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홍어 삭힌걸 잡숴보셨는지? 저는 20대 후반에 그 음식을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별 장식도 없이 그저 허름한 음식점이었는데 사람들로 꽉 차서 복잡하던 분위기가 생각납니다. 처음에 홍어 한 점을 입에 넣었을 때, 무슨 맛을 보기도 전에 강하게 번지는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으으윽' 신음을 했죠. 그런 저를 보고 무슨 큰 구경이나 난듯 즐거워하던 동료의 얼굴도 떠오르구요, 또 한 명, 홍어 삭힌 걸 처음 먹어본 한 사람(남자)은 다음 날 그 소감을 밝혔는데, "어이구, 내가 어제는 술에 취해서 맛두 잘 모르구 그저 먹었잖아. 밤에 자는데 속이 거북하더라구. 술을 너무 마신 탓도 있지만, 내가 참.. 밤새 속에서 올라오는 그 냄새 있잖아, 그 냄새가 꼭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란 말이지. 마누라가 그러데? 어디 똥통에 빠졌다 왔냐구. 어으~ 내가 그 음식을 다시 먹으면 내가 참 사람이 아니라니까!" 크흐흐. 물론 지금은 둘 다, 누가 "홍탁 먹으러 가자" 하면 열 일 제쳐두고 따라 나서게 되었지만, 처음 경험은 그토록 지독한 것이었죠. 그러고 보니 비도 계속 내리고, 꾸리꾸리한 일상에 톡 쏘는 홍어 한 접시가 생각나네요^^.

마침 <내 심장을 쏴라> 리뷰를 쓰려던 참이라 그런지 이 책이 꼭 제 인생에 홍어가 될 것 같은 은 느낌입니다
.

얼마 전에 『밥줘!』라는 드라마를 보니까 주인공 남자의 딸이 그러더군요
.

"
나는 아빠가 무서워요
."
"
아니 뭐야? 아빠가 무섭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
"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은 무섭거든요
."

그렇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무섭습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저와 다른 정신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는 것과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 사실 좀 거북했습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런 거북함은 곧바로 사라졌지만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주인공이 '나와 다른 정신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정신병원에 가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구요
^^;)

이수명, 류승민. 소설의 중심 인물입니다. 두 사람 가운데 단연 류승민이 매력적(?)이지만, 저는 내내 이수명에게 감정이입하고 있었습니다
.

'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213
)
'
가둔다, 감시한다, 통제한다'는 의미로 볼 때, 책에서 말하는 정신병원은 감옥과 다를 것이 없네요. 그래서 저는 웃기는 다짐을 하나 합니다. 미쳐서 갇히는 일이 없도록 정신 똑바로 차릴 것! 갇혀서 미쳐가는 일이 없도록 감옥 갈 일 하지 말 것
!

이쯤에서, <내 심장을 쏴라>가 삭힌 홍어라면, 이 음식을 만들어준 작가 정유정은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전남 함평 출생. 광주기독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심사직으로 근무했다. 2001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2007년 삼 년에 걸친 구상과 집필 끝에 탄생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고 하구요. '등단 이후 쏟아지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내 인생을 쏴라> 집필에만 몰두해 다시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한때나마 '소설가'를 꿈꾸던 학창시절로 돌아가 '아하,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구나. 역시.. 치밀해야 해. 그리고 자기가 잘 알 수 있는 분야를 써야해.' 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어보고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

아무튼 참 재미있는 소설이니 읽어보시든지 마시든지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실 일이구요
,
저는 마지막으로, 접었던 꿈을 펼쳐보게 해주고 결정적 힌트와 용기를 함께 준 정유정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리뷰를 마치렵니다
.

참고로
,
<
내 심장을 쏴라>를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리뷰가 아닐까 생각하며 기록해두는 의미로 여기 옮겨두겠습니다.





   
 

당선작으로 뽑힌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거듭 탈출을 꿈꾸고 또 시도하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일상에 대한 은유처럼 소설은 진지한 의문을 가슴에 품게 만든다.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열심히 쓴 작품이라는 점에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치밀한 얼개, 한 호흡에 읽히는 문장, 간간이 배치된 블랙 유머 등도 인상적이었다. 문체가 내면화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오히려 역동적인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그 움직임 속에 심리를 담아내는 미덕으로 읽는 의견도 있었다. 도입부가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발자크 소설처럼, 처음 60쪽가량의 지루함만 참아낸다면, 그리하여 소설적 상황과 등장인물들과 친해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몰입하여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소설은 마치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듯 주인공과 독자를 밀어붙이지만 일단 꼭대기에 다다르기만 하면 나머지 길은 흥미진진하고 가속도가 붙는 활강장이 된다. 소설의 막바지, 주인공의 내면 깊은 곳에 닿아 그곳에 눌러두었던 무서운 진실과 만나는 대목은 가슴 서늘한, 뜨거운 감동을 준다.

김화영, 황석영, 박범신, 구효서, 은희경, 김형경, 하응백, 서영채,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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