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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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1,2』를 읽고 열광했다.
마커스 주삭의 책을 더 읽고 싶었지만 더이상 번역서가 없다.
1년 이상 기다림.

2009년 5월 드디어 『메신저』출간.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하여 읽고싶었으나 여의치 않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구성도서관 희망도서 신청.
한달 뒤 띵동~ 문자메시지 수신.
【[구성도서관]희망도서가 도착하였습니다.
[메신저]우선예약기간 2009년 7월 15~17일】
이런! 하필 지방 출장기간에 걸렸네ㅜㅜ

18, 19, 20... 26일!
도서관에 책이 도착하고 열이틀이 지난 26일에야
내가 도서관에 갈 수 있었다.
벌써 누가 빌려갔겠지 뭐..
헛수고하는셈치고 한 번 검색해봤는데, 와우!
'대출가능' 이라네^^
당장 찾아서 빌려가지고 읽기 시~작!

참 고맙지 뭐야.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동안 아무도 못알아본 덕분에 내가 처음 대출자가 됐쟎아?
게다가 마커스 주삭!
기다린 보람이 있어!

『책도둑』을 읽고 '말'로 그림 그리는 마커스 주삭에게 열광했다면,
『메신저』를 읽고는 '이야기'로 슬며시 주인공들 하나하나가
내 생활 속에 스며들어오는것 같아 으스스할 정도다.
(여기서 '으스스하다'는 표현은 사실 좀 그렇네.
실은 좋은 의미로 따뜻함이 쫙 번져오는 느낌인데 말이지)

아무튼 마커스 주삭은 참 괜챦은 인간이야.
이렇게 재미있고도 괜챦은 이야기를 나에게 두 번씩이나 들려주다니!

작년에 책도둑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면,
올해는 메신저를 읽고 그의 친구가 되었다.
물론 이렇게 일방적으로 친구가 되는 법은 흔치 않지만 말이다.

팬으로서, 친구로서 앞으로도 그의 책이 번역된다면 빼놓지 않고
읽게되겠지. 흐믓~

()


'옮긴이의 말'을 읽고, 옮긴이 정영목이 옮긴 책들을 찾아본다.
그정도로 옮긴이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여기에 '옮긴이의 말'을 옮겨본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고 지혜로워진다는 말을 잘 안 믿는 쪽이다. 다른 곳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바로 나 자신을 볼 때면, 정말이지 그 말이 중년이나 노년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지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간혹 그 데데함과 비루함에 질릴 때면,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연골이 닳아 없어지듯 사람다운 좋은 면도 닳아 없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똑같은 이유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말로 너그럽고 지혜로워지는 희귀한 예를 만날 때면 존경하는 마음도 훨씬 더 강해진다).

물론 젊은 사람들의 너그러움과 지혜로움은 시험을 거쳐 얻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존재의 불안정의 뒤집힌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시험을 거쳐 남은 것이라고는 속좁음과 어리석음 뿐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 모든 걸 자기 중심적으로 하겠다는 말의 위장으로 느껴지고, 안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아슬아슬한 것인지 깨달을 때면, 외려 젊은이들의 모습이 사람의 연약한 본질을 가장 어른스럽게 감당해내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내가 만난 그런 좋은 젊은이들 가운데도 마커스 주삭은 특히 연골 같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식어가는 마음을 덥혀준다는 점에서 각별하게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으로 딱 두 번밖에 만난 적이 없지만, 주삭은 지난번 『책도둑』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황에서 리젤이라는 독일 소녀를 소개해주더니, 이번 『메신저』에서는 21세기 오스트레일리아의 대도시 변두리 지역에 사는 에드라는 이름의 스무 살이 채 안 된 택시기사를 소개해주었다. 시대적 배경, 나이, 성별, 각자가 처한 상황 모두 다르지만,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방금 말했듯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따뜻함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과 마음을 뻗는 데서 나온다. 특히 『메신저』에서는 이런 인간적 연대가 단지 이타적인 행동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점은 곱지 않게 늙어가는 개인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애늙은이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도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아닐까.

사실 『메신저』는 『책도둑』보다 앞서 2002년에 나온 작품으로 흔히 마커스 주삭의 출세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특히 결말부를 읽은 뒤에는, 이 작품을 그의 작가로서의 출사표(出師表)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이 작품에서는 『책도둑』에서 활짝 피어났던 주삭 특유의 글쓰기 방식도 꽃봉오리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책도둑』에서 그의 문체에 매혹되었던 독자들은 『메신저』를 앞에 두고 입맛을 다실 것이고, 반대로 너무 낯설다고 느꼈던 독자들은 『메신저』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새로운 맛의 강도를 높여가며 적응해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가와 젊음의 유대를 형성하여 마음 가득 물결처럼 온기가 퍼져나가는 느낌에 젖어보는 것이야말로 노소를 막론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2009년 5월
정영목


 

 

오 이런! 내 눈을 믿을 수 없다. 책 속에 내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백퍼센트, 아니 이백퍼센트 일치하는 나 자신과, 내 엄마가...


(325쪽) 

"엄마?"
"왜?"
"왜 날 그렇게 미워하세요?"
그러자 나를 본다. 이 여자가. 나는 눈이 내 속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단조롭게, 간단하게, 엄마는 대답을 한다.
"왜냐하면, 에드.... 널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거든."
그 사람?
의미가 파악된다.
그 사람, 아버지.
엄마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다.

한 사내를 커시드럴에 데려가 죽이려고까지 한 적도 있다. 청부 살인자들이 내 부엌에 들어와 파이를 먹으며 나를 두들겨 팬 적도 있다. 십대 깡패 집단한테 몰매를 맞은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 나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간으로 느껴진다.
우두커니 서 있다.
상처를 받으며.
나의 어머니의 현관에.

