것은 무엇을 줄기차게 단련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갈고닦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둔화시키는 것의 의미도 알고 자기 문화의 강점을 속속들이 아는 상태에서 모종의 절제를 발휘할 줄 아는 지성을 말한다. (57p.) 

 

바로 이거다 싶은 모델은 언제나 불쑥 나타나고 망설일 여지도 주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거의 '기우祈雨'하는 심경에 가깝다. 테리 씨를 보니 오랜만에 만난 소나기 같은 느낌이었다. (77p.)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실내가 새하얗다. 매우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변모한 것이다. 펜이나 잉크도 안 보이고 삼각자도 볼 수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나란히 놓인 하얀 컴퓨터뿐. 아르티장 기질 넘치는 직공이 깃털 펜을 살랑이며 스크립트를 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목덜미의 파르스름한 면도자국이 자못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젊은 디자이너가 말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무엇을 디자인하고 있나 궁금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코냑 지방의 고지도가 띄워져 있다. 라벨ㅇ 넣기 위해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그 질감이 아무리 봐도 아주 오래된 고지도다. 사실 이것은 컴퓨터로 꼼꼼하게 그려서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 거라고 한다. 허를 찔린 심정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안내를 맡은 뚱뚱한 여성 수석 디자이너가 자랑스레 설명한다. 1987년부터 이렇게 해 왔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전통과 하이테크가 철저하게 공존한다. 그것은 경계가 또렷한 전원 풍경을 닮았다. 돌아오는 테제베에서 불쑥 나타나는 해바라기밭의 선명한 노랑을 가벼운 현기증처럼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92~93p.) 

 

(98p.) 완성 직전에 찢어 버리다 

'콤프 라이터'라는 직업을 아시는지? 광고 제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직업이 아니라서 일반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콤프'란 Comprehensive Layout의 약어라 짐작되는데, 요컨대 디렉터가 그리는 러프스케치를 마무리 사진과 같은 수준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업계에서는 '콤프 라이터'라고 부른다. 

  광고주에게 광고 계획을 설명할 때 러프스케치로만 끝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간단한 러프스케치만으로는 마음에 그리는 영상에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완성되고 나서야 서로 생각하던 이미지가 달랐다는 것을 깨달아도 그때는 이미 늦다. 그래서 최종 영상에 가까운 콤프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 크게 그려 놓은 시계 글자판에는요, 사이판 해변에서 촬영할 예정인 모델 사진을 하이키(대폭적인 플러스 보정)로 합성해서 집어놓고 브랜드 로고는 이런 식으로....." 

  이렇게 엉성한 러프스케치를 놓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이겁니다!" 하고 콤프를 보여 주면 광고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설득하기도 쉬원진다. 그래서 중요한 작업을 할 때는 대개 콤프 라이터의 힘을 빌리게 된다. 

  콤프 라이터는 업무 성격상 지독한 리얼리스트다. 모델 한 명을 그리더라도 헤어스타일이나 화장 상태, 복장부터 시선 방향, 빛의 방향이나 앵글, 나아가서는 카메라렌즈의 장단부터 초점 상태까지 명료하게 지정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자료를 갖춰 주지 않으면 그려 주지 않는다. 그려 주지 않는다기보다 그리지 못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요컨대 실제 작업할 때 사진작가나 헤어디자이너에게 지시하는 것과 똑같은 내용을 콤프 수준에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세부까지 꼼꼼하게 짠 계획서를 건네주면 콤프도 그리기가 쉽고 마무리도 명쾌하다. 반면에 지시에 불명료한 점이나 착오가 있으면 질 좋은 콤프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미숙한 디렉터는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견과물이 좋지 않으면 콤프 라이터의 실력을 탓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쓰디쓴 경험이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모 자동차 제조사의 신문광고 작업을 할 때였다. 디렉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자료를 충실히 갖춰서 의뢰하기보다는 관념적인 언어를 잔뜩 늘어놓아 콤프 라이터를 고민케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사실은 그리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그날도 이튿날 있을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한방중까지 사내 콤프 라이터를 동원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으으으음, 이 여자 얼굴 조금 더 귀엽게 안 될까요? 즐거운 느낌이 나오지 않으면 곤란하거든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콤프 라이터였던 K씨는 완성을 코앞에 둔 콤프를 북북 찢어 버렸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다른 콤프 라이터들의 일손도 멈췄다. 

  제작하던 그림은 젊은 여성을 정면에서 확대하여 포착한 것으로,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내가 그린 러프스케치는 만화 같은 터치였는데, 입술 옆에서 콩나물대가리가 춤추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데는 과장된 삽화가 더 알맞다. 그런데 그것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제작하는 것은 참으로 난해한 일이다. 

