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품절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 무엇이든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를 잡아 수시로 옆길로 새게 될지도 모른다.-52쪽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쓸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쓰기 작업은 아주 단순하고, 근본적이며, 엄숙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고독한 글쓰기에 전념하기보다는, 친구와 멋진 식당에 앉아 인간의 인내심에 대해 토론하거나 글쓰기의 고통을 위로해줄 상대를 찾아가는 데 마음이 이끌리게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극히 단순한 임무를 스스로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선가禪家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쓰기만 하라.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중무장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싸움은 하지 말라.-53쪽

다음은 예전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았을 때 나 자신을 달래던 방법들이다.

1. 한동안 글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 후 작품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친구에게 보여 줄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것이다.

2.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 나탈리, 너는 오전 10시 전까지는 마음대로 해. 하지만 10시 이후부터는 반드시 펜을 잡고 있어야만 해."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있을 시간과 공간을 할당하고 제한을 두었다.

3.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어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곧자 책상으로 달려가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해버린 것이다.

4. 작문 교사 일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글을 쓴다는 일은 정말 귀찮아진다. 그런데 집에서 세 구역 떨어진 곳에 직접 구운 맛있는 초코칩 쿠키를 파는 제과점이 있었다. 손님용 식탁도 마련된 이 제과점 주인은 손님이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한 시간쯤 지나면 이렇게 -53~54쪽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나탈리, 지금 그 크로와상 가게로 가서 딱 한 시간 동안만 글을 쓰는 거야. 그 동안 너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초코칩 쿠키를 두 개는 먹을 수 있잖아."
맛있는 초코칩 쿠키에 매우 약한 나는 대개 15분 안에 집을 나섰다.

5. 나는 한 달에 노트 한 권 정도는 채우려고 애를 쓴다. 글의 질은 따지지 않고 순전히 양만으로 내 직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이 명문名文이든 쓰레기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25일이 되었을 때 노트가 다섯 장 밖에 채워져 있지 않다면, 나는 나머지 5일 동안 전력을 다해 나머지 노트를 꽉 채우고야 만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편리한 방법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글이 안 써질 때도 무조건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죄의식과 두려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어떤 글이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54~55쪽

눈앞에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

미네소타 주 엘크톤, 이른 4월, 학교 주변에는 아직 파종을 하지 않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하늘은 진한 잿빛이다. 스물 다섯 명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랍비'의 철자법을 묻는다. 나는 대답을 해 주면서 내가 유태인이라는 사실까지 말한다. 학생들 모두가 생전 처음 유태인을 보았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들에게는 내가 '유태인'의 대표로 보일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나는 사과를 먹으며 걷고 있다 : 모든 유태인이 지금 사과를 먹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살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유태인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고 있다.
학생 한 명이 혹시 포로 수용소에서지낸 친척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학생들 대부분이 독일계 후손이다. -58쪽

케이크가 구워지고 있을 때 오븐 안의 열기는 그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열심이다. 이 열은 "아, 난 이것이 파운드 케이크가 아니라 초콜릿 케이크가 되면 좋겠어" 라는 생각을 하며 가열하지는 않는다. 글을 쓸 때 당신의 임무도 똑같다. '오, 난 내 인생이 싫어. 뉴욕이 아니라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식의 생각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라. 그저 당신의 상황과 진실을 적어 내려 가라
또, 당신이 만약 글을 쓰는 중간중간 자주 시계를 보는 사람이라면, "나는 공책 다섯 장이 다 채워질 때까지 즉, 케이크가 완전히 구원질 때까지 계속 글을 쓰겠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열을 가다하 중단한다면 그것은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89쪽

가끔 이런 이들도 있다.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 결과물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생각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세부 묘사를 사용하면 당신이 느끼는 환희나 슬픔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전달하려는 감저이 어떤 맛인지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면, 그것을 맛보고 싶어 하는 미식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독자들이 '아, 이거 파운드 케이크잖아' 또는 '가벼운 레몬 푸딩이잖아' 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아주 맛있어요. 일품이야!" 라는 말에는 에너지가 없다. 어떻게 대단한 것인가? 독자에게 그 대단함의 냄새를 맡게 하라. 바꿔 말해서 세부 묘사를 이용하라. 세부 요사ㅑ말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이자 단위다.-89~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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