하늘이 열린다. 부서져 열린다.
손과 발로 문에 망치질을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푹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고 만다. 혼을 빼버릴 듯 엄청난 타격을 준 말 옆에 쓰러진다. 그 말을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으니까. 알코올중독 부분만 빼면, 아버지와 같다는 게 전적으로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가한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렇게 끔찍한가?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얻을 만한 답을 얻기 전에는 이 엿 같은 문간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필요하다면 여기서 잘 거고, 내일 하루 종일 땡볕에서 기다릴 거다. 다시 일어서서 소리친다.
"나 안 가요, 엄마!" 다시. "내 말 들려요? 나 안 간다니까."
십오 분 뒤 문이 다시 열리지만 엄마를 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길을 향해 말한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잘해줘요. 리, 케이스, 토미 모두. 마치..." 여기서 약해질 수는 없다.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정말 멸시하듯 말을 해요.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은 나예요." 이제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본다. "뭔가 필요할 때 여기 있는 사람은 나라고요. 매번 내가 다 해요, 안 그래요?"
엄마도 동의한다. "그래, 에드." 하지만 엄마도 달려든다. 엄마 나름의 진실로 나를 공격한다. 그 말들이 귀를 너무 날카롭게 파고드는 바람에 귀에서 피가 흐를 것만 같다. "그래, 넌 여기 있어. 바로 그게 문제야!" 엄마는 두 팔을 펼친다. "이 쓰레기장 같은 곳을 봐. 집, 이 지역, 죄다." 목소리가 어둡다. "그리고 네 애비... 그 사람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겠다고 나한테 약속했어. 그냥 짐을 싸서 떠날 거라고 말했어. 그런데 우리가 어디 있는지 좀 봐, 에드. 우린 아직도 여기 있어. 난 여기 있어. 너도 여기 있고. 너는 꼭 네 애비 같아. 늘 약속만 해, 에드. 하지만 결과는 없어. 너...." 엄마는 독을 바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너는 걔들 누구 못지않게 잘될 수 있었어. 심지어 토미만큼 잘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아직도 여기 있고, 오십 년이 지나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아주 차가운 목소리다. "그때도 넌 뭐 하나 이룬 게 없을 거야."
소리가 희미해지며 정적이 찾아온다.

"난 네가..." 엄마가 정적을 꺠다. ".... 뭘 좀 해봤으면 좋겠어." 엄마는 천천히 현관 계단으로 다가오며 말한다. "네가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에드."
"뭔데요?"
이제 조심스럽게 말이 흘러나온다. "네가 믿든 안 믿든....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거야."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엄마는 현관에 그대로 서 있다. 나는 잔디밭으로 내려가 다시 엄마르 ㄹ돌아본다.
맙소사, 이제 깜깜하다.
스페이드 에이스만큼이나 깜깜하다.(328쪽)


(375쪽)
집을 나와 잔디에 들어서는데 뒤에서 두 사람이 부른다. 처음에는 토미가, 그 다음에는 엄마가.
토미가 나와서 말한다. "잘 지내는 거지, 형?"
다시 돌아간다. "잘 지내, 토미. 정신없는 한 해였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 넌?"
우리는 현관 계단에 앉아 있다. 반은 그늘에 가려 있고, 반은 해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있고, 토미는 빛 속에 앉아 있다. 정말이지 상징적이다.
오늘 들어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짧은 질문에 대답한다.
"대학은 괜찮고?"
"응, 점수가 잘 나왔어. 기대 이상이야."
"잉그리드는?"
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정적이 흐른다. 이윽고 우리 사이의 정적이 깨지며 둘 다 웃음을 터뜨린다. 아주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나는 토미를 축하하고 토미도 자축을 한다.
"나쁘지 않아." 동생이 말한다. 진심으로 동생한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잉그리드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비하면 잉그리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잘됐어, 토미." 토미의 등을 한 대 치고 일어선다. "행운을 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토미가 말한다.
"언제 전화 한번 할게. 한번 봐."
하지만 이번에도 장단을 맞추줄 수가 없다. 몸을 돌리고, 나도 놀랄 정도록 차분하게 말한다. "네가 전화하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기분이 좋다. 거짓말로부터 벗어나니 상쾌하다.
토미도 동의한다.
"형 말이 맞아."
우리는 아직도 형제다. 누가 알랴? 어쩌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정말로 한번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여러 가지를 함께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속을 털어놓을지. 대학이나 잉그리드보다 더 큰 것들에 관해.
빨리는 안 되겠지만.
잔디를 건너며 말한다. "잘 가, 토미. 나와줘서 고마워." 한 가지에는 만족한다.
사실 해가 우리 둘 다 밝에 비출 때까지 현관에 그대로 앉아 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일어서서 계단을 내려왔다. 해가 오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해를 쫓아가련다.

토미가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거리로 나서려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나온다.
"에드!"
엄마를 마주 본다.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엄마도요." 그러고 나서 덧붙인다. "그런데 엄마, 장속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예요. 여기를 떠나 다른 어디로 갔다 해도 엄마는 똑같았을 거예요." 사실이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해도...." 침을 삼킨다. "먼저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 된 다음에 떠날 거예요."
"알았다, 에드." 엄마는 멍한 표정이다. 나는 이 평범한 지역의 가난한 거리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자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맞는 말 같구나."
"나중에 봐요, 엄마."
떠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377쪽)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다는 거야." 라고?.. 틀렸다.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 '사랑' 대신 '기대'라는 말을 쓴다면 정답이다. "기대가 아주 커야만 (그리고 기대한 만큼 이뤄지지 않아서 실망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다" 라고 했다면, 내가 이렇게 끝까지 말꼬리 잡고 늘어질 필요도 없는데...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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