  꼭 맞는 자료가 없어 총무과 여사원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그 모습을 폴라로이드카메라로 촬영해서 건네주었다. 협조해 준 여사원의 얼굴은 귀여웠지만 폴라로이드 사진은 그다지 볼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런 자료를 던져 주고 귀엽게 그리라고 요구하는 쪽이 문제였다. 

  '귀엽다'느니 '즐겁다'느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언어의 형용에 불과하다. 눈꼬리의 주름, 입가의 표정, 고개를 기울인 각도 등 작화에 필요한 구체적인 영상 자료가 빠짐없이 갖춰지지 않으면 사실주의자인 콤프 라이터는 제대로 작업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얼렁뚱땅 넘기고 작품 완성도에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분명히 디렉터의 잘못이다. 

  그러나 K씨는 자료 미비나 미숙한 지시는 탓하지 않고, 북북 찢은 콤프를 조용히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새 종이를 꺼내 놓는 것이었다. 미세 수정 정도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다시 그리겠다는 무언의 의사 표시였다. 

  나는 잠시 멀거니 서서 쓰레기통의 콤프를 쳐다보고 있었다. 찢어진 그림은 내 마음 밑바닥에 몰래 숨어 있던 모습, 즉 남한테 떠넘기는 디렉터의 안이한 마음가짐이나 미숙함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나는 창백한 낯으로 우두커니 선 채 말을 잃었다. 감각 속에 있는 꾸깃꾸깃한 와이셔츠에 무언의 다림질을 당한 기분이다. 프로페셔널의 치열한 일면을 뼈아프게 목도했던 것이다.  

  지금도 종종 그때의 김장감이 뇌리를 스칠 떄가 있다. 그 기억은 절대 감미로운 추억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101p.) 

  

(102p.) 전 세계 호텔에서 편지가 오다 

어떤 작업을 하다가 세계 일류 호텔의 레터헤드를 수집하게 되었다. 

  레터헤드란 요컨대 편지지다. 서구에서는 편지를 보낼 때 제일 앞에 두는 편지지 혹은 그 편지지 윗부분을 레터헤드라 부르며 엠블럼이나 심벌마크 같은 의장으로 편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우아하게 연출하는 문화가 있다. 

  유럽을 여행하거나 할 때 숙박한 호텔의 문방구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결코 화사하지는 않지만 은밀한 레터헤드의 모습에는 사람을 우아한 분위기에 빠지게 하는 힘이 있다. 일종의 격식이나 사회적 신용을 이 레터헤드가 담당하기도 해서 편지 내용과는 별개로 의외로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해외에서 오는 우편물 중에는 편지지의 촉감에서부터 타자기 활자 세팅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섬세한 배려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일본에도 레터헤드가 서서히 스며들어 기업이나 호텔은 물론이고 개인도 레터헤드를 가지려고 하는 움직임이 희미하게나마 있는 듯하다. 한번 제대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타케오가 주최하는 <페이퍼 월드> 전람회 작업을 맡게 되었고, 기획의 일부로 호텔 레터헤드 컬렉션을 추가했던 것이다. 여하튼 기획은 세웠지만 당장 여러 호텔의 레터헤드를 수집해야 했다. 직접 출장을 떠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레터헤드를 수집하고, 그 참에 숙박의 편의성 같은 데이터도 함꼐 보고하겠다는 나의 한가로운 제안은 물론 일소에 부쳐졌다. 

  그러나 여하튼 수집은 해야 했다. 기획 작업이라는 것은 계획도 중요하짐나 그것을 실현하는 완강한 실행력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 때문에 매번 고생을 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에 있는 지인들에게 수집을 부탁하자는 둥 컬렉터를 찾아보자는 둥 다양항 방법을 궁리했지만 이거다 싶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은 각 호텔에 의뢰 편지를 발송하는 정공법을 취하기로 하고 엑섹시오르나 모나코의 오텔 드 파리처럼 격식 있는 쟁쟁한 호텔에 공짜로 레터헤드를 보내 달라는 조금 뻔뻔한 의뢰 편지인 만큼 편지 준비에 꽤 신경을 썼다. 

  먼저 우리가 보낼 편지지가 문제였다. 종이 문화를 표방하는 전람회에 출품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므로 당연히 변변찮은 레터헤드를 쓸 수는 없다. 다행히 전년도 전람회 때 페이퍼 월드를 위한 레터헤드를 시험삼아 제작해 둔 견본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길버트사에 주문해서 페이퍼 월드 로고를 숨은 그림으로 넣은 종이가 창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TPW 머리글자를 전각, 즉 도장처럼 응용해서 붉은색으로 인쇄한 얼핏 동양적 이미지를 풍기는 레터헤드 도안이 손맡에 남아 있었다. 이것을 새로 인쇄해서 의뢰 편지의 레터헤드로 쓰기로 했다. 전년도에 전시용으로 시험 제작해 둔 레터헤드가 뜻밖에 레터헤드를 보내 달라는 의뢰 편지에 쓰이게 된 셈이니 말하자면 일석이조라 하겠다. 

