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표지 앞날개)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Douglas Adams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병원 청소부, 헛간 건설업자, 닭장 청소부, 보디가드 등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다. BBC의 라디오 대본을 쓰던 중 프로듀서인 사이먼 브렛Simon Brett과 함께 라디오용 코믹과학소설을 구상했는데 이것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의 시작이다. ......




지은이 소개가 마음에 든다. 물론,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든가 세인트존스 칼리지를 졸업했다든가, 영문학을 전공한 것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졸업 후에 이것 저것 다양한 일을 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재미있겠는걸?’
성급한 기대감? 읽어보면 알겠지.


388쪽. 단숨에 읽어 내리기에는 양이 꽤 된다싶었는데, 읽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인물과 배경, 진행 빠르고, 유머, 익살, 반전까지! 재미있어서 하룻저녁에 다 읽어버렸다. 나는 뷔페에 가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만 많이 먹는다. 책도 그렇다. 조금 읽다가 별로다 싶으면 가차없이 덮어버린다. 내 돈 내고 샀더라도 정작 읽어보니 별로다 싶은 책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린다. 반면 재미있는 책은 읽고 또 읽고 파고든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다음 날 저녁에 또 읽고, 일주일 지난 저녁에 다시 읽었다. 세 번 읽으니 됐다. 아주 양껏 먹은 셈이다. 당분간은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뭐 그래도 어쨌든, 영 잠이 안 오는 긴긴 밤이 온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 중에 하나를 골라서 읽어볼 생각이다. 그런 밤을 위해서 미리 책을 준비는 해둬야겠군. 오늘 밤이 바로 그런 밤이면 어쩐다? ㅋㅎ    







* 인상깊은 구절

전자수도사가 따분해하는 말을 타고 바위투성이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거친 실로 짜서 만든 수도복을 입고 고깔을 내려 쓴 전자수도사는 문제가 발생한 또 다른 골짜기를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12p.)

전자수도사는 식기세척기나 비디오녹화기처럼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식기세척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지긋지긋한 설거지를 해주고 직접 식기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비디오녹화기는 여러분을 대신해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보면서 여러분이 화면을 직접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고생스러움을 덜어준다. 전자수도사의 역할도 이와 비슷했다. 여러분을 대신해 무언가를 믿어주는 것, 점점 성가시고 부담스러워지기만 하는 그 일을 대신해주는 것, 세상이 여러분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들을 대신 믿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자수도사는 내부에 결함이 생겨 무작위로 모든 것을 믿게 되었다.  (12p.)

매일, 그것도 온종일 어떤 놈을 등에 태우고 다니면서 그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형성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매일, 그것도 온종일 다른 놈의 등에 올라앉아 있으면서 자신이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놈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형성하지 않는 것은 완벽하게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14p.)

참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하지만 가장 어이없고 터무니없는 것도 믿을 정도로 성능이 좋았다.
지금 말과 함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전자수도사는 출시된 후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믿는 바람에 고장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 11개를 동시에 시청 중이던 비디오녹화기와 실수로 교차 연결이 되는 바람에 전자수도사의 비논리 회로가 터져버렸다. 비디오녹화기는 텔레비전을 시청만 하면 되지 그 내용을 다 믿을 필요가 없지만 비디오녹화기와 교차 연결이 된 전자수도사는 녹화 중인 텔레비전의 내용을 전부 믿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봐야 하는 것이다.  (15p.)

이곳에서 수도사는 진가를 인정받고 있었다. 온종일 그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준 후 나지막하게 마법의 세 마디를 던졌다.
“난 당신을 믿습니다.”
그 말의 효과는 아주 좋아서 짜릿할 정도였다. 이 세계 사람들은 그 말을 서로에게 자주 하고는 있었으나 수도사가 프로그램 된 바에 따라 실천하듯 진실이 수반되지 않았으므로 상대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
원래 살던 세계에서 수도사의 그처럼 진실한 믿음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곳 사람들은 귀찮기만 한 믿음이라는 것을 수도사에게 떠넘기고는 수도사가 알아서 자기네를 위해 모든 것을 믿어주리라 여겼다. 그래서 누군가 대단히 혁신적인 생각이나 제안, 새로운 종교를 가지고 집으로 찾아오면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 우리 집 수도사한테 가서 말하세요.” 그러면 수도사는 자리에 앉아 경청하며 상대가 하는 말을 끈기를 갖고 믿었다. 수도사를 보유한 이들은 믿음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멋진 신세계에서 수도사가 직면한 유일한 문제는 바로 돈이었다. 그가 마법의 세 마디를 읊조릴 때마다 대화 내용이 곧장 돈에 관한 것으로 바뀌곤 했다. 그러나 수도사는 돈이 없었으므로 그를 찾아와 기대에 찬 얼굴로 말을 하던 이들은 곧 시들해하며 물러갔다.
‘돈을 구해야 하나? 하지만 어디서 구하지?’ (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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