  이 레터헤드로 세계 각지의 저명한 약 여든 개 호텔에 의뢰 편지를 보냈다. 영문섳 조판도 꼼꼼히 준비하고, 잔뜩 신경이 곤두서서 발송 작업을 완료한 것이 11월. 

  마침내 크리스마스카등 섞여서 답장이 간간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도착할 때마다 "야호!" 하고 환호했고, 봉투 여는 것이 그렇게 설렐 수 없었따. 

  도착한 것들은 모두 의외다 싶을 만큼 세련되고 차분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크나 엠블럼 같은 부분을 조각처럼 요철로 처리하는 엠보스 가공을 하거나 잉크를 도드라지게 해서 손끝에 글자의 감촉이 느껴지는 엔그레이빙 등이 자연스럽게 가공되어 있어 세련되면서도 세부에 꼼꼼하게 신경을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종이에 미세한 요철을 준 엠보스 가공은 유럽이 애호하는 방식인데, 가늘게 조각한 철판凸板과 요판凹板 사이에 종이를 넣고 압착하는 기법이 매우 정밀해서 나도 모르게 "으음" 하고 신음을 하고 만다. 귀족문화의 유산이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이런 기술이 사라지지 않고 착실하게 답습되고 있는 점은 역시 유럽다웠다. 

  어느 답장에나 어김없이 발신자 서명과 함께 메시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더욱 감탄한 것은 활자가 들어가 있고 메시지가 적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용 전 레터헤드보다 대개는 더 우아하게 보이더라는 점이다. 글자의 배열도 아름답고, 유일한 손글씨인 서명이 '샤삭' 하는 소리를 낼 것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결국 레터헤드도 중요하지만 조판의 아름다움도 상당히 중요하다. 편지의 격식이 힘을 발하는 것이다.  

  발송하느라 조금 힘은 들었지만 이렇게 서구 편지 문화의 가장 고급스러운 부분을 맛보는 즐거움이 대단해서 하루하루 집배원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105p.) 

 

(106p.) 쌀과 디자인 

요즘 잠시 쌀 포대 디자인을 궁리하고 있다. 쌀이 가득 담겨 묵직해 보이는 그 쌀 포대 말이다. 그렇다고 어디 농협 같은 곳에서 디자인을 의뢰받은 것은 아니다. 다만 쌀의 향후 행방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의 계기는 <리디자인>이라는 전람회였다.  

  '리디자인'이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요컨대 '다시 디자인한다.'는 말이다 아주 일상적인 물건들, 이를테면 졸업장, 약국의 약봉지, 군밤 봉투, 관제엽서, 영수증, 청구서, 미쿠지(신사나 절에서 점괘가 적혀 있는 제비), 부조금 봉투, 시력검사표등 애초에 '디자인'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비근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인 디자이너들에게 의뢰하여 다시 디자인하게 한다는 제법 색다른 전람회다. 

   무엇하러 그런 공연한 짓을 하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제대로 도안을 만들고 인쇄를 해서 완성된 제품 형태로 전시하는 것이므로 이해하기 쉽고 제법 볼만하다.(106p.) 참가한 디자이너는 스물다섯 명. 고참에서 신참까지 면면이 다양하다. 주제는 디자이너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에 맞춰 다 다르게 정했다. 이런 기획은 쉽게 보고 달려들었다가는 자칫 시시한 패러디에 그치기 쉽지만, 디자이너들 사이에 1990년대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작용하여 정공법으로 제대로 해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임한다고 해서 리디자인의 결과물이 기존의 것보다 좋아질 거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데에 이 전람회의 난점이 있다. 기존 디자인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고 다양한 우여곡절을 거쳐 그런 형태에 다다른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겪어온 디자인을 일조일석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기획의 매력은 오히려 신구 디자인을 대비하는 가운데 사물과 디자인의 본질을 슬쩍슬쩍 엿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어느새 말머리가 장황해졌지만, 요컨대 이 전람회에서 내가 맡은 것이 '쌀 포대'였다는 말이다. 수입개방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쌀에는 나도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으므로 이 기회에 '디자인'이란 각도에서 쌀 문제를 언급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게 몹시 어렵다. 항간의 쌀 포대를(107p.) 곁눈질하며 부담 없이 시작했지만 전혀 뜻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식량관리법 아래 길들어져 이제는 공기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 쌀. 굳이 말쑥한 디자인을 입혀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어딘지 심히 수상쩍게 비치고 말 것이다. 

  어느 브랜드의 쌀 포대를 디자인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왠지 어느 쌀이나 다 비슷한 느낌이 들고, 가령 '아키타코마치'라는 브랜드를 선택해도 '아키타 현'이라는 요소 외에 또 무엇으로 이 쌀을 차별화할 것인지, 이 쌀의 매력을 어떻게 호소할 것인지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디자인이라는 것을 표층에 관한 것으로만 여기는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디자인을 성립케 하는 이유가 제품에는 반드시 필요한데, 현재 일본의 쌀 브랜드나 산지에는 디자인을 통해서 호소할 만한 내용, 즉 철학이 희박하다. 디자이너의 직감이지만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표층적 디자인을 투입하는 것뿐이라면 아마 미국 쌀이나 태국 쌀이 더 알맞을 것이다. 포대 속에는 미지의 쌀이 들어 있다. 이런 쌀은 단순한 가격 차이하고는 또 다른 신상품으로서의 잠재적 우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일본산 쌀 포대를 디자인한다면 도안을 어떻게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 전달해 나갈 쌀의 배경을(108p.)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즉 쌀 문화를 하나부터 다시 일궈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 에도시대에는 '사누키마이'니 '쇼나이마이'니 하는 산지명이 상품의 부가가치를 담당했다. 또 메이지시대에는 쌀 집산지로서 철도역 이름이 브랜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쇼와시대에 들어서자 '아사히'니 '무쓰주산고'니 하는 본격적인 브랜드 쌀이 등장했다.  

  어느 경우든 쌀은 밥맛이 가장 중시되어서 조금이라도 더 맛난 쌀이 더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쌀 문화는 더욱 충실해졌을 것이고 밥맛도 철저히 일본인의 미각에 따라 진화했을 테지만, 전쟁과 전후의 식량 사정 및 쌀 유통 관리 때문에 일본의 쌀 문화가 단절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전후 식량난의 영향이 컸다. 당연히 맛보다 양이 우선이었다. 쌀 유통은 식량관리법에 따라 국가가 관리했고 쌀 품종 개량도 '수확량이 많다'거나 '냉해에 강하다'는 등의 생사넝을 촉진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어 왔다. 쌀값도 국가가 관리하는 탓에 기름진 쌀을 생산하든 퍽퍽한 쌀을 생산하든 가격이 기본적으로 '양'에 따라서만 매겨졌다.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기본적으로 건전한 경쟁이 필요한데, 여러 사정으로 경쟁이 억제되고 말았다. 그러나 1996년도산 쌀부터 신식량법이 적용되어 쌀 유통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학 되었다. 쌀 생산자는 판매량을 신고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게 된다.(109p.) 점진적이기는 해도 외국 쌀도 수입된다. 따라서 쌀의 운명은 이제부터가 고비다. 일본인의 미각에 맞는 더욱 맛난 쌀을 개발해서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야 한다. 

  쌀값이 비싸네 비싸네 해도 찻잔 하나 분량에 겨우 27엔 안팎이다. 집값이나 월세 같은 것에 비하면 아직은 한참 싸다. 정말 맛난 쌀 혹은 가치 있는 쌀이 등장한다면 다소 값이 비싸도 구입하는 소비자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쌀을 둘러싼 상품 문화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상품 문화를 비교적 잘 발달시켜 부가가치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사례는 없는지 찾아보았다.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다. 잘 알려진 것처럼 스코틀랜드는 위스키의 발상지이지만 실은 위스키가 그곳에서만 주조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기후풍토를 가진 동이란 주조법을 적용하면 비슷한 술이 나온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것만이 위스키 중에서도 특권적 지위에 군림한다. 그것은 왜 그럴까? 그 비밀은 스카치를 지탱하는 상품 문화에 있다.  

  싱글몰트란 혼합하지 않은 술이다. 혼합하면 맛이 부드러워져 마시기가 편하지만 맛이 평균화되고 만다. 그래서 오히려 통마다 달라지는 차이를 중시하고 그 독자성을 높이 사주는 관습이 있다.(110p.) 스코틀랜드는 표고에 따라 로랜드와 하이랜드로 나뉘며, 나아가 '아일레이 섬'이니 '스페이사이드'니 하는 생산 지역으로 주조한다. 스카치 싱글몰트 라벨에는 예외가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어김없이 지도가 그려져 있어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정확하게 표시한다. 그리고 숙성 기간도 정확하게 표기되어 상품 가치의 지표 노릇을 한다. 그리고 숙성 기간도 정확하게 표기되어 상품 가치의 지표 노릇을 한다. 라벨에서는 생산자의 자부심과 전통도 느껴지지만, 지금 나는 그런 옛 향수를 자아내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차이가 차이로서 정확하게 표시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부가가치를 낳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카치가 강력한 브랜드 특성을 유지하며 위스키 세계에서 독자적 입지를 차지한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어느 술이 맛있는가를 놓고 절대적인 기준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 술마다 근거가 분명한 특징이 있고, 특징을 가진 것들이 쌓여 나가면서 술 세계가 깊이를 띤다. 그것이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차근차근 구조화되어 상품들 사이의 서열을 만들고 술 문화를 강고학 쌓아 나간다.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이러한 구조화가 일어나고 나면 그것은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근방에서 매우 저렴하게 위스키를 제조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상품으로 스코틀랜드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구매하게 만들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보르도 와인이 원산지 호칭 통제법이라는 엄격한 법률로 규제도고 있고 라벨 표기도 엄격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농산물은 토양이나 일조 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밭두렁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 평가가 다르고 완성된 와인의 등급도 크게 달라진다. 어느 와인을 맛있다고 느끼느냐는 원래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예로부터 와인을 즐겨 마셔 온 문화권에서 정립된 평가 기준은 매우 설득력이 있고, 그렇게 구축된 부가가치의 요새는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중국에서 매우 저렴한 와인을 무난한 품질로 주조했다고 하자. 그 와인을 프랑스에 그래도 들여다가 판매한다고 해도 큰 돈벌이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보호 정책이나 관세 장벽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만약 그 와인을 프랑스에 들여다가 판매하려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먼저 그 와인에 어울리는 문화를 구축하고 나서 덤빌 필요가 있다. 용기나 라벨도 문제이지만 거기에 걸맞은 식문화부터 그 와인을 따를 잔, 그 잔에 와인을 따르는 사람들의 매너, 대화 요령, 음악이나 인테리어 등 그 나름의 문화 전략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와인은 와인의 본고장에서 시민권을 얻기가 힘들다.(113p.) 그건 그렇고, 무책임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면 중국산 와인이란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다시 쌀 이야기로 돌아가자. 위와 같은 사례들을 이것저것 참고로 하며 쌀의 배경을 조사해 보았다. 판매원인 농협의 의식은 아직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쌀 자체는 각지에서 특징 있는 것들이 산출되는 것 같았다.  

  일본은 생명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고 농업시험장에서는 '슈퍼 라이스 계획'이니 '미러클 자포니카 계획'이니 하는 기특한 이름의 프로젝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등 일본인 미각에 맞는 맛있는 쌀이 개발되고 있다. 근래 들어 밥맛에 초점을 맞춰 급속한 품종 진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품종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쌀도 그 지역 토양과의 궁합이 중요해서 같은 '코시히카리'라도 산지에 따라 밥맛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도 그것을 깨닫기 시작해서 어느 지방 싸이냐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무농야 유기농 쌀도 은근히 인기를 끄는 등 쌀도 점차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쌀 관세화 등에 의한 외국 쌀 수입이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쌀에 바람직한 긴장감을 주고 있으므로 쌀 수입 자유화를 비관만 할 일은(114p.) 아니다. 기본적으로 밥맛에 까다로운 일본인이므로 맛나고 안전한 쌀만 생산할 수 있다면 수입쌀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고 나름대로 기대를 하면서 스태프와 함께 몇 가지 쌀 포대 디자인을 시작했다 

  내가 대상으로 삼은 품종은 네 가지. 니가타 현의 '코시히카리', 홋카이도의 '키라라397', 아키타 현의 '아키타코마치', 그리고 야마구치 현의 '카오리마이'이다. 

  우선 '코시히카리.' 이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인데, 앞에서 말한 대로 쌀은 토양과의 궁합에 따라 밥맛이 달라지므로 아마 앞으로는 품종보다 어느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냐가 가ㅣ 척도가 되리라 예측된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쌀 산지로 이름 높은 니가타 현을 와인의 보르도와 같은 곳으로 보고 세세하게 등급화된 지역 구분을 전제로 니가타 현의 독자적인 쌀 상품 라인을 설정했다. 일반 가정용을 상정하므로 비닐 포대에 담는 것으로 하고, 그 포대에 붙일 라벨에 궁리해 보았다. 산지로서 등급이 높은 미나미우오누마 군 산의 유기농 쌀에는 '특A'라는 표시를 하고 그 생산지를 보여 주는 지도를 곁들였다. 무농약 쌀이라든지 쌀 정미 정도라든지 상미기한 같은 정보도 읽기 쉬운 위치에 넣었다. 이 라벨은 택배 시스템의 도장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정미해서 포대에 담을 때 부착하는 방식이다. 쌀 도매상의 조언대로(115p.) 비닐 포대에는 쌀이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할 수 있도록 간단한 밸브도 부착했다. 쌀은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키라라397'에는 아웃도어 사양의 소량 패키지를 생각했다. 한 홉 단위로 포장하고 압점을 찍어 손으로 뜯어 개봉할 수 있게 했다. 즉 캠프 같은 상황에서 인원수에 맞춰 휴대할 수 있고 더구나 따로 계량할 필요가 없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씻지 않고 먹는 쌀로 설정했으므로 더욱 편하다. 즉 미각보다 기능에 중점을 둔 편리한 쌀 상품이다.  

  '아키타코마치'와 '카오리마이'는 선물 사양으로 디자인했다. 생산지 등의 표시 시스템은 코시히카리와 동일하되 이쪽은 전통종이를 방불케 하는 감촉 좋은 종이로 정성스레 포장한다. '카오리마이'는 밥을 지을 때 조금 섞으면 밥에 은은한 향이 난다고 하므로 낱알이 고른 '아키타코마치'와 세트로 묶어 선물용으로 만든다. 브랜드명은 붓글씨. 세로로 쓴 명조체로 상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재배법, 수확 날짜 등을 기입하고 붉은 검인을 직는다. 또 소량을 섞어서 사용하는 쌀이므로 얇은 종이로 만든 빨간 포대에 소량을 포장하는 쪽을 택했다. 

  물론 이런 디자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리디자인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만약 이를 실용화하고자 한다면 개선할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쌀 세계에 깊이를 주자는(117p.) 의도를 쌀 포대 디자인을 통해서 생각해 본 작업은 경제 문제나 환경 보전 문제 등 지금까지 숱하게 논의한 시각에서 쌀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쌀의 근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농업 문제나 쌀 문제는 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나는 역시 그것이 매력적인 산업이 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뛰어난 착상과 노력이 커다란 성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볼 수 없는 산업은 사람을 불러 모으지 못한다. 현상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미래로 이어 나가겠다는 인재는 키우지 못한다. 만약 농업과 쌀에서 상품 문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자라난다면 디자인도 힘을 보태고 싶은 것이다.(119p.) 

 

(124p.) [v]  이야기 

보그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그 잡지. 

  '보그'라고 애써 원어민처럼 발음하면 괜히 거북하고 엉덩이께가 근질거려 나도 모르게 채신머리없이 다리를 달달 떨어 댈 것 같은데, 이건 아마 보그의 [v] 발음 언저리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비올라'나 '베를렌'처럼 [v]로 발음하는 외래어 특유의 낯섦에서 묘하게 거북함을 느끼나 보다. 마치 낯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와인 리스트를 건네받고 당황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오카야마 시골에서 검도나 배우며 자란 나는 쉬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런 이 몸이 그 잡지를 거르지 않고 구독하고 있다. 아니, 구독이란 말은 정확하지 않다. 프랑스어를 모르므로 잡지가 도착하면 매번 사진만 들여다볼 뿐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이렇게 쓰면 냉큼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로군."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물론 그건 실례되는 말씀이다. 

  예전이라고 해도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지만, 선배 디자이너들이(124p.)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매월 항공편으로 오느 보그에서 어빙 펜의 패션사진을 볼 때마다 소경이 눈을 번쩍 뜨는 심정이었어." 혹은 "그 패션 감각의 세련미에 매번 고개가 절로 숙여졌지."라고 말이다.  

  '그렇게 훌륭한가 보지.' 하고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흠, 그렇다면 나도 매달 그 잡지에 고개를 숙여 보고 싶군. 소경이 눈을 번쩍 뜨는 심정이라니, 얼마나 감격스러우면 그럴까 하고 보그에 지극히 솔직한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이 잡지를 팔랑팔랑 넘겨보았는데, 역시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과 내 실생활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란 점도 있어서 그 잡지를 보는 시간은 이마에 땀이 배도록 부담스러운 시간이라는 상황에서 좀처럼 탈피하지 못했다.  

  어학이든 뭐든 다 그렇지만 초보 시기는 정말 재미없다. 등산만 해도 전망이 제법 트이는 위치에 올라가기 전에는 어쩐지 터무니없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도 결국 그 잡지를 가까운 서점에 부탁해서 정기구독을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들여다보기를 3년쯤 지날 때부터 그 잡지가 조금씩 재미있어졌다. 지식이라는 것은 자석에 끌리는 쇳가루 같아서 자력 없는 자석으로 아무리 모래밭을 헤집고 다녀도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는다.(125p.) 중요한 것은 쇳가루 많은 모래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력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 하는 것이다.  

  보그는 말하자면 쇳가루가 풍부하게 섞인 대단한 모래밭이었던 셈인데, 막대기로 휘저어서는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는다. 3년쯤 보그를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희미하게나마 쇳가루가 들러붙는 것을 느끼면서 그것을 실감했다.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어빙 펜이 아니라 보는 이의 역량이었던 것이다. 

  보그의 매력은 패션을 인간성의 예술로 포착하는 점이다. 초점이 인간에 맞춰진다. 따라서 모델들도 그 점에서 승부를 보고 있다. 예쁨만이 아니라 일단 눈길을 주면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인상적인 모습을 그녀들은 가지고 있다. 사람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깊은 죄나 아름다움. 인간의 본능 주변에 감도는 위태로운 사건의 기미. 그런 것을 눈동자나 입술로 결정적으로 고스란히 말해 버리는 모델이 있다. 그것을 사진가가 렌즈로 증폭하는 것이므로, 그런 사진을 만나면 소름이 돋는다. 

  요컨대 재치 있는 세련미를 제안하지 않는다. 의상이나 주얼리의 트렌드 정보를 실을 뿐 아니라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고생해서 만들어 낸 의상이나 주얼리를 몸에 걸칠 수 있는 인간의 스케일을 보그는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는 것이다. 

  일류 패션디자이너의 창조성을 정면에서 듬뿍 받아들일 줄 아는(126p.) 인간의 자신감, 재능, 커리어 그리고 에너지. 패션이나 사교라는 것은 그런 것이 자아내는 예술이라고 보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세련된 인간이 되자는 생각보다 존재감 있는 인간이 되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지런한 외모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타고난 흠결을 완전하게 파악하는 것에서 강렬한 패션 지향성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았다가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v] 하며 입술을 깨물곤 한다.(127p.) 

 

(243p.) 제대로 된 시골 광고 

요즘 산인 지방에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어느 광고 회사에서 산인을 위한 관광캠페인 작업을 의뢰받아서다. 산인의 발상이 아니라 도쿄의 시각에서 산인의 관광을 생각해 달라느 ㄴ의뢰였다. 

  내 고향은 오카야마 현이고 고교 시절까지 오카야마 시에서 자랐다. 산인이라면 이웃 지방이다. 도쿄의 시각에서 발상해 보라니 조금 켕기는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뭐 일종의 복안적 사고라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묘한 흥미가 생겨서 그 작업을 맡기로 했다. 그때까지 산인의 관광 캠페인 자료를 들춰 보니 이름난 대형 광고 회사들이 맡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존재감이 약하고 상투적인 지역 관광 캠페인의 산인 버전이라는 인상이다.  

  시마네, 돗토리라면 일본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고 더구나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서 과소過疎 문제, 지역산업의 후계자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다. 요컨대 감히 '시골'이라는 말을 감히 사용하면 꼭 알맞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시골이다. 

  진부한 광고 수법으로 가자면 이런 지역을 광고하는 데는(243p.) 이 '시골'이라는 점을 역으로 이용하여 '느긋하고 여유롭게'라는 안락한 여행 분위기를 호소하는 것이 되겠지만, 지방 출신인 나로서는 이렇게 판에 박힌 시골  PR 방식에 갑갑함을 느끼고 만다. '느긋하고 여유롭게'라는 가치관은 잡지 따위에 실리는 지방 소개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도시 사람이 지방을 바라볼 때 느끼는 왜곡된 우월감에 뿌리를 내린 모종의 편견이며 지방에 대한 순수한 경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백 보를 양보해서 도시에서 편집된 잡지가 그런 가치관으로 지방의 매력을 소개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지방에서 발신하는 광고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도시에 어필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딱한 일이다. 도시에 아부하는 듯한 광고를 지방에서 만들어도 사람들에게 절실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정말 제대로 된 시골이 있다면 그곳 주민들은 관광객에게 '느긋하고 여유롭게' 라고 호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값싼 비교론을 초월하여 그 지방만의 독자적인 색깔과 발상이라는 것이 엄연히 거기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방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한다면 그 지역 고유의 본래적인 매력으로 도시의 존경심을 쟁취해야 한다. 지방은 도시에 아양을 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속으로는 '와 주면 좋겠다.'고 해도 결코 그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으니까 오지 말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무너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번 가 보고 싶어지는 사람 마음의 요상한 점이다. 뭐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더라도 '실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싶지만 꼭 오고 싶다면 와도 좋다.'라는 정도로 억제해 두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비친다. 

  그런 생각에 나는 스태프와 함께 이즈모 신화 등을 닥치는 대로 읽는 등 광고 준비의 태반을 산인의 리얼리티 발굴 작업에 투입했다. 애써 무리하지 않는 대신 거짓이나 과장이 없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 가 보지 않으면 결코 접할 수 없는 독창적인 사실들을 열심히 찾아내면서 그다지 권유하는 분위기라고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포스터로 이루어진 캠페인 광고를 제작해따.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채택 불발. 제시한 내용이 아마 산인 사람들에게는 너무 얌전하고 매력이 모자라 보였을 것이다. 그런 일이 2년 계속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인의 매력과 그 지방 사람들이 호소하고 싶은 산인의 이미지 사이에 어긋남이 있어서 우리 제안은 좀처럼 채택되지 ㅇ낳았따. 

  산인은 시골이라도 괜찮지 않은가. 초조해하지 말고 의연하게 있어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무래도 여전히 도시 사람의 생각인 듯하다. 새침하게 콧대를 세우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그러다가 시집도 못가게 되면(245p.)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산인 측은 주장한다. 과소 문제, 지역산업의 후계자 문제 등이 그토록 심각한 것이다. 여러 차례 드나들다 보니 이 지방의 절실한 상황도 이해하게 되고 이 지역에 애착도 어느새 강해졌다. 그 덕분인지 자치체 사람들도 조금씩이기는 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게 되었따. 

  현재 돗토리 현을 어필하기 위한 신문 전면광고를 제작 중이다. 이것이 그 지역에서 정식으로 의뢰받은 첫 작업이다. 아직은 서로의 주장이 완전히 밀착되지 못한 만큼 거리감은 있지만 도시를 향해 안이하게 애교를 부리지 않는 산인의 이미지를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나가고 싶다. 느긋하고 차분하게. 그런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고 작업이다. (246p.) 

 

내 전문분야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물건'을 만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사건'을 만든다. 즉 사람 머릿속에 사건을 만든다. 잠재성이나 가능성을 알기 쉬운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내 일에 포함된다. 물론 인공섬유의 매력을 가시화하는 과정이 명확하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채택한 수법은 '전람회'이고, 그것을 펼칠 장소로 택한 것이 밀라노였다. 전람회는 몸을 움직여 직접 대상물을 접하고 체험케 하는 미디어이며, 신체감각에 확실하게 호소할 수 있다. 이제 살아 있는 세포마저 떠올리게 하는 지적인 섬유의 감촉을 전하려면 이거밖에 없다. (272p.) 

   










다 

1990년 말부터 《소설 신초》에 「그것을 만들면서」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디자인 잡지가 아니라 문예지에 기고하기 위해 집필한다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지고, 그런 색다른 글을 쓴다는 체험에 적지 않은 흥미를 느껴 몸에 익지 않은 수고를 감행해 보자는 의욕이 솟았다. 

  아니나 다를까 매달 고역의 연속이었다. 어떻게든 마감 날짜에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하듯 원고를 넘기고, 연신 슬라이딩을 하다보니 연재는 어느덧 4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50회를 넘겼다. 솔직히 나는 글쓰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고교 시절 나보다 글을 훨씬 잘 쓰는 하라다라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작가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문재 있는 친구가 출현한 덕분에 인생의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디자인 쪽에 나의 진지를 쌓기로 작심한 것이다. 그런데 디자이너의 경험이란 것도 그냥 방치해 두면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고 마는 헌 신문이나 잡지처럼 머릿속에 퇴적되어(284p.)가는 복부팽만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언어를 끄집어내서 이 상황을 정리해 보고 싶은 심정에 휘두리기 시작해다. 그런 나의 욕구를 알아챘는지 어땠는지, 하라다가 어느 전람회 개전식에서 문예지 편집자를 소개해 주었다. 

  업무상 내 주변에는 카피라이터니 작가니 저널리스트니 하는 전문 글쟁이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인지 내가 직접 글을 써 볼 기회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쓰고 싶다고 해서 "내가 쓸게요." 하고 뻔뻔하게 손을 번쩍 쳐들 수 없는 것이 문장 세계의 암묵적인 규칙 같다. 노래하고 싶다고 하면 차례대로 마이크를 맡기는 노래방하고는 사정이 다르다. 하여 모처럼 선물 받은 야구글러브를 애지중지하는 1950년대 소년처럼 나는 나에게 맡겨진 이 일을 아끼고 사랑했다. 아끼고 사랑하기는 했으나 그 기량이라는 것이 난생 처음 글러브를 끼워 본 소년과 다를 바 없어서 투수 앞 땅볼조차(285p.) 요란하게 알까기를 하고 마는 칠전팔기의 연속이었다.  

  그런 연재도 편집자 분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틀을 잡고 마침내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니, 계속되었다고 하면 마치 계속될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으므로 이것도 알맞은 말은 아니다. 여하튼 힘겹게 얻은 연재 지면인 만큼 연재 중단이라는 선고를 듣는다면 뼈다귀를 물고 경계하는 배은망덕한 개처럼 "으르릉" 하고 엄니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편집자들도 실은 그게 두려워서 차마 나한테서 뼈다귀를 빼앗지 못했을 것이다. 또 작은 지면이어서 까다로운 문예지 독자들도 일일이 불평을 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덕분에 심각한 문제 없이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 연재의 행복한 부작용으로 디자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 부드럽게 품을 넓힐 수 있었다는 사실도 여기 밝혀 놓고 싶다. 감각적인 디자인 작업은 자칫 마음속에 예각적인(286p.) 긴장감만 키워 놓기 십상인데, 언어라는 형태로 진열하고 보니 그것이 뜻밖에 부드러운 일화로 변용된다. 이 발견은 디자이너 경력에서도 의미 깊은 체험이었다고 본다. (287p.) 

 

하라 켄야 

그래픽디자이너, 무사시노미술대학 교수. '사물'의 모습과 '인간'의 살림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 인간의 감각을 각성케 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 무인양품 아트디렉션, 나가노올림픽의 개폐회식 프로그램이나 아이치 엑스포 므로모션에서는 일본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디자인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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